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 중심의 성소론 제 4 부 예수님과 함께 지성소에서 (죄의 존재로부터의 자유) 18. 아론의 싹난 지팡이 (나의 새로운 삶은 모두 그리스도의 것임)
 아론의 지팡이는 이스라엘에게 애굽에서의 옛 삶과 광야에서의 방황, 그리고 약속된 땅에서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사는 새로운 삶을 끊임없이 상기시켜 주는 것이어야 하였다. 반역자들은 모세와 아론이 하나님의 백성을 기아와 갈증으로 죽음에 몰아넣고 있다고 비난하였다. 하지만 부활한 지팡이는 백성들이 희망을 품고 여행한다는 것을 보증하는 상징이었다(렘 29:11). 그것은 또 그 후 모든 시대에 걸쳐 하나님께서 안수하신 지도자들을 거절하는 모든 사람들의 경망성을 증거하는 것이었다. 순례 여행을 하던 때에 율법 판 위에 놓여진, 싹이 나고, 꽃이 피고, 열매를 맺은 그 지팡이는 하나님의 신실한 믿는 이들로 여호와의 능력을 기억하도록 도와주었다. (235.3)
 “이 놀라운 지팡이는 백성들에게 과거를 상기시키고자, 그들로 불평하지 못하게 하고자, 그리고 제사장 직분을 마땅하게 가지고 있는 자들에 의심을 품지 않도록 하게 하고자 백성들에게 자주 보여지도록 보전되었다”(1BC, 11 15; 4SG, 35, 36). 영원한 자의 보좌에 앉으신, 우리들의 살아 있고, 열매를 맺는 대제사장인 예수는 갈바리 사건이 꼭 있어야 하도록 만든 반역의 공포를 우리에게 상기시켜 주지만, 그분은 우리에게, 그 자신이 우리의 선구자로서 이미 우리의 보증인으로서 들어가신 빛나는 항구에 다달은다는 소망이 있도록 하신다. (235.4)
 이스라엘 백성이 마침내 약속된 땅의 접경에 이르렀을 때에 친 바위에서 40년간 흘러나온 그물은 그쳤고, 신뢰하지 않는 자들은 또다시 모세에 대하여 불평하였다. 하나님께서는 곧 바로 입법자에게 “여호와 앞에서” 하나님이 권위를 부여하여 준 것의 상징인 “지팡이를 취하여,” 그 바위가 계속 물을 내도록 하라고 명령하셨다(민 20:8~11). 그러나 격노한 지도자는 바위를 두 번 쳤다! 모세는 불순종하였기 때문에 가나안에 들어가는 특권을 상실하였다. 모세가 여호와의 상세한 명령을 부주의하게 무시한 것, 또 물을 나오게 하는 권위가 자신에게 있다고 생각한 것은 백성들의 관심을 여호와 하나님의 능력과 훌륭한 솜씨로부터 인간 수단에 돌리었다. (235.5)
 바위를 친 지팡이
 모세는 40년 전에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이 지팡이를 사용하여 반석을 쳐서 물을 내었다(출 17:5). (235.6)
 지팡이와 마찬 가지로 바위도 예수의 표상이었다(고전 10:4). 예수는 반석이시다. 그 자신이 반석이시다. 구세주께서는 하나님의 계획에서 한 번만 침을 당하도록 되어 있었다. 모세가 무모하게 반석을 두 번 쳤을 때에 그의 행위는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상징적 계획을 깨버렸다.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는 유혹을 받지 않기 위해서 이 지팡이가 발하는 경고의 목소리를 들어야 하였다(미 6:9). (236.1)
 아론의 부활한 지팡이의 기적을 맨 처음 본 모세에게 여호와께서는 그 지팡이를 법궤 안에 놓으라고 명령하셨다(민 17:9, 10). 예수께서는 부활하신 다음에 아버지에게 공식적으로 심사받기 위하여 하늘로 승천하시었고, 다시 이 땅에 내려오신 것을 사람들이 40일간 보았다. 두번째 승천 후에 그는 보좌의 영예로운 자리를 다시 차지하시었고, 10일 후인 오순절에 대제사장으로서 기름 부음을 받으시고 인류를 위한 중보 사역을 시작하시었다. (236.2)
 아론의 소생한 지팡이는 자신들이 “죽지 않는다”고 말한 “반역자들에 대한 표”로서 기억되며 하나님이 임명하신 제사장에 대하여 불평하고 싶어하는 모든 사람에게 억제책이었다. 그 시험이 시작할 때 13 지팡이는 모두 다 말라 죽어 있는 비슷한 모습이었다. 그 지팡이 중 한 지팡이의 부활은 만사를 다르게 만들었고, 아론의 제사장 직분을 비준하였다. 같은 방법으로 “영생의 능력”이 그리스도를 인간의 대제사장으로 세웠다. 오늘날 제자들은 새로 태어남으로써 하늘 아버지의 자녀, 또 “왕같은 제사장”이 된다. (236.3)
 측정의 표준인 지팡이
 아론의 지팡이는 그리스도 자신의 특별한 기능을 나타낸다. 흑암의 밤이 이 땅을 덮었을 때에 “야곱의 분깃[혹은 유산, 하나님의 이름 중의 하나]은 이 같지[거짓 신들] 아니하시니 그는 만물의 조성자요 이스라엘은 그 산업의 지파(지팡이)라. 그 이름은 만군의 여호와시니라”(렘 51:19). 예수를 따르는 이들이 예수와 하나가 될 때 “이스라엘은 그 산업의 지파(rod, 지팡이)다”(렘 10:16). 시편 기자는 “옛적부터 얻으시고 구속하사 주의 기업의 지파[지팡이]로 삼으신 주의 회중을 기억하시며 주의 거하신 시온산도 생각하소서”라고 기도하였다(시 74:2). 이 “지팡이”는 이 세상이 어떠한지를 분석하는 하나님의 측정 단위로 여겨지었다. 성경은 “야곱은 그 택하신 기업(lot)이로다”고 선언하였다(신 32:8, 9). 이 성경절에서 개역성경에는 “기업(lot),” 공동번역 성경에는 “몫(lot)”이라고 번역된 단어는 측쇄(測鎖)를 뜻하는데, 이것은 측량하고자 하는 땅의 면적을 계산하는데 사용된 것이다. 오늘날 조차도 직선상의 거리를 계산하는 단위로서 지팡이 몇 개라고 말하고 있다. “지극히 높으신 자가 나라들을 나누실 때에” 이 나라들과 자기 백성 이스라엘의 균형잡힌 안녕을 그 구획 기준으로 삼으시어 나누었다. 물론 예수는 “이새의 줄기에서 난”“싹(rod, 지팡이)”, 즉 한 가지로서(사 11:1), 최종적인 측정 표준이다. 여호와께서는 계시자 요한이 1844년의 “대 실망” 후에 하나님의 백성의 대표자로서 성소와 그 제단, 그리고 그 경배자들을 “재어야”만 한다고 권고하면서 요한에게 평가 단위로 사용하라고 “지팡이 같은 갈대”를 주었다(계 11:1). 우리는 이 표시에서 예수를 읽어야 하겠다. (236.4)
 예수는 실체로서, 성소와 그 안의 모든 것들이 그 실체에 의하여 연구되고 이해되어야만 한다. (237.1)
 지팡이와 생명나무
 부활한 지팡이라는 상징은 정금으로 된 살구나무 등대 모양과 비슷한 일곱 촛대에서 명료하게 볼 수 있다(출 25:31~35). 일곱 촛대의 양쪽 편에서 대응하여 짝을 이루는 그 세짝의 가지들은 싹과 꽃, 그리고 살구로 장식되었고, 그러기에 일곱 금 살구나무 지팡이를 세 번 나타낸다. 살구와 같은 정금 등대는 가지의 각 끝 쪽과 살구나무 중앙 줄기에 위치하였다. 살구나무 지팡이가 원래 부활 생명의 상징이었기에 촛대의 산 가지는 우리에게 “그의 생명이 사람들의 빛”(요 1:4)인 부활한 자 중의 첫번째 사람과, 그분과 함께 진리의 빛을 떠받 치는 거듭난 모든 제자들을 상기시켜 준다. (237.2)
 이번 장을 요약하여 보자. 부활한 가지는 첫째로 생명을 맺는, 빛을 가진, 열매를 맺는 그리스도의 경험 전부를 나타내며, 하늘이 임명한 대제사장의 신임장을 확증하였다. 제자들이 주님과 하나가 될 때 부활한 지팡이는 또 제자들이 자라나야할 이상형을 보여 준다. 마음속으로 이스라엘이 방황하던 그 당시에 위로하고 지시하고, 승리로 이끌고 하나님이 임명하신 지도자들을 옹호하고, 그 최종 안식처인 전능자의 보좌에로 다달으는 지팡이를 생각해보자. 지팡이가 전하여 주는 메시지는 메시아의 임재로 타오르고, 메시야가 우리를 위하여 밝게 비추어 주는 길을 가리킨다. 그리고 오늘날 보좌에서 나는 목소리는 전 시대에 걸쳐서 “너희는 지팡이의 말을 들을 지어다!”(私譯, 미 6:9)고 외친다(개역성경에는 “너희는 매를 순히 받고”로 번역되었다). (23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