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한 본문들은 우리로 하여금 대쟁투의 심각성에 대해 가늠해 보게 한다. 그것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지성적 존재들 가운데 가장 높은 계층에서 시작되었다-하늘의 천사들이다. 그리고 그것은 한 고상한 천사 덮는 그룹 곧 하나님의 임재 앞에 서 있던 이로부터 시작되었다. 이 도전은 하나님 자신의 보좌가 있는 공간으로부터 기원했다(참조 죄론 III. A). (1103.2)
 2. 이슈들
 반역이 전력을 다해 당장 일어났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그것은 발전되는 데 시간이 걸렸을 것이다. 또한 그것을 정당화할 만한 확실한 명분 없이는 그 분쟁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완벽한 우주 안에서, 아무것도 부족한 것이 없는 곳에서, 창조된 의존적 존재가 어떻게 스스로 계신 창조주의 보좌를 품을 소원을 갖게 되었는지는 불가사의로 남아 있다. 그것은 자연적인 현상 가운데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1103.3)
 이슈들은 무엇이었는가? 단 한 개의 성경 본문도 루시퍼가 교만으로 눈이 어두워져 하나님의 특권들을 찬탈하기 위해 제기한 구체적인 질문들을 직접적으로 서술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여러 성경 구절을 통해 이슈들이 무엇이었는지에 대해 충분히 추론할 수 있다. (1103.4)
 a. 하나님의 율법
 사도 요한은 죄의 본질에 대해 가장 단순한 정의를 내린다. “죄를 짓는 자마다 불법을 행하나니 죄는 불법이라”(요일 3:4). 편지 자체에서 분명한 것은 사도가 도덕법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는 점이다. 창조주는 이것의 지배 아래에 지성적 존재들을 두셨다(15절; 5:21과 비교하라). (1103.5)
 그러나 죄는 단지 불법이라는 것보다 더 심각한 것이다. 성경은 도덕법의 원칙들과 법칙들을(지성적 창조물들에게 어떻게 적용되든지) 창조주 고유의 뜻과 일치시킨다. 시편 기자는 메시아적 구절에서 이렇게 노래한다.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의 뜻 행하기를 즐기오니 주의 법이 나의 심중에 있나이다 하였나이다”(시 40:8). 죄는 그러므로 창조주의 “뜻” 또는 존재에 대한 고의적인 거스름 또는 반역으로 이해된다. 죄인들이 도덕법을 고의적으로 범할 때, 그들은 다름 아닌 창조주를 깔보며 경멸하는 것이다. (1103.6)
 성경이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라”고 했을 때(요일 3:8), 우리는 루시퍼가 천사들과 같은 거룩한 존재들이 하나님의 도덕적 명령들에 복종해야 하는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고 볼 여지가 충분하다. (1103.7)
 그는 하나님의 율법을 천사들의 자유에 대한 제한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사도의 진술은 루시퍼가 결국 신의 주권을 거부하고, 그의 창조주의 정부에 대한 충성의 멍에를 벗어버리고, 그분의 드러난 명령을 공개적으로 훼손했다는 것을 말해 준다. (1103.8)
 b. 하나님의 품성
 입법자의 드러난 뜻 뒤에는 그의 품성이 있다 하나님의 율법에 의문을 제기함으로 루시퍼는 창조주의 품성에 대한 의문을 제기했다. 루시퍼가 분명 주장하였을 것처럼, 천사들에게 말해진 도덕법이 불필요하며 개인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이었다면 창조주가 지성적 창조물들을 그 지침들에 복종하게 두실 때 다른 의도가 있으셨다는 뜻이 된다. 그러므로 그는 천사들에게 창조주의 의도는 좋은 것이 아니었다고 주장하는 것이 충분히 가능하다. 혹시 하나님은 창조물들을 맹목적으로 복종시키는 억압적 통치를 행하심으로 권력의 기분을 즐기셨을 수도 있다고 하는 것이다. (1103.9)
 예수님이 이 반역자에 대해 하시는 설명은 이 논의와 적절한 관계가 있는데, 그 이유는 그분이 루시퍼가 신적 품성을 그릇 나타내었다는 것을 암시하시기 때문이다.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대로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그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요 8:44). 그리스도는 루시퍼를 살인과 거짓말, 도덕법을 범하는 자로 고소한다. 그러나 그가 하늘에서의 퇴출 전 누구를 살해하거나 어떤 거짓말을 한 일이 있는가? (1104.1)
 예수님과 사도 요한이 모두 “분 냄”“미움”을 마음에 도사린 살인의 동기로 정의하기 때문에, 주님은 분명히 루시퍼가 품게 되었으며 그의 행동들을 부추긴 이상한 감정들에 대해 인유하고 계신 것이다. 예수님의 진술에 비추어 볼 때 우리는 루시퍼가 신성에 대한 내면의 미움을 키우면서 하늘을 돌아다니며 다른 천사들에게 하나님에 대한 오해를 퍼뜨렸다고 추론할 수 있다. 하나님의 품성과 정부에 대한 교묘한 거짓말을 통해서만 그는 많은 무리의 천사들로 하여금 그들의 운명을 그와 함께 던지도록 하는 일에 성공했을 것이다. (1104.2)
 c. 창조물의 자주성
 처음 두 이슈들이 그의 창조주로부터 독립하고자 하는 루시퍼의 진정한 욕망을 숨겼다. 하나님은 생명의 시여자이시며 유지자이시다. 따라서 모든 창조된 존재들은 그들의 생명을 그분께 의존한다. 하나님으로부터 독립하고자 하는 소원과 시도는 창조물의 첫째가는 죄이며 또한 복종 및 순종의 멍에를 벗어버리기 위해 신성의 정부에 대해 도전하는 반역의 핵심 사안이다. (1104.3)
 루시퍼(첫 번째 범죄자)는 하나님의 주권으로부터 벗어나기를 원했다. 이사야의 예언은 이 점을 반영한다. “네가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 별 위에 내 자리를 높이리라 내가 북극 집회의 산 위에 앉으리라 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가 지극히 높은 이와 같아지리라 하는도다”(사 14:13, 14). 루시퍼는 다섯 번씩이나 자랑하기를, “내가”∙∙∙할 것이라고 한다. 자아가 그의 생각의 중심이 되었으며, 창조주가 창조 시에 그에게 부여했던 자아 희생적 사랑의 자연적 태도를 잃어버리게 했다. 루시퍼는 그 자신의 신이 되기를 원했다. 이것은 자주권에 대한 이슈이다. 반역하는 피조물은 “하나님, 난 당신이 필요 없다. 난 내 삶을 스스로 살기에 충분한 능력이 있다.”라고 말한다. (1104.4)
 d. 하나님의 공의와 자비
 루시퍼는 분명 그가 신성의 품성 안에서 내면의 투쟁이 있는 것을 보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성경은 사탄을 “우리 형제들을 참소하던 자 곧 우리 하나님 앞에서 밤낮 참소하던 자”로 묘사한다(계 12:10; 참조 슥 3:1-5). 우리는사탄이 그들은그자신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법을 범한 자들이며 하늘이 그들에게 은혜와 용서를 베풀 권리가 없다고 주장한다고 짐작할 수 있다. 이슈는 어떻게 창조주가 공의로우시며 동시에 자비로우실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드러난 뜻에 순종하는 것이 지성적 창조물들의 행복에 필수불가결 하다면, 루시퍼는 하나님은 그것을 범하는 죄인들에게만 공의를 행하실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할 것이다. 범법자에게 자비를 보이는 것은 공평하지 못하다. 공의와 자비는 서로 공존할 수 없는 태도라고 루시퍼는 강하게 주장할 것이다. (1104.5)
 공의와 자비라는 신성의 특성들을 행사하는 것에 대한 이슈는 구속의 계획의 타당성에 의구심을 던지는 것임을 바로 알 수 있다. 루시퍼의 반역 시에 이 계획은 지성적 창조물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것이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마음속에 “비밀”로 닫혀 있었다(롬 16:25, 26; 참조 고전 2:7). (1105.1)
 바로 이 이슈는 죄와 반역이 하나님께 얼마나 심각한 문제를 일으키는지 이해할 수 있게 한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지성적 존재들에 대한 신적인 사랑과 자비는 변하거나 줄어들지 않았다. 그러나 어떻게 거룩하신 하나님이 반역하는 죄인(그가 회심하든 회심하지 않든지)에게 자비를 베푸시면서 동시에 그분 자신의 본성에 대해 공정하고 진실할 수 있는가? 하늘의 구속의 계획이 그 해답을 제시할 것이다. (110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