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확대경 - 사무엘 상∙하 제 Ⅴ 부 다윗: 상처난 왕의 몰락 (삼하 13-24) 제 11 장 강간과 복수, 반란과 귀환-제2편 (삼하 18-20)
 압살롬은 결정적으로 인간의 모략을 구하였다. 비록 복수 단어는 그가 모사들의 무리에게 말한 것으로 되어 있으나 그는 아히도벨에게 향하였다: “너는 어떻게 행할 모략을 우리에게 가르치라”(삼하 16:20). 비록 압살롬이 단체에게 말했지만, 대답한 사람은 아히도벨이다. 두 부분으로 되어 있었다: 첫째로, 왕의 후궁들과 “온 이스라엘 앞에서” 동침함으로 “당신 아버지의 코에 당신 자신을 악취가 되도록 하시오”(21, 22절). 그리고 그 일이 그대로 되었다-궁 지붕 위에 친 천막 속에서(22절). 다윗은 그 지붕에 대하여 알았다. 이제는 압살롬의 차례이다. 나단이 말한 것처럼, 틀림없이, 다윗의 비밀스런 침략은 “이스라엘 무리 앞 백주에” 이루어진 것과 필적하게 되었다(12:12). 그것은 성취된 예언이라 혹은 네 피가 네 머리로 돌아왔다 혹은 더 신랄하게 네 정욕의 죄들이 네 지붕 위에로 돌아온 것이라고 가히 말할 수 있다. (296.1)
 아히도벨의 둘째 모략은 다윗을 즉시로 색출해야 한다는 것이다. 작은 군대를 내보내어 왕만 겨냥하면 된다. 그리고 나머지는 안전하게 데려 오면 된다(17:1-3). (296.2)
 비록 그 계획이 암살롬과 장로들에게 “옳게” 들렸지만(4절), 그들은 후새의 의견도 물어보기로 했다. 그는 정반대의 제안을 이야기했다. 이스라엘을 총동원하여 다윗과 그의 부하들은 다 섬멸해야 한다고 했다(13절). 다윗은 적은 군대로 무찌르기에는 너무도 위험한 상대임을 생생하게 묘사함으로 그의 제안의 당위성을 보충 설명하였다. 유배된 왕은 “곰이 새끼를 빼앗긴 것 같이 격분하였다”(8절). (296.3)
 그들의 결정의 근거를 설명도 하지 않고 압살롬과 “이스라엘 온 사람들이” 후새의 모략을 찬성하였다. 그러나 저자가 이 결정 뒤에 있는 인간적 이유를 설명하지 않는다면, 그는 하나님의 생각을 우리를 위하여 설명한다: “여호와께서 압살롬에게 화를 내시려 하사 아히도벨의 좋은 모략을 파하기로 작정하셨음이더라”(14절). (296.4)
 만일 압살롬이 후새의 모략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않았더라도, 아히도벨의 속전속결의 계획에서는 멀리 떨어졌을 것이다. 아히도벨은 자기의 모략이 수용되지 않은 것을 보고 집으로 돌아가 집안 정리를 하고 목매어 죽었다(23절). 그가 조상 묘에 묻힌 것을 보아 자살은 오늘날처럼 큰 오점으로 인식되지 않았던 모양이다. (297.1)
 아히도벨의 모략과 관련하여, 만일 속전속결의 계획을 이행하기 위하여 즉각적인 작전이 요구되었다면, 다윗의 후궁들과 동침하라(16:21, 22)는 그의 다른 모략은 방해가 되었을 것이었다는 사실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297.2)
 후새는 압살롬의 의도를 확실히 알 수가 없었다. 그가 (아히도벨을 따라) 즉각적으로 공격을 할 것인가 혹은 (후새의 말을 따라) 총력 동원을 할 것인가? 안전을 위하여, 후새는 이 두 가능성을 제사장들에게 설명하였고, 다윗에게 급히 소식을 전하라고 하였다: “오늘밤에 광야 나루터에서 자지 마시고 아무쪼록 건너 가소서 혹시 왕과 그 쫒는 자들이 몰사할까 하노라”(17:16). “압살롬은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과 함께 요단을 건너니라”고 하는 17:24의 언급은 사실상 모든 이스라엘이 그와 함께 있었던 것과 상관 없이 역적이 다윗을 잡는 데 열이 올라 있음을 시사한다. 그러나 마지막 계획이 어떻게 드러났던지, 후새는 다윗의 기도처럼 “아히도벨의 모략을 어리석게” 하는 일에 성공한 것이다(17:23). 물론 아히도벨은 그런 식으로 보았고, 자살하였다(17:23). (297.3)
 다윗에게 소식을 전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제사장들의 아들들, 요나단과 아히마아스는 예루살렘 남쪽 엔로겔에 머물고 있었다. 그들이 성에 들어가는 것은 너무 위험했기 때문에, 하녀가 그들에게 기별하여 다윗에게 전하게 하였다(17절). 그러나 한 청년이 그들을 보았고 압살롬에게 고했다. 그들은 바후림에 있는 어떤 사람의 집에 속히 숨었다. 바후림은 시므이의 고향이다. 아히마아스와 요나단은 마당에 있는 우물로 기어 들어갔다. 그 사람의 아내가 우물 위에 덮개를 덮고 그 위에 곡식을 널어놓았다. 성경은 말한다. “아무도 그것을 알지 못하였다”(19절). 그러나 앤더슨은 히브리어를 해석하되 더 철저한 위장을 암시하는 식으로 했다: 우물을 모래로 덮어서 “아무것도 알아볼 수 없게 하였다”(Anderson, 210, 215). (297.4)
 어쨌든 그것은 아슬아슬한 장면이었다. 압살롬의 부하들이 바로 그 집에 와서 아히마아스와 요나단의 행방을 물었기 때문이다. 그녀가 그들에게 한 말(히브리어로)은 우리에게 분명치 않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분명했다. 그 사람들은 다른 곳을 계속 뒤졌고, 결국은 빈손으로 예루살렘으로 돌아갔다(20절). (298.1)
 두 청년은 우물에서 나와서 다윗에게 소식을 전하였다. 그들은 제 시간에 이르렀다. 성경은 말하기를 “다윗이 일어나 모든 백성과 함께 요단을 건널새 새벽에 미쳐서 한 사람도 요단을 건너지 못한 자가 없었더라”(22절). 이 사건 속에 나온 연이은 속임수들은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시키는가 하는 문제를 제기한다. 사무엘상․하의 저자는 무슨 목적이냐, 무슨 수단이냐에 달려 있다고 말할 수 있다. (298.2)
 다윗과 그의 백성들은 요단 나루터로부터 약 30마일(50킬로미터) 되는 마나하임으로 갔다(24절). 비록 다윗의 용병 부대의 크기가 정중한 영접의 “분위기를 자아낼” 수 있게 하였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다윗이 이스보셋과 아브넬 아래서 사울 집의 수도로 사용된 바로 그 성에서 피난처를 구했다는 것은 주목거리가 된다(2:8). 폴친은 다윗의 마하나임에의 도착은 더 놀랄 만한 구석이 있다고 말한다(David, 183). 왜냐하면 그것은 삼하 2장에서 다윗이 헤브론에서 유다의 왕으로, 이스보셋은 마하나임에서 이스라엘의 왕으로 있었는데 그 역할이 뒤바뀌었기 때문이다. 이제 압살롬이 헤브론으로 갔고(삼하 15), 다윗은 마하나임으로(삼하 17) 갔다. 어찌하여 용사가 넘어졌는고, 적어도 자리가 바뀌었는고! (298.3)
 성경은 소비, 마길, 바르실래, 이 세 사람을 유랑자들에게 음식과 다른 필수품을 제공한 요단 건너편 사람으로 소개한다. 이 세 사람은 재산이 있고 영향력도 있던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다른 이유로 또한 특출한 사람들이었다. 예를 들어 소비는 “암몬 자손에게 속한 라합 사람 나하스의 아들”로 소개되어 있다(17:27). 아마도 그는 다윗의 신하들을 벗김으로 모욕을 준 암몬 왕 하눈의 형제였을 것이다(10:4). 그 뒤에 온 하눈과의 전쟁은 다윗과 밧세바 사이의 사건을 중심에 두고 묘사되어 있다. 다윗이 예루살렘 궁전의 지붕 위에 있는 동안, 요압은 “암몬 자손을 멸하고 랍바를 에워쌌”(11:1)다. 바로 그 포위 속에서 헷 사람 우리아가 죽은 것이다(17절). 다윗은 결국 요압과 합세하여 랍바를 사로잡는다. 그는 많은 노략물을 취하였다. 왕관도 빼앗고, 암몬 사람들을 강제 노역에 부쳤다(12:26-31). 그러나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암몬 족속 나하스의 아들 소비는 자발적으로, 너그럽게 다윗을 도우려고 나왔다. (298.4)
 너그러운 요단 건너편 사람들의 목록의 둘째 인물은 로드발 사람 암미엘의 아들 “마길”인데 그는 다윗이 요나단을 위하여 사울의 집에 인자[헤세드]를 베풀기 전까지 므비보셋의 식주인이었다(9:1, 4). 셋째로, 로겔림에서 온 길르앗 사람 바르실래는 다윗의 마음을 푸근하게 하였다. 유랑의 무리가 처음 도착했을 때 대접한 것뿐만 아니라, 다윗이 예루살렘으로 돌아갈 때에 전송을 동구 밖까지 나온 것 때문에 그러하다(19:31-39). 다윗은 바르실래에게 궁전에까지 함께 가자고 초청하였다. 다윗은 “내가 너를 공궤하리라”고 약속하였다(33절). 그러나 바르실래는 자기의 고령 때문에 극구 사양하였다. 솔로몬에게 준 마지막 명령 속에 다윗은 솔로몬에게 세 사람을 “기억하라”고 당부했다: 요압과 시므이는 처형하고(왕상 2:5, 6, 8, 9), 바르실래의 아들들에게는 특별한 “은총”[헤세드]을 베풀라고 했다: “저희로 네 상에서 먹는 자 중에 참예하게 하라. 내가 네 형 압살롬의 낯을 피하여 도망할 때에 저희가 내게 나아왔었느니라”(왕상 2:7). 길르앗 사람 바르실래는 13-20장에 나오는 참으로 “좋은” 두 사람 중 하나로 가드 사람 잇대와 합류하였다. (299.1)
 나무(18:1-18)
 압살롬과의 전쟁은 에브라임 수풀에서 붙었고 끔찍한 광경이었다. 이유를 설명하지 않고 저자는 “수풀에서 죽은 자가 칼에 죽은 자보다 많았더라”(8절)고 말한다. 다윗의 부하들은 “이스라엘”을 대항하여 들을 취하였다(6절). 이 언급은 다시 한 번 이 전투는 유다가 남쪽에 이스라엘이 북쪽에 있음을 시사한다. 다른 말로, 다윗의 지지자들과 사울의 지지자들 사이에 전쟁이 있었다. (300.1)
 다윗의 귀환과 관련된 상황을 통하여, 그 긴장이 곧 다시 폭발할 것이다. 그러나 압살롬의 반역이 진행되는 동안의 상황은 더욱 복잡 미묘했다. 예를 들어, 다윗은 지금 예전에 사울의 집에 의해 관리되었던 지역인 마하나임에 있고, 압살롬의 세력 기반은 다윗의 예전 세력 기반이었던 헤브론과 예루살렘에 있었다. 세밀히 따지면 압살롬은 북방 사람들의 마음만 훔친 정도가 아니라, 그의 영향력이 다윗의 온 나라에 널리 퍼졌다(15:6, 10). (300.2)
 애초에는, 다윗은 그의 군대를 세 패로 나누고 스루야의 두 아들 요압과 아비새, 그리고 가드 사람 잇대를 각각 선봉으로 삼았다(18:2). 다윗이 그들과 함께 전쟁으로 들어가려 할 때에 그의 신하들이 말렸다. 왕은 신속히 그들의 소원에 양보했다(2-4절). (300.3)
 다윗은 그의 감정과 더불어 투쟁을 하고 있었다. 그의 군대가 사열을 위해 자기 앞을 지나갈 때에, 그는 그의 세 사령관들에게 “나를 위하여 소년 압살롬을 너그러이 대접하라”고 부탁했다. 저자는 모두가 이 당부를 들었다고 전한다(5절). 다윗은 그의 충성된 백성들을 불가능한 형편에 처하게 했다. 그들은 왕의 목숨을 노리는 왕의 아들을 대항하여 전쟁에 나가고 있었다. 그런데 왕은 모두에게 말하기를 그를 잘 대하라고 한다. (300.4)
 성경에 의하면, 압살롬의 말로는 그의 머리(머리칼이 아니라)가 상수리나무 가지 사이에 끼었을 때에 이르러 왔다고 말한다(9절). 그의 나귀는 계속 갔고, 압살롬은 공중에 매달려 있었다. 요압은 압살롬의 곤경을 보고 왕의 아들을 건드리기를 거절하여 요압에게 보고한 군인을 조롱했다. 저자는 그 군인의 변명을 자세히 전한다. “모든 사람들이” 들었던 사령관들에게 명한 다윗의 부탁을 반복해가면서(12, 13절). (300.5)
 요압은 지체없이 움직였다. 창 셋을 들고 압살롬을 찔렀다. 요압의 호위병 열 명이 왕의 아들을 둘러싸고 그를 죽였다(14, 15절). 요압은 즉시로 나팔을 불어 “이스라엘”과의 적의가 끝났다고 알렸다. 예전에 다윗의 통치 시작에도 그 같은 나팔 소리가 있었다(2:28). 요압과 그의 부하들은 압살롬을 숲의 바로 그 자리에서 돌무더기 아래 묻었다. 그리고 저자는 온 이스라엘이 각기 자기 집으로 도망하였다고 기록한다(18:7). 그것은 역적이 사라진 후에라도 나라를 다시 세우는 것은 혼쭐나는 일임을 시사한다. (3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