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22장의 아브라함이 이삭을 하나님께 제물로 드린 사건은 매우 강렬한 인상을 남기기 때문에 아브라함과 이삭이 스토리의 주인공인 것처럼 생각하여 아브라함을 찬양하기 쉽지만(Kierkeggard) 그것은 이야기를 충분히 이해한 것이 아니다. 이 이야기는 ‘피조물을 찬양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찬양한다.’1(147.2)
이야기는 주역이신 하나님께 끊임없이 초점을 맞춘다. 하나님이 시험하셨고(1절), 하나님이 준비하실 것이고(8절), 하나님이 이삭을 번제로 드릴 때 아브라함의 손을 멈추셨고(12절), 하나님이 숫양을 준비하셨고(13절), 아브라함은 그 곳 이름을 여호와 이레—여호와께서 준비하심이라고 이름을 지었고(14절),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민족과 천하 만민에 대한 축복을 약속하셨다.2(창 22:17-19). (147.3)
하나님의 주도하심 아래 인간의 전적인 순종을 통해 이루어낸 창세기 22장의 이야기는 구속의 경륜을 매우 감동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보배와 같은 실물교훈이다. (147.4)
이삭 예수의 표상
그 일 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그를 부르시되 아브라함아 하시니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일러 준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창세기 22:1-2).
(148.1)
그를 번제로 드려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 하나님이 에덴에서 아담과 하와에게 지어 입히셨던 가죽옷은 인간의 죄를 용서하기 위해서 피흘림의 동물제사가 필요하다는 것을 말한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번제로 드리도록 하셨고 이삭 대신에 숫양을 준비해 주셨던 본 장의 사건은 피 흘리고 죽어간 동물이 다름 아닌 하나님의 독생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는 것을 가르쳐준다. (148.2)
본 장의 사건을 통해서 동물제사는 새로운 의미를 분명하게 전달하게 되었고 후에 이스라엘 민족의 제사제도와 성소제도를 통해서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다양한 측면들을 제시하게 되었다. 이천년 전 요단강에서 모든 제사가 지적했던 그 분이 오셨음을 알리는 선포소리가 들렸다.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이르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요 1:29). (148.3)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의 메아리를 우리는 예수께서 공생애의 시작으로 침례를 받으실 때 하늘에서 들린 음성 속에서 듣는다(창 22:2). 예수님의 공생애는 십자가를 향해 공적인 걸음을 떼신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마 3:17). 또한 이 음성은 십자가의 짐을 위해 기도하러 가셨던 변화산에서도 들려왔다(마 17:5). (148.4)
아브라함은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고 십자가에 내어주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인류를 향한 사랑을 잘 묘사한다. 성경에서 가장 유명한 성경절은 아브라함의 경험을 통해 더욱 생생한 의미를 전달한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 3:16).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요일 4:9).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 5:8). (148.5)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롬 8:32). 창세기 22:12, 16에서 이 말씀이 이미 사용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바울은 로마서 4장에서 인간을 의롭다고 하시는 하나님을 설명하기 위해서 아브라함의 경험을 예증으로 사용하였다. 그는 로마서 8:32 다음에 즉시 말한다. ‘누가 능히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고발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롬 8:33). 아브라함과 이삭의 이야기는 아브라함이 누리는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를 강조하고,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는 믿음을 가진 아브라함이 주인공이 아니라 아브라함을 의롭게 해주시는 하나님이 그 주인공이시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믿음을 따르는 영적 아브라함의 후손을 의롭다고 하시는 분이시다. (149.1)
신령한 예배는 십자가 그늘 아래에서
이에 아브라함이 종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나귀와 함께 여기서 기다리라. 내가 아이와 함께 저기 가서 예배하고 우리가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 하고(창세기 22:5).
(149.2)
성경에서 ‘예배하다, 경배하다’가 최초로 등장하였다(וְנִֽשְׁתַּחֲוֶה 와니쉬타하베 ‘그리고 우리가 경배하리라’(창 22:5)). 대속적 희생의 주제와 예배가 함께 등장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는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적 은혜를 끊임없이 고백하는 십자가 그늘 아래에서 이루어질 수 있다. 십자가의 주님은 하늘에 오르사 권능의 우편에 앉으신 존귀하게 되신 주님이다. 주님의 공로를 의지하는 자는 자기 경배에 빠지지 않고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총을 의지하며 하나님만 높이는 예배를 드리게 된다. (149.3)
여호와이레, 섭리로 인도하시는 주님
아브라함이 이르되 내 아들아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 하고(창세기 22:8).
(150.1)
섭리. 섭리를 의미하는 영어의providence는 라틴어 providentia에서 온 것으로 예견 혹은 미리 준비함을 뜻한다. 하나님은 미리 앞을 내다 보실 뿐 아니라 그분의 목적을 성취하시기 위해 준비해 놓으신다.3(150.2)
섭리 교리는 창세기 22:8의 본문에서 기원하였다. ‘엘로힘 이레-로’(אֱלֹהִים יִרְאֶה־לּוֹ) ‘하나님께서 그를 위하여 준비하시리라’라는 구절을 라틴어 불가타역은 Deus providebit으로 번역했다. 히브리어의 라아(ראה) 동사는 기본적 의미인 보다에서 준비하다를 뜻한다. 관념적 분석 보다는 행동을 중시하는 히브리적 사고에 따라 보는 것은 보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보았을 때 필요한 것을 준비까지 하는 행동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보는 것과 준비하는 것은 같은 것이다. (150.3)
온 세상을 위한 섭리. 하나님은 구속의 경륜을 세우시고 그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 아브라함을 부르셨다. 그분은 온 세상이 하나님의 구원계획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볼 수 있도록 아브라함이 이삭을 제물로 바치게 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예비하신 길이 있음을 확신하였고, 그 믿음은 응답을 받았다. 아브라함은 극적인 체험이 있었던 그 중요한 장소를 여호와이레, 여호와께서 준비하시리라라고 불렀다.4(창 22:14). (150.4)
개인에 대한 섭리. 하나님은 구속의 경륜이 성취되도록 모든 과정을 주관하신다. 성경 전체는 하나님의 섭리를 보여주는 산 증거들로 가득차 있다. 하나님은 구속사 뿐 아니라 개인에 대해서 깊은 관심을 갖고 계신다. 신자는 돌보아 주시는 하나님에 대해 굳건한 확신을 가져야 한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 8:28). 창세기 24, 37장의 섭리도 참고하라. (15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