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본체를 붙잡다 제4부 재림교회 중심부의 그리스도론 논쟁 제14장 역사적인 진리에 대한 탐구
 이 진술에 따르면 다만 “그리스도의 인성은 죄 없음으로 묘사되었다”는 것과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책임을 당신 스스로 지니셨음을 읽게 될 때 다만 놀라울 뿐이다. 그러나 그는 유전적인 더러움과 혹은 타락이나 실제적 죄로부터 떠나 계셨다.” 다시 말해 “예수는 어떤 악한 경향이나 성향이나 죄 된 열정은 지니지 않았다.”66 (320.2)
 확실히 예수님은 그와 같은 품성은 어느 것도 지니지 않았다. 그는 우리에게 “죄 없는 생애의 모본”67을 주셨다. 이것이 “유전의 대법칙의 역사”68 아래 놓여 있는 “인간의 타락한 본성”69 가운데서 성취되었다. 비록 그분이 악한 경향을 지니고 있지 않았을지라도 “그분께서는 육신적 마음의 성향이 얼마나 강한지를 아신다.”70 그리고 엘렌 G. 화잇이 “그리스도께서는 퇴보 된 인류의 연약함을 취하셨다”71고 선언하면서 멜빌과 더불어 왜 “무흠한 약점”에 대해 말하는가? (320.3)
 어느 정도든 또 다른 관점에 있어서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 신조에 나타난 그리스도론은 타락 후 입장을 확증하였다. 아무튼 그리스도의 신체적 상황, 곧 “무흠한 약점”72에만 그의 유전됨을 제한시킴으로 말미암아 ∙∙∙ 저자들은 매우 중요한 요점이 되는 전통적 입장으로부터 멀리 벗어났다. 이렇게 함으로 말미암아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 기본신조는 그리스도의 인성문제에 있어 중재하는 해석을 세워 놓았다. 이것은 로이 아담스(Roy Adams)가 <애드벤티스트 리뷰지와 자신의 책<그리스도의 본성: 완전론으로 야기된 교회 치유법(The Nature of Christ; Help for a Church Divided Over Perfection)>에서 제시한 것이다. (320.4)
 로이 아담스가 논쟁을 재개
 8회에 걸친 논쟁이 있은 후 <애드벤티스트 리뷰>지는 “모델인가 아니면 대치물인가? 우리가 예수를 어떻게 보는 가가 문제가 될 것인가?” 그리고 “함께 밀고 나아가자” 와 같은 타이틀 아래 노만 R. 갈리의 편으로 여섯 시리즈의 기사를 출판하였다. 이 기사들은 “예수는 우리를 대신하여 죄가 되 심”과 같은 자기 자신의 개념을 명백하게 포함시켰다. “예수는 그의 본성이 우리의 것과 같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와 같은 시험을 경험하지 않았다.” 그리고 엘렌 G. 화잇은 두 차원에서 그리스도의 사명을 다루었다. 엘 렌 G. 화잇은 타락 전 그리고 타락 후 차원에 대해 말한다.73 (321.1)
 1990년 봄에 로이 아담스는 <애드벤티스트 리뷰지 부편집인으로 그리스도께서 아담(타락전)과 같았는지 아니면 죄인들과 같았는지, “아담과 닮았는가 아니면 우리와 닮았는가?”74라는 제목으로 최근의 문제에 대한 세 가지 편집물을 출판함으로 논쟁을 새롭게 하였다. “우리가 깊이 문제를 연구하고자 원할 때 무엇보다 우리는 땅이나 하늘에서 일찍이 일어난 사건 중 가장 놀라운 일인 하나님의 아들의 성육신에 우리 마음을 고정시키자”75라는 엘렌 G. 화잇의 글을 인용하였다. 이것은 그리스도교 신앙의 중심이 되는 가르침이다. 이것이 없이는 “성경의 모든 규범은 무의미한 가르침이요, 난센스가 될 것이다.”76라고 아담스는 단언한다. (321.2)
 “우리가 여기서 직면하는 문제는 성서에 대한 어떤 뚜렷한 진술이 부족했던 초기 선구자들에게와 비슷한 상황이다. 이것은 재림교회가 이 질문에 있어 엘렌 G. 화잇의 저서들에 너무 과다하게 기대해 왔다는 이유가 된다.”77 (321.3)
 아담스는 말하기를 엘렌 G. 화잇이 그리스도는 우리와 모든 점에 같은 분이었다고 확증하는 한편, 또 다른 편으로는 그분이 “우리와 다른 분”이었다고 확언한다. 이런 두드러진 모순이 있다는 것은 곤란하다. “만일 그리스도가 참으로 사람이 되셨다면 어떻게 그가 우주적인 죄의 능력을 피할 수 있었을까?”78 (321.4)
 이런 역설을 설명하기 위해 아담스는 헨리 멜빌(Henry Melvill)을 내세우면서 그는 타락의 필연적 두 결과들을 말한 영국국교 목사로 그것은

 (1) ‘무흠한 약점’

 (2) ‘죄 있는 성향’임을 주장하였다.

 멜빌에 의하면 “아담은 타락 전에 ‘무흠한 약점’‘죄 있는 성향’도 가지지 않았다. 우리는 두 가지 모두를 갖고 태어났다. 그리고 ∙∙∙ 그리스도는 처음 것은 취했으나 두 번째 것은 취하지 않았다.”79 아담스는 멜빌이 주장한 것처럼 “성육신이 되신 그리스도는 타락 전 아담과 같지 않고 우리와도 같지 않다. 그는 독특 한 분이셨다.”80 (322.1)
 이것이 1994년 그리스도의 본성에 관한 그의 저서에서 아담스가 제시한 해결책이다.81 신신학82을 거부한 앤드리어슨의 예리한 반응은 물론 존스와 와그너의 그리스도론을 “반역적인 형제들”의 그리스도론이라고 비평하면서, 그는 자신의 편집 기사들에 포함된 주장을 발전시켰다.83 특히 그는 멜빌의 주장을 자세하게 거듭 언급하였다. 그리고 팀 포이리어와 같이 엘렌 G. 화잇이 그와 동일한 표현을 사용했음을 보이고 동일한 의미를 부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84 (322.2)
 우리는 로이 아담스의 해석이 오늘날 재림교회의 다수에 의해 정당하게 지지를 받고 있음을 본다. 여하튼 이런 견해와 요지가 전 세계 재림교회에 다수에 의해 보급되고 있다고 결론지을 수 있는데 이는 잘못된 것이다.85 (322.3)
 유럽의 상황
 우리가 살펴본 바와 같이86 남유럽지회의 여러 나라 가운데 재림교회 그리스도론은 1950년대까지는 크게 교회의 가르침과 같은 노선에 있었다. 그 이후 영어문화권 재림신도들의 그리스도의 인성문제에 대한 논란에도 불구하고 대서양 지역에서는 아무런 논쟁의 기미도 나타나지 않았다. 다소 특별론자들을 제외하고는 많은 재림교도가 영어로 된 신학서적을 읽는 일에 몰두하지 않았다. (322.4)
 더구나 의문시 되는 문제의 요지들에 관심을 가진 자들도 소수에 불과했다. 1969년 유럽판 어드벤티스트지 편집인인 진 케석스(Jean Caseaux)는 신신학의 요점을 알게 된 첫 번째 사람이다.87 (323.1)
 프랑스어를 말하는 재림교 신학자들의 거장인 알프레드 보허(Alfred Vaucher)88‘그리스도의 신인 양성(twofold divine-human nature)’에 관한 기사를 썼는데 여기서 그는 재림교회에 있는 사상의 다양한 경향들을 분석하였다.89 ‘모양(likeness)’이란 말에 관련된 기사가 운데서 유일한 개인적 표현이 나타났는데 그에게는 모양이란 말이 동일시(identity)와 똑 같은 의미를 지닌 동의어(synonymous)가 아니었다. “만일 어떤 이가 예수께서 죄 있는 본성을 취하셨다는 것을 믿는다면 그것은 곧 그가 시험의 실재와 죄 지을 가능성을 받아들이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었다.”90 그리스도께서 타락 전 아담의 본성을 취했는가, 타락 후의 본성을 취하셨는가 하는 질문은 알프레드 보허에게는 관심 밖의 일이었다. 그의 중요한 저서들, 곧 <구원의 역사(Histoire du Salut - History of Salvation)>에서조차 그는 그리스도의 인성과 실재성과 그분의 시험의 실재만을 확정했다.91 (323.2)
 신신학이 유럽에 있는 목회자들이나 교회 교인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한 때를 정확히 알기는 쉽지 않다.92 여러 국가의 목회자들이 수련을 받는93 콜롱(Collonges)의 재림교 세미나에서 가르치는 사상은 두 계열로 나타났다. (323.3)
 1963년 앤드루스 대학을 떠날 때까지는 R. 데더린(R. Dederen)이, 1967년부터 1980년까지는 조지 스티븐(Georges Stéveney)이, 1960년부터 1970년까지와 1985년부터 1998년까지는 내가 가르쳤다. (323.4)
 그를 최근에 만났을 때 R, 데더린은 나에게 그리스도의 인성에 관한 자신의 견해가 사실상 정확하게 에드워드 헤펜스톨에 의해 표현된 동일한 것이었음을 확증케 해 주었다. 또 다른 말로 하면, 그리스도는 타락 후 아담의 본성을 취했으나 죄에 대한 본성적 경향에 참여함이 없었던 - 곧 죄의 모양을 띤 육신으로서 동일한 것은 아니었다.94 (323.5)
 조지 스티븐(Georges Steveny)의 견해에 관해서는 우리는 기록에 의해서 또는 상세한 분야에 있어 그의 것을 가지고 있다. 그의 최근의 책은 <그리스도를 발견코자 함 (Seeking the Discovery of Christ)>이다.95 (324.1)
 조지 스티븐:선구자들의 깨우침을 수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