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확대경 - 사무엘 상∙하 제 Ⅴ 부 다윗: 상처난 왕의 몰락 (삼하 13-24) 제 11 장 강간과 복수, 반란과 귀환-제2편 (삼하 18-20)
 그리스도인이라면, 다윗의 고뇌의 부르짖음, 즉 “내 아들 압살롬아, 내 아들내 아들 압살롬아, 내가 너를 대신하여 죽었더면, 압살롬 내 아들아, 내 아들아”(18:33)라는 부르짖음은 그의 빗나간 자녀들을 대신하여 죽은 분의 모습을 곧 떠오르게 한다. 가족의 고리에서 나온 소용돌이치는 감정은 하나님의 생각과 마음은 어떠했을까를 탐구할 문을 우리에게 열어준다. 하나님이 인간의 육체를 입고 오셔서 아버지가 아들 안에서 죽는다는 것은 하나님께 무슨 의미가 있는가?—그리하여 하나님은 우리를 위하여,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셨다. (304.3)
 예수께서는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요 14:9)이라고 말씀하셨다. 그가 계시하신 아버지는 화가 잔뜩 나서 죄인의 죽음을 요구하는 분이 아니다. 죄가 이미 그것을 처리했다. 우리의 아버지는 희생을 준비하셔서 죄인들이 살도록 하셨다. “네 피가 네 머리로 돌아간다”는 구약의 말씀이 말하는 냉혹한 죄의 법은 그때나 지금이나 사실이며, 동일하게 무서운 것이다. 죄는 스스로 형벌을 내린다. 그 기별은 다윗과 그의 가족의 경우에서 너무나도 분명히 나타났다. (304.4)
 죄가 성문에 앉아서 숲속 돌무더기 아래 덮여 있는 아름다운 아들의 몸을 생각하며 우는 아비를 그 지경으로 몰아갔는데, 우리는 어떻게 할 방도가 있는가? 더 나은 길이 있어야 한다. 하나님께서 오셔서 우리 대신 죽으셔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이 다시 사셔야 한다. 그렇게 않으면, 우리는 숲속 어딘가에 돌무더기 속에 영원히 있어야 한다. (304.5)
 다윗과 압살롬의 이야기가 대답이 아니다. 그것은 단지 질문일 뿐이다. 그리고 이 질문 속에서 우리의 희망인 대답을 우리는 느끼기 시작한다. (305.1)
 내 개인적으로, 압살롬의 죽음과 다윗의 슬픔의 드라마는 너무 강렬하여, 예루살렘의 폐허를 비틀거리며 지나는 저자와 독자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었는지를 상상하기 힘들었다. 그러나 그들이 확실히 안 것 한 가지는, 모든 인간 왕은 연약한 인간이었다는 것이다. 이런 깨달음의 의미는 사무엘하 마지막 장에 기록된 다윗의 말 속에 가장 잘 반영되어 있다. 그것은 그의 격한 감정의 폭발이지만 이것은 여전히 위력을 발휘하는 말이다: “여호와께서는 긍휼이 크시니 우리가 여호와의 손에 빠지고 내가 사람의 손에 빠지지 않기를 원하노라”(24:14). (305.2)
 제 정신이 있는 사람이라면 다윗의 손에 빠지고 싶어하는 사람이 없으리라 생각한다. 그는 당신의 아내와, 생명을 취해갈 것이다. 누가 당신을 해롭게 하면, 그가 와서 도울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냥 화가 나서 당신을 내버리고 갈 수도 있다. 혹은 당신에게 거짓부렁을 할 수 있다. 그리고 다시 그는 당신의 여생과 그의 여생 동안 왕궁 그의 식탁에서 그대를 마시우고 먹일 수도 있을 것이다. 다윗이란 사람은 도대체 무슨 일을 할 것인지 예측할 수 없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그가 사람의 손에 빠지기보다는 하나님의 손에 빠지기를 원한다고 말했을 때 그는 위대한 진리를 말한 것이다. 그는 그가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았다. 그리고 그의 이야기를 들은 후, 우리도 역시 안다. (305.3)
 집으로 돌아감(19:9-20:26)
 압살롬의 죽음, 다윗의 눈물, 요압의 분노의 고조된 드라마 후에 이어지는 대사는 나라를 재건하는 더 일상적인 내용으로 돌아온다. 만일 다윗이 압살롬의 죽음의 소식을 들었을 때에 그의 태도가 부적당하고, 그의 감정이 제어할 수 없는 것이었다면, 이어지는 대사는 그의 정치가 비틀거림을 보여준다. 조각난 왕국의 잔해를 거두어들이는 데 노력을 기울이기보다는 자기의 지파 유다를 북방 지파들, 곧 이스라엘과 대항하게 함으로 분열을 가중시켰다. (305.4)
 폴친은 19:9b부터 20장 끝까지 이스라엘이란 용어는 “유다와 대조하여 북방 지파들을 언급하는 데 거의 늘” 사용되었다고 말한다(David, 181). 그것은 관점의 변동을 의미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압살롬의 반란을 이야기하는 장들에서(15:1-18:17), 폴친은 이스라엘 혹은 온 이스라엘(여러 가지 형태로)이 사용된 곳에서 “단지 북방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온 나라를 말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David, 181). (306.1)
 남과 북의 긴장이 압살롬이 사라지고 다윗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후에 복수처럼 부상한 것으로 분석된다. 압살롬이 “온 이스라엘”로부터 힘을 얻은 것처럼 보였지만, 불가해하게도 다윗은 유다에 의하여 다시 불러들여지기를 바랐다. 이스라엘이 그를 다시 불러 왕을 삼겠다는 소문이 들리자 그는 급히 유다의 장로들에게 소식을 보내었다. 그것은 치료의 호기를 놓치는 것이었다: “온 이스라엘이 왕을 궁으로 도로 모셔오자 하는 말이 왕께 들렸거늘 너희는 어찌하여 궁으로 모시는 일에 나중이 되느냐? 너희는 내 형제요 내 골육이어늘 어찌하여 왕을 도로 모셔 오는 일에 나중이 되리요 하셨다 하고”(19:11, 12). (306.2)
 다윗은 요압 대신에 아마사를 군대 장관으로 임명할 것이라는 말을 하였다. 다윗이 아마사에게 말하기 전에 요압에게 말했는가? 성경은 아무 말이 없다. 이미 굳어진 것은, 요압이 왕을 맞서는 것은 어려움이 없으나, 다윗이 요압을 맞서기 어렵다는 것이다—스루야의 아들들(특히 요압!)은 그에게 버거운 상대였다(3:39). 그러나 다윗이 이 소식을 요압에게 누설했는지 혹은 어떻게 전했는지 알 수 없지만, 아마사에 대한 그의 말은 감정이 섞이어 떨리고 있었다. “너는 내 골육이 아니냐? 네가 요압을 대신하여 항상 내 앞에서 군장이 되지 아니하면 하나님이 내게 벌 위에 벌을 내리시기를 바라노라”(19:13). (306.3)
 다윗은 유다에 관한 한 할 조치를 다 취하였다: “모든 유다 사람으로 마음을 일제히 돌리게 하였다”(14절). 그리하여 유다가 다윗을 불러 왕으로 돌아오게 하였다. 이스라엘은 다시 다른 무엇이 될 것이다. 그러나 유다는 적어도 다윗의 진영 안에 확고히 들어왔다. (307.1)
 우리는 유다로부터의 초청, 요압의 자리에 아마사를 앉힘으로 이어지는 정치, 정의, 복수의 복잡한 혼합을 겨우 추측할 뿐이다. 아마사는 압살롬의 군장이었다. 그런데 “요압을 대신하여 군장을 삼으니라”(17:25). 그러나 그의 가계는 뒤범벅이었다. 사무엘하 17:25이나 역대상 2:17을 칠십인역으로나 혹은 히브리어로 읽는 것에 따라 아마사의 아버지는 이스라엘 사람일 수도 있고, 이스르엘 사람 혹은 이스마엘 사람일 수도 있다. 대부분의 학자들은 이스마엘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역대기의 저자는 아마사의 어머니를 다윗의 누이 아비가일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의 아버지는 이스마엘 사람 여델(이새가 아니라)이다. 어쨌든 아마사와 요압은 사촌이며, 다윗의 조카들이다. 다윗은 아마사가 다윗의 군대장관이 되어야 하는 이유를 혈연에 호소하였다. (307.2)
 압살롬의 군장을 자기 군장으로 삼겠다고 한 것은 다윗에게는 용감무쌍한 행동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어쩌면 유다의 장로들과 타협한 내용의 요지였는지도 모른다. 요압이 압살롬을 죽였기 때문에 강등되었는가? 성경은 아무 말하지 않는다. (307.3)
 다윗의 예루살렘으로의 귀환이 쉽게 풀린 것이라고 대사는 말하지 않는다. 그는 초청을 받아야 했고, 이스라엘(19:10)과 다윗(11, 12절)의 말을 빌자면 “모셔들여야” 하였다. 다윗이 유다 장로들의 초청을 받은 후에, 그는 요단까지 가서, 유다 장로들이 와서 “그를 모셔서 요단을 건너기를” 기다렸다(15절). 예루살렘으로의 귀환은 그가 성을 빠져나올 때에 지났던 길을 다시 지나 돌아오는 의식적인 내용이 있었기 때문에, 요단을 건너는 행위는 특별히 중요한 것이었다—어떻게, 누구와, 언제? (307.4)
 길갈 역시 “귀환”의 여정에 있어서 특이하다. 유다의 장로들이 왕을 맞으러 가기 전에 거기 모였다(15절). 그곳은 다윗이 요단을 건넌 후 첫 기착지였다(40절).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길갈을 기억해야 할 좋은 이유들이 있다. 그곳은 이스라엘이 요단을 건넌 후 첫 야영지였다. 바로 그곳에 여호수아가 강에서 가져온 열두 돌로 무더기를 쌓은 곳이다(수 4:19, 20). 길갈은 또한 왕을 세우고, 무너뜨리는 장소이다. 사무엘은 사울의 “나라를 새롭게 하기” 위하여 백성들을 길갈로 모았다(삼상 11:14, 15). 그러나 길갈은 사울이 사무엘을 기다리는 데 실패함으로 나라를 잃게 된 장소이다(13:4-15). 그리고 길갈에서 사무엘은 아말렉을 멸하지 못한 실책 때문에 사울을 맞섰다: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 왕을 버려 이스라엘의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음이니다!”(삼상 15:26). 그리고 거기서 우리는 성경에서 가장 놀랄만한 말씀 중 하나를 듣게 된다: “사무엘이 길갈에서 여호와 앞에서 아각을 찍어 쪼개니라”(삼상 15:33, 「새개정표준역」). (307.5)
 그렇다. 길갈은 왕을 세우고, 무너뜨리는 장소이다. 기름을 붓고, 거절하고, 여호와 앞에서 그들을 쪼개는 장소이다.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에 다윗은 길갈에 가기 원하였다. (308.1)
 예루살렘으로의 귀환이 다윗의 떠남에 대한 의식적 재연의 외적 특징을 띄었지만, 종교적 색채는 거의 완전히 수그러들었다. 19:8b부터 20장 끝까지 “하나님”이 두 번, “주”가 두 번 언급되었다. 그리고 그 언급은 우연적이고, 지엽적인 것이었다. 다윗은 아마사에게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한다(19:13). 므비보셋이 (비꼬는 투로?) 다윗을 “하나님의 사자”와 비교한다(27절). 아비새는 시므이를 “여호와의 기름부은 자”를 저주한 죄로 처형하려고 했다(21절). 아벨의 지혜로운 여인은 요압에게 그가 왜 “여호와의 기업을 삼키려” 하는지 물었다(20:19). 달리는, 제사장도 선지자도 나타나지 않는다. 예물도, 희생도, 기도도, 찬양도 없다. 모든 것이 다 정치 싸움이다. 길갈을 방문하고, “요단을 건너는” 주제가 암시하는 풍성한 영적 내용의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모두가 정치판이다. (308.2)
 귀환의 여행길에서 왕은 한 번 더 시므이와 시바를 만나다. 그리고 므비보셋도. 각 사람은 사울의 집과 중요한 연관이 있다. 시므이와 시바는 왕을 기쁘게 하고, 왕이 원하는 것을 무엇이나 다 하려는 열심히 있었다(19:18). 특히 시므이는 사과의 말이 많았다. 그는 자기의 죄를 자복하고 왕께 그것을 “기억하지 말아 달라”(19절)고 부탁하였다. 사소하게 지나칠 수 없는 것은, 그가 1,000명의 베냐민 사람들을 데려왔다는 점이다. 그는 그가 “오늘 요셉의 온 족속 중 내가 먼저 내려와서 내 주 왕을 영접한 사람”이라는 것을 다윗에게 주지시켰다(20절). (308.3)
 그러나 아비새는 “여호와의 기름부음을 받은 자”를 저주한 대가를 즉시 치르려고 하였다. 비록 아비새는 스루야의 아들 중 다윗이 다룰 수 있는 사람이었지만, 왕은 “스루야의 아들들”이라고 복수형을 쓰면서 한 방 먹인다. 그들이 오늘날 그에게 “대적(사단)들이” 되었다고 선언한다(22절). “내가 오늘 이스라엘의 왕인 것을 내가 모르는가?” 다윗은 소리쳤다-아마도 너무 거세게 항변한 것 같다(22절). 맹세와 함께 “네가 죽지 아니 하리라”고 다윗은 시므이에게 말하였다(23절). (30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