성경 확대경 - 요한복음 제V부 예수께서 자신의 생명을 주심 (18-20) 제 14 장 예수의 체포, 심문, 그리고 죽음 (18, 19)
 아침에 예수께서는 대제사장의 집에서 로마 관정으로 끌려가셨고, 부정하게 되는 것이 두려워 유대 종교 지도자들은 밖에 머물러 있었다(18:28). 28b-32절의 내용은 요한복음에만 나오는 것이다. 빌라도는 기본적인 법적 질문을 던진다: “너희가 무슨 일로 이 사람을 고소하느냐?”(29절). 빌라도가 유대 종교 협의회의 결정을 맹목적으로 받아들인 것이 관례가 아니었고, 또 설사 그것이 그러했다 하더라도 30절의 진술은 종교 지도자들 편에서 다소 오만한 것이었다. 그러나 빌라도는 바른 절차를 주장했다: “이 일을 다루기를 원하면 너희 스스로 해 보라”(31절). 그러나 로마법 아래서 유대인은 예수를 십자가 형에 처할 권한이 없었으므로, 이 복음서의 기자는 어떻게 하여 그 상황이 예수께서 자신의 죽는 방법에 관해 예언한 것을 성취시키게 하는 합법성을 가지게 되었는지를 기록하고 있다(31, 32절; 참고 12:32, 33). (319.1)
 요한복음 18:28-32에서 우리는 저자가 두 가지 사실에 흥미를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첫째, 요한은 유월절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는데(28절), 이는 예수께서 유월절 양이 예루살렘 전역에서 살해당하는 그 시간에—놀랄 만한 표상의 성취로—돌아가셨음을 의미한다(19:35, 36). 또한 요한은 로마인들과 유대인 상호관계에 영향을 미치는 법적 정당성에 대해 매우 상세하게 밝히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유대인들은 많은 부분에서 백성을 심판하도록 허용되었으나, 사형에 처할 사안을 결정할 권한은 로마인들이 가지고 있었다. (319.2)
 18:33-38a에서 빌라도는 예수와 처음 대담을 나눈다. 이 본문 속의 모든 내용은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33절)라는 질문을 빼놓고는 요한복음에만 나오는 것이다. 비록 그 주장이 종교 지도자들에 의해 나온 것인지는 언급되어 있지 않지만, 빌라도의 질문은 제사장들이 로마의 왕권의 경쟁자라는 용어로 고발했음을 드러낸다. 예수의 대답(34절)에서, 빌라도가 정치적인 관점에서 그 사실에 개인적인 흥미를 가진 것인지, 아니면 단순히 유대인들이 그를 부추긴 것을 수행하는 것인지를 예수께서 파악하려는 것임을 알 수 있다(Jameison, Fansset, and Brown, 1070). 빌라도는 개인적 흥미를 가졌음을 인정하기를 회피하기 위해 의례적인 질문을 던졌다(35절). (319.3)
 예수의 다음 대답은 빌라도의 법정 질문에 대한 직접적인 대답이었다(36절). 예수의 왕권은 빌라도가 관심을 기울이는 지상의 정치적 용어로 이해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예수께서 통치하는 왕국은 “다른 곳,” 즉 빌라도의 통치권 밖에 있는 것이다. 그 증거로 예수께서는 그가 체포되실 때 그를 따르는 자들의 태도를 설득한 것을 논증으로 제시하였다. 그가 정치적인 혁명가였다면, 그를 따르는 자들이 그의 체포를 저지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싸웠을 것이다. 이 말씀을 통해 11절에서 예수께서 베드로를 꾸짖으신 또다른 이유를 알 수 있을 것이다. (320.1)
 36절의 예수의 논증에 설득이 된 것 같았으나 빌라도는 예수께서 말씀하신 것에 대해 자신이 이해한 것을 명확하게 하기를 원했다(37a절). 예수께서는 그의 왕국이 정치적, 경제적, 그리고 군사적인 권력 이상으로 진리에 연관된 영적인 것임을 다시 반복하여 말씀하셨다(37b절). 예수의 말씀은 정직하게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을 위한 자기 확증의 권능을 가진다. 그러나 빌라도는 이 논의에 대해 전혀 영적인 이해를 가지고 있지 못했다. 그는 다시 예수에 대한 개인적 흥미를 억누르며 경박한 어조로 말했다: “진리가 무엇이냐?”(38a절). (320.2)
 빌라도는 분명히 그 시대의 산물이었다. 예수께서 태어나셨던 시대에는 위대한 사상가들이 매우 불확실해 보이는 진리에 대한 많은 상반된 주장들을 하고 있었다(Koester, 141-280; 화잇, 시대의 소망, 32). 여러 면에서 이것은 오늘날의 다원주의와 비슷했다. 빌라도는 법적으로 옳은 것을 행하기를 원했지만, 누군가에 대해 강한 종교적 확신을 가질 여지가 없었다. (320.3)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겠다는 확신으로 재판정에 나온 그는 예수를 정죄하려는 종교 지도자들의 체면을 살려주는 계획을 제시했다(38, 39절). 공관복음과는 다르게 요한복음에는 빌라도가 양자택일로 바나바를 제안하는 모습이 나타나지 않는다. 대신에 빌라도는 그들에게 예수의 석방을 받아들이라고 요구하고 있다. 그때 그들은 빌라도가 예수는 선한 것이 없다고 동의할 것으로 여겼다. 그러나 유월절은 사람들의 마음이 너그러워지는 때이므로 예수께 또 한 번의 기회가 주어졌다. 그러나 종교 지도자들은 자신들의 체면이나, 빌라도의 체면은 안중에 없었다(40절). 그들은 예수가 죽음의 대가를 치르게 되기를 원했다. 이는 빌라도가 생각한 것보다 일을 더 복잡하게 만들었다. (321.1)
 이제 종교 지도자들과 빌라도 모두 진퇴양란에 빠지게 되었다. 종교 지도자들은 정부에 고소한 일이 소용없게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들은 뭔가 다른 계교를 세워야 했다. 빌라도는 바른 일을 하기 위하여 종교 지도자들이 그 재판에서 자기편에 서도록 설득을 하든지, 아니면 분노한 그들의 면전에서 예수를 석방하든지 해야 했다. (321.2)
 빌라도는 후자를 묵살하고 한 인간으로서 예수에 대한 동정을 불러일으키기로 작정했다(19:1-5). 빌라도의 내면에 개인의 이익과 공의가 서로 갈등하고 있었다. 빌라도는 자신이 옳다고 여기는 것을 행할 만한 정직성이 결핍되어 있었는데(18:38; 19:6), 이는 그것이 자기 이익에 방해가 되었기 때문이다(Gruenler, 133). (321.3)
 그러므로 빌라도는 예수를 채찍질하게 하고(막 15:15에 따르면, 종교 지도자들을 무마시키기 위하여), 예수에게 가시관을 씌우고 왕의 옷을 입히고, 그를 조롱하여, 손바닥으로 때리는 것을 지켜보았다(19:1-3). 빌라도는 예수의 왕권에 대한 주장이 가이사에게 직접적인 위협을 주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왕권 주장에 대해 그의 군병들이 경멸하게 만들었으나 정작 본인은 크게 흥미를 느끼지 못한 것이 분명하다. (321.4)
 그 다음의 사건은 요한복음에만 나타나는 독특한 것인데(4-7절), 빌라도가 예수는 죄 없는 희생자임을 종교 지도자들이 동의하리라는 기대를 가지고 체벌을 받은 그를 그들에게 보여주는 장면이다. 그 과정에서 빌라도는 저 잊지 못할 “이 사람이로다”(「제임스왕역」에는 “이 사람을 보라!”[“Behold the man!”]로 되어 있다—역자 주)는 말을 하고 있는데, 그에게는 별 중요성이 없는 말일지 모르지만, 예수의 사역 초기에 “하나님의 어린양을 보라”라고 침례자가 외친 것과 유사한 점에 요한이 주목한 것 같다(5절; 비교 1:29, 36). (322.1)
 종교 지도자들은 빌라도가 희망한 대로 반응하지 않았기에 그는 모든 책임을 그들에게 전가시키려 하였다(19:6). 빌라도가 그들의 동의 없이 예수를 석방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인 반면에 그들은 유죄 판결을 받지 않고서 재판을 끝낼 의사가 없었다. 정부에 고소한 일이 뜻대로 안 되자, 종교 지도자들은 다른 방향으로 방향을 바꾸었다. 그들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예수의 참람된 행위(5:16-18; 10:33)가 빌라도로 하여금 그들의 종교가 신성모독 당하는 것을 막기 위한 행동을 하게 만든다고 주장했다. (322.2)
 이점에 있어 빌라도는 비난받을 입장에 서 있었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과거 여러 사 건 중에 빌라도는 유대인의 입장에서 보면 신성모독으로 간주될 수 있는 방식으로 행동했었다(Barclay, 2:238-240). 적어도 그 중 한 사건에서 황제가 유대인을 위하여 강제로 개입하여 빌라도를 저지시킨 적도 있었다. 빌라도는 정치적으로 다시 유대인의 종교에 반대하는 신성모독을 시행하거나 허용하는 것으로 비춰지게 할 수 없었다. 종교 지도자들은 19:7에서 비열한 책략을 벌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들은 빌라도가 이 사안에 대해 그들이 원하는 것과 반대 방향으로 가면 무거운 개인적인 대가를 지불하게 될 것이라고 협박했다. (322.3)
 8-16절에서 우리는 제4 복음에만 나타나는 빌라도의 딜레머와 그가 선택한 해결 방식에 대해 더 많은 통찰력을 가지게 된다. 그는 종교 지도자들이 로마에 정치적인 영향을 끼치는 것에 대한 개인적인 취약점 때문에 당혹해 하고 있었다. 그러나 종국에 가서 빌라도는 그의 능란한 기교로 예수께 개인적인 불이익을 끼치면서, 자신의 정치적인 유익을 얻도록 그 상황을 전환시키게 된다. (322.4)
 종교 지도자들에 대한 그의 호소가 무산되자, 빌라도는 유대인들에게 빠진 궁지에서 자신을 구해줄 뭔가를 끌어낼 희망으로, 두려움에 가득 차서 예수께 돌아왔다(8, 9절). 그러나 예수께서는 대답을 반복하기를 원치 않으셨다(9절). 그러나 예수께서는 빌라도의 딜레머에 다소간에 동정심을 가지셨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빌라도가 개인적으로 그를 반대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았기에, 사려 깊게 그 상황 속에서 가능한 한 빌라도의 죄책을 벗겨주려고 하였다(10, 11절). 빌라도는 예수와 어떤 유대감이 쌓였는지는 몰라도 그를 석방하려는 노력을 재개하였다(12절). 물론 그는 자신의 권위로 예수를 석방할 수 있었으나(10절), 정치적으로 종교 지도자들의 동의 없이는 그렇게 할 수 없는 너무도 연약한 입장에 처해 있었다. (323.1)
 종교 지도자들은 의기양양하여 새롭게 획득한 정치적 유리함을 충분히 활용하였다. 만일 빌라도가 스스로 가이사를 대신하는 왕이라고 하는 사람을 석방한다면 가이사가 그들의 편에 설 것이라고 주장했다(12절). 이 순간 빌라도는 그가 결정을 못 내리고 유약하면 자신과 예수 모두를 구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자신을 구하기로 결정했다. 결심을 굳힌 후, 집정관은 이제 그 상황을 장악하게 되었다. 그는 종교 지도자들의 요구에 동의 할 것이나 그들은 그에 대한 대가를 지불해야 했다. 다시금 빌라도는 침례자의 말을 반향시켰다: “보라! 너희 왕이로다!”(14절; 참고 19:5; 1:29, 36). (323.2)
 종교 지도자들은 그들이 이미 이겼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빌라도가 그들을 함정에 빠뜨리려는 새로운 시도를 하려고 한다는 우려로 그들은 반복하여 “없이 하소서! 저를 십자가에 못박게 하소서!”라고 외쳤다(15절). 빌라도는 사형 선고로 옮겨갔다. “내가 너희 왕을 십자가에 못박으랴?” 대제사장들은 “가이사 외에는 우리에게 왕이 없나이다”고 말했다. 이제 빌라도는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도록 내주어야 했다(16절). 그들은 그를 소유하기 위하여 큰 대가를 지불해야 했다. 그들은 가이사를 섬길 책무가 있다는 공식적인 기록에 남겼다. (323.3)
 앞에서(11:48-52) 가야바는 국가가 멸망당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한 사람이 희생되어야 한다고 주장했었다. 이제 그는 한 사람을 멸망시키기 위하여 국가를 희생할 태세였다(화잇, 시대의 소망, 745). 종교 지도자들은 그와 같은 고난을 당하는 예수의 왕권은 거부하고 이제 그들이 항상 증오해 왔던 한 왕을 칭송하고 있다. 빌라도는 장래에 이 서약으로 그들을 묶어두려고 시도했다. 그들은 그에 대해 더 이상 힘을 쓸 수 없게 되었다. 이 복음서의 이 시점부터 빌라도의 마음은 요지부동(搖之不動)이었다. (3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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