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경이 되어 홀로 남게 된 때, 영원한 나이를 가지신 하나님과 “더불어 늙어 갈 수 있는” 비결을 터득한 사람은 연륜(年輪)이 두터운 사람이지 한낱 늙은 사람이 아니다. (175.2)
오는 백발(白髮), 지는 주름
한 손에 가시 들고
또 한 손에 막대 들고
늙는 길 가시로 막고
오는 백발 막대로 치렸더니
백발이 제 먼저 알고
지름길로 오더라. (175.3)
고려 말의 시인 우탁이 늙음을 탄식하여 지은 탄로가(歎老歌)인데 백발가(白髮歌)라는 표제로 전해지고 있는 익숙한 시이다. 늙음을 두려워하고 백발을 서러워하는 마음은 동서고금(東西古今)에 다름이 없다. 사람은 예외없이 늙어 가고 모두는 백발과 함께 삶의 여로를 마치는 것이다. 그러므로 늙음의 문제는 요사이 말로 오는 백발을 염색으로 막고 지는 주름을 화장품으로 펴는 가에 있지 않고 어떻게 올바로 늙어 가느냐에 있는 것이다. 올바로 늙어 가는 것은 제대로 자라온 것보다 더 중요하다. 왜냐하면 늙음은 인생의 마무리이기 때문이다. 늙는 일에 실패하면 살아온 모든 것이 망쳐지기 때문이다. (176.1)
적나라한 인간 다윗도 예외 없이 늙음을 두려워하고 백발을 서러워한다. 늙음이 가져올 충격을 그는 이미 처절하도록 의식했으며 그것을 뼈 속까지 느끼고 있는 것이다. 늙음이 수반하는 심신의 무기력 그리고 뼈저린 고독(孤獨), 마침내는 존재의 가치마저 상실한 채 인간 세상의 무용지물(無用之物)이 되어 한낱 버려진 늙은 이로 전락할 것만 같은 두려움이 그를 엄습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표제에는 없지만 다윗의 시편으로 알려진 71편을 채우고 있는 초로(初老)의 탄원인 것이다. (176.2)
나무의 나이테는 나이를 먹어야 생기게 마련이다. 나이테는 나무의 자서전이다. 몇 년 전 캘리포니아 주에 있던 이름난 고목이 쓰러졌는데 식물학자들은 그 나무의 나이테를 근거로 고목이 살아온 과거를 더듬어 밝혔다.
(177.1)
더불어 늙게 해주오
노경(老境)을 앞둔 초로(初老)의 시인은 힘이 쇠약해 지는 늙은 때를 예감하며 자신의 일생을 위협해 온 평생의 대적들을 두려워 한다. 약육 강식(弱肉强食)의 살벌한 세상에서 심신의 힘이 쇠약해 진다는 것은 얼마나 불안한 일인가. 그는 지난날 자신의 생명이 위협을 당할 때마다 피하여 안전을 누렸던, “무시(無時)로 피하여 거할 바위”, “반석”이요 “산성”이셨던 젊은 날의 “나의 하나님”을 늙은 때의 “나의 하나님”으로 더욱더 의지해야 할 필요를 한층 절감하고 있는 것이다. 브라우닝(Robert Browning)은 그의 명시「랍비 벤 에스라」에서 그의 늙음을 이렇게 안위하고 있다. (177.2)
나와 더불어 늙게 해주시오!
인생의 처음에 뜻했던 삶의 마지막에
최상(最上)은 아직도 남아 있어요.
우리의 시간은 그의 손에 있으니
그는 이렇게 일러 준다오.
젊음은 내가 계획된 모든 것을
절반밖에 보여 주지 못하지만
하나님을 믿으면 모든 것이 보이고
아무것도 두려울 것이 없다네. (178.1)
이 시를 쓸 당시 브라우닝은 50을 넘은 나이에 아내를 사별한 우울한 초로(初老)를 맞고 있는 때였다. 그 때 그는 “인생의 마지막은 생의 최고(最高)라. 하나님을 믿고 두려워 말라”고 격려한 12세기의 랍비 에스라의 성서적 신앙을 목마르게 마셨다. 노경이 되어 홀로 남게 된 때 영원한 나이를 가지신 하나님과 “더불어 늙어 갈 수 있는” 비결을 터득한 사람은 연륜이 두터운 사람이지 한낱 늙은 사람이 아닌 것이다. (179.1)
나무의 나이테는 나이를 먹어야 생기게 마련이다. 나이테는 나무의 자서전이다. 몇 년 전 캘리포니아 주에 있던 이름난 고목이 쓰러졌는데 식물학자들은 그 나무의 나이테를 근거로 고목이 살아온 과거를 더듬어 밝혔다. 주전 271년 전에 어린 나무로 자라나 516년 후 산불로 극심한 손상을 입었지만 끈질기게 자라면서 회복을 계속하여 백년 뒤에는 원상이 복구되었다. 몇 년 후 또다시 산불의 피해를 입었지만 이번에도 천연의 놀라운 치유의 힘으로 상처가 아물어 수백년을 버티어 온 것이다. 나이테가 나무의 역정을 말해 주듯 완숙한 노년만이 값진 자서전을 내어 놓을 수 있다. (180.1)
다윗은 그의 두터워진 나이테를 헤아리며 하나님의 행적을 자신의 자서전 속에 기리고 있다. 모태에서 붙드셨고 어머니 배로부터 출산시키신 하나님은 어릴 때부터 의지(依支)가 되셨다. 힘센 적들과 살의에 넘치는 악한 사람들이 상한 갈대와 같은 자신의 생명을 위협할 때 틀림없는 피난처가 되어 주신 하나님이셨다. 그의 매듭이 굵고, 굴곡이 심한 거친 나이테는 그의 우여 곡절(辻餘曲折)이 심했던 과거를 말해 주고 있었으며, 아울러 하나님의 완벽하신 붙드시는 손길을 연륜으로 수놓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기력이 쇠하여 백발이 성성해 질 때 오히려 자신의 힘이 아닌 하나님의 능(能)과 힘을 자신의 나이테로 입증하고 싶었다. 붙드시고 고치시며 싸매시고 지키시는 하나님의 간단(間斷) 없는 손길이 아니셨다면 어떻게 그 끊어질 듯 가냘픈 한가닥 나이테가 연연세세(年年歲歲) 연륜을 두텁게 할 수 있었겠는가? 시인은 모두 알고 있었다. (180.2)
초로 현상이 나타나는 49세에서 56세까지는 실상 정신적으로는 가장 성숙해 지는 시기라고 한다. 그리고 56세부터 63세까지는 나머지 인생의 방향을 결정하는 갈림길 ∙∙∙
가장 좋은 것이 맨 나중에 나왔다는 말은 가나의 혼인 잔치집에서 예수님이 만드신 포도즙을 시음(試飮)한 하객들의 고백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오래 묵을수록 값이 나가는 포도즙처럼 하나님과 함께 늙어 간 사람들의 진귀한 마지막인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만이 행하실 수 있는 “대사(大事)”요. “우리를 다시 살리시며”“땅 깊은 곳에서 다시 이끌어 올리시”는 하나님의 손길이며, 연륜과 함께 “나를 더욱 창대(昌大)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헤아릴 수 없는 의중(意中)인 것이다. 그러한 하나님을 시인은 비파로 찬양하고 입술로 기뻐 외치며 영혼으로 즐거워 할 수 있는 것이다. (18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