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 중심의 성소론 제 4 부 예수님과 함께 지성소에서 (죄의 존재로부터의 자유) 19. 감추어진 만나 (나의 모든 양식은 그리스도의 것임)
 이스라엘 백성들은 결국 해방되어, 약속된 땅으로 나아갔다. 애굽에 대한 기억은 희미하여져 갔고, 가나안은 희망찬 앞날의 이상이었다. 하지만 수많은 군중은 허기지고 낙담한채 “황무지와, 짐승의 부르짖는 광야”를 피곤하게 터벅터벅 걸어가고 있었다. 여호와께서 인도하신다는 수많은 증거가 주어졌지만, 많은 이들이 여호와와 그분의 큰 목적에 전심하지 않거나, 혹은 그분의 계획을 신뢰하는 것을 배우지 못하였다. 이제 그들은 불신 가운데서 조소하며 “하나님이 광야에서 능히 식탁을 준비하시랴”고 묻는다(시 78:19). (238.1)
 하지만 이 백성들의 하늘 아버지께서는 그들을 나무라지 않으시고 대신 “광야에서 생활을 유지할 방도가 전혀 없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에게 하늘로서 만나를 내려 주시며 충분히 끊임없이 공급하여 주셨다. 이를 공급하신 것은 저희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의 법도대로 사는 동안은 하나님께서 저희를 버리지 않으신다는 것을 저희에게 가르치시기 위함이었다”(시대의 소망, 121). 하나님의 풍부하신 은혜는 백성들이 당면한 필요를 채워 주었고, 또 그들의 충성심을 단련시키었다. 왜냐하면 여호와께서는 백성들의 소망이 ‘인간의 필요는 하나님의 기회이다’라는 대전제에 항상 의거하도록 계획하셨기 때문이다. (238.2)
 하늘에서 내려온 만나
 하나님께서 굶주려 죽어가는 백성들에게 주신 선물은 만나이었다. 그들은 이 양식을 위하여 밭을 갈거나 씨를 뿌리지 않았다. 단지 감사하게 받기만 하면 되었다. 만나가 부르는 노래는 그리스도이라는 점에 주목하시오! 그리스도께서는 “내 아버지가 하늘에서 내린 참 떡을 너희에게 주시나니 하나님의 떡은 하늘에서 내려 세상에게 생명을 주는 것이니라”(요 6:32, 33)고 선언하셨다. 이 하늘 양식을 보거나 맛본 사람은 전무하였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였기에, 자신들의 무지를 나타내고자 히브리어로 “만나—이것이 무엇이냐”로 칭하였다(출 16:15). (238.3)
 하늘이 준 가장 고귀한 이 선물은 아직도 인간에게는 가장 심오한 신비이다. 영원의 안개 속으로부터 참된 만나가 베들레헴의 아이로서 이 세상에 오셨다. 무한한 공간을 채우셨던 이가 여인의 가슴 밑에 9개월간 보내시기 위하여 자신의 아버지의 품을 떠나셨다. (238.4)
 하늘의 왕으로서 즉위하신 오늘날 조차도 그분은 인간의 몸 안에 영원히 갇혀 계신다. 어리둥절하여 있는 인간들은 “크도다. 경건의 비밀이여”(딤전 3:16)이라고 외치면서 “만나—이것이 무엇이냐?”고 계속하여 질문하고 있다. (239.1)
 만나에는 여러가지 의미가 내포되어 있고, 그 의미에는 풍부하게 하여 주는 은총이 깃들이어 있다. ‘하늘 양식’(시 78:24)의 공급을 받아 저들은 하나님의 약속을 가졌기 때문에 마치 저희가 비옥한 가나안 평야의 물결치는 곡식밭에 둘러싸인 것처럼 궁핍에서 안전하였다는 것을 배웠다”(부조와 선지자, 297). 그리고 40년 동안 “사람은 천사들(우리 말 성경에는 ‘권세있는 자’로 번역되있음)의 떡을 먹었다(시 78:25)—그것은 저들을 위하여 천사들이 준비한 떡이었다”(부조와 선지자, 297). (239.2)
 은혜의 소나기가 한밤중에 이 땅에 폭포수처럼 떨어졌다. 이것이 떨어진지를 모르고 잠을 자는 하나님의 백성들은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자는 졸지도 아니하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시 121:4). 그리스도께서 사용하신 비유적인 단어 “밤”은, 어둠 속에서 더듬으며 영적인 무지로 덮여 있는 이 세상을 뜻한다(마 13:25). 밤은 적이 하나님의 동산에 가라지를 던져 넣을 수 있는 기회이다. 밤은 은밀하게 방심하고 있는 사람들을 쫓아다니는 못된 일을 하고 있는 죄의 권세를 감춰 준다. 하지만 “흑암속에 앉아 있는 사람들”은 무력한 절망감 속에 내버려 지지 않고, 그들은 “큰 빛을 보았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이 비취었다”(마 4:16). 하나님께 감사드려라! 밤은 치유하는 날개를 가진 의의 태양이 떠오를 것의 전주곡이다(말 4:2). 노래하라! 밤은 이 지구라는 혹성에 하나님 자신의 광휘(光輝)를 펼칠 기회이다. 사랑하는 자들이여 그러고 나면 안전하게 누워 쉬라. 왜냐하면 “여호와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에게 잠을 주시”기 때문이다(시 127:2). 영원한 성령이시여 우리에게 주시는 선물을 받도록 은혜를 허락하여 주소서. (239.3)
 이 땅에 내린 만나
 만나는 마른땅에 내렸다(출 16:14). 만나가 발하는 복음의 목소리는 예수께서 이보다 더 낮게 내려오실 수 있었겠는가? 라고 묻는다. 왕이신 아버지의 유일한 아들이 세상에 왔을 때에 그분의 집으로 준비된 웅장한 궁전도 없었고, 그가 가는 길을 위하여 영예를 드리도록 혹은 그의 구유를 지키게 배치된 정복의 경호인들도 없었다. 은은히 울려 퍼지는 종소리가 그분의 탄생을 찬양하지도 않았고, 장중한 행렬들이 그를 천지의 왕자로 선포하지도 않았다. 예수께서는 하늘의 보좌에서부터 구유 안에 들어 가기 위하여 낮게 굽히셨고, 그분의 위엄은 그분이 보이신 온유에 의하여, 그분의 광채는 그분의 당하신 수치에 의하여, 그분의 완전하심은 그분의 스스로 비우심에 의하여 측정되었다. 예수께서는 인간으로서 인간들과 함께 사셨고, 하나님의 어린양으로서 죄인들을 위하여 돌아가셨다. 자신의 백성들이 기다리는 곳까지 내려오신 그리스도로부터 지상의 모든 축복이 이제 흘러나온다. (239.4)
 매 아침 동틀 무렵 사막의 모래 위에서 아른아른 빛나는 만나는, 무릎을 꿇는 자만 만나를 얻으리라! 는 또 다른 노래를 부른다. 매일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루의 양식을 모으고자 무릎꿇어야 하였거나 혹은 하늘의 하사품을 발바닥으로 짓밟아 뭉개는 선택의 기로에 서 있었다. (239.5)
 이 두 가지 선택은 오늘날의 우리들에게도 해당된다. 매일 아침 동이 틀 때 우리는 우리의 매일의 양식인 우리의 만나 그리스도를 모으거나 그냥 무관심하게 우리의 하루 일을 시작한다. (240.1)
 만나와 함께 매일 내리는 것은 고운 이슬이다(출 16:13, 14; 민 11:9). 이슬은 성령의 양육하고 생명을 주는 사역의 상징이다(호 14:5; 시대의 소망, 386). 사랑스러운 신부의 이 면사포는 이스라엘에게 하늘의 부드러운 친절함을 상기시켜 주었다. 마치 겨울날 새벽녁에 생기는 회백색의 서리와 같이, 만나는 사막의 모래 위에 수천개의 무지게가 번득이도록 하였다. 이스라엘의 순례여행 전 기간에 “만나는 계속해서 내렸고, 그들은 조석으로 하나님의 손에 의하여 양식을 공급받았다”(3T, 340). 하나님께서는 이런 방식으로 백성들에게 매일의 양식을 모으도록 가르치셨고, 하늘의 선물을 거부하는 사람만이 허기질 것이라는 점을 상기시켜 주었다. 그렇다면 우리도, 아버지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소서 라고 기도하여야겠다. (240.2)
 이른 아침에 거두어야 했던 만나
 뜨고 있는 태양이 비추는 어슴푸레한 빛 가운데서 바쁘게 만나를 거둬들였다(출 16:13, 14). 나사렛 사람 예수가 아버지에게 권세를 달라고 기도할 해도 어슴프레한 빛 가운데서였다. 예수도 “새벽 오히려 미명에” 기도하셨다(막 1:35). 성령은 목회자들에게 “그대의 교회의 모든 교인들은 매 아침 저녁에 신선한 만나를 모으고자 노력하고 있는가? 그대는 하나님의 깨우치심을 구하고 있는가?”(교회증언 5권, 491)라고 물으신다. 하루를 시작하면서 예수님으로 여러분들의 마음을 채우라. 그러면 그분의 평화가 여러분이 밤에 잠을 잘 때 함께 할 것이다. (240.3)
 만나는 젊은이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하나님께 그대의 하루 중에서 가장 신선한 삶을 드려라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나를 새벽에(난외주)찾는 자가 나를 찾을 것이니라”고 약속하셨기 때문이다(잠 8:17). 무릎 꿇었을 때, 즉 “너의 청년의 때 곧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 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가 가깝기 전”에 하나님의 성령의 보배를 모으라(전 12:1). (240.4)
 만나는 하찮게 보였다. 그것은 지면 위에 떨어진(출 16:14) 작고 하얀 깟씨 같았다(출 16:31; 민 11:7, 8). 그러기에 부주의한 자들은 그냥 지나치었다. 마치 후에 나사렛의 그 목수를 그냥 지나치었듯이, 종종 멸시받고, 거부된 성령의 “세미한 소리”(왕상 19:12)도 분별없는 사람들에 의하여 너무 쉽게 무시되거나 혹은 냉담한 사람들에 의하여 잠잠하게 되어 버린다! (240.5)
 만나는 둥글었다(출 16:14). 인간의 손가락으로 만나 위에 시작하는 장소를 알아낼 수 없었고, 그 표면에는 끝나는 점이 없었다. 만나는 다음과 같이 묻는다. 누가 그리스도의 시작을 더듬을 수 있으며, 누가 그분의 현재를 에워쌀 수 있으며, 누가 그분의 미래를 볼 수 있는가? 그분은 모든 시대에 걸쳐 영원하시고, 불변하시고, 완전하시다. 그분의 사랑이 만물을 둘러싸고, 그분의 영은 그분의 은혜 안에서 인류를 부둥켜 안으신다. (240.6)
 만나는 흰색이었다. 밤 사이에 떨어진 만나는 그 청정성으로 떨어진 그 지면을 다 덮었다(출 16:14). (240.7)
 이 청정성은 만나가 온, 구름 너머의 곳이 어떠한 곳 인지를 속삭여 준다. 또 이스라엘 전 백성들에게 그들의 생각을 그리스도께 고정시키라고 청하였는데, 이 그리스도의 의는 눈과같이 흰옷으로서 회개하는 이들의 고백하고 사죄함받은 죄들을 덮어 줄 준비가 되어 있다(사 1:18; 계 19:8). (24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