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본체를 붙잡다 제4부 재림교회 중심부의 그리스도론 논쟁 제14장 역사적인 진리에 대한 탐구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존슨의 시도는 확실히 가치가 있다. 의문이 여지없이 해결의 첫 단계는 죄의 개념에 대한 성서의 정의이다. 그리스도께서 취하신 타락하고 고통이 있고 퇴락된 인성과 그분에게 거는 순결하고 거룩하고 죄없는 본성 사이에 뚜렷한 대조는 견해의 두 가지 반대 요점을 화해시킬 만한 설명을 발견하지 않게 될 것이다. (329.1)
 아무튼 이 목적을 성취시키기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무엇이 되시고 되지 않으신다는 것을 설명하는 것으로 충분치 않다.119 모든 재림신도들은 예수께서 죄가 없으셨다는 것, 당신 안에 악한 성향을 갖고 있지 않았고 그래서 그 상태에서만 우리 구주가 되실 수 있으셨음을 믿는다. 어떻게 그가 죄를 범하지 않고 죄 있는 육신의 모양을 지니신 육신 가운데 우리와 한결 같이 시험을 받으실 수 있었는지 설명이 되어야만 한다. 이것이 바로 문제의 핵심이다. 그러나 이 문제가 풀릴 때, 그리스도는 우리의 비할 데 없으신 구주로서 더 진실하게 드러나실 것이다. (329.2)
 잭 쉐케라와 죄의 문제
 <저편(Beyond Belief)>120이란 그의 저서에서 잭 쉐케라는 그 해결점을 죄에 대한 성서적 정의 가운데 그리스도의 인성문제에서 찾는다. 제목에서 제시하는 대로 저자는 ‘믿음 저편’의 독자들을 영원한 복음의 약속과 능력과 실재를 향해 이끌려고 한다. (329.3)
 쉐케라는 그리스도론에서 보다 궤변 가운데 더 흥미를 끌려고 한다. 그는 새로운 빛 가운데 구원의 계획121을 놓으려고 한다. 그러나 어떤 사람도 그리스도의 사역을 그분의 인격에 대해 말하지 않고 설명할 수 없듯 쉐케라는 그리스도의 인성에 관한 요점과 죄의 본질에 대한 입장에서 설명하려고 애쓴다. “복음은 죄 문제에 대한 우리의 연구의 첫 번째 목표로 삼아야 한다. 우리는 너무 자주 그 문제의 충만한 영역을 먼저 깨달음 없이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복음)안에서 우리를 위해 준비해 두신 해결점을 깨달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본질과 행위 두 편에서 우리의 완전한 죄 됨을 진실로 우리가 이해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구원을 이해할 것이다.” (329.4)
 “죄로 타락된 본성을 우리가 이해할 때까지는 자신에 대한 확신을 잊어버리고 우리의 유일한 의로서 그리스도께로 돌아갈 수 없을 것이다. 복음은 의미를 잃게 되고 죄를 충분히 깨닫지 못하게 한다.”122 (330.1)
 쉐케라는 죄의 근원과 발달을 추적한다. “아담과 하와의 후예로서 우리는 모든 죄의 노예들이다. 우리는 자아 중심으로 태어 났고 우리의 자연적 경향이 하나님으로부터 떠나 살기를 원하는 것이다.(요 8:34; 롬 1: 20~23, 6:17을 보라).”123 구약성경은 죄에 대해 다수의 다른 낱말을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시편 51장 2, 3절 가운데서 우리는 세 가지 열쇠가 되는 단어들로 표현된 기초적 개념을 찾는다. 곧 허물(iniquity), 죄(sin) 그리고 불법(transgression)이다. (330.2)
 (1) 허물(iniquity):이것은 근본적으로 죄에 대한 행동을 말하지 않고 죄의 상태에 대해 말한다. 본질적이고 영적으로 우리는 ‘구부러진(bent)’ 상태에 있다 (시 51:5; 사 53:6; 64:6).

 (2) 죄(sin):문자 그대로 ‘표적을 잃다.’ 이것은 하나님의 이상에 미치지 못하는 것이다.(롬 3:23; 7:15~24; 사 1:4~6)

  (3) 불법(transgression):이것은 하나님의 율법을 거역하는 것, 불순종의 행위이다.(요일 3:4; 롬 7:7~13).”
124 (330.3)
 이사야 53장 6절을 인용하면서 쉐케라는 “첫째로 우리 모두는 본성적으로 기울어진 ‘우리의 길’을 따라왔기 때문에 우리 모두는 길을 잃어버렸다. 둘째로 이것은 우리 자신의 길로 따르도록 구부러졌고 이런 자아중심이 그리스도께 놓여진 모욕이며 그로 우리의 죄짐을 진 자가 되게 하였다. 그가 십자가에서 ‘육신 속에 있는 죄를 멸’하셨던 것이다. 그것은 당신이 정죄하신 죄에 대한 구부러짐이었다.”125 (330.4)
 하나님은 당신의 아들을 죄 있는 육신으로 보내사 당신의 자녀들에게 그들이 하나님의 율법을 이와 같이 순종할 수 있다거나 그들을 위한 한 모본으로 봉사하신 것이 아니고 그들을 죄에서 벗어나게 하신 것이다. “그리스도론의 핵심은 그리스도께서 인성(humanity)을 취하셨다는 영광스런 진리이다.” (330.5)
 “그래서 그분은 세상의 구주가 되실 수 있었다. 첫째로 그분은 당신을 구주로 받아들이는 자들에게만 우리의 본이 되신다.”126 (331.1)
 왜 성육신이 되셔야만 하셨나를 설명하기 위해 쉐케라는 또한 ‘어떻게’를 생각한다. “어떻게 그리스도가 당신의 인성 안에서 인류를 구원하셨는가?” 대해서 곧 그리스도께서 인간을 대신해서, 또는 실제적으로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타락한 본질을 취하심으로인가? 쉐케라는 후반에 대리하는 입장의 견해를 거절한다. 그는 “복음을 비윤리적으로 만든다”고 주장한다. 무죄한 사람이 죄인을 대신해 죽어야만 한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 더 나아가 그것이 바로 복음을 ‘값싼 은혜’127로 쉽게 하락시킨다. (331.2)
 쉐케라에 의하면, “그리스도는 당신의 인성 가운데 실제적으로—대리해서가 아니라—남녀 인간을 구원하셨다. 이런 입장을 취하는 자들은 그리스도께서 아담이 타락한 후의 인성을 취하셨다고 가르친다.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타락한 인성을 구하러 오신 이후 구원에 필요되는 죄 있는 인성을 취하여야만 하셨다. 이렇게 스스로를 우리의 타락한 인간됨과 동일시 하심으로, 그리스도는 당신 자신을 둘째 아담이 될 자격을 얻으셨고 법적으로 우리의 대치물이 될 권리를 얻으셨다.”128 (331.3)
 쉐케라에게 이것은 그리스도의 인성이 우리의 타락한 인간성과 정확하게 같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분명히 “성경은 그리스도께서 실제로 우리가 알 듯 우리의 정죄 받은 죄 있는 인성을 취하셨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죄 있는 인성 속에 거하는 ‘죄와 사망의 법’(롬 8:2)을 폐하셨다. 그것을 십자가에서 이행하셨다. 그리스도가 취한 본성의 죄 된 욕망에 생각으로라도 동의했다면 그는 스스로를 구주를 필요로 하는 죄인이 되어야 할 것이다. 바로 이것이 왜 그리스도의 인성문제를 취급하는 데 있어 그분의 마음이나 선택이 죄로 끌러가지 않도록 극히 조심해야 하는 이유이다.”129 (331.4)
 죄 문제와 관련해서 쉐케라는 우리가 성경이 무엇을 말씀하는지 그 범위 밖으로 나가지 말 것을 강조한다. “우리는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그의 죄를 물려받았다는 것을 가르쳐서는 안 된다.” (331.5)
 “이것은 어거스틴에 의해 소개되고 로마 가톨릭에 의해 채택된 ‘원죄’의 이설이며 법적인 의무로서 죄(허물)는 항상 개인적인 의지력이나 책임감을 포함한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가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그 무엇을 위해 개인적으로 책임을 지우지 않으신다. 우리가 개인적으로, 양심적으로, 신중하게, 고집스럽게 그리고 궁극적으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영생의 선물을 거절할 때에만 죄에 대한 허물과 책임이 주어지고 둘째 사망이 우리에게 주어진다(요 3:18, 36; 막 16:15; 히 2:1~4; 10:14, 26~29).”130 (332.1)
 쉐케라의 그리스도론은 오직 죄인들이 어떻게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받는지에 관한 그의 신학의 기초이다. 대리적인 속죄를 거절하는 그의 비전통적인 입장은 논쟁점을 가지고 있으나 그는 분명히 전통적 그리스도론에 대한 우호적 입장을 성서에 자신의 논증에 대한 기초를 두고 엘렌 G. 화잇의 진술에 두지 않는다. (332.2)
 엘렌 G. 화잇의 그리스도의 인성에 대한 최후의 진술
 우리는 엘렌 G. 화잇의 초기 진술과 함께 150년간의 재림교 그리스도론에 초점을 맞추는 역사적 연구를 시작했다. 우리는 그녀의 최후의 진술 중 한 가지를 가지고 이 역사적인 연구를 마치려고 한다. 이 흥미를 일으키는 진술은 최근에 발견된 것인데, 문제의 가장 논쟁점이 되는 것으로 즉 그리스도가 인간의 모든 악에 기우는 경향에 지배를 받으셨는지 그렇지 않으면 그 모든 경향으로부터 면제되셨는지에 대한 논쟁이다. 우리의 조사 연구는 그리스도의 인성과 관련해서 ‘죄 있는 경향(sinful tendencies)’이란 표현을 결코 사용한 적이 없었다는 조지 나이트의 연구를 확증한다. 조지 나이트에 의하면 그것은 “그리스도의 인성에 대한 프레스캇, 와그너 그리고 존스의 가르침이었고 반세기 재림교회의 기류에 팽배했던 것이다.”131 그러나 최근에 발견된 재림교회 문서는 그녀가 보다 강한 용어(an even stronger term)을 사용했는지에 대한 의문을 일으킨다. (332.3)
 1994년 2월 17일 어드벤티스트 리뷰지는 엘렌 G. 화잇의 미출간되었던 서신이 최근에 막 발견되었다고 선포하였다.132 1903년 8월 29일에 캘리포니아의 헬레나 엠스헤븐에서 기록된 것으로 되어 있는 이 문서는 J. H. 켈록 박사에게 보내는 것이었다.133 그것은 1902년부터 1908년 사이에 켈록과의 논쟁이 어떻게 전개될 것이었는지 알기 위해 기다리던 중 엘렌 G, 화잇이 소지한 것으로 여러 다른 서신들의 경우와 같이 결코 발송되지 않았던 것처럼 보인다. 이유야 어떻든, 이 편지와 또한 그 복사본은 서류철에 철해지지 않았다. 공문서 보관자인 팀 포이리어(Tim Poirier)는 1993년 12월에 아주 가까스로 그것을 발견하였다. 그것이 발견되었다는 광고가 발표되자 엘렌 G. 화잇 유산관리위원회는 그것을 간직하기를 희망하는 사람들에게 복사해 주었다. (33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