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편 55편(163.1)
 이 몸이 새라면
 이 몸이 새라면, 이 몸이 새라면 날아가리

 저 건너 보이는, 저 건너 보이는 작은 섬까지.

 (163.2)
 새처럼 훨훨 날아보고 싶은 막연한 동경을 가졌던 동심의 한때에 부르던 옛 노래가 생각난다. 그러나 부질없는 동심만 새처럼 날아보고 싶은 것은 아니다. 인생에 철이 들고 세상살이에 익숙해진 때, 오히려 이번에는 “날아보고” 싶은 것이 아니라 “날아가 버리고” 싶은 때가 있는 것이다. 생활이 헤어 나올 수 없는 곤경(困境)에 빠지고, 벗어날 수 없는 짓눌린 날들이 계속될 때 이런 저런 일로 현실이 역겨워져, 사는 나날이 무료(無聊)해지고 산다는 자체가 지리멸렬(支離滅製)해진 때 모든 것을 훌훌 털어버리고 어디엔가로 훨훨 날아가 버리고 싶은 도피성 비상 심리(飛切心理)는 모두에게 낯선 감정이 아니다. 고난의 사람, 인생 만물상(萬物相)을 살아간 다윗에게 어찌 그런 경험이 없었겠는가? (163.3)
 “하나님이여 내 기도에 귀를 기울이시고

   내가 간구할 때에 숨지 마소서

   내게 굽히사 응답하소서

   근심으로 편치 못하여 탄식하오니

   이는 원수의 소리와 악인의 압제의 연고라

   저희가 죄악으로 내게 더하며

   노하여 나를 핍박하나이다

   내 마음이 내 속에서 심히 아파하며

   사망의 위험이 내게 미쳤도다

   두려움과 떨림이 내게 이르고

   황공함이 나를 덮었도다

   나의 말이 내가 비둘기같이

   날개가 있으면 날아가서

   편히 쉬리로다

   내가 멀리 날아가서 광야에 거하리로다

   내가 피난처에 속히 가서

   폭풍과 광풍을 피하리라 하였도다”

   (시편 55편 1~8절). (164.1)
 멀리 멀리 날아가서
 요사이 누구에게나 익숙한 용어가 “스트레스”(stress)라는 것이다. 그리고 모두에게 대단한 관심사가 되다시피한 것이 “스트레스 해소(解消)”이다. 보통 “긴장” 혹은 “압박”으로 이해되는 이 스트레스는 “몸에 부담을 주는 정신적 육체적 자극이 가해졌을 때 그 생체가 나타내는 반응”을 뜻한다. 스트레스를 일으키는 요인을 “스트레서”(stressor)라고 하는데 반응하는 습관과 방법에 따라 같은 “스트레서”라 할지라도 어떤 사람에게는 심한 스트레스가 될 수 있는 것이 다른 사람에게는 아무렇지 않을 수도 있다. (165.1)
산다는 자체가 지리 멸렬해진 때 모든 것을 훌훌 털어 버리고 어디엔가로 훨훨 날아가 버리고 싶은 도피성 비상 심리는 모두에게 낯선 감정이 아니다.
(165.2)
 왈터 캐넌(Water Cannon) 박사는 개와 마주치게 한 고양이를 대상으로 스트레스 현상을 실험했는데 사람과 흡사하게 반응했다. 이러한 위기 상황에 처하면 즉시 자동으로 컴퓨터화된 뇌의 프로그램에 따라 골밑샘(뇌하수체)에서는 콩팥 위에 붙어 있는 부신피질(副腎皮質)로 하여금 아드레날린(Adrenahn)과 노르아드레날린(Noradrenalin)등의 호르몬을 분비하게 하여 온 몸을 비상사태에 돌입시킨다. 결과로 혈당과 세포벽 상이의 콜레스테롤이 증가되고 혈압이 오르고 맥박이 빨라지며 간장에서는 비축된 영양을 긴급 방출한다. 호흡이 가빠지고 뱃살이 꼿꼿해지며, 위장의 활동은 거의 마비된다. 침이 마르고 이마와 손바닥에는 그야말로 진땀이 난다. 위기 극복을 위해 모든 자원과 노력이 총동원되는 것이다. 긴급한 상황 판단을 거쳐 싸울 것(fight)인지 도망칠 것(flight)인지 결정을 내려야 한다. (165.3)
 이상과 같은 경계 반응이 일어난 다음에는 내려진 결정에 따라 가진 자원을 조정해 가면 스트레스의 원인에 저항하거나 이를 수용하려든다. 이러한 비정상적인 위기에 대처할 준비가 되어 있지 못한 취약한 기관들에는 이상이 생기고 병적인 증상이 나타난다. 고양이를 졸지에 만난 쥐는 근육이 경직되어 옴싹도 못하고 혼비백산 한 채 운명을 기다린다. 그야말로 쥐에게 쥐가 난 것이다. 이러한 스트레스를 유발시킨 원인이나 대상에 맞서 도전하든지 아니면 도망하든지 제때에 바르게 결정을 내리지 못하거나, 비현실적인 결정을 내려놓고 이를 힘에 겹게 밀고 나가는 동안 긴장은 계속 쌓이고 좌절은 더욱 깊어지는 것이다. (166.1)
 더 많은 정력(精方)과 체력을 필요로 하는 이러한 긴장 상태가 뚜렷한 해결의 방안도 없이, 이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자원의 계속적인 공급도 받지 못한 채 계속되다 보면 필경 힘과 자원의 고갈을 면치 못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요사이 표현으로 “번 아웃”(burn out)되어 기진맥진해진 채 에너지가 모두 타버린 상태인 소진(消盡) 혹은 탈진(脫盡) 상태에 이르는 것이다. 의기소침에 의한 의욕 상실, 극도의 피로, 신경과민에 의한 피해망상에 빠지게도 된다. 이런 상태를 속히 벗어나지 못하면 가볍게는 계속되는 감기나 목이 뻣뻣해지는 등 각종 근육통과 두통으로부터 관상 동맥 질환, 고혈압, 뇌졸중, 류마티스성 관절염 등에도 이르게 되고 암에도 취약을 드러내고 극도의 의기소침은 자살에 이르게도 한다. (166.2)
 온갖 시련과 숨 가쁜 위기를 끊임없이 겪으며 살아간 다윗의 생애는 참으로 스트레스로 가득 찬 “스트레스풀”(stressful)의 일생이었다. 그는 이토록 스트레스가 넘치는 현실에 맞서 도전할 것인지 아니면 피하여 도망할 것인지 결정해야 했다. 비둘기 날개라도 달고 힘겹고 불안한 현실을 벗어나 멀리 “멀리 날아가서” 인간이 인간에 대하여 만드는 “폭풍과 광풍”을 피하여 아무도 없는 “광야에 거하”고 싶어 한 다윗의 심정은 인간이 만든 긴장에 에워싸인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쉽사리 공명을 일으키는 것이다. “근심”, “탄식”, “압제”, “핍박”, “아픈 가슴”, “두려움”, “떨림”, “황공함”—다윗이 호소하고 있는 이 모든 증상이 스트레스 현상임을 아는 일도 그렇게 어렵지 않다. (166.3)
 날수 없는 날개
 “나를 책망한 자가 원수가 아니라

 원수일진대 내가 참았으리라

 나를 대하여 자기를 높이는 자가

 나를 미워하는 자가 아니라

 미워하는 자일지대 내가 그를 피하여 숨었으리라

 그가 곧 너로다

 나의 동류, 나의 동무요 나의 가까운 친우로다

 우리가 같이 재미있게 의논하며

 무리와 함께 하여 하나님의 집안에서 다녔도다”

 (시편 55편 12~14절). (167.1)
 워싱턴 주립 대학교 메디칼 센터의 홈즈(Thomas Holmes) 박사가 실험을 통하여 작성한 스트레스 배점(配點) 목록을 보게 되면, 스트레스 요인이 자신을 둘러싼 가장 가까운 생활 반경 안에 있음에 대해 놀라게 된다. “이상한 일이지요. 밖에 나가서는 남들과 목청을 높이고서도 혈압이 별로 오르지 않는데 집에서는 안 사람과 사소한 일로 몇 마디 말다툼만 해도 목뒤가 뻣뻣해지고 혈압이 덜컥 오르니 말입니다.” 후하고 너그럽게 보이던 교회 어른 한 분이 스스럼없이 하시던 말씀이 생각난다. 이 목록에는 배우자의 죽음을 비롯하여 이혼, 별거 등 결혼 생활과 가정 문제가 높은 배점을 차지하고 있는 반면 경제적인 문제들은 오히려 기대 이하로 낮게 배점되어 있다. “마른 떡 한 조각만 있고도 화목하는 것이 육선(肉膳)이 집에 가득하고 다투는 것보다 나으니라”(잠언 17장 1절)는 말씀의 뜻이 새로워진다. (167.2)
이리떼처럼 싸우면서도 함께 살아야 하는 사회적 존재임을 어찌하랴. “멀리 날아가서” 홀로 거할 그러한 인생 광야가 땅 위에는 없는 것이다.
(168.1)
 첫 아내를 남에게 빼앗겨도 보고(사무엘상 25장 44절 참조), 배반한 자식에게 쫓겨 필사의 도망길에 오르기도 했으며, 철석같이 믿어 온 심복과 동료 친구들에게 배신을 당하고, 사랑했던 백성에게 등돌림을 당하는 등 다윗의 일생은 참으로 배점이 높은 스트레스로 넘치는 날들이었다. 자신을 대적하여 스트레스를 높여 놓은 사람들이 차라리 “미워하는 자일진대 피하여 숨었”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내가 여호와께 피하였거늘 너희가 내 영혼더러 새같이 산으로 도망하라 함은 어찜인고”(시편 11편 1절). 훨훨 날 수 있는 날개를 가진 비둘기를 부러워하면서도 비둘기처럼 훌훌 날아가 버릴 수 없는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해 쓰여진 것이 시편 55편이다. 한때 사울왕을 피하며 블레셋 가드 왕 아기스에게로 가서, 게걸스럽게 “미친 체”하고서라도 살아보려고 “대문짝에 그적거리며 침을 수염에 흘”려도 보았지만(사무엘상 21장 10~15절), 모두 잘한 일이 아니었다. “인간은 인간에 대하여 이리”라고 하지만 이리떼처럼 싸우면서도 함께 살아야 하는 사회적 존재임을 어찌하랴. “멀리 날아가서” 홀로 거할 그러한 인생 광야가 땅 위에는 없는 것이다. (168.2)
 가슴이 아파올 때
 다윗은 스트레스로 가득 찬 현실을 피하여 비둘기 날개를 달고 광야로 도망하는 대신 그것에 도전하기로 선택했다. 스트레스를 몰고 오는 그 짙은 불안과 근심, 분노와 격정 등 부정적인 감정을 그는 어떻게 처리했는가? (169.1)
 “나는 하나님께 부르짖으리니

   여호와께서 나를 구원하시리로다

   저녁과 아침과 정오에

   내가 근심하여 탄식하리니

   여호와께서 내 소리를 들으시리로다

   네 짐을 여호와께 맡겨 버리라

   너를 붙드시고 의인의 요동함을

   영영히 허락지 아니하시리로다

   하나님이여 주께서 저희로

   파멸의 웅덩이에 빠지게 하시리이다

   피를 흘리게 하며 속이는 자들은

   저희 날의 반도 살지 못할 것이나

   나는 주를 의지하리이다”

   (55편 16~17, 22~23).

 (17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