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 7:26-28. “이러한 대제사장은 우리에게 합당하니, 거룩하고 악이 없고 더러움이 없고 죄인에게서 떠나 계시고 하늘보다 높이 되신 자라. 저가 저 대제사장들이 먼저 자기 죄를 위하고 다음에 백성의 죄를 위하여 날마다 제사드리는 것과 같이 할 필요가 없으니, 이는 저가 단번에 자기를 드려 이루셨음이니라. 율법은 약점을 가진 사람들을 제사장으로 세웠거니와 율법 후에 하신 맹세의 말씀은 영원히 온전케 되신 아들을 세우셨느니라.”(169.3)
【참고】 “그리고 이제 우리의 구원의 대장께서는 단순히 탄원자로서 우리를 위하여 중보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는 정복자로서 당신의 승리를 주장하신다”(실물 교훈, 153). (169.4)
그분의 중보는 찔리고 부서진 몸의 중보요, 흠 없는 생애의 중보이다. 상처입은 두 손, 창에 찔린 옆구리, 망쳐진 두 발이 타락한 인간을 위하여 탄원한다. (169.5)
14.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와 그분의 중보에 대한 우리의 관계는 어떠해야 하는가?
히 4:16.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170.1)
히 2:18. “자기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시느니라.”(170.2)
히 9:28. “이와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번째 나타나시리라.”(170.3)
히 13:12, 13. “그러므로 예수도 자기 피로써 백성을 거룩케하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느니라. 그런즉 우리는 그 능욕을 지고 영문 밖으로 그에게 나아가자.”(170.4)
【참고】 “그리스도를 가리키던 제사 의식은 지나가버렸으나, 사람들은 세상의 죄를 위하여 바쳐진 참된 희생 제물에 그 눈을 돌리었다. 지상의 제사장 직분은 끝이 났다. 그러나 우리는 새 언약의 중보이 신 예수를 ∙∙∙ 바라본다”(시대의 소망, I권, 214). (17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