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 중심의 성소론 제 4 부 예수님과 함께 지성소에서 (죄의 존재로부터의 자유) 18. 아론의 싹난 지팡이 (나의 새로운 삶은 모두 그리스도의 것임)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하여 주신 지 2개월도 채 안되어 이스라엘 백성 대부분은 하나님께 등을 돌리고 금송아지를 경배하였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지도자 모세가 시내산에서 여호와로부터 십계명을 받고 있을 때 이런 일을 행하였다. 이미 살펴보았듯이 십계명에는 하나님께서 인간들과 맺기를 바라신 영원한 언약의 조항들, 이상적인 모든 종류의 관계들에 대한 하나님의 정의들, 그리고 그와는 대조되는 모든 종류의 죄가 기록되어 있었다. 모세는 이 때에 아스라엘이 하나님께 경배드리고, 자신들의 죄가 정결함을 입을 성소에 관한 지침을 받았다. (229.1)
 레위 지파가 이 위기의 순간에 여호와께 신실하였던 유일한 지파이었기에 하나님께서는 레위 지파에게 성막의 봉사를 맡기셨다. 여호와께서는 이 레위 지파에서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제사장직이라는 귀한 영예를 주시었다. 이들을 임명한 일은 후에 또 다른 반역의 촉진 요인이 되었다. (229.2)
 레위 지파의 두령인 고라는 그의 마음 속에 아론에 대한 질투가 생기도록 놔 두었다. 하나님의 명령에 불만을 품고 고라는 모든 레위 지파 사람들이 제사장으로 임명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의 친구인 르우벤 지파의 족장인 다단과 아비람도 곧 바로 덧붙여 주장하기를, 각 족속의 장자가 일찍부터 제사장이어 왔기에, 장자인 지파의 지도자인 그들도 이스라엘 전체의 제사장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들은 여호와께서 직접 “이스라엘은 내 아들 내 장자라”(출 4:22; 비교 민 16:1~3, 8, 9)고 선언하신 것을 사람들에게 상기시키면서 레위 지파가 아닌 르우벤 지파가 성소 봉사를 위하여 택함을 받아야 된다고 강력하게 주장하였다. (229.3)
 여러 불평 분자들의 단합
 각자 나름대로 이유를 갖고 있던 이 분노한 세 불평 분자들은 모세와 아론에 대항하여 세를 형성했는데, 곧 “회중에 유명한” 250명의 족장이 하나님께서 임명한 지도자와의 이미 짜여진 대립에 참가하고자 모여 들었다(민 16:2). 성경은 그들이 “진에서” 하나님이 부여하신 권위를 인하여 “모세를” 질투하였고, 하늘이 아론에게 수여한 직무로 인하여 “여호와의 성도 아론을 질투하”였다고 말한다(시 106:16). 이견자(異見者)들은 “너희가 분수에 지나도다 회중이 다 각각 거룩하고 여호와께서도 그들 중에 계시거늘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의 총회 위에 스스로 높이느뇨”(민 16:3)라고 소리치면서 하나님이 이 문제에 관하여 내리신 결정을 무시하였다. (229.4)
 위기가 최고조에 달하였을 때에 여호와께서 갑작스럽게 간섭하시어 모세에게 시험을 해보라고 명하셨다. 250명의 족장 모두에게 그들이 선택한 향을 분향하기 위하여 그들이 켠 불이 들어 있는 청동 향로(香爐)를(비교 레 10:1, 2) 각기 가져오라고 하였다(민 16:5~7, 16~18; 시 106:16~21; 부조와 선지자, 393~405를 보라). 이스라엘 백성 모두가 받은 하나님의 예식법에는 오직 기름부음을 받은 제사장들만 하나님의 존전에 나아와, 하나님께서 설계하신 금 향로를 가지고, 하나님께서 켠 불에(출 30:7, 8; 대하 26:16~18; 민 16:18, 19) 하나님의 비법에 따라 만들어진 향을 드릴 수 있다고 분명하게 명시되어 있다. 이 족장들이 여호와의 이 요구들을 알고 있었다는 것은 아론이 제사장으로 역할을 하는 것에 대하여 이들이 품었던 질투를 역으로 보여 준다. 그런데 이 아론은 같은 여호와의 법에 의하여 권위를 받은 자이다. 그러나 250명의 족장들은 고압적인 자세로 도전을 과시하면서 나아갔고(민 16:17, 18, 35), 하나님의 보복이 즉각적으로 뒤따랐다. 하늘에서 내려온 불은 이들을 순식간에 태워 버렸다(시 106:17, 18). 고라와 다단, 그리고 아비람은 갈라진 땅속에 파묻혔으나 그들의 죄없는 자녀들은 안전하였다(참조, 민 26:11). 여호와께서는 이 분명한 심판으로써 자신의 백성의 분명한 지도자로서의 모세의 위치와 권위를 세워주셨다(부조와 선지자, 396~403). (230.1)
 성소 봉사의 기초인 성품
 고라와 그의 동료들은 성소에서 봉사할 수 있는 선결 자격이 거룩한 삶이지 족보나 지위가 아님을 잊어버렸다. 여호와께서는 성경의 처음부터 끝까지, 내재하시는 성령만이 삶을 거룩하게 하실 수 있다고 반복하여 가르치셨다. 불타는 가시나무 근처가 거룩하였던 유일한 이유는 하나님이 그 곳에 계셨기 때문이다. 이것은 성소와 성전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쉐키나가 성소나 성전에서 떠났을 때에 “여호와의 집”도 황폐하게 되었다(마 23:39). 인류의 빛이고 생명이신 그리스도는 제자들 마음속에 내재하는 자신의 임재로써 제자들을 거룩하게 하신다. 그리스도의 성령에 의하여 기름부음을 받고, 그리스도의 의를 입은 다음에야만 그리스도를 닮아 자랄 수 있다. 아론이 비록 처음에는 연약하고 타협적이었지만 여호와께서는 아론의 깊은 회개와 자기 삶을 바로잡으려는 결심에 깃든 의지력을 보시었기에 제사장 직무에로 부르신 것이었다.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이 봉사하라고 부른 이들을 거룩하게 하시고 능력으로 입히신다.(살전 5:24). (230.2)
 이 족장들의 반역이 평정되고 범죄자들이 제거되었을 때에도 어떤 사람들은 아론의 업무에 대하여 의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는 자신이 직접 아론을 임명하였다는 것을 확실히 하기 위하여 또 다른 시험을 하셨다. 각 지파의 대표 족장에게 자기 지파 이름이 기록된, 직무 지팡이를 제출하라는 명이 내렸다. 이 지팡이들은 성막 안 “여호와 앞에” 놔 둘 것이었는데, “그 중에 아론의 지팡이”도 있었다(민 17:6). 열두 지파의 지팡이 가운데서 열세번째인 대제사장의 지팡이는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를 다스”릴 분인(눅 22:30), 열두 제자 중에 계신 열 세번째인 우리의 대제사장을 예견한다. (230.3)
 하나님께서는 시험의 목적을 설명하여 주셨다. “싹이 나”야만 하는 지팡이의 주인이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제사장이었다. 하룻밤 사이에 아론의 지팡이는 싹이 난 정도가 아니라 아예 꽃이 피어 열매까지 열렸다(민 17:1~9). 그 지팡이는, 소생시키는 생명이 그 안에 있는 하나님의 능력의 작용을 입증할 때까지 다른 지팡이와 똑같았었다. 그 지팡이가 맺은 열매는 대제사장의 봉사의 목적을 가리킨다. “이 이적이 제사장직에 관한 문제를 유효하게 해결하였”고 (부조와 선지자, 403), 아론은 그 때부터 하늘의 선택으로서 인정되었다. 이 놀라운 지팡이의 역사를 지금부터 더듬어 보자. (231.1)
 애굽에서의 모세의 지팡이
 출애굽이라는 사건에서 절정에 달한 일련의 사건들의 시작 때에 모세는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임명되었다. 여호와께서는 “구원자가 비천한 목자로서 손에 지팡이만을 가지고 갈 것이나 하나님께서 그 지팡이를 당신의 권능의 상징으로 삼으시”도록 결정하시었다(부조와 선지자, 251). 그렇지만, 모세에게는 “목자의 지팡이 대신에 권세의 지팡이가 주어졌는데 그것은 그가 하나님께서 거두 실 때까지 놓을 수 없었다”(부조와 선지자, 396). 여호와께서는 모세에게 여호와 자신이 이 지팡이를 통하여 애굽에서 능력을 보여 주실 것을 약속하셨다. 때가 되면 지팡이는 모세가 왕이었기에(신 33:4, 5) 왕의 홀이 될 것이었다. 모세가 선지자이었기 때문에(신 18:15; 34:10) 그 지팡이는 또 선지자의 지팡이가 될 것이었다. 그 지팡이는 모세가 목자—제사장이었기 때문에(시 99:6; 출 24:5, 6) 목자—제사장의, 손잡이가 구부러진 지팡이가 될 것이었다. 이 지팡이는 모형 너머에 계신, 이 모든 역할에서 모세보다 훨씬 더 크신 역할을 하는 분이 누구인지를 밝혀 준다. (231.2)
 모세는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자신의 막대기를 사용하여 “함의 땅에서” 많은 이적을 행하였고, 이 막대기가 상징하는 초자연적 능력은 거만한 바로의 왕국을 초토화시켜 버렸다. “하나님의 지팡이”라는 경구(출 4:20; 17:5~9)가 붙어져 존중함을 받은 하나님의 권위의 이 직장(職杖)을 모세는 후에 형인 대제사장 아론에게 주었다. 이 지팡이는 대제사장의 대표물로서 성소에 결국 안치(安置)되었을 때에 더 큰 능력을 입어 소생하였다. 인류 역사에 다시는 직무 지팡이가 없을 것이다! 이 소생한 가지가 제시하는 신임서를 주의 깊게 살펴보라. 그 손가락으로 가지(the Branch)이신 부활하신 구속자를 가리키고 있다. (231.3)
 다시 살아난 아론의 지팡이
 아론의 “지팡이”“움이 돋고, 순이 나고 꽃이 피어서 살구 열매가 열리”었다(민 17:8; 이것은 개역성경에는 ‘살구 열매’로, 공동번역과 표준 새번역 성경에는 ‘감복숭아 열매’로 번역되었다. 편도<扁桃, Almond fruit>로 칭할 수 있다). 한 번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 따겠느냐”고 예리한 질문을 제기하시었다(마 7:16). 이 질문이 시사하는 점은 지팡이가 맺은 열매 경우에도 적용될 수 있다. 살구 견과는 이 광야의 메마른 가지가 살구나무에서 잘려진 것이었음을 입증하여 주었다. 말하고자 하는 교훈은 분명하다. (231.4)
 맺는 열매의 다양성은 그 나무의 성질에 달려있다. (232.1)
 고라와 다단, 그리고 아비람의 냉소적인 시기에 왜곡되고, 노한 반역에 의하여 말라 버린 삶은 “의의 평화스러운 열매”를 맺을 수 없다. 그들은 이스라엘의 모든 백성들이 거룩하다고 주장하였으며, 족보를 들먹이며 자신들이 제사장의 일을 할 자격이 있다고 주장하였다. 하지만 그들이 실상 탐하였던 것은 제사장직에 관련된 자리, 권력, 명예이었다. 열매맺는 지팡이라는 행위화된 비유를 통하여 여호와께서는 오직 자신의 성령이 불어넣어진 종들만이 성직자의 봉사의 열매를 맺을 수 있는 자격이 있음을 강조하셨다. (232.2)
 “소생한” 살구나무 지팡이
 살구나무가 봄에 첫번째로 꽃을 피우기 때문에,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 나무를 “감시자,” “깨우는 것” 또는 “서두르게 하는 것”으로 불렀다(비교 렘 1:11, 12). 하나님께서는 이 나무의 히브리어 명칭, 자신이 자기 백성의 “불침번서는 파숫군”으로서 그들을 지켜 주기 위하여 “서두른다”는 것을 예증하는 동음 이의(同音異語)어로서 사용하시었다. 조숙한 살구나무 열매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들 가운데서의 “첫번째 열매”인, 무덤에서 미래의 어느 날 깨어날 자들의 선구자인 예수를 가리킨다(시 1:3). 예수는 하늘 정부를 방어하기 위하여, 자신의 성도들을 옹호하기 위하여, 자신의 교회의 구원을 위하여, 그리고 반대자들의 입을 다물게 하기 위하여 이 일을 하셨다. (232.3)
 실제로 싹이 트는 것은 가을이지만, 우리는 봄을 싹이 트는 계절로서 생각 한다. 싹이 트는 과정은 늙은 잎사귀를 밀어내어 버린다. 그러고 나서 모든 잔가지 끝에서 이 바싹 마른 생명의 묶음은 추운 겨울을 지내면서 봄에 필 준비를 하며 기다린다. 너무나 약하게 보이지만 그 안에는 그 나무의 존재 그 자체, 그 열매, 그 미래가 있다. 소생의 전조인 싹은 겨울의 죽음의 잠을 잔 후에 성장이 있을 것을 약속하고, 소생을 제공하여 준다. 싹은 또 예수 안과 우리 안의 유아기와 유년기를 나타낸다. (23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