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 중심의 성소론 제 4 부 예수님과 함께 지성소에서 (죄의 존재로부터의 자유) 20. 쉐키나 (나의 모든 영광은 그리스도의 것임)
 웃시아 왕이 죽은 후에 젊은 선지자 이사야가 위로를 받고, 생명의 시여자께 경배하려고 성전에 왔다. 그는 거기서 “만군의 여호와, 만세의 왕의 쉐키나의 영광”을 보았다(사 6:5; Targum of Jonathan). 현인은 “쉐키나가 임재한 곳에서, 의인을 감히 어디다가 비교하겠는가? 훨훨 타오르는 횃불이 있는 곳에 가물가물하게 비취는 등잔일 뿐이다”(Pesahim, 8a). 쉐키나의 거룩성은 자주 강조되었다. “그들은 쉐키나 장막에 들어가는 모든 사람들에게 적용되는 규칙, 즉 들어가는 사람이 자신의 집에서 6일간 떨어져 있어야 한다는 규칙을 정하였다”(Yoma, 3b). (250.3)
 쉐키나가 상징한 예수
 “이사야에게 주어진 이상(사 6:1~7)은 마지막 때의 하나님의 백성의 상태를 나타낸다. 그들은 하늘 성소에서 진행되고 있는 일을 믿음으로 볼 특권을 받았다(계 11:19). 그들이 믿음으로 지성소를 들여다보고, 그리스도께서 하늘 성소에서 하시는 사업을 보면서, 그들은 자신들이 부정한 입술을 가진 백성임을 깨닫는다”(RH, 1896. 12. 22.). (250.4)
 이 상태가 계속되지 않을 것이 이사야에게 보여졌다. “그 때 스랍들 가운데서 하나가, 제단에서 부집게로 집은, 타고 있는 숯을, 손에 들고 내개 날아와서 내 입에 대면서 ‘보라 이것이 네 입술에 닿았으니, 너의 악은 사라지고, 너의 죄는 사해졌다’고 말하였다. 이 일이 바로 우리 각 개인이 우리 자신들을 위하여 행하였어야 하는 일이다”(RH, 18 89. 6. 4.). (250.5)
 쉐키나는 정결케 한다. 영원하신 성령이시여, 당신의 불을 우리의 입술에 대소서. (251.1)
 “예수 그 자신이 성전의 주님이셨다. 예수께서 성전을 떠나야만 할 때는 그 영광 — 지성소 내의 속죄소 위에서 한 때 볼 수 있었던 그 영광도 떠났다. ∙∙∙ 이 것이 쉐키나, 여호와의 가시적인 천막이었다. 이사야에게 드러내어진 것은 이 영광이었다”(4BC, 1139). (251.2)
 영광과 동의어인 쉐키나
 쉐키나란 용어는 하나님의 영광을 표현하는데 자주 사용되었다(히브리어로는 무거움을 뜻하는 카봇<kabod>; 희랍어로는 독사<doxa>인데 이 단어에서 송영<頌詠>을 뜻하는 doxology란 단어가 파생되었다). (251.3)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이사야는 이상 중에 하늘 성소 내의 성소와, 지성소를 들여다 보도록 허용되었다. 그룹들 [앞의 인용문에서는 스랍들이라고 불리워진 점에 주목하라]은 대왕을 둘러싼 호위병과 같이 속죄소의 한쪽편에 위치하여, 그들을 하나님의 임재로 부터 가리워 줄 영광으로 빛나고 있었다. 이 거룩한 존재들은 노래하였다. ∙∙∙ 선지자가 창조자에게 드리는 데 익숙하여진 이 연약한 찬양과 스랍들의 열렬한 찬양간의 현저한 차이는 선지자로 놀라게 하였고 굴욕감을 느끼게 하였다. ∙∙∙ ‘전 지상은 그분의 영광,’ 여호와의 영광, 무한하신 능력, 능가할 수 없는 위엄으로 가득 찼다”(RH, 1888. 10. 16., [ ] 안은 필자의 글임). (251.4)
 하나님의 품성이나 영광을 드러내야 할 이스라엘
 “그는 이스라엘의 백성을, 당신이 택하신 기업, 즉 주의 포도원으로 세우셨다. 이 백성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위탁되었다. 진리와 공의와 순결의 영원한 원칙, 곧 당신의 율법으로 저들을 둘렀다. 이 원칙을 순종하는 것이 저희 자신을 보호함이 되었으니 이는 저희가 죄악적 행위를 행함으로 자멸하는 일을 면하게 하는 까닭이다. 그리고 포도원의 망대처럼 하나님께서는 그 땅 가운데 당신의 성전을 두셨다. 그리스도는 저희의 교사이셨다. 그가 광야에서 저희 들과 함께 하신 것처럼 그는 계속하여 저들의 교사와 지도자가 되실 것이었다. 성막과 성전 안에서는 그의 영광은 속죄소 위에 나타난 후광(後光)가운데 거하셨다. 주께서 저들을 위하여 끊임없이 당신의 사랑과 인내의 풍성함을 나타내셨다”(실물교훈, 288). (251.5)
 쉐키나의 특별 거주 장소는 성소 안의 지성소 내에 위치한 그룹들 사이였다(출 25:22; 비교 레 16:2). 이미 앞에서 그룹들은 종극적으로 구속받은 자들을 상징한다는 것을 말하였다. “하나님의 거하시는 장소의 지상적인 상징인 성소와 성전에서 한 칸이 그분의 임재로 인하여 신성하였다. 입구에 있는 그룹들을 수놓은 휘장은 한 사람을 제외하고는 어떤 사람도 올리워서는 안 되었다. 그 휘장을 올리고 지시받지 않고 지성소의 신성한 신비 안에 침입하는 것은 사망이었다. 왜냐하면 속죄소와 머리 숙이고 경배하는 천사들 위에 가장 거룩하신 분(the Holiest)의 영광, 어떤 사람도 보고 살 수 없는 영광이 거하고 있었다.” (251.6)
 “전율하는 대제사장이 지성소의 봉사를 위하여 지정된 일년의 단 하루만 향운(香雲)이 그 영광을 가리워 볼 수 없는 가운데에 하나님의 임재에 들어갈 수 있었다. 성전의 뜰 전체가 조용하여졌다. 어떤 제사장도 제단에서 봉사하고 있지 않았다. 말없이 경외하는 마음으로 머리숙인 경배자들 무리는 하나님의 자비를 구하는 자신들의 탄원을 올려 보냈다. ‘저희에게 당한 이런 일이 거울이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의 경계로 기록하였느나라’(고전 10:11)”(8T, 294~295). (252.1)
 자아희생적 사랑에 드러난 쉐키나—영광
 “이 작은 세계는 우주의 교과서이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시는 기이한 목적 즉 구속하시는 사랑의 신비는 ‘천사들도 또한 살피기를 원하는’ 문제로서 이는 무궁한 시대를 통하여 저들의 연구 제목이 될 것이다. 구속받은 자들이나 타락하지 아니한 자들이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저희의 과학과 저희의 노래를 찾게 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서 비치는 영광은 자아희생적 사랑의 영광인 것이 드러날 것이다. 갈바리에서 비치는 빛으로 자아희생적인 사랑의 법칙이 이 세상과 하늘의 생명의 법칙이 됨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는 사랑은 하나님의 마음에 그 근원이 있으며 아무라도 가까이 가지 못할 빛에 거하시는 하나님의 품성은 온유하고 겸손하신 그리스도 안에서 나타난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시대의 소망, 19~20). (252.2)
 하나님의 영광은 하나님께서 행하신 완벽한 작업에도 원래 드러났었다(4T, 581). 죄는 아담과 하와가 입었던 빛의 옷을 없애 버렸고, 하나님의 창조의 흔적인 고색 창연함이 이 세상을 떠났다. 바울은, 이런 점에도 불구하고 통상적인 인간의 눈에 보이지 않았던 하나님의 능력과 영광의 모습들이 하나님께서 “만드신” 것들을 성령의 도움을 받아 연구할 때 분별되어질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롬 1:19, 20). (252.3)
 하나님의 빛과 영광은 그분의 영감받은 말씀에도 드러나고, 그분의 성육하신 말씀이신 예수의 인격을 비춘다(치료봉사, 464~465). 그것들은 성령의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통하여(벧후 1:4) 빛나며, 무한한 사랑의 팔로 회개하는 죄인들을 에워싼다(선지자와 왕, 668). (252.4)
 인간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하여 창조되었으나(8T, 264) 천부의 특권을 곧 상실하였다. 그리스도께서 자기 제자들에게 대하여 갖고 계신 목적은 제자들이 그리스도 자신의 빛을 죄에 쌓여 있는 이 세상의 암혹을 뚫고 퍼뜨리는 집행자가 되게 하기 위함이었다. 그리스도의 승천 후 10일간의 기도와 연구를 통하여 120명의 신실한 자들은 그분께서 약속하신 선물을 받고자 다락방에 은둔하여 준비하였다. “그 때에 나타난 그리스도의 영광은, 사람이 전에 전혀 본 일이 없는 기이한 것이었다. 전에 그리스도의 이름을 비난하고 그분의 능력을 업신여기던 많은 사람들이, 이제는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의 제자임을 고백하였다. 그리스도께서 택하신 빈한한 사람들의 수고가 성령의 협력으로 세상을 뒤흔들었다. 한 세기 동안에 복음이 천하 각국에 전파되었다”(교육, 95~96). 영원하신 성령님이시여, 우리 마음에 들어오시옵소서. (252.5)
 성소에서 하나님의 영광은 향운(香雲)으로 감추어 있었다(8T, 285). (252.6)
 그것은 지성소에서 어떤 사람도 접근할 수 없는 빛으로 보였다. 쉐키나는 속죄소 위의 그룹들을 부드럽게 빛나는 그 광채로 휘감으면서 언젠가 하나님과 함께 하나님의 보좌에 함께 앉을 구속받은 자를 휘감고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상징한다. 예수께서는 자신을 따르는 자들에게 이 영광을 미리 맛보이시게 하기 위하여 변화산 사건에서 자신의 쉐키나를 드러 내셨고, 미래의 어느 날 부활할 사람이나 변화될 자들의 예표인 모세와 엘리야를 비추고 있는 이 찬란한 빛을 보여 주셨다(시대의 소망, 425). (25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