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 중심의 성소론 제 4 부 예수님과 함께 지성소에서 (죄의 존재로부터의 자유) 17. 사랑의 법칙 (나의 모든 애정은 그리스도의 것임)
 “하나님은 사랑이시다”(요일 4:8). 사랑은 하나님에게서 발원된 원칙이고, 이상적인 관계를 고안하고, 만들고, 유지하는 과정에서 드러내 보여졌다. 우리의 상상력을 사용하여 우주에 있는 여러 종류의 관계들을 생각해 보자. (217.1)
 화학의 경우 여러 다른 원소들 사이에는 수백만개의 관계들이 있을 것이다. 한 원소의 분자들을 다른 한 원소나 다른 여러 원소들의 분자들과 결합함으로써 한 무기(無機)세계의 물질 전체가 만들어진다. 우리는 또 생물의 유기 영역 안에 존재하는 모든 관계에 관하여서도 생각할 수 있다. 누가 이 관계들이 몇 개나 되는지 추측하는 모험을 하겠는가? (217.2)
 이런 종류의 생각은 천체 물리학과 대기권 분야, 즉 바람, 천체가 상호간에, 열, 빛, 자력, 수학, 공학 등에 미치는 힘에도 적용될 수 있다. 이밖에도 부지기수로 많으니, 얼마나 많은 관계들이 이 대기권에 존재할까? (217.3)
 생물간에도 셀 수 없는 관계가 존재한다. 어느 것도 스스로 존재하지 못한다. 우리는 인간으로서 이 큰 생물권의 부분이다. 우리는 다른 인간들과 또 모든 종류의 생물들—동물, 새, 곤충, 자라는 식물과 나무, 호흡하는 공기, 마시는 물, 경작하는 땅, 둘러싸고 있는 바다—과 함께 나란히 살아간다. 이 모든 관계들은 창조자가 태초부터 만들어 놓으신 것이다. 이 관계들은 그 관계가 지향하는 이상적인 상태에 있을 때 창조자의 품성과 “하나님은 사랑이시다”는 것을 반영한다. 이 관계들이 변하거나 또는 깨어지면서 관련 당사자들에게 큰 위험이 된다. 죄란 이 관계들이 금간 것이다. (217.4)
 하나님과의 사랑의 관계
 인간은 자신이 원하든지 원하지 않든 지간에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 속에서 살아야만 한다. 하나님은 항상 존재하시니, 영원히 존재하신다. 그리고 우리는 현재 존재하고 있다. 그분은 우주와 세계와 우리를 근본적으로 다스리신다. 이 관계의 붕괴는 분열과 죽음으로 귀착될 뿐이다. (217.5)
 사랑을 뜻하는 희랍어 세 단어
 희랍인들에게는 사랑을 서술하는 세 단어가 있었다. 에로스(eros)는 그들의 성적인 사랑의 신의 이름이었고, 그래서 에로스는 본성으로부터 나오는 사랑을 뜻하게 되었다. 에로스는 성적 충동과 감정에 의하여 움직이며, 소유하지 못한 것에 대한 갈망, 열망하는 욕구이다. (217.6)
 에로스는 오직 자아와 자위적 본능만을 생각한다. 성적인 것을 뜻하는 영어의 여러 단어들이 이 단어에서 파생된 단어들이다(예, erotic, erogenous, erotica), 에로스 또는 그 파생어들은 신약 성경에 한 번도 나오지 않는다. 트렌치(R. C. Trench)는 “이 단어들이 [신약 성경에] 나오지 않는 것은 의미 심장하다”고 현명하게 말하였다(Synonyms of the New Testament, 43). 칠십인역에는 이 단어군에서 두 단어가 나오지만 드물게 나온다(에 2:17; 잠 4:6; 겔 16:33; 호 2:5). (218.1)
 사람들—친구들, 자녀들, 동료들, 그리고 혈육 관계에 종종 기초한 관계—간의 사랑을 뜻하는 일반적인 희랍어 단어는 필로스(philos)이었다. 몇몇 영어 단어 중에는 이 어근과 그 목적어가 결합하여 이루어진 단어들도 있다. 필—라델비아(Phil—adelphia)는 형제 사랑을 뜻한다. 필—란트로피(phil—anthropy)는 인류애를 뜻한다. 필—로서피(philo - sophy)는 지혜, 사랑 등을 뜻한다. 이 필로스의 사랑이 감정에 의하여 움직인 것은 사실이지만, 에로스를 움직이는 것하고는 다른 수준에 있는 감정이다. 필로스는 성경에 종종 나온다. 필로스에는 존경과 경외의 의미는 없다. (218.2)
 세번째 희랍어 단어는 아가페(agape)인데, “계시 종교 속에서 생겨난 단어로서, 칠십인역(삼하 13:15; 아 2:4; 렘 2:2)과 외경(지혜서 3:9)에 나온다. 하지만 이교 저자들 가운데서 이 단어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다”(Trench, op. cit. 43). 독특한 그리스도교 용어인 아가페는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를 묘사한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흘러내”리었기에 우리는 더욱 더 풍부한 단계에서 상호간에 이상적인 관계를 형성할 수 있다(요일 4:7~11). 아가페는 감정이나 느낌에 의하여 움직이지 않고, 오직 원칙에 의하여서만 움직인다. 아가페는 관련된 모든 이가 선한 결과를 갖게 될 것을 기대하면서 면밀하게 숙고한 지적 단계 위에서 형성되는 관계를 말한다. 그것은 “선택과 선정 ∙∙∙ 존경과 경외에 있어서 더 조리 있는 애정을 뜻한다 ∙∙∙ . 인간이 계속하여 아가판 톤 테온(<agapan ton Theon>, ‘네 하나님을 사랑하라,’ 마 22:37; 눅 10:27; 고전 8:3)하라는 명을 받고, 선한 사람은 그렇게 하리라고 언명되지만(롬 8:28; 벧전 1:8; 요일 4:21), 인간에게 필레인 톤 테온(philein ton Theon)하라는 명령은 결코 주어지지 않았다. 아버지 하나님은 실제로 아가 판 톤 휘온(agapan ton Huion, 아들을 사랑하시다, 요 3:35)’하고 또 필레이 톤 휘온(philei ton Huion, 아들을 사랑하시다, 요 5:20)’ 하신다”(Trench, op. cit., 41).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아가페 사랑을 자신에게 보이라고 요구하신다. (218.3)
 하나님의 사랑인 아가페는 이 세계를 “태초에” 창조하시었는데, 모든 것이 보기에 “심히 좋았다.” 좋았다 라는 말에는 전 세상의 안녕이라는 뜻이 포함되어 있다. 아가페에는 자아가 없다. 하나님의 사랑의 창조는 모든 형태의 존재가 완전한 상태가 되도록 하는데 필요한 관계의 설정을 요구하였다. (218.4)
 법이 정의하는 관계
 수십억이 넘는 이 관계들을 연구하고 분석하여 보면 그 모든 것은 법들로 설명할 수 있다—화학적, 물리학적, 수학적, 천문학적, 국가적, 사회적, 종교적 법(칙). (218.5)
 웹스터 사전은 법이란 “특정 조건이 충족된 모든 경우의 현상이나 또는 현상들 사이를 유지시켜 준다고 추정되는 관계를 서술하는 법칙”이라고 정의한다. 간략하게 말하자면, 법은 이러 저러한 종류의 관계에 관한 묘사이다. 도덕법은 인간과 하나님간의 관계, 인간과 인간간의 관계를 다루고 있다. (219.1)
 이 점은 필자가 제시하기를 원하는 다음의 요점으로 초점을 옮기어 준다. 관계는 관계를 공식화한 법 이전에 존재하였다. 창조시에 나트륨의 한 원자는 염화나트륨(소금)이 되기 위하여 염소(Chlorine)와 합하여졌다. 이 형성 사건은 화학자가 이 관계를 분석하고 화학 법칙으로 정의를 내리기 전에 이미 발발한 일이다. 이 결론은 이 세상의 모든 관계—어디서 형성되었든지 간에—에도 해당된다. (219.2)
 관계 가운데에서만 존재하는 사랑
 이미 위에서 언급하였듯이 이 관계들을 고안하고, 만들고, 유지하는 하나님의 원칙은 아가페 사랑이다. 사랑은 진공 상태에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사랑은 존재하게 되자마자 동맹 관계 모양으로 나타난다. 사실, 하나님으로부터 솟아나는 참된 사랑은 이러한 이상적인 관계에서만 볼 수 있다. 법이 이 관계들을 묘사하였고, 법이 관계를 정의하고 입법화시키기에, 법은 사랑의 원칙을 성문화시킨 것이다. 사실, 법은 일련의 규칙으로 축소된 사랑이다. 요한은 이 점에 대하여 분명하게 밝혔다. 그는 법을 순종하는 것이 사랑하는 것이라고 선언하였다. 법을 불순종하면서 사랑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거짓말하는 것이다(요일 2:3~6; 4:10~12, 16~21). 간략하게 말하자면, 인간이 만일 하나님이 사랑하는 것과 같은 사랑의 방법을 배울려고 한다면 그분의 법을 연구하여야만 한다는 것이다. (219.3)
 우리는 죄된 세상에 살고 있는데, 이 죄는 본질적으로 하나님께서 세우신 관계가 깨어진 것이다. 다른 말로 말하자면, “죄는 불법이”다(요일 3:4). 그러나 오랜 기간의 흉악한 상태에 있었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더이상 이상적인 관계가 어떤 것인지를 결정할만한 능력이 없다. 우리에게는 모든 진리를 깨닫도록 인도하는 성령의 도움이 필요하다.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의 생각과 행동을 통하여 표현되어야하는 지를 이해하기 위하여서 법을 주의 깊게 연구하여야만 한다. 하나님의 법의 원칙들에 관한 이런 연구 없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사랑의 방법을 아는 것은 불가능하다. (219.4)
 복음을 드러내는 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