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과 역사에 나타난 안식일 제 3부—안식일 신학 제15장—기독교의 현대 안식일 신학
 최종적으로 분석한다면 일요일(첫째날)을 진정한 안식일로 증명하려는 바르트의 시도는 그 자신이 그리스도의 새 언약 안에서 안식일과 안식일 계명이 실질적으로 종결했다는 주장을 수용할 수 없었다는 것을 반증하고 있다. 그는 심지어 안식일의 기본적인 계속성을 옹호까지 하였다. 즉 그는 다음과 같이 결론을 내리고 있다. “신약 성경의 기독교는 안식일의 폐지를 특별하게 선언하지 않은채 고린도전서 16장 2절사도행전 20장 7절에서 보는 바와 같이 매우 자연스럽게 주간의 첫째 날을 거룩한 날로 기념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행위는 창조의 질서에 대한 반역이 아니고 출애굽기 20장 8절이하의 안식일 계명과 창세기 2장 1절 이하에 기술되어 있는 안식일 계명의 기초와 깊이 일치하는 것이었다.”17 (265.3)
 이 주장은 바르트가 어떻게 해서 일요일의 성수가 창세기 2장에 나타난 창조의 안식일과 출애굽기 20장에 소개되고 있는 안식일 계명에 “깊이 일치하는”것으로 볼 수 있었는지를 분명하게 나타내주고 있다. 즉 그는 제칠일 안식일을 안식일과 제칠일로 분리시켜 안식일을 오로지 은혜의 안식으로만 이해하였던 것이다. 그렇게 되면 안식일은 단지 제칠일 위에 운행했을 뿐이며 안식일이 곧 제칠일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와같은 가현설적(Docetic Philos ophical)인 개념은 분명히 비 성경적인 가설이다. 역시 바르트가 여기서 이렇게 주장하고 있는 것은 그가 창세기 1장의 창조 이야기를 진실한 역사의 기록으로 믿은 것이 아니라 오로지 핵심적인 취지에서만 진실한 하나의 전설로 수용하였을 때 뿌린 씨를 거두고 있는 것이다.18 (265.4)
 바르트가 안식일을 영적으로 해석한 것은 칼빈이 이미 창세기 2장 3절에 관한 그의 주석에서 제칠일과 하나님의 안식을 분리시켰던 전례를 따른 것이었다. 칼빈은 자신의 주석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첫째로 안식했다. 그리고 그 다음에 이 안식을 축복했다. 그러므로써 모든 시대에서 그 날은 사람들에게서 거룩하게 되었다.”19 이런면에서 칼빈과 바르트는 성경 자체가 창세기 2장 3절에서 실지로 무엇이라고 말했는지를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다. 창세기 2장 3절“하나님이 일곱째 날을 복주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이 날에 안식하셨음이더라”고 하였다. 성경은 하나님이 그의 안식을 복주셨다고 말하지 않고 하나님이 6일 동안에 창조의 일을 마치고 제칠일에 안식하셨으므로 “제칠일”을 복주시고 거룩하게 하셨다고 하였다. 하나님이 복주신 것은 안식이 아니라 안식의 날이다. 이것이 출애굽기 20장 11절에 있는 십계명에 뚜렷하게 반복되고 있다. 구원을 받은 이스라엘은 “제칠일이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출 20:8-10)고 하였다. (266.1)
 만약 바르트가 성서적인 신학자로서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여전히 “미쁘신 조물주”(벧전 4:19) 이시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부활과 제칠일 안식일이 서로 긴장의 관계에 있지 않다는 사실을 바로 인식할 수만 있었다면 그의 안식일 신학은 좀더 성경적인 신학이 되었을 것이며 덜 공론적인 신학이 되었을 것이다 (266.2)
 최근의 기독교 역사에서 그 어떤 신학자보다도 바르트가 구원의 성례전으로서의 제칠일 안식일 안에 있는 하나님의 자유로운 은혜의 복음을 더 강조하였다. 그래서 이같은 그가 어찌하여 하나님이 태초에 인류에게 선물로 주셨으며 결코 후에 이스라엘 민족에게 주신 것이 아닌 하나님의 영원하신 언약의 상징인 제칠일 안식일이 그리스도의 부활로 말미암아 종결되었다고 결론지을 수 있었는지를 이해하기가 어려운 것이다. (266.3)
 1956년에 독일의 구약학자 에른스트 예니(Ernst Jenni)가 바르트의 학문적 노선을 따라 「구약에 나타난 안식일 계명의 신학적인 기초」(Die Theologiche Begriindung des Sabbatagebates im Alten Testament, (Zurich, 1956〉)라는 도전적인 연구를 발표하였다. 예니는 안식일 계명을 위한 두 종류의 기본적인 기초들을 주목하였다. 하나는 출애굽기 20장 11절에 있는 안식일 계명이다. 이 계명은 창조의 완성과 함께 이루어진 하나님의 안식을 안식일의 기원으로 지적하고 있다. 또 다른 하나의 기초는 신명기 5장 14, 15절에 있는 안식일 계명이다. 이 계명은 이스라엘의 출애굽 사건을 안식일 계명의 토대로 지적하고 있다. 예니는 특별히 출애굽기 20장“제사장적인” 기초가 나타나 있다고 보았으며 신명기 5장에서는 “신명기적인” 기초가 나타나 있다고 보았다. 물론 그는 이 두 종류의 신학적 기초가 모두 “뒤에 안식일 계명에 추가된 것이 확실하다”고 생각하였다. 그는 심지어 다음과 같이 주장하기도 했다. “원래의 안식일 계명은 틀림없이 좀 더 짧은 형태로 구성되었을 것이며 어떤 기초 같은 것도 포함하고 있지 않았을 것이다.”20 물론 이러한 주장은 전형적으로 급진적이며 비판적인 개념이다. (266.4)
 예니는 신명기에서 안식일의 구속적-역사적 기초가 수립되었다고 보았다. 여기에서는 안식일이 은혜로운 주재이시며 이스라엘의 해방자이신 야훼에게 바쳐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스라엘 민족이 바빌로니아로 잡혀가기 이전까지 안식일이 기쁜 날로 기념된(사 58:13)까닭이 여기에 있다는 것이다. (267.1)
 그에 따르면 출애굽기 20:11:31:17창세기 2:2,3에 나타나고 있는 이른바 안식일의 “제사장적”인 기초가 안식일의 창조적 기원을 주장한다는 것이다. 안식일이 “영원한 언약”(출 31:16)으로 일컬어지고 있기 때문에 안식일의 영속적인 의무가 이스라엘의 구속적인 제도들의 은혜로운 성격과 함께 강조되었다는 것이다. 이와같이 안식일의 거룩함은 인간의 성취나 점성술적인 마술력과 상관 없는 독립적인 것이 되었다는 것이다.21 (267.2)
 예니는 창세기 2장에서 창조 때에 제정된 안식일의 3중적인 목적을 지적했다. 그 하나는 안식일이 “창조의 목표”라는 것이다. 이 세계는 그 자체를 위해 창조된 것도 아니고 그 자체로 그냥 방치된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창조의 목적은 안식일에 우주 전체가 사람의 지도력에 의해 하나가 되어 하나님을 예배로 찬양하게 하는 것이었다는 것이다. 안식일을 제정한 두 번째의 목적은 창조의 안식일로 하여금 하나님의 언약의 역사를 가능하게 하는, 열린 문이 되게 하는 것이었다.22 즉 하나님이 안식일을 거룩하게 하심으로써 세속의 삶과 분리된 종교적 예배의 여지가 열렸다는 것이다. 그 안식일의 셋째 목적은 창세기 2장의 안식일 안식으로 하여금 “창조의 완전한 목표와 언약의 완전한 실현”을 지향하는 약속을 암시하게 하는 것이다. 표징은 장차 일어 날 것의 전조가 된다.23 (267.3)
 예니에 의하면 신약 성경은 “표상학적으로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구약 성경의 안식일이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으로 성취되었다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다(마 11:28; 고후 1:20). 그러나 예니는 동시에 히브리서 4장 9절에 기초하여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남아있는 완전한 안식을 보장하고 있으며 “이 안식 안에서 이 지상의 안식일의 약속이 성취될 것이라” 고도 주장했다.24 (267.4)
 예니의 안식일 신학에 나타난 안식일의 기원에 관한 급진적-비평적 개념은 창세기 1-2장에 나타난 창조 안식일의 역사적 신뢰성과 진실성을 의심하고 있다. 예니의 논리에 따르면 안식일은 이 세상이 창조될 때 실지로 제정된 것이 아니라 모세에 의하여 제정된 것이며 후에 제사장들이 성경에서 안식일을 창조의 사건에 결부시켰다. 결과적으로 안식일은 철저하게 하나님과 이스라엘 민족간에 맺어진 언약의 표징이 되었으며 이스라엘 민족에게 역사의 종말의 때에 이루어질 창조의 목표인 완전한 안식을 약속하는 표징이다. (267.5)
 바르트와 예니 두 사람은 모두 구약 성경 안에 있는 제칠일 안식일의 구속적이며 종말론적인 의미를 힘있게 밝혔으나 두 사람은 각기 창세기 2장에 있는 창조의 안식일에 대한 해석에서 서로 크게 다른 입장을 나타냈다. 바르트는 창세기 2장의 안식일을 하나님이 태초에 인류를 위해 마련한 명령으로 강조했으나 예니는 안식일의 창조적 기원을 강력히 부인하였다. 예니는 이방 나라들의 주기적인 “장날”(Market day)을 안식일의 기원으로 수용하였다. 그리고 제칠일이 종교적인 날이 된 것은 모세가 이스라엘 민족을 위하여 제칠일을 종교적인 날로 제정함으로써 비롯하였다고 하였다. 결과적으로 이 두사람은 기독교의 일요일 제도에 대한 입장에서도 차이를 나타냈다. 바르트에게는 일요일이 단지 “교체된 안식일”(Shibted Sabbath)일 뿐이었다. 그러나 예니에게 안식일은 폐기된 제도이다. 예니에게 안식일은 유대민족의 한 제도에 불과하였다. (267.6)
 복음주의 신학 계열에서 나타나고 있는 여러가지 다른 안식일 신학들
 개신교 자유주의 신학과 신정통파 신학에서는 성경의 안식일 신학에 관한 통일된 입장이 아직까지 정리되지 못한 상태에 있다. 이러한 상황은 복음주의 신학 계열에서 안식일 신학이 혼란스럽게 서로 충돌하고 있는 현상에 크게 영향을 받고 있는 것이다. 현대 복음주의 신학은 대체로 두 개의 서로 다른 안식일 신학으로 나뉘어져 있다. (268.1)
 첫 번째 흐름은 창세기 2장 2, 3절출애굽기 20장 8-11절에 기초하여 제칠일 안식일을 하나님의 창조의 계명으로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은 그리스도의 부활로 말미암아 안식일 계명이 주간의 첫날인 일요일로 교체되었거나 이동되었다는 전제하에서 일요일을 안식일로 믿는 신학을 발전시키고 있다. 그들의 최종적인 성서적 근거로 제시하고 있는 성경절들은 언제나 사도행전 20:7; 고린도전서 16:2; 요한계시록 1:10이다. 통상적으로 그들은 이 세 성경절을 일요일 준수의 근거로 제시할 때 주석적인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 이들에게 일요일은 당연히 “주일”이거나 “그리스도인의 안식일”로 인정되고 있다. (268.2)
 복음주의 학파의 두 번째 안식일 신학은 급진적-자유주의적 평가에 기초하여 안식일이 창조 시기의 계명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이들은 안식일을 단지 하나님이 이스라엘 민족에게 베푼 언약의 선물로 의도된 이스라엘 민족의 제도로만 인정한다. 따라서 이들은 그리스도가 성일로서의 안식일을 철저하게 철폐하였다는 전제 아래서 일요일 신학을 전개시키고 있다. 기독교회가 일요일을 지키게 된 것은 사도시대 이후의 일이며 교회가 일요일을 준수하게 된 것은 교회의 질서를 유지하고 주간의 첫째 날에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념하기 위함이었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들은 자주 종교적인 예배의 날로서의 일요일이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권위를 인정받았거나 또는 그리스도나 사도들에 의해 제도화되었을 가능성이 높은 날로 존중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여 일요일을 새로운 안식일로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모든 복음주의적 신학자들이나 저술들이 위의 두가지 범주안에 명확히 분류되는 것은 아니다. 양쪽 입장에 모두 얽히는 입장을 나타내는 주장들도 더러 있다. (268.3)
 교체된 안식일을 주장하는 복음주의 안식일 신학. 일요일이 그리스도인의 안식일이며 그리스도인의 일요일 준수가 십계명의 안식일 계명을 진정으로 성취시키는 것이라는 주장은 기본적으로 세가지 신학 전통에 기초하고 있다. 첫째는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cquinas)에 의해 발전되고 로마누스의 교리문답(Catechimus Romanus. A.D 1567)에서 설명된 로마 카톨릭의 안식일 신학이며, 둘째는 영국 청교도들의 안식일 신학이며, 셋째는 17세기 후반에 화란의 개혁 국교(Reformed State Church of 나ie Netherlands)안에서 이른바 안식일 투쟁이 발생했을 때 야코부스 코엘만(Jacobus Koelman)그룹이 주장한 안식일 신학이다.25 이 신학의 주요 관심은 토요일이나 일요일이 예배일로 준수되어야 하는가 또는 말아야 하는가의 문제가 아니라 무슨 근거로 일요일을 성일로 지켜야 하며 일요일은 어떤 방식으로 십계명의 안식일 계명에 신학적으로 관련되고 있으며, 그리스도나 사도들이나 또는 사도 이후의 교회가 진실로 일요일 준수를 시작했는지의 여부, 즉 간단히 말해서 일요일 준수가 하나님에 의해 기원하였는지 아니면 순전히 교회의 권위에 기초하여 제정된 것인지를 밝히고자 하는 것이었다. (268.4)
 영국의 청교도들과 화란의 코엘만 그룹의 입장은 일요일은 하나님의 신적 권리에 의한 진정한 안식일이며 안식일 계명의 도덕적인 성취라는 것이었다. 그들의 논지는 넷째 계명을 도덕적인 측면과 예식적인 측면으로 나누는 철학적 구분 인식에 기초하였으며 이 개념은 본래 토마스 아퀴나스에 의해 기독교로 도입된 것이었다. 아퀴나스에게서와 마찬가지로 그들에게 있어서도 안식일 계명에 나타난 영속적인 도덕적인 명령은 한 주간의 7일 중에서 예배를 위해 한 날을 임의로 선택하라는 부분이다. 그러나 7일 중에서 특별히 제칠일을 세계의 창조를 위한 기념일로 지켜야 한다고 요구한 부분은 잠정적인 구속력밖에 없는 예식적인 명령에 불과하다. 코엘만은 주장하기를 그리스도나 사도들이 하나님의 권위에 의지하여 제칠일 안식일을 일요일 안식일로 바꾸었다고 하였다. 그러나 날짜는 바뀌었지만 안식일 계명의 도덕적인 핵심은 손상됨이 없이 일요일에 남아 있다고 하였다. 변한 것은 주간의 “제칠일”이라는 “예식적인” 부분이라는 것이다. 지. 보에티우스(G. Voetius), 아브라함 쿠이퍼(Abraham Kuyper). 지. 보스(G. Vos) 같은 화란의 여러 저명한 학자들이 코엘만의 전통을 따랐다. (269.1)
 침례교 신학자인 에이. 에이취. 스트롱(A. H. Strong)은 일요일을 “그리스도인의 안식일” 이라고 부르면서 일요일은 “그리스도안에 이루어진 세계의 새로운 창조를∙∙∙ 기념하며 그리스도안의 새 창조는 하나님의 첫 번째 인간의 창조를 완성하는 것이었다”고 하였다. 그는 주석적인 설명을 보태지 않고 요한 계시록 1:10; 사도행전 20:7; 고린도전서 16:1, 2에 호소하면서 “그리스도의 본보기와 사도들의 재가에 의해 안식일이 제칠일로부터 첫째날인 일요일로 옮겼으며 그렇게 된 이유는 첫째날이 그리스도가 부활한 날이며 그 날에 하나님의 영적인 세계가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하게 되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하였다.26 (269.2)
 그러나 스트롱은 곧이어 이같은 단언적인 주장을 수정하여 안식일이 일요일로 바뀐 것은 “그리스도의 부활 때문이었던 것으로 보인다.”27고 다소 유화적으로 표현했다. 그는 이런 식으로 이 “변화”가 어떤 성서적 명령의 결과가 아니라 신학적인 추론의 결과란 사실을 인정한 것이었다. (26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