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이름 아름다워라 21. 야훼 막케—치시는 여호와 (엄격한 훈계자)
 주의 치시는 시간은 정확하다
 그 예들을 살펴보면 인과응보의 원칙이 주홍 실처럼 뚜렷하게 드러난다. 이야기를 일일이 모두 살펴보면 야훼 는 배후에서 백성을 심판하시며, 그들의 행위를 저울질하시며, 그들의 진도를 관찰하시며, 그들에게 당신의 뜻을 이행할 시간을 충분히 주시는 분임이 나타난다. 때때로 그는 당신의 다스리심을 받아들인 소수의 사람을 발견하시나, 때로는 반대로 그와 상관을 하지 않으려는 자들도 발견하신다. 그러나 그는 그들에게 계속 호소하시고 가장 친절한 말로 그들의 회개를 종용하여 그들의 인생을 위한 당신의 계획을 받아들이도록 권유하신다. 그러나 하나님은 어떤 시점에 다다라 당신의 방법이 듣지 않았음을 보신 다음에는 그들의 삶에 고난과 시련이 일어나도록 환경을 만드신다. (310.1)
 이 원칙의 오묘를 깊이 깨달은 다윗은 하나님께서 이렇게 극적으로 말씀하시는 것으로 표현했다: “나는 그의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나의 아들이 되리니, 만일 그가 죄악을 범하면 내가 사람의 막대기로 그를 징책하고 사람의 자식의 채찍으로 징책하리라. 그러나 내가 네 앞에서 제거한 사울로부터 나의 자비를 빼앗은 것과 같이, 그것이 그 집에서 떠나지는 아니하리니 ...”(삼하 7:14, 15). 하나님의 징책은 언제든지 그 목적이 남녀들의 주의를 끌어, 그들이 주의 영광을 위해 살며 복을 받게 만드시는 주의 도우심과 인도하심을 받아들이도록 결심을 유발하는데 있다. (310.2)
 치심은 하나님께서 당신을 거역하는 백성을 연단시키고 교육시키는 하나의 방법이다. 그러나 치실 때의 그는 사랑의 하나님이 아니란 말이 아니다. 그는 어떤 경우에나 “나는 여호와라. 나는 변함이 없느니라”고 말씀하신 하나님이시다(말 3:6). “내가 영원한 사랑으로 너를 사랑하였으므로, 내가 사랑과 친절로 너를 끌어당겼노라”(렘 31:3). 그러나 한편 그는 “그의 사랑하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가 받으시는 아들[딸]마다 매질하시느니라”(히 12:6). 자녀를 눈물로 징계하시는 우리의 아버지는 그들과의 즐거운 사귐을 회복하기 위해 그들에게 사랑의 매질을 하신다. (310.3)
 수세기 동안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이스라엘]을 아주 버리시지 않으셨다. 여호와께 충성된 남은 무리는 항상 있었으며, 때때로 하나님은 용맹 있는 자들을 일으키셔서 우상들을 쳐부수고 이스라엘을 원수의 손에서 구출하게 하셨다. 그러나 구원자가 죽고 백성이 그의 권위에서 풀려날 때는 그들은 다시 우상들에게로 돌아가곤 했다. 이와 같이 타락과 징책, 회개와 구원의 드라마는 여러 번 반복되었다”(PP 545). 당신의 택하신 자들을 다루심에 있어서 하나님은 지극한 인내를 나타내곤 하셨으나 다른 모든 기술이 실패할 때는 그는 야훼 막케, 치시는 여호와의 역할을 서슴지 않으셨다. 그의 목적은 목이 곧은 당신의 백성의 정신 상태를 바꾸기 위함이었다. (311.1)
 “징책은 하나님의 위대한 계획의 한 부분임을 우리는 배울 필요가 있다. 그러므로 때로는 고난의 회초리 아래 있을 때 그리스도인은 적극적인 봉사를 할 때보다 더 많은 일을 주를 위해 할 수가 있는 것이다”(AA 481). 성경은 그런 보기로 가득하다. “다윗의 역사는 또한 죄를 다루시는 하나님의 위대하고 궁극적인 목적을 우리에게 보여주며, 심지어 가장 암담한 심판 중에도 그의 자비롭고 은혜로운 목적이 어떻게 작용하는 지를 추적하도록 우리를 돕는다. 그는 다윗으로 하여금 막대기 밑으로 지나가게 하셨으나 그를 파괴하지는 않으셨다. 풀무는 정련(精鍊)을 위한 것이지 소멸을 위한 것이 아니다”(PP 738). (311.2)
 인류의 유예 기간이 끝날 때
 불행하게도 “악인을 향한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은 [번번이] 죄에 빠진 자들을 대담하게 만든다(참고 전 8:11). 그러나 그들의 처벌은 아무리 오래 기다려도 그 확실성과 두려움이 추호도 절감되지 않는다.... 자비하신 우리 하나님께는 징벌은 이상한 행위이다(출 33:11). 그는 보복을 즐기지 않으시나 당신의 율법을 범한 자들에게 반드시 심판을 베푸신다. 그는 지구의 주민을 처참한 타락과 파멸에서 건지시기 위해 불가불 그 일을 행하신다.... 그러나 심판으로 치시면서도 [이스라엘 당시] 하나님은 긍휼을 잊지 않으셨다”(PP 628). 인정 있는 의사가 환자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병든 다리를 절단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행위는 무정해 보여도 야훼 막케 는 사랑의 아버지가 아니신 때가 결코 없으시다. (311.3)
 모든 사람의 유예기간이 끝나면(계 22:11), 하나님의 자비는 더 이상 죄인에게 호소하지 않는다. 그 때는 각 사람이 선택을 마친 후이기 때문이다. 나라든지 개인이든지 마찬가지이다. “추호의 오차도 없이 영원하신 이는 아직도 모든 나라에 대해 정확한 계정(計定)을 유지하신다. 그의 자비가 회개하라 부르시며 너그러움을 보이는 동안에는 그 계정이 마감되지 않는다. 그러나 그 수치(數値)가 하나님께서 정하신 어떤 선에 도달하면 그의 진노의 역사가 시작되고 계정은 마감된다. 그 때는 하늘의 인내도, 그들을 부르시는 자비의 부르심도 끝난다”(TC 5:208). 그 후에는 야훼 막케 가 활약하신다. (312.1)
 드디어 세상 모든 사람의 유예 기간이 끝날 때, 심판자이신 하나님은 파괴하는 천사들을 명하여 “너희는 그를 쫓아가 온 성읍을 두루 다니며 치라” 하신다(겔 9:5). 그 때 그리스도의 오심을 상징하는 돌이(시 118:22; 눅 20:17, 18; 사 28:16) 그 위에 떨어지지 않은 자들 위에 떨어질 것이다(마 21:44). 그 때 돌은 인류의 상징인 우상의 발을 쳐서 가루로 만들어 추수 때 아무 쓸데없는 겨처럼 바람에 불려 사라질 것이다(단 2:34, 35). (312.2)
 그 때 하나님의 백성 중 반역의 무리는 사단의 공격을 받아 미친 사람들이 되어(신 28:28, 29), 고대 이스라엘에게 하신 모든 불의한 자들에게 대한 하나님의 말씀이 응할 것이다: “어찌하여 너는 네 고통으로 인하여 부르짖느냐? 네 슬픔은 네 죄악이 많음으로 인하여 치유될 수 없나니, 이는 네 죄들이 증가했기에 내가 이 일들을 네게 행하였음이라”(렘 30:4, 15). 예수께서 당신을 따르는 의로운 자들을 아버지 집으로 데려가기 위해 다시 오시면 땅을 저주로 치실 것이다(말 4:6). 그 후 1,000년 동안 이 암담한 지구는 모든 생명체의 생존이 중단된 곳이 될 것이다. (312.3)
 끝까지 거역하는 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경고
 성경에는 구원의 복음을 거절하는 세상의 모든 주민을 주께서 치실 날이 온다는 말씀이 여러 군데 기록되어 있다. 예를 들면, “내 눈이 너를 아끼지 아니할 것이요, 내가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리라. 내가 네 행위와 네 가운데 있는 가증함에 따라 네게 보응하리라. 그리하면 너희는 내가 치는 주(야훼 막케)인 줄 알리라”(겔 7:9). “또 내가 듣는데 다른 이들 [천사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그를 쫓아가 온 성읍을 두루 다니며 치되 너희 눈에 아끼지도 말고 불쌍히 여기지도 말라.... 그가 내게 말씀하시기를 이스라엘과 유다[하나님의 백성이라 공언하는 자들] 집의 죄악이 심히 크고 그 땅이 피로 가득하며 그 성읍이 위법으로 가득하도다. 이는 그들이 말하기를 ‘주께서 땅을 버리셨고 주께서 보지 아니하신다’ 함이라”(겔 9:5, 9). (313.1)
 지구의 추수가 끝날 때 예수께서는 추수하는 천사에게 이렇게 명하신다: “너는 예리한 낫을 대어 땅의 포도송이를 거두라. 이는 그 포도들이 다 익었음이라. 그러므로 천사가 낫을 땅에 대어 땅의 포도송이를 거두어서 하나님의 진노의 큰 포도즙 틀에 던져 넣더라”(계 14:18, 19). 이 때가 아직 오지 않은 것을 하나님께 감사하자! 이런 모든 두려운 위협 속에서 우리는 아직도 사랑의 호소를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너희가 자원하고 순종하면 땅의 풍요함을 먹을 것이라. 너희가 거절하고 반역하면 칼에 삼키우리니, 이는 주의 입이 그것을 말하였음이라”(사 1:19, 20). 구세주를 고의적으로 배척하지 않고서는 누구든지 하나님의 치심을 당할 까닭이 없을 것이다. (313.2)
 영원하신 하나님, 우리가 그날을 맞을 준비를 하도록 은혜를 주셔서 우리로 하여금 죄를 깨닫고 개심하여 변화되게 하소서. (313.3)
 구약은 이런 두려운 말로 끝난다: “보라! 이는 화덕같이 탈 그 날이 오기 때문이니, 교만한 자와 악을 행하는 자는 정녕 다 그루터기가 되리라. 오는 그날이 그들을 태우리니, 뿌리나 가지도 그들에게 남지 아니하리라. 만군의 주가 말하노라”(말 4:1). 그 때 야훼 막케 께서 “완전히 멸망시키리니 재난이 다시는 일어나지 아니하리라”(나 1:9). (313.4)
 “예수께서 오실 때 악인들은 주의 입 기운과 그의 영광의 밝은 광채로 말미암아 온 땅에서 소멸된다.... 온 땅은 마치 황폐한 광야 같아 보인다.... 그들은 맹렬한 격정으로 미쳐 싸우는 중에 섞인 것이 없는 하나님의 두려운 진노가 부어짐으로 땅의 악한 주민들은 성직자, 관원, 평민, 빈부 귀천 할 것 없이 모두 쓰러진다”(GC 657). (314.1)
 하나님의 약속과 위협은 모두 조건적
 “순종하면 살고 불순종하면 죽는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인류와 맺으신 변치 않는 언약 조항이다(PP 53). 그러나 인간이 이를 파기할 때 구세주는 괴로워 우신다: “내가 너희 자녀들을 때렸으나 헛되었으며, 그들이 조금도 바로잡히지 아니하였도다”(렘 2:30). “내가 너희를 ... 쳤으나 너희는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였도다”(암 4:9). 선지자 호세아는 백성에게 호소했다: “오라! 우리가 주께로 돌아가자. 이는 그가 찢으셨으나 우리를 낫게 하실 것이요, 그가 치셨으나 우리를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호 6:1). 그의 양 무리로 돌아오기를 끝까지 거절하는 자들만이 목자의 지팡이에 얻어맞을 것이다. (314.2)
 바울은 자기의 독자들에게 시련의 의미를 이렇게 설명했다: “징계가 당시에는 즐겁지 않고 슬픈 것 같으나 후에 그로 인하여 훈련된 자들에게는 화평한 의의 열매를 맺느니라”(히 12:11). 그러므로 우리는 아직 우리의 생활 방범을 바꿀 시간이 있을 때 하나님의 교육적 회초리를 순순히 받음으로써 후일 그의 사법적 곤장을 피해야 한다. 그의 제의를 거부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은 드디어 최후의 형벌을 내리시는 “이상한 행위”로 끝까지 당신을 거절하고 죄 중에 살기로 선택한 자들을 박멸하실 것이다. 그러나 야훼 막케 는 결코 사랑과 자비의 하나님이시기를 그치지 않으심을 우리는 명심해야 한다. 그는 변치 않으신다. 기다리는 아버지의 품으로 자녀들이 돌아올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는 동안에는 그의 성령께서 그들에게 역사하신다. 그러나 그들이 고의적으로 그의 구원의 은혜를 저버리고 멀리 가 버린다면 불가불 그 결과로 그들은 영원한 죽음을 당할 수밖에 없다. (31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