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 중심의 성소론 제 4 부 예수님과 함께 지성소에서 (죄의 존재로부터의 자유) 17. 사랑의 법칙 (나의 모든 애정은 그리스도의 것임)
 VII. “간음하지 말지니라”
 하나님께서 결혼을 고안하셨다. 결혼은 인간에게 가장 밀접한 관계를 나타내니, 이것은 창조자가 자신과 자신의 지상 피조물 사이에 존재하기를 바라는 밀접한 관계이다. 하나님께서 자신과 자신의 지상 신부 사이에 어떤 것이나 어떤 사람도 끼여들지 않기를 바라듯이, 하나님께서는 어떤 사물이나 어떤 사람도 자신이 세운 남편과 아내 사이의 관계를 깨지 않기를 바란다. (225.5)
 결혼 관계는 인간이 하나님과 계속하여 하나된다는 것을 설명하여 준다. 만일 남편과 아내가 자신들이 자유롭게 선택하여 들어선 관계를 깬다면 그들이 보이지 않은 이를 어떻게 사랑할 수 있겠는가? (225.6)
 성경이 제시하는 종교는 인간의 모든 면에 철저히 영향을 미쳐야만 한다. (226.1)
 인간의 생명을 보호하는 계명 다음에 인간 관계 중에서 최고의 관계를 다루는 계명이 나온다. “하나님의 견해에 의하면 사회의 첫번째 단위는 가족이다. 하나님의 목적에 있어서 가족의 유래는 남자와 여자의 신성한 연합이다. 인간 삶의 첫번째 원칙은 인간의 삶과 하나님과의 관계이다. 두번째는 인간끼리의 상호 연관성이다. 이 차후의 모든 관계의 모형과 기원이 될 가족이 이 신성한 영역 안에 있다. 그러므로 모든 후속 관계들의 토대인 이 관계를 어떠한 형태의 공격에 대항하여 방심하지 않고 지키는 것보다 사회 질서 유지에 더 본질적인 것은 없다”(G. Campbell Morgan, op. cit., 76, 77). (226.2)
 육체적인 간음은 영적인 간음의 상징이다(약 4:4; 렘 2:31~37; 3:8; 겔 16:15ff; 호 3:1~5; 계 17:1~18). 성경은 그리스도를 교회의 사랑스러운 남편으로서 묘사하였다(계 2:1~4; 21:1~4; 사 54:5; 62:4, 5). 간음은 육체적인 삶—정신, 몸, 건강—을 좀먹어 들어가고, 암과 같이 영혼을 부식하여 들어간다. 간음은 치료가 힘든 질병에 걸리게 하며, 죄라는 문둥병의 표상이다. 영적인 간음은 육적인 간음이 몸에 전염적이듯이 정신상에 질병이 생기게 한다(겔 16:15~59). 일곱째 계명은 사실상 이렇게 말하고 있다. 창조자가 남자와 여자 간에 세워 놓으신 이상적인 관계의 순결성을 섞거나 혼합하지 마라. 결혼 언약을 존중하는 것은 동료 피조물 간의 언약도 존중하게 하여 준다. (226.3)
 VIII. “도적질하지 말라”
 하나님은 인간에게 소유권을 주셨다. 인간은 자기 주위의 물질 세계를 만들지 않았다. 인간은 물질 세계의 모든 자원을 지키라고 임명된 청지기이고, 죽을 때 아무것도 가지고 갈 수 없다. 도적질은 우리에게 속하지 않은 기만이나 힘으로 강탈하는 행위이다. “공사(公私)간의 죄가 이 금령 안에 포함되어 있다. 여덟째 계명은 유괴와 노예 매매를 정죄하고 정복을 위한 전쟁을 금한다. 이 계명은 절도와 강도를 정죄한다. 또 일상 업무의 가장 사소한 일에서도 엄격한 성실을 요구한다. 이 계명은 상거래에 있어서 속이는 것을 금하고 당연한 부채와 임금의 지불을 요구한다. 남의 무지와 연약과 불운을 이용하여 자신의 이익을 취하려 하는 모든 행위는 하늘 책에 사기로 기록된다고 이 계명은 선언한다”(부조와 선지자, 309). 이 계명에는 타인의 시간, 평판, 품성, 혹은 소유를 취하거나 헛되이 하는 것도 포함된다. 이 계명은 각 개인들에게 창조자께서 그 사람에게 위탁하신 소유를 사용할 신성한 자유를 준다. 이 계명은 모든 사람이 자신이 소유한 것에 대하여 전적으로 책임을 질 것과 이웃의 소유를 존중할 것을 요구한다. (226.4)
 하나님께서 직접 양도할 수 없는 이 소유 관계를 고안하셨고, 어떤 사람도 그것을 깨뜨릴 권리를 가지고 있지 않다. 인간은 자기 이웃이 창조자가 맡긴 것에 대한 청지기 직분을 유지하도록 도와주어야만 한다. 이 계명은 각 사람이 본인의 먹고 사는 것을 위하여 일을 하여야만 하고, 복없는 사람들에게 자기가 얻은 하사품을 나누어 주어야 한다는 것을 시사한다(엡 4:28). 이 계명은 그리스도는 주고, 사단은 가로챈다는 원칙을 강조한다. (226.5)
 타인들을 존중심과 정직성을 가지고 대하면 절도의 소지는 생기지도 않는다. (227.1)
 IX. “거짓 증거하지 말지니라”
 아홉번째 계명에는 모든 종류의 의사 소통이 포함된다. 인간은 의사 소통을 하면서 표현의 자유를 누리고, 또 품성을 드러내 보인다. 진실성은 하나님의 한 속성이지만, 루스벨은 처음부터 거짓말 장이이고 모든 거짓의 원천이다. 진실은 구원하지만, 거짓은 파괴한다. 교만심과 소심함은 거짓의 토대이지만, 사랑과 이해는 진실의 기초이다. 우리는 매일의 삶을 살아가면서 만나는 모든 사람과 여러 다른 방법을 통하여 의사 소통을 한다. 신체나 구두(口頭), 혹은 서면을 통한 모든 말은 명료하게 진실되어야만 한다. 하나님은 진리이고 그분의 말씀은 진리이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자녀들과 의사 소통하듯이 인간들도 동료 인간들과 의사 소통을 하여야 한다. (227.2)
 “이 계명보다 인간의 재간이 교묘하게 발뺌을 더한 계명은 없다”(Expositor’s Bible, “Exodus”, 321). (227.3)
 “속이려는 의도가 거짓의 구성 요소이다. 눈짓, 손짓, 얼굴 표정으로도 말로써 하는 것과 같이 효과적으로 거짓이 표현될지도 모른다. 모든 고의적 과장, 그릇되거나 과장된 인상을 전하려고 계획된 시사(示)나 암시, 비록 사실일지라도 오해하게 하는 방법으로 말하는 것은 거짓이다. 이 훈계는 잘못 전하기나 나쁘게 추측하기로, 비방이나 고자질로, 이웃의 평판을 손상시키려는 모든 행위를 금한다. 고의적으로 사실을 은폐하여 타인에게 손해를 입히는 일도 아홉째 계명의 위반이다”(부조와 선지자, 309). 진실성은 거짓과 비방을 없애 버린다. (227.4)
 X. “탐내지 말지니라”
 이 계명은 사고(思考)의 근본을 다룬다. 이 계명은 “모든 죄의 근절을 위하여 죄 행위가 생겨 나오는, 이기적 욕망을 금한다”(부조와 선지자, 309). 이 계명은 사람이 동료 인간의 소유를 어떻게 대하여야 하는가를 다룬다. 한 사람이 스스로 타인의 평판, 소유, 가족, 위치나 그 어떤 것을 갈망하도록 놔둔다면 그 사람의 탐욕은, 곪아가는 암과 같이 그 사람의 영혼을 삼켜 먹을 것이다. 탐욕은 루스벨을 파멸에 이르고, 하늘에 균열을 가져오고, 결국에는 하나님의 아들을 죽인 죄이었다. 탐욕은 오늘날에도 우리를 유린한다. (227.5)
 하나님을 따르는 자들은 하나님의 약속의 상속자로서 언젠가는 여호와께 합당한 시간과 장소, 그리고 방법으로 “만물을 물려받”을 것이다. 우리들에게 속하지 않은 사물들에 대한 욕망을 마음 속에 가지면 결국은 그것이 우리를 멸망시킬 것이다. 예수께서는 사단의 탐욕과 정 반대의 정신을 보여 주셨다. 그분은 자기를 비우시는 거룩한 섬김을 보여 주셨다(빌 2:5~9). 루스벨의 탐욕스러운 정신은 자신의 것이 아닌 것, 자신의 것이 될 수 없는 것을 잡았다. 예수의 정신은 자신이 가진 것을 모두 다 주었다. 다른 이들을 풍부하게 하여 주는 기쁨은 주는 자를 100배 풍부하게 해준다. 욕심 없는 생각은 욕심 있는 행동을 없애 버린다. (227.6)
 십계명의 둘째 판은 인간이 동료 인간과 가질 수 있는 모든 관계를 다룬다. 이 여섯 교훈은 두번째 큰 계명, 즉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막 12:31)는 계명의 의미를 가르쳐 준다. 이것들은 부모와 자녀 관계, 남자와 여자 관계, 인간과 인간 관계를 망라하고, 행동과 말, 그리고 생각을 다룬다. (227.7)
 그러므로 십계명 전체는 하나님과 인간을 사랑하라는 쌍둥이 계명에 기인한 것이고, 그 결과이다. 구약성경은 이웃에 대한 우리의 사랑을 재는 규범을 제시한다. 그 규범이란 우리가 우리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이다. 예수께서는 이 세상에 오셔서 이 동기를 부여하셨다. 그 분은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요 13:34; 15:12) 다른 사람을 사랑하라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갈바리라는 렌즈를 통하여 아가페를 연구하여야만 한다. 더 큰 사랑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228.1)
 인간이 맺을 수 있는 모든 관계를 다루는 십계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