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전 539년 10월 12일 밤에, 당신은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이것은 어리석은 질문처럼 들릴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 여쭙는 것이라면 어리석은 질문일 수 없을 것이다· (84.1)
 


폐허가 된 바벨론의 건축물들. 찬란했던 문화를 엿볼 수 있다. 용의 그림 대신 양각된 황소의 모습이 선명하다. 이 벽들은 한때 갖가지 색의 수장(修粧) 벽돌로 입혀졌었다. (84.2)
 다니엘와 요한계시록은 우리들에게, 우리를 돌보시는 하나님이 영원하시다는 사실을 일깨워 준다. 그분은 기원전 539년 10월 12일에 천사를 보내어 벨사살의 연회장 벽에 글씨를 쓰게 하신 하나님이 신 것이다. (85.1)
 다니엘나 요한계시록이 전하는 위대한 기별의 하나는, 위대하시고 자애로우시고 항상 살아 계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책임을 가진 한 인격자로 존중해 주신다는 것이다. (85.2)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연약함을 잘 아신다. “저가 우리의 체질을 아시며 우리가 진토임을 기억하심이로다”(시편 103:14). 일정 기간에는 그분이 우리의 수많은 실수의 결과들로부터 우리를 보호해 주신다. 그분은 행복과 성공의 길을 선택함에 있어 도움 될 만한 유력한 증거들을 우리에게 제시해 주신다. 그러나, 그분이 우리를 존중하신다는 명확한 증거는, 그분이 우리에게 그분에 대한 순종과 불순종의 하나를 선택할 자유를 주신 사실이다. 그리고 심판의 때에도, 우리는 우리가 책임을 가진 존재로서 하나님으로부터 존중받은 선택의 자유를 이용하여 선악간에 결정한 선택의 궁극적 결과들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독단적으로 우리의 운명을 결정하지 않으시며 또한 전제적으로 형벌을 부과하지도 않으신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이는 매우 중요한 사실이다. (85.3)
 다니엘보다 수세기 앞서 이스라엘을 지도했던 여호수아는 위대한 행정가요 또 장군으로서, 평생토록 하나님의 사업을 수행한 후에 인간의 자유에 대한 하나님의 태도를 다음과같이 표현했다. (85.4)
 


바벨론의 운명을 예고하는 글자가 벽에 쓰여진 사건은 기원전 539년 10월 12일의 술잔치에서 벌어졌다.
(85.5)
 “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 너희 열조가 강 저편에서 섬기던 신이든지 혹 너희의 거하는 땅 아모리 사람의 신이든지 너희 섬길 자를 오늘날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수 24:15). (86.1)
 바벨론 왕 벨사살의 생애도 선택의 연속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선택들의 무게를 “달아 보셨다.” B.C. 539년 10월 12일의 심판 때에, 벨사살의 선택들은 “부족” 혹은 “결함이 있는” 것으로 판정되었으며, 선택의 과정에 개입하지 않으셨던 하나님께서는 벨사살이 결정한 선택의 자연적인 결과가 벨사살에게 미칠 때에도 개입하지 않으셨던 것이다. (86.2)
 벨사살의 선택들은 그것들이 진리의 빛에 위배되는 것이었다는 점에서 비극적인 심각성을 안고 있었다. 다니엘은 벨사살 왕 자신이 느부갓네살의 경험들을 숙지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환기시킨 후에, “왕은 그의 아들이 되어서 이것을 다 알고도 오히려 마음을 낮추지 아니하”였다고 말하였다(단 5:22). 느부갓네살의 교만은 어느 정도 변명의 여지가 있었다. 느부갓네살은 그가 세운 기념비에서, 자신이 이룩한 성공의 모든 공로를 그의 신들에게 돌리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이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경배를 요구하신다는 사실은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느부갓네살의 이 같은 무지를 참작하셔서 다니엘을 보내어 경고하셨다. 그 다음에는 이상한 정신병에 걸리게 하여 겸비와 회개의 심령을 이끌어 내셨다. 그러나, 벨사살에게는 변명의 여지가 없었다. 그는 느부갓네살의 질병에 관한 모든 일을 알고 있었다. 그는 교만이 사악한 것이며 뽐내는 것이 신성 모독적인 죄라는 사실을 익히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 죄를 선택했던 것이다. (86.3)
 하나님께서는 여러 면으로 벨사살을 책임 의식을 가진 하나의 인격으로 취급하셨다. 우선, 그분은 그에게 선택의 자유를 허락하시고 간섭하지 않으셨다. 둘째로, 그분은 그 자유 선택의 결과에 있어서도 간섭치 않으셨다. 그분께서는 마지못해 간섭의 손길을 거두심으로 씨 원수들의 권세에 “그를 내어 주신”셈이 되었다. 하나님께서는 수개월 후에 다니엘을 사자굴에서 보호하신 것처럼 메대一페르시아 인들로부터 벨사살을 보호하실 수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벨사살은 그의 생활에서 하나님을 원하지 않았으며,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결정을 존중하여 그로부터 보호의 손을 빼신 것이다. (86.4)
 하나님께서 벨사살을 책임 의식을 가진 인격으로 존중한 세번째 사례를 보라. 벨사살이 말년에 나쁜 습관에 탐닉하고 있을 때, 하나님은 간섭의 손을 빼고 그를 나쁜 습관에 “놓아 버리”셨다. 로마서 1장18~32절에서 사도 바울은 벨사살처럼 살기로 선택하는 모든 사라들에 대한 하나님의 태도를 다음과같이 말했다. (86.5)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잔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치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 좇아 나타나나니 ∙∙∙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지니라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 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우준하게 되어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 질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저희를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어버려 두사 저희 몸을 서로 욕되게 하셨으니 이는 저희가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 주는 곧 영원히 찬송할 자이시로다 아멘 이를 인하여 하나님께서 저희를 부끄러운 욕심에 내어버려 두셨으니∙∙∙또한 저희가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저희를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어버려 두사 항당치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의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저희가 이 같은 일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하다고 하나님의 정하심을 알고도 자기들만 행할 뿐 아니라 또한 그 일을 행하는 자를 옳다 하느니라.”
(86.6)
 명민한 정신력과 안광을 지닌 다니엘은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 성전에서 취해 온 거룩한 기명들을 더럽힌 사실로 인해, 알코올에 취한 바벨론 왕을 꾸짖었다. 벨사살 왕은 그 기명들에 술을 부어 마심으로서 예루살렘 성전뿐만 아니라. 자신의 “성전 된 몸”을 더럽히는 죄를 범했다. (87.1)
 고린도전서 6장 19, 20절에는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 하였으며, 고린도전서 3장 16, 17절에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고 하였다. (87.2)
 하나님께서는 기원전 539년 10월 12일에 벨사살의 에 거하지 않으셨다. 벨사살의 육체는 유린되고 더럽혀지고 모독되고 황폐된 성전이었다. 벨사살이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자신의 몸을 거룩한 목적들을 위해 사용하는 대신에 탐식과 부절제를 위해 사용했으며 하나님을 무시하기로 선택했기 때문에, 일이 이 지경에 이른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마지못해 그를 그의 “부끄러운 정욕에 내어 주셨”던 것이다. (87.3)
 집에서나 이웃에서 존경받는 알뜰한 주부들이 그들의 작은 벨사살(가장)을 위시한 온 가족들에게 적은 비용을 들여 술을 제공할 요량으로 가정에서 밀주를 제조한다니 얼마나 한심한 일인가! (87.4)
 기원전 539년 10월 12일, 하나님께서는 벨사살 왕에게 그가 결정한 자유 선택의 최종적인 결과를 왕궁 분벽 위의 글씨로 선포하셨다. 이것은 하나님의 심판의 행위였다. 여러분이 이 같은 선언을 읽게 될 날이 언제 올 것인지 누가 알 것인가? 그 선언이 어떤 성격의 것이든, 여러분은 고린도후서 6장 2절의 말씀을 아직도 주장할 수 있다.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87.5)
 여러분이 여러분의 생애를 더 좋게 변화시킬 수 있는 진리에 등을 돌려 왔던 생활에 싫증을 느끼게 되었다면, 좋지 못한 습관으로 성전인 몸을 더럽혀 온 사실을 이제 깨달았다면, 가족들에게 나쁜 모본을 보여 왔으면, 돈을 우상으로 섬겨 왔으면, 악의로 혹은 몰지각하고 이기적이기 때문에 자신과 다른 이들에게 상처를 입혀 왔다면, 여러분이 자신을 지울에 달아 보고 부족함을 발견했다면, 그리고 이제 이 모든 것을 뉘우치고 새 사람이 되기가 소원이라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사랑하시고 존중하신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그분은 그의 아들을 보내서 우리를 위해 죽게 하셨다. 그분은 여 러분을 위해 도리에 어긋나지 않는 모든 일들을 기꺼이 하실 것이다. 그대가 회개하면 기꺼이 용서하시는 분이시다.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87.6)
 우리가 아직도 은혜의 왕국에 살고 있음을 하나님께 감사하자! 영광의 왕국은 바로 눈앞에 있다. (8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