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속의 예수 그리스도 제 1 부 창세기 속의 예수 그리스도 창세기 22장 그분은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십니다
 아브라함의 순종,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
사자가 이르시되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그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창세기 22:12).
(151.2)
 로마서와 야고보서. 아브라함의 생애 속에서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를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한 구절로 신약은 로마서 4:1-4야고보서 2:21-24을 들 수 있다. 바울은 믿음을 강조하는 듯이 보이고 야고보는 행함을 강조하는 듯이 보이기 때문에 루터는 야고보서를 지푸라기 서신이라고 폄하하였다. 그러나 야고보서의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제단에 바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는 말씀을 행함의 의로 이해하지 말아야 한다(약 2:21). 그는 아브라함의 순종을 이야기하면서 ‘이에 성경에 이른 바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이것을 의로 여기셨다는 말씀이 이루어졌다’창세기 15:6로 자기 주장을 뒷받침한다(약 2:23). 아브라함이 어떻게 이삭을 드릴 때 하나님을 믿었는가? (151.3)
 유일한 아들. ‘야히드’(יָחִיד) 유일한, 유일하게 낳은 아들은 하나님의 지목 대상이 아브라함이 자기의 합법적인 부인으로부터 얻은 유일한 아들임을 강조한다.5(창 22:2). 아들 이삭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아들이다. 이삭과 하나님은 언약을 맺으실 것이고 이삭의 후손이 그 언약의 계승자가 될 것이다(창 17:19, 21). 이 약속이 달려 있는 아들을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번제로 드린다면 언약의 성취는 어떻게 될 것인가? 하나님은 가나안인들이 드리는 인신제사를 금하시는 분이 아닌가? 아브라함에게 이러한 의문들은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근본적으로 시험하는 것이었다. (152.1)
 믿음. 엘 샷다이(אֵל שַׁדַּי 전능한 하나님, 창 17:1)께서 ‘능하지 못한 일이 있겠느냐’고 말씀하시며 이미 죽은 태와 같은 사라에게서 이삭을 주시지 않았는가!(창 18:14). 이미 이삭은 출생 자체부터 죽음에서 부활한 것이나 다름없는 존재이다. 이 믿음 때문에 아브라함은 함께 동행한 종들에게 ‘우리가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고 말했고 그 믿음은 ‘아브라함이 그의 종들에게로 돌아감’으로 실현되었다(창 22:5, 19). 아브라함의 순종은 아브라함의 믿음에서 비롯된 것이며, 아브라함의 믿음이 진실되다는 것을 입증한다. (152.2)
 행위로 입증된 믿음. 아브라함이 자기 아내를 누이라고 말함으로 애굽 왕 바로와 그랄 왕 아비멜렉에게 아내를 내줄 수 밖에 없었던 일은 믿음의 조상에게서 기대할 수 있는 행동이 아니다. 아브라함은 자기 편의에 따라서 적당하게 하나님 편에 서고 어느 정도 자기 꾀대로 사는 불완전한 신앙인이었던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세 째 시험에서 아브라함은 순종함으로 하나님께 인정을 받았다.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창 22:12). 아브라함이 참 믿음을 가진 것인지에 대한 시험은 이것으로 끝났다. 그의 행실은 그의 참 믿음을 뒷받침했다. 아브라함은 전적으로 믿음으로 의롭다 인정을 받은 것이다. (152.3)
 수풀에 걸린 숫양, 대속제물이신 예수님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살펴본즉 한 숫양이 뒤에 있는데 뿔이 수풀에 걸려 있는지라. 아브라함이 가서 그 숫양을 가져다가 아들을 대신하여 번제로 드렸더라(창세기 22:13).
(153.1)
 번제. 창세기 전체에 일곱 번 사용된 번제 ‘올라’(עוֹלָה)가 본 장에 여섯 번 사용이 되었다.6 번제는 제물을 완전히 불에 태우는 것으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우리 죄 대신에 자기 자신을 온전히 희생하신 것을 상징한다 (153.2)
 대속적 희생. 숫양은 이삭 대신 죽었다. 에덴에서부터 갈바리 십자가까지 무수하게 죽임을 당한 희생양들은 언제나 죄인을 위한 대속물이 있다는 것을 나타낸다. 그 작은 동물은 주님의 오심을 나타낸다.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신 주님은(요 1:29) 우리 대신 매 맞으셨고 우리 대신 죽으셨다.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벧전 2:24). (153.3)
 그리스도의 표상. 학자들 중에는 자신의 가장 소중한 생명을 내버리도록 시험 당했던 예수님처럼 자기의 가장 소중한 외아들 이삭을 죽이도록 시험당한 아브라함을 그리스도의 표상으로 보기도 하고(Brueggemann), 자기를 죽음에 기꺼이 내어 준 이삭을,7 혹은 이삭과 실제로 죽임 당한 양을 함께 그리스도의 표상으로 보기도 한다.Chrysostom 아브라함은 아버지 하나님을, 이삭은 아들 하나님을 대표하는 것으로 보는 이도 있다.8(Gordon Talbot) 표상은 원형을 온전히 표현하기에 부족한 점이 있음을 인식하고 성경을 해석해야 한다. 대신 죽은 동물은 그리스도에 대한 표상으로서의 제사제도와 매우 잘 부합한다는 점을 우선 고려하는 것이 좋다. (153.4)
 단번에 드리심. ‘아브라함이 가서 그 숫양을 가져다가 아들을 대신하여 번제로 드렸더라.’(창 22:13). 아브라함은 아들을 대신하여 양을 희생제물로 바쳤다. 예수님이 자기 자신을 우리를 위해 희생하셨기 때문에 이제는 더 이상 죄인을 대신하여 제사를 반복해서 드릴 필요가 없다. 히브리서는 ‘단번에’라는 말로 이 진리를 표현하고 있다. (154.1)
 ‘그는 저 대제사장들이 먼저 자기 죄를 위하고 다음에 백성의 죄를 위하여 날마다 제사 드리는 것과 같이 할 필요가 없으니 이는 그가 단번에 자기를 드려 이루셨음이라.’(히 7:27).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히 9:12).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 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히 9:28). ‘이 뜻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히 10:10). (154.2)
 자신을 걸고 축복을 맹세하시는 주님
이르시되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도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가 크게 번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리라(창세기 22:16-17).
(155.1)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아브라함 기사는 여자의 후손이 뱀의 후손을 정복하는 것과 관련된 창세기 3:15에 주어진 하나님의 약속 위에 명백하게 기초하고 있다.’9 아브라함을 통해 만민이 축복을 받게 될 것이다(창 12:1-3). (155.2)
 아브라함이 이삭을 희생제물로 드린 기사는 흔히 창세기 22:1-14로 이해되지만 창세기 22:20‘이 일 후에’(אַחֲרֵי הַדְּבָרִים 아하레 핫드바림)라는 공식적 어구를 통해서 창세기 22:1-19을 한 단위로 고려해야 한다.10 이렇게 볼 때 이 기사는 약속과 성취의 연장선상에서 이해가 가능하다. (155.3)
 확실한 약속. 하나님은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라고 하셨다(창 22:16). 하나님보다 더 큰 존재가 없기 때문에 자신을 걸고 맹세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필히 약속하신 것을 성취하시겠다는 뜻이다. 하나님의 약속의 확실성을 강조하기 위해서 두 쌍의 절대부정사+동사—‘바레크 아바레커카 워하르바 아르베’(בָרֵךְ אֲבָרֶכְךָ וְהַרְבָּה אַרְבֶּה)를 사용한다.11 ‘내가 너를 틀림없이 복주고 그리고 내가 틀림없이 번성하게 하리라.’(창 22:17). 아브라함의 순종과 함께 하나님의 본래적 계획이 미래에도 변경됨이 없이 분명하게 설 것이었다. 하나님의 최후 확정이 아브라함이 이삭을 번제로 드린 모리아산에서 이루어졌다(참조, 히 6:13-16). ‘12장에서 처음 주신 복이 이제 아브라함의 신실한 순종 때문에 확실한 보장으로 바뀐 것이다.’12 (155.4)
 네 씨 안에서 만민이 복 받는다.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니.’(창 22:18). 문자적으로 ‘네 씨 안에서’이다.[]r>z:B. 베자르아카 씨 ‘제라’가[r;z< 단수형으로 되어 있다. 아브라함의 수많은 후손들 중에 오직 한 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천하 만민에게 축복이 이르러올 것을 지적한다.13 (156.1)
 참고 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