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브는 부가해서 말하기를 “만일 그렇다면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타락한 인성을 공유하시고 그분의 중보사업은 타락한 인간으로부터 하나님께 이르는 사이의 전체적인 심연(深淵)에 다리를 놓으시는 것이다. 가장 깊고도 가장 충만한 의미에서 우리의 입장에 들어오심으로 그리고 당신 자신을 우리와 충분히 동일시하심으로 그분이 우리의 구주가 되실 수 있으셨다. 타락한 육신을 제외한 어떠한 다른 조건들도 원수에 의해 도전을 받아 그들의 영역에 대한 사상에 영향을 미칠 것이었다”37라고 하였다. (281.1)
 프리브가 기록한 그리스도의 인간본성을 이해하기 위한 이런 노선은 1888년 와그너와 존스가 주장한 것이었고 명백히 엘렌 G. 화잇에 의해서도 지지를 받을 것이었다. “사실 그리스도의 생애에 대한 이런 이해는 타락한 육신으로 하나님께 충성하셨던 주 예수 그리스도와 그 기별의 능력을 받아들임에 있었다.”38 (281.2)
 칭의의 기별에 대한 실제적 적용에 관하여 프리브는 그것을 두 가지로 접근하였다. “여기서부터 복음기별은 우리의 입장에 감동을 준다. 복음은 하나님의 품성, 곧 하나님은 용서하시고 회복하시는 분임에 대한 기쁜 소식이다. 복음은 그리스도의 공로로 의롭게 된다는 하나님의 선언이며 우리의 죄 된 삶을 하나님께서 재생시키고 점진적으로 우리를 하나님의 형상으로 회복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회복을 말한다. 복음은 법적인 결정이며 변화시키는 능력 두 가지 다이다.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칭의가 반드시 일어나게 하는 믿음의 열쇠이다. 복음은 칭의, 곧 우리가 의롭다고 칭해지는 기호가 되는 믿음으로 말미암는 그리스도와의 연합과 성화, 곧 우리가 의롭게 되는 기초 위에 끊임없이 자라나는 믿음의 행사를 통해 더욱 그리스도와 같이 자라나게 하는 이 두 가지 다를 말한다.”39 (281.3)
 1985년에 프리브는 자신의 논증의 각 분야를 태평양인쇄소에서 출판한 <참 복음과의 대면(Face to Face With the Real Gospel)>이라는 책에서 상세하게 전개시켰다.40 우리가 매우 치하할 만한 발언 한 가지를 인용한다. “한 교회로서, 우리는 이 세 가지 비판적인 분야 곧 죄, 그리스도 그리고 완전에 관한 분야에 있어 우리의 믿음을 결코 형식적으로 정의해서는 안 된다.” (281.4)
 “이 분야에서 우리의 불분명함과 빗나가는 견해 때문에 지난 40년 동안 불확실성과 좌절의 신학상의 사막에서 방황해 왔다. 더욱이 우리가 이 분야에서 반대 견해를 취해 왔기 때문에 우리의 기별과 사명을 명백하게 정의할 수 없었다.”41 (282.1)
 다른 그리스도론 사이에 존재하는 반박이 에릭 크라우드 웹스터(Eric Claude Webster)가 남아프리카에 있는 케이프 프라빈스 스텔렌바흐(Cape Province Stellenbosch)대학교의 신학 강좌에서 발표한 우수한 박사학위 논문에서 명료함을 드러냈는데 이 논문은 ‘재림교회 그리스도론의 역류’42라는 제목으로 1984년에 출판되었다. (282.2)
 재림교회 그리스도론의 역류
 능란한 외과의사처럼 에릭 크라우드 웹스터(Eric Claude Webster)43는 이 주제에 관한 자신의 역작 가운데 재림교회 그리스도론의 심장부를 해부 해 놓았다. 첫 장에서 웹스터는 다양한 역사적 배경에서 그리스도론의 문제를 제시하였다. 제2장에서 그는 뛰어난 네 명의 재림교 저술가와 신학자들의 그리스도론을 분석하였다. 엘렌 G. 화잇, 엘리엇 J. 와그너, 에드 워드 A. 헤펜스톨, 허버트 F. 더글러스인데, 두 사람은 개척자 세대를 대표하고, 나머지 두 사람은 현재 세대를 대표하는 사람들이었다. 마지막 장에서 그는 이들 네 그리스도론자들에 관한 자신의 사상을 결론을 내리고 있는데 그것은 과연 재림교 그리스도론의 서로 다른 흐름과 역류를 대표하고 있다. (282.3)
 우리는 이미 이 저자들 각 자에 의해 제시된 입장을 시험해 보았다. 그래서 여기서는 반복을 피하겠다. 특별히 관심을 끄는 것은 그리스도의 인성에 관한 논쟁에 있어서 웹스터의 독특한 개인적 통찰력이다. 예를 들면 본체론(존재론)으로서의 엘렌 G. 화잇의 것과 헤펜스톨의 것을 분류해 놓았다. 이론적인 것으로서의 와그너의 본체론과 기능면으로서의 더글러스의 본체론, 웹스터는 또한 각 그리스도론에서 독특한 역할이 되리라는 것을 이끌어냈다. (282.4)
 엘렌 G. 화잇, 와그너, 헤펜스톨에게 그것은 예수의 인격(The Person of Jesus)이었다. 더글러스에게 그것은 예수의 사역이었다. 각자에 의해 추구된 중요 목적에 관해 그는 엘렌 G. 화잇이 하나님의 품성에 초점을 맞춘 반면, 와그너는 인간 내에 있는 거룩함의 완전성을 하이라이트로 맞추었고, 헤펜스톨은 구원을 목적으로, 그리고 더글러스는 그리스도를 닮음에 대해 강조하였다. (283.1)
 예수의 인성에 관해 웹스터는 이들 각 저자를 위해 우리가 이미 깊이 다룬 분석들을 확정하였다. 아무튼 엘렌 G. 화잇에 관한 그의 결론은 어떤 중대한 요점에서 다른 것이었다. “죄와 관련해서 우리는, 엘렌 G, 화잇이 그리스도께서 모든 ‘인간의 죄 없는 허약성과 연약함’을 지니고 전가된 세상의 죄와 죄의식(guilt)을 함께 지고 이와 같이 모든 죄를 위한 범죄와 형벌을 대신해서 짊어지셨음을 발견하게 된다. 그러나 죄가 없고 더럽힘과 오염됨, 흠이 없는, 죄 된 성벽이나 추세나 죄의 얼룩이 없는 본성을 지니고 오셨음을 발견하였다.”44 (283.2)
 그리고 웹스터는 엘렌 G. 화잇의 타락 후의 입장을 재확인하였다. 아무튼, 그는 마치 이 표현이 엘렌 G. 화잇으로부터 비롯된 듯이 단 하나의 인용구 ‘죄 없는 허약성(innocent infirmities)’에 대해 언급하였다. 이전에 진술했듯이 이 표현은 엘렌 G. 화잇에 의해 사용된 것은 결코 아니었다. ‘대리하여(vicariously)’라는 단어에 관하여는 그녀는 자기의 저술 가 운데 결코 사용한 적이 없었다. (283.3)
 자신의 개인적 견해의 요점을 제시하면서, 웹스터는 헤펜스톨에 필수적으로 동의하고 있는 듯하였다.45 그는 기록하기를 “성육신하고 계신 동안 예수 그리스도는 당신의 신성을 충만하게 하나님이 되기 위해 행사하셨다. 그리고 ∙∙∙ 그의 인성을 충분하게 인자가 되기 위해 사용하셨다”고 하였다. 그렇지만, 이 모든 것 위에 “예수 그리스도는 타락 후, 타락하기 전이 아닌 아담의 인성으로 세상에 들어오셨다. 그분은 유전법칙의 영항을 받은 그리고 연약성과 허약함과 시험에 지배를 받는 인성을 취하셨다.”46 (283.4)
 ‘여하튼’ 웹스터는 부가해서 말하기를 “예수 그리스도께서 타락한 인간 본성으로 오신 동안 원죄에 의해 더럽혀지지 않으셨고 죄에 대한 어떠한 추세나 성향 없이 출생하셨고, 우리를 그분의 절대적인 죄 없으심에 그릇된 어떤 것인가를 가질 필요가 없다.”47 (284.1)
 그런데도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점에 있어서 죄를 제외하고는 우리와 같은 본성뿐 아니라 고통과 소외됨과 싫어버림의 일반적 상황을 취하시고 당신 자신 위에 우리의 범죄와 형벌과 분리됨을 대신 취하시고 자원해서 선택하셨다.”48 (284.2)
 웹스터의 연구는 재림교회 내의 투쟁의 심장부에서 일어나고 있는 문제를 더욱 잘 이해하기를 바라는 자들을 위하여 하나의 금광맥이 된다. 그리스도의 타락 후 본성에 동의하는 그의 입장은 전통적 그리스도론에 적극적인 찬성표를 던지고 있다. 아무튼 어떤 이는 웹스터의 견해 가운데 모순점을 볼 것이다. 한편으로는 그는 ‘예수는 유전 법칙에 의해 영향을 받은’ 인성을 취하시고 ‘반면에 다른 한편으로는 성향 없이 출생하셨음’을 단언한다. 그리스도께서 죄에 대한 추세가 없으셨고 다만 ‘죄 없는 허약성’만 을 유전으로 받으셨다고 선포하는 자들에 대한 우리의 반대 이유들은 물론 웹스터에게 적용이 되는 것이다. 사실 이 진술들은 성서적인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엘렌 G. 화잇의 가르침에 조화되는 것도 아니다. (284.3)
 두 그리스도론의 대면
 논증에 대한 반응 가운데 <미니스트리>지의 편집장인 J. R. 스팽글러는 두 신학자, 각자가 이 주제에서 두드러진 이 두 편 사람들에게 재림교회 목사들의 유익을 위한 저들의 견해의 요지를 제시해 주도록 요청하였다. 1985년 6월자 편집에서 그는 이렇게 기록하였다. “우리는 수년 동안 그리스도의 본성에 대해 취급하면서 우리의 간행물에서 무엇인가를 게재하는 것을 의도적으로 피해 왔다. 1978년 <미니스트리>지에 있는 나의 기사는 이 주제에 대한 나 자신의 고뇌를 표현하였다.” (284.4)
 “나는 나의 확신을 발표하려고 시도하는 가운데 내 자신의 부족감으로 눌려 있었음을 고백하였다.”49 (285.1)
 “그렇지만 아직도 교회가 그리스도와 그의 인성문제를 이해하는 데 실패 할 것인지, 성공할 것인지를 열렬히 주목하는 분들이 있다는 사실을 보면서 그리고 이 주제에 관한 새로운 인쇄물이나 토의 내용에서 나는 이 질문 두 편이 다시 검증되어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두 재림교 학자들로부터 비롯된 좀 더 긴 두 기사를 소개한다.”50 (28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