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확대경 - 사무엘 상∙하 제 Ⅴ 부 다윗: 상처난 왕의 몰락 (삼하 13-24) 제 11 장 강간과 복수, 반란과 귀환-제2편 (삼하 18-20)
 그러나 다윗은 “여호와의 기름부은 자”에 대한 저주를 기억할 것이었다. 솔로몬에게 준 마지막 명령 중에 시므이의 “센 머리로 피 흘려 죽게 하라”(왕상 2:9)고 당부하였다. 분명 다윗은 그의 맹세를 협의적으로 해석하였다. 즉, 다윗 자신이 시므이를 죽이지 않을 것이라고. 그러나 “여호와의 기름부음을 받은 자”를 저주하는 것은 여전히 죽일 죄이기에, 그 책임을 솔로몬에게 넘긴 것은 합당한 일이었다. (309.2)
 저자는 다윗과 사울의 종 시바 사이의 대화를 녹취하지 않았다. 그러나 시바는 다윗이 므비보셋을 “맞서는” 배경 속에서 중요한 인물로 부각된다: “므비보셋이여, 네가 어찌하여 나와 함께 가지 아니하였더뇨?”(19:25)라고 다윗이 물었다. 텁수룩한 요나단의 아들이 시바가 그를 중상 모략했다고 하면서 그의 무죄를 주장한다(27절). 다윗은 확신이 가지 않은 것 같다. 어쩌면, 재산의 반만(29절) 돌려준 것은 유배된 왕을 도운 시바에게 보답하고자 하는 마음을 나타낸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떤 해석이라도, 이 이야기는 시바와 므비보셋에 대한 의구심을 남기며, 그것은 사울의 집을 더욱 불신하게 만든다. (309.3)
 그러나 영롱한 불빛이 이야기를 꾸민다. 바르실래와의 작별의 장면이다. 그는 다윗을 모시고 요단을 건넌다. 다윗은 그를 따스함과 정성으로 대접한다. 다윗이 궁전에서 함께 살자고 한 초청을 자기의 노령을 이유로 사양하고 자기 대신 김함을 보내겠다고 한다. 다윗이 바르실래에게 입맞추고 복을 빈 후, 그 노인은 집으로 돌아간다(39절). (310.1)
 개인적인 만남을 뒤로하고, 이야기 줄거리는 이스라엘과 유다의 투쟁 속으로 휘말려 들어간다. 양편이 왕권을 회복시키는 일에 큰 몫을 했다고 주장한다. 이스라엘은 수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가담했다고, 유다는 혈연을 주장했다(41, 42절). (310.2)
 이 소동은 베냐민의 “말썽장이” 비그리의 아들 세바로 모반을 하게 하였다. 그는 나팔을 불어 이스라엘에게 다윗을 차지하겠다는 주장을 포기하라고 하였다(20:1). 그들은 그 말을 따랐다. 다윗이 성에 도착하기 전에 “온 이스라엘”이 그를 버리고 세바를 좇았다. 유다 사람들은 다윗 곁에 남았고 그를 예루살렘으로 모셔왔다(2절). (310.3)
 예루살렘에서의 다윗의 첫째 일은 강간당한 후궁들을 가두는 것이었다(4절). 아마사를 부른 후, 유다 사람들을 사흘 안에 다윗에게로 모으라고 명했다. 어떤 학자들은 다윗이 아마사를 제거할 구실을 만들기 위하여 불가능한 시간표를 짰다고 주장한다. 어쨌든, 아마사가 제 시간에 나타나지 않자, 다윗은 아비새를 불렀다: “이제 비그리의 아들 세바가 압살롬보다 우리를 더 해하리니, 너는 네 주의 신복들을 거느리고 쫓아가라. 저가 견고한 성에 들어가서 우리들을 피할까 염려하노라”(6절). (310.4)
 그리하여, 왕은 요압이 아니라, 아비새에게로 돌아섰다! 그러나 요압은 자기가 여전히 왕의 총애를 받는다는 생각으로 다윗을 위하여, 그의 부하들과 함께 계속 싸웠다. 아비새가 책임자였다 해도, 요압이 그의 바로 뒤에 있었다—어쩌면 그의 앞에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아마사가 마침내 나타났을 때, 요압은 그에게 정중한 문안을 하였고—아마사의 뱃속 깊이 단검을 꽂았다(9, 10절). (310.5)
 그 죽음이 흉측하고, 질질 끄는 것이 있었을 뿐만 아니라, 요압이 다시 책임을 맡게 된 것 같다. 왜냐하면 그의 부하 중 하나가 죽어 가는 아마사 곁에 서서 북을 가리키며 말했기 때문이다: “요압을 좋아하는 자와 다윗을 위하는 자는 요압을 따르라!”(11절). 그러나 군대는 아마사의 시체가 한 쪽으로 치워지고, 덮을 때까지 진행하지 않았다. (310.6)
 성경은 요압이 아마사를 살해한 것에 대한 다윗의 반응을 보고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은 전혀 기대하지 못한 바가 아니다. 다윗은 아브넬을 살해한 요압이나, 다말을 강간한 암논을 징계하지 못하였고, 역적 압살롬을 처리하는 것은 모든 사람에게 의문을 던졌다. 그러나 솔로몬에게 준 마지막 부탁 속에서 요압을 고발하는 내용 중에 아마사의 암살을 추가시킬 것이었다. 그는 솔로몬에게 요압의 “그 백발로 평안히 음부에 내려가지 못하게 하라”(왕상 2:6)고 명하였다. (311.1)
 세바에 관하여는, “이스라엘의 모든 사람들이” 다윗을 버리고 그를 좇았지만(삼하 20:2), 그가 간 길과 그의 마지막 도착지를 보면, 어느 누구도 그를 맞아들이려 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는 북쪽 멀리 있는 아벨 벳마아가로 들어갔다. 바로 거기서 요압과 그의 군대가 그를 따라잡았다. (311.2)
 다윗의 사람들이 그 성을 무너뜨리려고 하자, 한 슬기로운 여인이 성벽에서 요압에게 소리쳤다. 이 성은 “이스라엘의 화평하고 충성된” 성이라고(19절). 요압은 세바만 내어놓으면 자기는 떠나겠다고 했다(21절). 여인은 세바의 머리를 주겠다고 약속했다. 시민들과 숙의한 후에 그녀는 머리를 내 주었다(21, 22절). (311.3)
 요압은 나팔을 불었다. 전쟁은 끝났다. “요압은 예루살렘으로 돌아외서 왕에게 나아가니라”(22절). 이야기는 8:16-18에 있는 목록과 비슷한 다윗의 대신들의 목록으로 끝맺는다. 다시 한번, 먼저의 목록에서처럼, 요압이 군대 장관이다. 그러나 먼저의 목록은 멋진 머리말이 붙어 있었다: “다윗은 온 이스라엘을 다스려, 모든 백성에게 공과 의를 행할새”(8:15). 그러나 20장에는 그런 멋진 머리말이 없다. (311.4)
 그 명단에서 두 가지 변경이 눈에 띈다. 다윗의 아들들이 더 이상 제사장으로 불리지 않았다(8:18). 그들의 위치는 야일 사람 이라가 차지하였다(20:26). 둘째로, 아마도 더 불길한 것으로서, 한 관리가 “강제 노역을” 담당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24절). 히브리어로 그의 이름은 아도람이다. 그런데 「새국제역」은 어떤 「70인역」 필사본을 따라 그를 솔로몬 시절의 감역관(監役官)이었던 아도니람이라고 한다(왕상 4:6; 5:14). (311.5)
 훗날에 기억되는 다윗의 영광스런 명성을 고려할 때에—물론 역대기 저자의 복음적 관점에 의해 장려된—20장의 이야기가 기쁜 외침 대신에 훌쩍거림으로 끝나는 것은 이상스러운 일일 수 있다. “계승”의 대사는 열왕기상 1, 2장에서 다윗의 마지막 날들과 솔로몬에게 준 마지막 당부와 함께 이어진다. 그러나 사무엘하의 결론은 놀라운 두 이야기로 된 부록을 첨부하는 공교한 구조로 막을 내린다. 그 속에는 여호와께서 이스라엘과 그 왕을 “재앙으로 치신” 이야기와 다윗을 칭송하는 두 군사적 목록과, 다윗이 부르는 두 찬미가 들어 있다. 21-24장의 연대기는 결정하기 곤란하다. 그러나 그의 기별은 저자의 목적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중요하다. (312.1)
 요약: 강간, 복수, 반란, 귀환
 13-20장은 다윗이 그의 죄로 인해 어떤 벌을 받았는지 보여준다. 그의 여인들이 그의 친아들에 의하여 공개적으로 강간을 당하였다. 칼이 계속 사람을 삼키는데, 아들이 아들을, 조카가 아들을, 조카가 조카를 죽인다. 바로 나단이 예언한 대로이다. (312.2)
 아무래도 여호와께서 시므이에게 저주하라고 하신 것 같다(16:11). (312.3)
 그러나 여호와는 이 장들에서 거의 언급되지 않는다. 전사들, 재사들(남녀), 모두 인간이 판을 치고 있다. 비록 최고의 외적 영광의 때 곧 솔로몬의 통치가 움트는 시점에 있다 할지라도, 사울의 집과 마찬가지로 다윗의 집은 점점 쇠약해 가고 있다. (312.4)
 유배된 사무엘하의 독자들에게는, 다윗의 유배와 귀환은 뼈저린 생각을 하게 할 것이다. 다윗이 도망갔을 때에, 법궤는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더 이상 그것은 언급되지 않는다. 다윗이 떠날 때의 고뇌는 혹심하여 귀환시의 고뇌의 강도와 감정적으로나 영적으로 비견되지 않다. 그러나 그것이 다윗과 같은 인간적인 왕에게 이루어질 수 있는 최선이었는지 모른다. 아마도 인간 왕이라는 생각은 결국은 잘못된 생각이었나 보다. (312.5)
 ■ 말씀을 적용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