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펭글러는 두 해석 사이의 공통된 줄거리를 강조하려고 애썼다. “두 편 이 모두 우리 주께서 인간이면서 신이 되심을 믿고 있다. 또한 그분은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으셨고 죄로 타락할 수 있으셨고 이와 같이 구원의 전체적인 경륜이 실패할 수 있었지만 그는 결코 단 한 가지 죄도 범하지 않으셨다. 견해의 차이는 크게 죄 된 본성(sinful nature)이 무엇으로 구성되는지 상이한 이해 때문에 생기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나타나 보이는 것보다는 훨씬 미묘한 간격이 이 두 편 사이에 존재하는 듯하다.”51(285.3)
일치점을 살펴본 후에 편집인은 토의되고 있는 다수의 기본적인 질문들을 숙고해 보았다. “당신의 인성 가운데 우리 주께서는 아담의 모든 자손들이 출발한 지점에서 출발하셨는가? 그리스도께서 아담의 타락 전 혹은 타락 후의 인성을 취하셨는가? 만약 인류가 아담과 이브의 타락에 의해 영향을 받았다면 그리스도는 똑같은 방법으로 영향을 받았는가 아니면 그런 영향에서 면제되셨는가? 만약 그리스도께서 죄 없는 인성을 받으셨다면 그가 우리보다 우월함을 받으셨는가? 그분의 대리적으로 타락한 인간본성을 취하셨는가? 만일 타락한 인간 본성을 취하셨다면 그 ‘타락한’ 요소는 신체적인 면에만 관계된 것인가, 당신의 도덕적 품성에 관련된 것인가? 우리가 구원받기 위해 매우 결정적이고도 그리스도의 인성에 관한 정확한 이해를 가지는 것이 필요한가? 그리스도인들이 그분이 사셨던 흠없는 생애를 살기 위해 우리 타락한 본성(물론 결코 죄 짓지 않는 품성)을 취하셔야만 하는가?”52(285.4)
이것들은 두 지정된 신학자들이 답변해야 할 질문들이다. 독자들의 영향력을 피하기 위해 두 가지가 익명으로 출판되었다. 후에 논쟁점이 되었던 실제 이름들이 나타났다. 그들은 바로 노만 R. 갈리(Norman R. Gulley)와 허브트 E. 더글러스(Herbert E. Douglass)이다. (286.1)
1. 갈리:타락 전 인성
갈리는 타락 전 입장을 고수했다. 그는 이 견해를 함께 한 자들의 전통에 반하여 엘렌 G., 화잇의 진술들의 기초에 자신의 입장을 세우지 아니하였다. 그의 제시는 그리스도론적 성경 구절들에 대한 성서해석 연구에 집착하였다.53 그는 모든 교리적 진리는 성서의 입장에 근거되어야 한다고 믿었다. (286.2)
갈리는 언어학적이며 신학적연구를 헬라어인 Sarx hamartia, isos, homoioma, monogenes 그리고 prototokos의 “아브라함의 후손들”(히 2:16), “다윗의 자손”(롬 1:3) 등 표현의 의미를 정의하는 데 집착 했다. 그의 주요 전제는 다음과 같다. “철저한 검토를 통하여 우리는 예수께서 출생시(영적으로 죄 없는 인성을 실제로 취하신 반면 당신의 지상생애에 자기 외의 다른 이들과 비슷한 신체적 본성을 소유하셨다는 압도적인 사실을 증거로 입증할 것이다.”54(286.3)
단 하나의 성서만이 육신(the flesh)과 죄(sin)에 직접적으로 관련되었다고 주장하였다. “내 안에 거하는 죄니라”(롬 7:17). “그러므로 ‘육신(Sarx)’은 반드시 죄 있는(sinful)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 디모데전서 3장 16절에서 그것은 ‘soma’가 아니고 ‘sarx’이다. 그것은 단지 ‘infileshment’이고 ‘죄 있는(sinful)’을 필수적으로 의미하지 않는다.”55(286.4)
그 다음 갈리는 로마서 8장 3절과 빌립보서 2장 7절, 히브리서 2장 17절에 있는 “모양(likeness)”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예수는 죄에 영향을 받은 신체적 인간의 몸을 지님에 있어 다른 인간과 비슷했지만 인간과 꼭 같지는 아니하였다.”(286.5)
“왜냐하면 그분만이 하나님과 당신의 영적 관계에 있어 죄가 없으셨기 때문이라고 결론지을 수 있다.”56(287.1)
죄 문제를 취급하면서, 갈리는 죄는 단지 어떤 행동(act)으로 정의될 수 없다고 간주하였다. “그것은 너무 피상적으로 규정되는 것이다. 죄가 그릇된 선택을 포함하므로 그릇된 생각과 행동(마 5:28)을 할지라도 그것은 또한 본성을 포함한다. 만일 우리가 죄인들로 태어나지 않았다면, 우리는 죄에 대한 첫 행동이나 생각을 할 때까지 구주가 필요치 않았을 것이다. 이와 같은 생각은 죄의 비참한 결과에 대한 그리고 모든 사람을 위한 유일한 구주(요 14:6; 행 4:12)로서 그리스도의 사명에 대한 두려운 위해를 가하는 것이다. 그것은 또한 만일 예수께서 죄 있는 본성으로 오셨으나 저항하지 않으셨다면 아마 누군가가 똑같은 행동을 할 것이고 그래서 그 사람은 예수께서 구원할 수 없는 것이다.”57(287.2)
시편 51장 7절, 22장 10절, 139장 13절과 그 외 몇 성경구절을 인용하면서, 갈리는 그리스도 외에는 모든 사람이 죄인이라고 하였다. 예수께서 죄가 없으셨다는 사실은 도덕적으로 순결한 개념을 정당화하지 않는다. 그러나 만일 하나님의 한 인간을 위한 이런 구원적 행동을 수행하였다면 왜 모든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닌가? 이것은 되는 모든 교통에서 그리스도를 제외시켰을 것이다. 그 밖에 만일 마리아가 그리스도 없이 무원죄라면 이것은 그리스도의 사명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다.58(287.3)
성서적인 진술에 의하면 예수는 “유일한(unique)”—monogenes, “장자(the firstborn)”—prototokos이다. 확실히 이 표현은 문자적으로만 해석되어서는 안 된다고, 갈리는 강조하고 있다. “그것들은 그분이 본질적으로 독특한 분 중 한 분이시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그의 사명은 인류의 한 새로운 아담이요, 새로운 첫 출생 아니면 새로운 머리가 되어야 했다. 이것은 그분이 우리의 대리자요, 대제사장이요, 대쟁투에서 중보자가 되어야 함을 특징지었다. 예수는 당신의 생애로 우리의 모본이시나, 출생시에 우리의 모본이 되신 뜻은 아니다. ∙∙∙ 그는 구세주로서 우리의 첫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우리가 죄인으로 태어날 때 죄 없이 태어나셨다.”59(287.4)
갈리에 의하면 예수께서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이 되신다는 것을 진술하는 구절들은 “그리스도의 본성이 아닌 사명에 관해 말하는 것이다. 그 구절들은 그가 죄 없이 아니면 죄 있게 태어났을 때의 육신의 형태를 지닌 것에 관계될 것이 아니다. ∙∙∙ 사명이지 본질이 아니라는 것이 문장의 전후 관계에 나타난다.”60“그가 사망할 때까지 그는 ‘죄를 알지도 못’하셨는데 ‘우리를 위해 죄’가 되셨다(고후 5:21, KJV), 그 순간 이전에는 결코 죄가 당신의 아버지로부터 분리를 가져오지 않았고 이것이 그로 하여금,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왜 나를 버리셨나이까?’(마 27:46, 킹제임스 역)하고 부르짖게 하였다. 인간 예수는 사망시 사명에 있어서 우리를 위해 죄가 되셨고 출생시 본성에 의해서 죄가 되신 것이 아니었다.”61(288.1)
그의 ‘독특한 주장’가운데, 갈리는 “그리스도론은 신학의 중심이자 심장인데,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간에게 대한 가장 위대한 하나님의 계시이기 때문이다. 그는 또한 가장 믿을 만한 인간의 계시가 되신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와 함께 계시는 인간으로 유일한 분이었다. 그는 죄로 악해진 인간 육신과 연합한 죄 없는 신성이셨지만 그는 두 본성 가운데 똑같이 죄가 없으셨다.”62(288.2)
그러나 진정한 그리스도론은 경외심과 순종과 찬양만으로 완전해지는 것은 아니다. 그리스도를 명상함으로 우리는 그분과 같아지게 된다(고후 3:18). 또한, “그리스도론은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갈 2: 20, KJV)는 외침 가운데서 클라이막스를 이룬다. 이런 의존적 연함에서만 예수는 우리의 모본이 되실 수 있고, 결코 출생하실 때의 그분의 본성에만 의지하는 것이 아니다.”63(288.3)
성서에 입각한 그의 단언을 기준으로 한다면 아무도 그를 질책하지 않을 것이지만, 그 반면에 그의 선임자들은 주로 그 기준을 엘렌 G. 화잇의 기록들에 두었다.64 그러나 갈리의 성서해석은 대다수의 정통 프로테스탄트 신학자들의 해석과 유사하며, 그것은 선구자들과 엘렌 G. 화잇의 해석과 반대되는 것이다. (288.4)
2. 더글러스:타락 후 인성
허버트 E. 더글러스(Herbert E. Douglass)는 만일 자신의 독자들이 1950년 이전에 살고 있었다면 그들은 현재 대두되는 논쟁에서 완전히 잊어버리고 있었을 것을 독자들에게 분명히 말하였다. 왜냐하면 “20세기의 3/4분기까지 재림교회의 대표자들은 예수를 우리의 타락한 본성을 취한 분으로 끊임없이 제시하였”65기 때문이다. (289.1)
더글러스는 자신의 독자글의 관심을 ‘어떻게’ 라는 것보다 ‘왜’라는 질문에 다시 초점을 맞추었다. 그에 의하면, “구원에 대한 논점은 처음부터 하나님이 어떻게 사람이 되셨는가에 있지 않고, 왜 사람이 되셨는가에 있다. ∙∙∙ 의심할 바 없이 오묘한 것이 성육신에 감추어져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 오묘는 하나님과 사람이 어떻게(how) 연합되어 있는가?이지 왜(why)에 있는 것이 아니다.”66(289.2)
실제로 “이 논쟁점은 왜 그분이 그 방법을 택하셨는지 해명이 될 때 시원하게 풀릴 것이다. 만일 우리가 정확하게 이 질문에 응한다면, 모든 다른 성경주제도 왜곡될 것이다.”67 반대로, 구원의 계획은 그 질문이 응답될 때 분명히 드러날 것이다. “왜 예수께서 모든 아기같이 2000년 전의 타락한 인류의 상태를 취하셨으며 에덴에 거할 때의 무죄한 상태가 아닌, 타락한 아담의 상태를 취하셨을까?”68(28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