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이 여자에게 분노하여 돌아가서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과 더불어 싸우려고 바다 모래 위에 서 있더라,’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그들은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에 대한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계 12:17; 14:12) (295.4)
 성경에 등장하는 세 그룹의 남은 자 중에 많은 기독교인이 종말론적 남은 자에 많은 관심을 갖는다. ‘종말론적 남은 자’ 사상의 대표적인 성경적 근거는 요한계시록 12:17이다. 요한계시록 12장은 하늘에서 시작된 사탄과 그리스도 사이의 대쟁투가 이 땅으로 옮겨져 어떻게 진행되는지를 보여준다. 요한계시록 12장은 남은 자손이 출현할 역사적 시기와 그를 식별할 수 있는 특징에 대해서 말한다. 남은 자손은 다니엘서의 이천삼백 주야 예언의 일부를 이루는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의 중세 암흑시대가 끝난 후에 등장하며(계 12:6, 14. 비교, 단 7:25)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의 증거를 갖는다(계 12:17. 비교, 계 14:12; 19:10). (295.5)
 창세기는 남은 자손에 대해 원천적인 교훈을 제공한다. 요한계시록 12장에서 대쟁투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원복음에 약속된 여자의 후손에 도달하게 된다. 대홍수 기사(창 6-9)는 성경 최초로 종말론적 남은 자에 대해 기록하고 있다(참조, 291-294쪽). (296.1)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창 3:15) . 요한계시록 12장창세기 3장의 언어와 주제를 사용하여 원복음의 성취과정의 전모를 대략적으로 보여준다. (296.2)
 ① (남은 자손은 창세로부터 예비된 백성이다.) 언어적인 측면에서 볼 때 창세기 3장에 등장한 두 적대적인 세력은 요한계시록 12장에서 동일한 성격을 갖고 동일한 이름으로 등장한다. 이것은 원어성경을 비교할 때 매우 확실하다. 인류를 미혹한 옛 ‘뱀’(הַנָּחָשׁ, hannäHäš, ὁ ὄφις, ho oPhis)은 흉악한 붉은 용으로 등장하여 ‘여자’(הָאִשָׁה, hä´iššâ, ἡ γυνή, he Gunë) ‘여자의 씨’(גַרְעָהּ, zar`äh, τοῦ σπέρματος αὐτῆς, Tou sPermaTos auTës) 중의 남은 자들을 위협한다(계 12:9, 13, 17, 흠정역). 창세기 3장요한계시록 12장의 등장 인물은 그 명칭이 동일하다. (296.3)
 요한계시록 12장에서 남은 자손의 기원을 찾아 대쟁투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1260년간의 핍박시대가 있고(계 12:6, 14) 용이 해산하려는 여자 앞에서 태어날 아이를 삼키려고 했던 주님의 초림시대에 도달하게 된다. 여자가 낳은 아들은 ‘장차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남자’이다(계 12:5. 참조. 시 2:9). 이 구절의 근원은 에덴에서 인류에게 주신 원복음이다. ‘여자의 씨는 네(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창 3:15, 흠정역). 사탄이 인류를 타락시킨 에덴동산은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사탄에게 승전장이 아니라 패전장이 되었다. 사탄은 이미 하늘에서 ‘미가엘’10에게 진 패장(敗將)이다(계 12:7-9). (296.4)
 원복음에 이 땅에서 사탄의 권세를 끝장 낼 존재가 나타나 있다. 여자의 씨이다!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갈 4:4). 이천년 전에 주님은 십자가에서 ‘사망으로 말미암아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없이 하’셨다(히 2:9, 14). (297.1)
 흠정역은 요한계시록 12:17의 여자의 남은 자손을 ‘여자의 씨 중에 남은 자들’이라고 번역하여 ‘여자의 씨’(her seed)를 살렸다. ‘여자의 씨’라는 표현은 이곳 외에 창세기 3:15에 나온다. 구약 히브리어성경과 신약 헬라어 성경은 똑같이 ‘그녀의 씨’(גַרְעָהּ, zar`äh, τοῦ σπέρματος αὐτῆς, Tou sPermaTos auTës, ‘her seed’)라고 했다. 창세기와 요한계시록은 대쟁투라는 동일한 신학적 관점과 ‘여자의 씨’라는 동일한 용어를 사용하여 두 곳의 실체가 동일 인물인 것을 가르쳐 준다. (297.2)
 요한계시록 12장의 남은 자손은 과거 역사와는 전혀 관계없이 마지막 시대에 불쑥 존재하게 된 것이 아니다. 남은 자손은 인류가 범죄 했던 창세 때에 원복음의 약속 안에서 ‘여자의 씨’와 함께 존재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창세전부터 미리 알리신바 되었지만 이 말세에 인류를 위해 나타나신 것처럼 남은 자손도 창세전에 선택되었다가 마지막 시대에 세상에 출현하였다(벧전 1:20; 엡 1:4). (297.3)
 ② 남은 자손은 하나님께서 예정하신 때에 모습을 드러냈다. 창세기 3:15의 여자의 씨는 요한계시록 12장에 두 인물로 나타난다. 여자가 낳은 아들과 여자의 씨 중에 남은 자들이다. 이들은 구속사 속에서 사탄을 무찌르고 인류를 구원하는 특별한 사명을 가졌기 때문에 요한계시록 12장은 이들이 누구인지 식별해 낼 수 있는 ‘예언적 코드’를 담고 있다. 종말론적 남은 자는 1260일, 혹은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의 핍박시기 후에 나타난다(계 12:6, 14). 이 예언적 기간은 다니엘서로 우리의 시선을 인도한다. (298.1)
 다니엘서에서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에 관한 예언(단 7:25)은 또 다른 예언인 칠십이레 예언(단 9:24-27)과 함께 성경에서 가장 긴 기간을 다루고 있는 이천삼백주야 예언(단 8:14)의 구성 요소이다. 이천삼백주야 예언은 영광의 왕국을 성도들에게 선사하게 될 재림전 심판의 시작을 알리는 것으로 이 예언의 성취되었을 때 남은 자손이 등장하였다. 이천삼백주야 예언의 기산점(주전 457년)을 가르쳐 주는 역할을 하는 칠십이레 예언은 ‘여자의 씨’이신 메시아의 구속 사역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메시아는 마지막 이레의 절반에 해당하는 주전 31년 봄에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고 한 원복음의 예언을 성취했다. 1844년에 이천삼백주야예언의 종결과 함께 안식일을 회복하고 ‘예언의 영’(the spirit of prophecy, 계 19:10)의 은사를 가진 하나님의 백성이 출현했다. 이들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고 예수의 증거를 갖고 있으며 이 두 가지 특징은 남은 자손을 식별하는 ‘신학적 코드’이다. 여자의 씨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때가 차매 여자에게서 태어나사 십자가 죽음을 통해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없이 하셨던 것처럼(초림. 갈 4:4; 히 2:14) 여자의 씨 중에 남은 자가 때가 차매 마지막 시대에 등장하여 영원한 복음으로 재림을 위해 온 인류를 준비시키고 있다(계 14:6). (298.2)
 ③남은 자손은 승리의 백성이다. 계시록은 여자와 여자의 씨의 승리를 노래한다. 요한계시록 12장의 여자는 흑암의 권세를 물리치는 해를 옷 입었으며 ‘승리의 면류관’(στέφανος, stephanos)을 쓰고 있다(1절). 용이 삼키려 한 남자 아이는 승천하여 하나님 앞과 그 보좌 앞으로 갔으며 장차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것이다(5절). 여자는 독수리 날개를 받아 뱀의 낯을 피해 광야 안전한 곳으로 날아갔다(14절). 용은 남은 자손에게 분노하여 전쟁을 일으키고 죽음으로 위협하지만 그들은 인내로 ‘하나님의 계명’‘예수 믿음’을 지킨다(계 12:17; 13:15; 14:12). 드디어 ‘인자와 같은 이’(여자의 씨)가 ‘승리의 금면류관’(στέφανος, stephanos)을 쓰고 재림하여 잘 익은 곡식과 같은 남은 자손을 하늘로 추수해 들이신다(계 14:14-16).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 받으라.’(마 25:34) (299.1)
 참고 문헌
 1. Gerhard F. Hasel, ‘Remnant’, ISBE 4:130.

 2. 남은 자를 가리키는 히브리어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샤아르’(שׁאר, š´r, ‘남다’), 226회, 아람어 10회. 창 7:23; 14:10; 42:38; 신 3:11; 수 13:12.

   (2) ‘팔라트’(פלט, plt, ‘탈출하다, 빠져나가다’), 80회. 명사형 ‘팔리트’(פָּלִט, Pälî†), ‘팔레트’(פָּלֵּט, Pälë†, 전쟁 피난자), 창 14:13; 사 45:20.

   (3) ‘말라트’(מלט, mlṭ, ‘도망하다, 구원하다’), 89회. ‘팔라트’(פלט, plt)에서 발전함. 사 20:6; 삿 3:29; 왕상 1:12; 종말론적 약속을 받음, 사 49:14-20; 욜 2:32[MT 3:5]; 단 12:1.

   (4) ‘야타르’(יתר, ytr, ‘남다’), 248회. 명사형 ‘예테르’(יֶתֶר, ‘남긴 것’), 욜 1:4; 수 12:4; 23:12.

   (5) 명사 ‘사리드’(שָׁרִיד, Särîd, ‘생존자’), 28회. 수 10:20; 삿 5:13.

   (6) 명사 ‘아하리트’(אַחֲרִית, ´äHarît). 어근 ‘아하르’(אחר, ´Hr)의 파생어, ‘남은 자’, 암 4:2; 9:1; 겔 23:25—이곳의 남은 자는 미래의 소망 없이 전적인 멸망을 경험한다. Ibid., 131.

 3. Sang Hoon Park, ‘שׁאר’, NIDOTTE 4:11.

 4. Hasel, ‘Remnant’, 132.

 5. 공동체가 겪은 어마어마한 대격변 속에서 다음의 경우처럼 살아남는 경우는 전혀 혹은 거의 없기도 하다. 왕하 21:13-15; 사 17:4-6; 렘 8:3; 겔 15:1-8; 암 3:12; 5:3; 9:1-4. 참조, Lester V. Meyer, ‘Remnant’, ABD 5:670.

 6. Ibid.

 7. Gerhard F. Hasel, The Remnant: The History and Theology of the Remnant Idea from Genesis to Isaiah (Berrien Springs, MI: Andrews Univ Pr, 1972., 1972), 140-141.

 8. Park, 13.

 9. Kenneth D. Mulzac, ‘The Remnant Motif in the Context of Judgment and Salvation in the Book of Jeremiah’(Ph.D. diss, Andrews University, Seventh-day Adventist Theological Seminary, 1995), 375-376.

 10. ‘미가엘’(מִיכָאֵל, mîkä´ël; Μιχαήλ, michaël)은 ‘누가 하나님과 같으냐?’는 뜻이며 선악의 싸움에서 천사장이시며 하나님 군대의 최고 지휘관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참조, 단 10:13, 21; 12:1; 유 1:9; 계 12:7. (29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