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준수의 기원과 역사 제4장 그리스도교가 이교화되어 가는 과정 제5절 태양신 숭배의 관습과 그 의식들이 그리스도교에 도입된 과정
 이렇게 일요일 예배가 성행하기 시작할 때는 태양을 그리스도로 생각하여 숭배하는 풍조가 만연되기 시작했으며, 일부 식자간에는 이 같은 행위를 비평하는 이도 허다했고, 비탄에 잠겨 통분히 여기는 교부들도 많았다. 그들 중 한 사람이 유명한 레오 1세(Leo I, ca. 390-461, 재위 A.D. 440-461)이다. 그는 그가 남긴 문서에서 다음과 같이 개탄했었다: (381.1)
“이러한 교의적 학설[점성술, 사신숭배 등등]에서부터, 어떤 어리석은 사람들이 높다란 장소들에서, 날이 밝기 시작하는 순간 떠오르는 태양을 경배하는 따위의 불경건한 관습이 역시 도래한 것이다. 심지어 몇몇의 그리스도인들까지도, 오직 한 분이시고 살아 계신 참 하나님께 봉헌된 성 사도 베드로 성당에 들어서기 직전에 그런 짓을 하는 것도 아주 당연한 행위라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다. 그래서 그들은 높이 솟은 망대에 이르는 계단을 밟아 올라가서 떠오르는 태양을 향하여 돌이켜서 허리를 굽혀 경배하며, 굽혀진 목으로 빛나는 천체에다 대고 충성을 맹세하며 경의를 표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런 짓이 어김없이 일어날 때마다. 비탄과 통분으로 가득 차 버린다. 그래서 이런 짓의 원인의 일부를 무지몽매한 허물에, 나머지는 이교사상의 정신에 돌려야 마땅할 것이다.”9)
(381.2)
 이러한 사실들을 모두 종합해 보면 그리스도교 일부에서 아주 일찍부터 일요일 예배를 하게 된 동기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념하기 위함이라기보다는 차라리 태양신 숭배의 단순한 습성, 즉 고래적인 관습에서 오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었으며, 수십 세기 동안 내려오면서 젖은 이방인들의 민족 고유의 토향 곧 민속적인 풍습에서 탈피하지 못한데서 기인한 상태라 하겠다. 그러므로 미국의 교회사가 훠레이(James Wharey)는 그의 저서 교회사에서 다음과 같이 그 당시의 상황을 묘사하였다: (381.3)
“이와 같이 이교로부터 나와서 그리스도교에 입교할 때에 저희의 옛 철학과 미신이 아직 약간 있었기 때문에 이교의 예식을 연모하여 이를 그대로 가지고 나오게 된 것은 자연스러운 이치라 하겠다. 오래 전부터 젖은 사상은 대체로 온전히 없어지지 않아 낡은 관습을 버리지 못했던 것이다.”10)
(381.4)
 태양과 동방과 일요일, 이 셋은 태양신 숭배의 불가분리의 3요소이다. 즉 그들의 “트리카”이므로 일요일이 성축되는 곳에 동방 경배가 있었고 태양을 흠모하였으므로 자연히 태양신 부활제가 연례적으로 성대히 축제되었었다. 그래서 일요일 예배는 부활절과 쌍벽을 이루어 거의 같은 시기에 초기 그리스도교계에서 발생하였던 것이다. 그래서 프레이저 경은 아래와 같이 결론을 내렸다: (382.1)
“이리하여 기독교 교회는 이교도의 신앙을 태양으로부터 ‘정의의 태양’이라고 불렸던 그리스도에게 옮기기 위해 그 창시자의 탄생을 12월 25일에 축하하도록 정한 것으로 생각된다. 만일 사실이 이렇다면 그것과 똑같은 동기가 기독교 교회의 권위자들로 하여금 주님의 죽음과 부활의 부활제를 같은 때에 행하는 다른 아시아의 신의 죽음과 부활의 제례에 동화시키도록 이끌었으리라는 추측에는 아무런 본질적인 잘못도 있을 수 없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그리스와 시칠리아, 그리고 남부 이탈리아에서 거행되고 있는 부활제 의식은 어떤 점에서 아도니아의 의식과 놀라우리만큼 유사하다. 그리하여 나는 기독교 교회가 사람들의 영혼을 그리스도에게 인도하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새 축제를 그 이교도의 그것에 채용하였음을 시사하였다.”11)
(382.2)
 3. 태양신의 각종 상징물들
 a. 고대 이집트의 태양신 상징물들
 

토트모스 3세가 건축한 것으로 그 연대가 기록된 제 6탑문 좌측에 우뚝 솟은 오벨리스크는 합셋슈트 여왕이 세운 것으로 태양신 아문-레를 찬미하는 방첨탑인데 이 탑은 단적으로 채양신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카르낙 신전. 숫양과 스핑크스가 있는 통로, 이집트 제 19왕조. 이 수양은 태양신 아문-레를 상징한다.
(384.1)
 

생명의 부활의 상징. 부활절 달걀의 전설은 여기에서 생긴 것이다. 투탄카멘 왕의 무덤 출토. 카이로 박물관 소장
(384.2)
 

카르낙 신전의 토트모스 3세 연대기실. 앞쪽은 아멘호텝 2세 상. 뒤쪽에 핫솁수트 여왕의 오베릴스크가 있다.
(385.1)
 

프톨레마이오스 3세의 문. 태양신 아문-레의 남쪽 신전의 일곱 번째 탑문인데, 보이는 면은 북향한 정면이다. 이 탑문 윗부분 중앙에 태양신 아몬을 나타내는 태양 원반이 두 날개가 펴진 속에 두 마리의 코브라 독사에 호위되고 있는 모습이 양각되고 있다.
 b. 중세 유럽의 건축물 속에 나타난 제3의 새 종교 상징물들
 

이탈리아의 베네치아에 있는 성 마가 대서당 (basilica di San Marco)의 시계탑에 설치된 천문 시계는 점성술에 사용되는 것이다.
(387.1)
 

프라하의 옛 시내 광장과 시청 청사의 천문 시계, 15세기에 만들어진 이 천문 시계는 1시간마다 위에 있는 2개의 장이 열리고, 그 창으로 12개의 인형이 얼굴을 내민다. 1410년에 축조된 이 천문시계는 날짜와 신간 외에 해와 달의 움직임과 황도대의 12궁도 표시하는 점성술 시계 탑이다.
(388.1)
 

영국의 헨리 8세의 궁정에 설치된 천문 시계
(389.1)
 

림부르크(Limburg)의 삼형제 (Paul, Hermann, Jan)의 작, 1416년경, 「베리 공의 호화시도 서」(Berry's Livred' heures)로서 12개월의 증력(繪)들 중 2, 3, 4, 9월의 것이다. 중세기 모든 군주들과 고관들 뿐만 아니라 일반 민중들도 모두 점성술에 기반을 둔 생활을 영위하고 있 음을 보여주는 사례들 중 하나다.
왼쪽 : 12궁 중에 보병궁과 쌍어궁이 보인다.
오른쪽 : 샤를 6세의 파리 왕궁과 그 위쪽에 태양신 아폴로가 마차를 몰고 있다. 12궁 중 쌍자궁 과 거해궁이 보인다.
 

왼쪽 : 봄 밭일의 계절 (3월)
 드 베리공의 달력도 현대의 캘린더와 마찬가지로 계절에 맞는 아름다운 풍경화가 그려져 있다. 3월은 종부가 땅을 갈고, 위의 반달부분에는 19년간의 신월의 날짜가 기입되고, 또 12궁(宮) 안에는 쌍어궁( 宮: 물 고기 자리)과 백양궁(白羊)이 보인다.
오른쪽 : 가을 수확의 계절(9월)
 9월이 되면 소뮈르성 부근의 밭에서는 포도가 수확된다. 이 계절의 12궁도는 처녀궁 (처녀 자리)과 천칭궁이다. 예술의 보호자였던 드 베리공은 이 달력의 삽화를 플랑드르 파의 화가 폴 드 랭부르에게 의뢰하여 그리게 해 가을의 찬연한 아름다움을 나타냈다.
 

뮌헨 과학 박물관의 큰 시계, 뮌헨 과학 박물관의 정면 현관에 서서 서쪽 하늘을 쳐다보면 시계가 눈에 들어온다. 1935년 에른스트 안드레아스 박사에 의하여 설계된 아름다운 천문 시계로서 달의 위상(位相)을 알 수 있으며, 아래의 조상(彫像)은 요일을 가리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