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계시를 가리키는 낱말들
 라틴어 revelare, ‘덮개를 치우다, 감추어진 어떤 것을 벗기다’를 통해서 영어의 계시를 나타내는 revelation이 나왔다. 계시에 관한 성경적 개념은 ‘인간이 그분을 알도록 그분의 능력과 영광, 그분의 본성과 성품, 그분의 뜻과 길과 계획—한마디로 그분 자신—을 인간에게 적극적으로 드러내시는’ 창조주 하나님과 전적으로 관련되어 있다.1 신학적으로 계시는 하나님께서 주님 자신과 인류를 위한 주님의 뜻과 목적을 말씀과 행동과 기타 수많은 통로를 통해서 나타내시는 것인데 예수 그리스도는 가장 온전한 하나님의 계시이다.2 계시와 관련된 매우 다양한 현상이 성경에서 발견된다. 이런 현상들로는 하나님의 말씀, 역사 속에서의 하나님의 강력한 행동들, 신적 현현, 꿈, 예언, 자연계시, 그리스도안의 계시, 복음서의 계시, 종말론적인 현현 등이 있다.3 (300.1)
 신약은 계시를 가리키는 전문 술어로 ‘아포칼륍토’(ἀποκαλύπτω, ‘폭로하다, 베일에 가려진 것을 드러내거나 벗겨내다’)와 ‘아포칼륍시스’(avpoka,luyij, ‘폭로’)를 갖고 있지만,4 구약은 신학적인 의미에서 전적으로 계시를 가리키는 술어를 갖고 있지 않다. (300.2)
 구약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인간에게 나타내시는 것으로 가득 차 있다. 어떤 히브리어 단어도 신적 계시와 관련된 모든 현상을 포함할 수 없다. ‘보여주다, 보다, 나타나다 등의 다양한 동사들은 말씀과 이상을 가리키는 명사들과 함께 구약을 좀 더 잘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다.’5 신인동형설(神人同形說, anthropomorphism)과 신현(神顯, theophony)과 관련된 단어들은 하나님의 계시를 나타내는 지시어들이다. 이 모든 단어들은 세속적 용법으로 사용되고 있기 때문에 그것들을 세속적 혹은 신학적으로 해석하는 것은 문맥에 의해 결정된다. (301.1)
 히브리에서 계시와 거의 근접하는 동사는 ‘갈라’(גָּלָה, Gälâ, ‘드러내다, 치우다’) 이다. 이것은 숨겨진 것을 나타내는 것을 가리키는데 느부갓네살(단 2:19, גֲּלִי, gálî, 아람어 페일형 ), 사무엘(삼상 3:21), 다니엘(단 10:1) 등이 체험했다. 신명기 29:29[28]의 ‘나타난 것’(הנִּגְלֹת, hanniglöt)은 율법을 가리킨다. (301.2)
 계시를 가리키는 가장 일반적인 용어는 ‘말씀하시다’를 뜻하는 ‘아마르’((אָמַר), °¹mar )와 ‘다바르’(דָּבַר, d¹bar )이다. ‘하나님이 이르시되’((אָמַר), °¹mar 창 1:3; 6:13; 출 3:14 등) ‘야훼께서 ∙∙∙ 에게 말씀하시되’(דָּבַר, d¹bar 출 6:29; 25:1; 수 20:1; 선지자들, 왕하 21:10; 다윗의 선견자갓, 대상 21:9; 므낫세와 그백성들, 대하 33:10)) ‘예레미야에게 임한 야훼의 말씀’(דֳבַר־יְהוָה, dübar-yhwh렘 47:1) 등은 신적 계시의 청각적 측면을 강조한다.6 ‘라아’(רָאָה, rä´â, ‘보다, 나타나다, 보게 하다, 보여주다’), ‘하자’(חָגָה, Häzâ, ‘보다, 계시나 꿈에서 보다, 바라보다’), ‘로에’(רֹאֶה, rö´è, ‘선견자’), ‘마레’(מַרְאֶה, mar´è, ‘외양, 관경, 환상’), ‘호제’(חֹזֶה, HözË, ‘선견자’), ‘하존’(חָזוֹן, Häzôn, ‘환상’) 등은 계시의 시각적 측면을 강조한다. ‘야다’(יָדַע, yäDa`, ‘알다, 알게 하다, 공표하다’), ‘나가드’(נָגַד, näGaD, ‘알게 하다, 보고하다, 말하다’) 등은 인지적(認知的) 측면을 강조한다. (301.3)
 위에 열거한 대부분의 용어들이 창세기에 등장한다. 하나님은 사람들에게 ‘나타나셨고’(גָּלָה, Gälâ, 창 35:7. רָאָה, rä´äh, 아브라함, 창 12:7; 이삭, 창 26:2; 야곱, 창 35:9), ‘오셨고’(בָּא, bô°, 창 20:3; 31:24),7 ‘말씀하셨고’((אָמַ), °¹mar: 노아, 창 6:13; 아브라함, 창 12:1; 아비멜렉, 창 20:3; 이삭, 창 25:23; 야곱, 창 35:1. דָּבַר, d¹bar: 노아, 창 8:15; 하갈, 창 16:13; 아브라함, 창 17:3; 라반, 창 31:24; 야곱, 창 35:13), ‘보여주셨고’(רָאָה, rä´â, 아브라함, 창 12:1; 바로, 창 41:28), ‘알려주셨다’(יָדַע, yäDa`, 요셉, 창 41:39. נָגַד, näGaD, 야곱, 창 32:30; 바로, 창 41:25), 하나님은 계시의 수단으로 ‘말씀’, ‘환상’(מַחֲזֶה, maµ¦zè, 창 15:1), ‘꿈’(חֲלוֹם, µ¦lôm, 창 20:3; 31:11, 24; 37:5; 41:7; 42:9)을 사용하신다. 하나님은 인간과 함께 ‘동행 하시고’(התְהַלֵּךְ, hithallek, 창 5:22, 24; 6:9) 하나님의 특별한 종인 ‘선지자’(נָבִיא, n¹bî°, 창 20:7)를 갖고 계신다. (302.1)
 2. 창조에 근거함
 하나님의 계시의 가능성은 창조에 근거한다. 하나님은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בְּצֶלֶם אֱלֹהִים, Bücelem ´élöhîm, 창 1:27; 9:6)으로 창조하셨다. 이것은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를 원형과 모형으로 정의한다. 양자 사이에 불가분의 일치성과 밀접성이 존재한다. 창조기사는 교통의 가능성이 하나님의 고유의 본성 안에 뿌리를 받고 있다는 것을 지적한다. ‘우리가 만들자’(נַעֲשֶׂה, na`áSè, 창 1:26)는 삼위일체 속에 존재하는 의사소통적 성격을 전제로 한다. 인간과 교통하려는 주님의 의도가 뒤이어 기술된다. ‘그들로 다스리게 하자.’(וְיִרְדּוּ, wüyirDû 창 1:26). 하나님께서 그분의 목적을 그분의 대리인에게 전달하셨고, 인간은 자신의 지성으로 그것을 이해하고 행동으로 옮겼다. 아담은 문화명령의 실천자로서 땅을 경작했고 생물들의 이름을 지었다(창 1:28; 2:15, 19). 하나님은 피조물 중 하나인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신인관계를 분명히 하는 상징물로 계시하셨다. 하나님의 계시를 통해 물질적인 사물이 영적 정신적 의미를 갖게 된 것이다. 아담은 한 생명체로서 그가 존재하게 된 세계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과 삶의 의미를 오직 계시를 통해서 갖게 되었다. 그가 접하는 모든 것은 계시였다. 자연계의 사물은 하나님의 피조물로서 일반적 계시의 영역이었고, 사물들의 의미와 자신의 존재에 관해 의미를 부여하게 된 것은 특별 계시인 하나님과의 교통을 통해서 이루어졌다. 하나님께서는 주님과 절친한 관계의 사람에게 자신을 계시하신다. 이런 절친한 관계는 에녹과 노아가 ‘하나님과 동행하였다’(הִתְהַלֵּךְ, hithallek) 는 구절에서 찾아 볼 수 있다(창 5:22, 24; 6:9). 이것은 ‘아버지가 자기의 어린 자녀를 손을 잡고 데려감으로 아이가 아버지와 함께 걷는 것’8과 같은 절친한 관계를 형상화한다. 이것은 최고 형태의 계시적 사건이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어버이-자녀 관계는 창조에서 비롯된 것이다. (302.2)
 3. 하나님께서 주도권을 가지심
 계시는 하나님께서 인간에게로 향하는 일방적인 것이다. 천지만물에 대해서 절대주권을 갖고 계신 하나님께서 계시를 베푸실 사람과 때와 내용에 대해서 기쁘신 뜻대로 정하신다. 인간이 기대할 수 없는 순간이라고 해서 하나님의 계시의 가능성에서 제외되는 것은 아니다. 아담의 타락의 순간에 구원의 계시를 갖고 찾아 오셨고(창 3:8, 15) 야곱이 형을 피해 도망갈 때 계시로 상한 심령을 새롭게 하셨다(창 28:12). 구속의 경륜은 인간에게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게서 기원했으며, 이스라엘 민족의 탄생과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과 재림은 오직 하나님께서 인도하시고 주관하시는 일이다. 하나님의 사람인 노아와 아브라함 뿐 아니라 애굽인 여종 하갈과 이방 왕인 아비멜렉과 애굽 왕 바로에게까지 계시를 주신다(창 16:3; 20:3; 41:25). (303.1)
 4. 인류의 역사 속으로 하나님께서 들어오심
 역사의 창조자이신 하나님은 계시를 통해서 인류의 역사 속으로 들어오신다. 하나님의 역사 속의 개입은 ‘내가 ∙∙∙ 하리라’는 말씀 속에 나타난다(원복음, 창 3:15; 대홍수, 창 6:7; 아브라함의 축복, 창 12:1). 계시는 약속이다. 하나님의 계시적 약속은 하나님의 섭리와 기적을 통해서 성취된다. 약속하신 대로 여자의 후손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이천년 전에 초림하셨다. 인간적 가능성을 부정하는 동정녀 잉태를 통해 오셨다. 불가능은 하나님 앞에 문제가 되지 않는다. 불가능을 가능하게 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신앙 부족이 문제이다. 주님은 재림하실 것이다. 하늘로서 임할 역사적 구원에 대해 예수께서는 노아와 롯의 때에 임했던 대홍수와 불심판으로 설명하셨다(마 24:37, 38; 눅 17:26-29). 두 이야기의 강조점은 사람들이 두 인물이 강조했던 사건들을 불가능한 것으로 여기고 일상적 삶 속에 빠져 있다가 갑자기 멸망을 당한 것이다. 대홍수가 전 세계적 사건이었던 것처럼 그리스도의 구속적 사건도 그러하다. 구원은 역사 속에서 성취가 될 것이다. 그러나 그 구원은 초자연적인 것이 될 것이다. (304.1)
 역사 속에서 계시적 사건을 성취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창세기 6:3의 백이십년 간의 유예기간은 증거 한다. 하나님은 때가 찾을 때 노아에게 칠일 후에 홍수를 내리겠다고 한 말씀 그대로 깊음의 샘들을 터뜨리시고 하늘의 창들을 여셔서 홍수로 세상을 덮으셨다(창 7:4, 10, 11). 대격변 속에서 하나님께서는 주님의 계시를 받아들이고 순종했던 노아를 구원하셨다. 계시는 단순한 정보가 아니다. 계시는 구원사 속에서 하나님의 활동과 관계가 있다. (305.1)
 5. 화해와 회복을 목적으로 함
 계시를 가진 백성은 역사적 성취에 민감해야 하지만, 더욱 민감하게 인식해야 할 것은 구원 의사를 가지신 하나님의 개인적 성품이다. 하나님은 타락한 인류를 멸망시키는 것이 본심이 아니기 때문에 아담을 찾아 와서 원복음을 주셨고,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죄악으로 치닫는 노아 시대 사람들에게 일백이십 년의 유예기간을 주셨고, 바벨 사건 후에 온 인류가 참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갖지 못한 채 온 땅으로 흩어졌을 때 모든 민족에게 축복이 되도록 아브라함을 부르셨다. (305.2)
 대홍수 기사에서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엄위한 하나님의 심판 못지않게 피조세계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겪으시는 고통이다(창 6:5-8, 한탄과 근심). 하나님은 대홍수 후에 구원을 경험한 노아가 새 땅에서 자발적으로 드린 번제를 기뻐하셨다(창 8:21).9 (305.3)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 속에서도 끊임없이 아브라함의 간청에 귀를 기울여 최대한이 아닌 최소한의 의인이라도 찾기를 갈망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한다(창 18:22-33). 하나님은 처벌을 기뻐하시는 분이 아니라 화해와 회복을 도모하신다. 인간의 구원을 갈망하는 인격적 존재이신 하나님을 계시를 통해서 깨달아야 한다. 계시를 통해서 구원의 손길을 펴시는 창조주 하나님의 사랑의 마음을 인식하지 못할 때 심판의 계시는 하나님께 신뢰심을 일으키기 보다도 절망과 불신, 혹은 기괴한 형태의 율법주의를 초래한다. (306.1)
 계시는 인류의 본성과 목적과 운명을 다루고 있으며 구원을 문제로 삼고 있기 때문에 계시는 그 누구도 무시할 수 없는 매우 중대한 의미를 갖고 있다. 계시는 한낱 정보로 취급당할 것이 아니다. 계시는 계시자의 인격과 유리될 수 없기 때문에 계시를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인격적 존재이신 것을 수용해야 한다. 또한 인간에게 지적 동의 이상의 것, 곧 행동을 요구한다는 것을 인식하고 개인적인 순종과 회개와 변화된 삶으로 화답해야 한다.10 (306.2)
 하나님께서는 대홍수전의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해 에녹에게 계시를 주셔서 경건하지 않은 세상을 경고하셨고(유 1:14, 15)11 선재하신 예수 그리스도는 노아 시대에 불신자들을 구원하기 위해 성령을 통해 복음을 선포하셨다(벧전 3:19-20). (30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