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본체를 붙잡다 제4부 재림교회 중심부의 그리스도론 논쟁 제14장 역사적인 진리에 대한 탐구
 그리스도의 인성에 관하여 조화되지 않는 두 가지 진리는 있을 수 없다. 그러나 여전히 차이점들이 어떤 중요성이 약간 있는 것처럼 두 입장 사이를 조화시키려고 시도하는 이들이 있다. 또 다른 이들은 견해의 두 요점이 실제적으로 각자의 입지를 높여야 한다고 제안한다. (304.1)
 장점에 관계없이 조화시키려는 시도는 흔히 성공에 대한 기회를 주지 못 한다. 반대로 교회 교인들에 의한 반발과 어떤 신학자들에 의한 더 많은 지론들을 일으키는 비평들은 그 논쟁을 훨씬 멀리 확대시키는 결과를 낳게 한다. 아무튼 1986년부터 1994년까지 기간은 전통적인 그리스도론에 대한 확실한 부흥을 일으키는 기간으로 지목된다. (304.2)
 만일 오늘날 재림교도 다수가 이런 이슈에 대한 교회의 역사적 입장을 알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동 시대의 탐구자들로 말미암은 최근의 연구들은 그들을 새롭게 상기시켜 줄 수 있다는 것 또한 사실이다. (304.3)
 재림교회 그리스도론의 한 세기
 1986년에 출판된 첫 연구는 랄프 라손(Ralph Larson)에 의한 것이었다. (304.4)
 <말씀이 육신이 되었다, 재림교 그리스도론의 100년사(The Word Was Made Flesh:One Hundred Years of Adventist Christology, 1852~1952)>1 이 책은 하나의 순수한 역사적 견해의 요점을 드러낸 것으로 이 주제에 관한 가장 완전한 저서이다. (305.1)
 랄프 라손은 앤드루스 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했고 보스톤에 있는 앤도 버뉴톤 세미나리(Andover — Newton Seminary)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40년 동안 그는 재림교회에서 목사로서, 전도자와 교회기관의 각 부 부장으로 또한 선교사와 신학교수로 봉사하였다. 은퇴하기 전 그는 마지막으로 필리핀에 있는 신학대학원장을 맡았다. (305.2)
 여러 해 동안 라손은 조직적으로 1852년부터 1952년 사이 교회의 공식적인 문서들을 분석하면서 주의 깊이 그리스도론에 관한 진술들을 수집 하였다. 그는 1200여 개의 인용문을 뽑아 정리할 수 있었고, 그중 400여 개 이상은 엘렌 G, 화잇의 글에서 발췌해 연대별로 집대성하였다. 이렇게 함으로, 라슨은 1852년부터 1952년 사이에 그리스도의 인성에 관한 재림교회 신앙이 어떠한 것이었는지 확인한 것을 나누고자 원했다. (305.3)
 라손의 목적은 성서적이거나 신학적 연구를 하는 것이 아니었다. 이것은 단순히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가 무엇을 믿고 있는지 정립하기 위한 것”2이었다. 더욱 중요한 것은 논쟁의 중요한 문제와 주제를 모두 알고자 한 점이다. “성육신하신 그리스도께서 타락하지 않은 아담의 인성으로 땅에 오셨는지, 타락한 인간의 인성으로 오셨는지?”3이 문제를 밝히고자 한 것 이다. (305.4)
 첫째로, 라슨은 선구자들에 의해 표현된, 특별히 엘렌 G, 화잇에 의해 표현된 요점이 되는 것들을 명백하게 정의하였다. 그것들은 “죄 된 본성(sinful nature)”, “타락한 본성(fallen nature)”, “유전된 타락한 본성(inherited sinful nature)”4과 같은 것들이다. 그리고 “열정(passion)”“경향(propensity)”과 같은 그리스도에 대한 속성을 나타내든지 아니면 그분의 본성으로부터 분리된 것을 유지하는지 낱말들을 명확하게 드러내는 것이었다.5 (305.5)
 마침내 그는 문학적이고도 역사적인 서적가운데 서 W. H. L 베이커(W. H. L. Baker)에게 보낸 엘렌 G. 화잇의 편지에 포함된 어떤 진술들을 찾아서 정리하였다.6 (306.1)
 질문들에 대한 그의 수집을 기초로 해서 라손은 “명확함의 한 시대”임을 보았는데, 그동안(1852~1952) 교회는 한 소리만을 나타냈다는 것이다. 그 후 1952년 이후에는 “교회가 ‘혼동의 시대’로 돌입한다. 마지막 세 항은 그리스도교회와 구원론 사이에 밀접한 관계를 강조하는 데 공헌하였다.”7 (306.2)
 라손은 신신학8에 대해 잠잠하게 입을 다물지 않았다. 그는 <미니스트리>지에 <교리에 대한 질문들(Questions on Doctrine)>과 <운명의 운동(Movement of Destiny)> 등에서 그 점진적인 촉진은 전 세계 재림 교회 사이에 ‘예상할 수 없는’ 정도의 영향을 가져오고 혼란을 일으켰다고 간주하였다. 그것은 엘렌 G. 화잇이 반박하는 용어를 사용했던 것이며, 역사적 재림론이 구원의 교리에 있어 오해해 왔던 것이었다. 라슨은 자신의 신조를 ‘그리스도의 본성’ 그리고 구원론(Soteriology), 그리스도의 구원 하는 역사 등 그리스도론은 서로 나뉘어질 수 없이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것이라고 외쳤다. 우리가 어떤 한 가지에 대해 말할 때 우리는 피할 수 없이 다른 하나에 대해서도 말한다. 우리가 한 가지를 변경시킬 때 또한 필연적으로 그 다른 것도 바뀌게 된다.9 (306.3)
 라손의 저서는 선례가 없는 정보의 자료를 제공한다. 그의 역사적이고 비평적인 분석은 1852년부터 1952년까지 교회가 만장일치로 가르치는 가르침에 관해 그리고 그것이 1950년대에 바뀌게 된 변화에 관한 정보를 원하는 사람들에게는 밝은 빛을 주는 것이다. (306.4)
 결론적으로, 라손(Larson)은 자신의 독자들에게 자기 연구의 결과들을 입증하도록 초대하여 개인적인 연구가 없이 단순히 받아들이거나 거절하지 않도록 부탁하고 있다. 만일 해석상의 오류가 있으면 교회가 그것들을 시인하고 정정할 용기를 가져야 한다고 말한다.10 (306.5)
 엘렌 G. 화잇 유산관리위원회의 입장을 요청받음
 엘렌 G, 화잇 유산관리위원회의 한 위원으로서11 나는 점점 발전되어 가는 논쟁점에 이의 없이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특히 그리스도의 인성에 관한 엘렌 G. 화잇의 많은 진술에 그 근거들이 기초 되어 있는 고로 더욱 그러했다. 엘렌 G. 화잇 유산관리위원회가 그의 기록들을 관리하도록 사명을 부여받았다고 믿으며 또한 다른 많은 경우에서와 같이 밝혀야 할 사실은 분명하게 밝혀야 한다고 믿었다.12 (307.1)
 1985년 9월에 나는 프랑스에 있는 재림교회 신학교수 모임에서 그리스도론에 대한 강의를 요청받았다. 나는 수강생들에게 재림교회 내의 영어권 신자들 가운데 있는 대논쟁에 관한 새로운 뉴스를 알리라는 명령을 받아들였다. 그들의 유익을 위해 나는 하나의 매뉴얼(요람)을 준비했는데 이것이 프랑스어로 된 재림교회 그리스도론의 역사에 관한 초안이었다.13 (307.2)
 이것은 내가 그 문제점의 크기를 평가하고 문제 해결을 위한 자연적 희망을 북돋아 줄 유일한 기회가 되었다. 나는 엘렌 G. 화잇 유산관리위원회가 이 문제를 토의해야 한다고 생각되었다. 나는 위원장인 케네드 H. 우드(Kenneth H. Wood)에게 건의하기를 그 안건은 연중 협의회 의제로 넣어야 한다고 말했다.14 (307.3)
 1986년 7월 9일자 내 편지는 엘렌 G, 화잇의 진술들에 대한 어떤 새로운 해석을 시도하거나 아니면 한 비평을 조성하거나 유행이 되는 논쟁 중 어떤 것을 조성하려는 제의가 아니었다. 나는 오히려 그 주제에 관한 저희의 입장을 신임했던 엘렌 G. 화잇의 동 시대 사람들 곧 와그너와 존스 와 프레스캇, 해스켈 등에 대한 그들의 평가는 물론 그들 자신의 입장에 대한 더욱 가까운 전망을 취하자고 건의한 것이다. (307.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