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와 그림자 제4편 봄 연례 절기 제 13 장 유월절
 유월절은 연례적인 종교 예식들 중 제일 먼저 지켜진 절기였다. 그것은 기념적인 동시에 표상적인 절기였다. 즉, 한편으로는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의 속박으로부터 구원받은 것을 기념하는 동시에 그리스도를 자신의 유월절 어린양으로 인정하고 그분의 피를 과거에 지은 죄를 가리어주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모든 사람이 죄의 억압으로부터 구원받을 것을 표상한다(고전 5:7). (98.1)
 유월절은 이른 봄에 지켜졌는데, 그 무렵은 이미 겨울이 지났음을 알리는 꽃망울들이 피어오르기 시작하는 때였다. 유월절이 가까워옴에 따라 예루살렘으로 가는 모든 길들은 거룩한 도성을 향하여 길을 재촉하는 경건한 유대인들로 꽉 메워졌다. 그것은 이스라엘의 남자마다 이 절기에 하나님 앞에 나아가야 하였기 때문이다(신 16:16).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이 여행하는 무리들의 대열에 가담하였는데, 거룩한 도성이 가까워짐에 따라 그 수효는 계속 증가하였다. 목자들, 농부들, 제사장들, 레위인들 등 각종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사방에서 모여 예루살렘으로 향하는 대열에 가담하였다. 성중에 있는 가정들은 문을 활짝 열고 그들을 환영하였으며, 지붕 꼭대기마다 거리마다 텐트를 쳐서 유월절에 참여한 사람들을 보호하고 또한 단체들이나 가족들이 음식을 먹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방들을 마련하였다. (98.2)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구출받기 전에는 새해가 가을에 시작되었다(출 23:16; 34:22).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애굽의 속박으로부터 인도하여 내신 때에 아빕(Abib)월 즉 니산(Nisan)월에 대하여 말씀하시기를 “이 달로 너희에게 달의 시작, 곧 해의 첫 달이 되게 하”라(출 12:2)고 하셨다. 아빕월은 지금의 3월 후반부터 4월 초반에 해당된다. (99.1)
 아빕월 제10일에 유월절 어린양이 선별되었고, 그 양은 그 달의 제14일, 즉 양이 죽는 날까지 다른 양들로부터 따로 떨어져 있었다. 그 양을 죽이는 시간이 정해져 있었다. 곧 “해질 때”(출 12:6, “두 저녁 사이에”), 즉 성경 시대의 제9시, 지금의 우리 시간으로는 오후 3시경에 어린양을 잡았다. (99.2)
 유월절 어린양은 통째로 구워야 하였고, 뼈 하나도 부러뜨려서는 안 되었다. 만일 가족이 적으면 여러 가족이 합쳐서 이 예식에 참예할 수 있었다. 유월절 어린양과 함께 누룩 없는 떡과 쓴 나물을 함께 먹었다. 누룩 없는 떡은 애굽으로부터 신속히 도망해 온 것을 기념하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그때 이스라엘 백성은 “발교되지 못한 반죽 담은 그릇을 옷에 싸서 어깨에 메”었기(출 12:34) 때문이다. 누룩 없는 떡은 또한 유월절 어린양의 실체이신 그리스도의 피로 가림을 받는 사람의 상태를 표상한 것이기도 하다(출 12:1~46). 그러한 사람에게 주께서는 “이러므로 우리가 명절을 지키되, 묵은 누룩도 말고, 괴악하고 악독한 누룩도 말고, 오직 순전함과 진실함의 누룩 없는 떡으로 하자”(고전 5:8)고 말씀하셨다. (99.3)
 누룩 없는 떡이 절기에 사용되었을 뿐만 아니라, 가정에서도 유월절 다음 날부터 시작하여 1주일 동안은 누룩의 사용이 허용되지 않았다. (100.1)
 그것은, 그리스도의 피로 보호함을 받는다고 주장하는 그리스도인은 입술로 악한 말을 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마음속에도 “괴악하고 악독한 누룩”이 없어야 한다는 사실에 대한 매우 아름다운 상징이다. 쓴 나물은 애굽에서의 잔혹했던 속박을 기억나게 하는 것이었다. 그달 제14일 밤에는 그 양을 먹어야 했다. 남은 고기는 그 다음날 아침에 불로 태웠다. (100.2)
 어린양을 잡으면 우슬초 가지를 피에 적셔서 양을 먹는 그 집의 인방과 좌우 설주에 뿌려야 했다. 이것은 애굽의 모든 초태생이 죽임을 당할 때, 이스라엘의 모든 초태생은 기적적으로 구출함을 받은 것에 대한 기념이었다. 여호와께서는 “내가 애굽 땅을 칠 때에, 그 피가 너희의 거하는 집에 있어서 너희를 위하여 표적이 될지라. 내가 피를 볼 때에 너희를 넘어가리니, 재앙이 너희에게 내려 멸하지 않으리라”(출 12:13)고 하셨다. (100.3)
 문설주에 뿌린 피로 기념되는 이 사건도 놀라운 것이지만, 그 사건이 표상하는 바는 더욱 놀라운 것이다. 멸망의 천사가 애굽을 지나면서 피로 보호함을 받지 못하는 모든 초태생의 이마에 싸늘한 죽음의 손을 얹은 것같이 다시는 부활이 없는 둘째 사망이 그리스도의 피로써 죄로부터 정결함을 받지 못한 모든 사람들 위에 임할 것이다 (계 20:14~15). 거기엔 차별이 없었다. 애굽 왕의 장자로부터 감방에 갇힌 죄수의 장자에 이르기까지 모두 죽임을 당하였다. 높은 지위, 부귀, 세상의 명성 등 그 어떠한 것도 멸망시키는 하나님의 천사로부터 사람을 보호하지 못할 것이다. 오직 하나 곧 그리스도의 보혈만이 부자나 가난한 자나 똑같이 보호할 것이다.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게 하실 것이요”(요일 1:7, 9). (100.4)
 유월절의 기념적 측면을 명상함으로써 우리의 믿음이 강하게 된다. 하나님께서 그분의 고통당하는 백성을 위하여 어떤 일을 행하셨고, 그들의 부르짖음을 듣고 구출하시기 위하여 어떤 기적을 행하셨는지를 기억함으로써 영혼들은 축복을 받는다. 그러나 유월절의 표상적 측면에 대하여 명상하고, 표상과 상징으로 예표된 축복을 주장하는 사람에게도 구원이 있다. 애굽으로부터 구출된 그 밤에 죽임을 당한 양으로부터 그리스도 당시의 죽임을 당한 어린양에 이르기까지 모든 유월절 양은 특별한 의미에 있어서 구주를 상징하는 것이었다.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이 되셨느니라”(고전 5:7). (101.1)
 수세기에 걸쳐 유월절 양, 곧 죽기로 표시된 양이 죽임을 당하기 며칠 전에 양떼로부터 선별되어 따로 보호되었던 것처럼 그리스도께서도 십자가에 달리시기 며칠 전에 산헤드린으로부터 사형선고를 받으셨다. 그날 이후로 그들은 그리스도를 바라볼 때마다 그분의 죽음이 확정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유월절 양이 따로 있었던 것같이, “예수께서 다시 유대인 가운데 드러나게 다니지 아니하”셨다(요 11:47~54). 이 일은 예수께서 잔학한 폭도들에게 잡히셔서 거짓 증인들에게 정죄를 받으시기 며칠 전에 있었던 것이다. (101.2)
 그 두렵던 고문과 고민의 밤이 지난 다음날 아침, 구주께서는 빌라도의 법정에 끌려 나가셨다. 그리스도께서 그들의 대제사장 앞에 계시던 온 밤 동안, 유대인들은 그분을 따라다녔다. 그러나 이제 그분께서 로마의 법정으로 이송되어 가셨을 때, 유대인들은 “더럽힘을 받지 아니하고 유월절 잔치를 먹고자 하여 관정에 들어가지 아니하”였다(요 18:28). 부정에 대한 그들의 예식법에 의하면, 만일 그들이 로마의 법정에 들어간다고 하면 유월절 잔치를 먹는 것이 허락되지 아니할 것이었다. 이 날은 유대인의 유월절 예비일이었다. 때는 어린양이 죽임을 당해야 할 “저녁 때”(“두 저녁 사이”), 다시 말해서, 아빕월 즉 니산월 제14일의 오후였는데, 이날은 구주께서 십자가에 달리시던 그 해의 금요일에 해당되는 날이었고, 다음날은 계명에 의한 제7일 안식일이었다(눅 23:52~56). (102.1)
 구주께서 주일 중 여섯째 날인 금요일에 십자가에 돌아가신 일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수세기 동안 하나님께서는 유월절 다음날 곧 아빕월 제15일을 예식 안식일로 지키도록 명하셨다. 그것은 참 유월절 양이신 그리스도께서 제7일 안식일 전날에 돌아가셔야 한다는 사실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유월절 양은 “해질 때” 또는 “두 저녁 사이에”, 즉 그 당시의 제9시에 죽임을 당하였다. 위대한 실체적 어린양께서 하늘과 땅 사이에서 죄인들을 위한 제물로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곧 “다 이루었다”고 외치시고, 죄의 제물로 자신의 생명을 바치셨을 때도 제9시쯤이었다(마 27:46; 요 19:30). 바로 이즈음 제사장들은 성전에서 양을 잡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일이 저지되었다. 모든 천연계가 하나님의 아들의 고뇌의 부르짖음에 응답하였다. 땅은 이리저리 비틀거렸고 보이지 않는 손이 성전 휘장을 위에서 아래로 찢었다(마 27:50~51). 표상이 실체를 만났다는 틀림없는 징조였다. 그림자가 그 그림자를 늘어뜨리는 실물을 만난 것이었다. 사람이 하나님께 나아가기 위하여 더 이상 동물의 희생이 필요 없게 되었다. 다만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와(히 4:16), “우리의 유월절 양이신 그리스도”의 귀하신 이름으로 그의 요구를 제시하면 되는 것이었다. (102.2)
 유월절로 표상된 사업은 각 시대에 미치며, 하나님의 자녀들이 모든 의의 원수의 권세로부터 영원히 해방될 때까지는 그것의 실체를 완전히 만났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103.1)
 멸망의 천사가 전 애굽을 두루 다니며 속박 중에 있는 하나님의 백성을 구출하기 위하여 그 능력을 나타낸 때는 밤중이었다. 그와 같이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구출하기 위하여 그의 능력을 나타낼 때도 밤중일 것이다(출 12:29~30). 선지자는 각 시대를 내다보면서 다음과 같이 예언하였다. “그들은 밤중 순식간에 죽나니, 백성은 떨며 없어지고 세력 있는 자도 사람의 손을 대지 않고 제함을 당하느니라”(욥 34:20). (103.2)
 유월절 잔치에 참예하는 사람들은 다음날 아침까지는 아무것도 남겨두지 말아야 하였다. 그리스도를 자신의 유월절 양으로 받아들이고 믿음으로 그분에게 동참하는 영혼은 새로운 경험, 곧 옛 생애의 정죄로부터 자유를 얻는 경험 속으로 돌입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분의 백성을 최후로 구원하시기 위하여 밤중에 그 권능을 나타내실 때, 속박된 것이라곤 아무것도 그 아침에는 보이지 않게 될 것이다. “감옥의 벽들이 갈라지고 믿음 때문에 속박되었던 하나님의 백성은 자유케 된다.” 다시는 원수의 압제 세력을 느끼지 못할 것이다. (103.3)
 바로와 그의 군대가 홍해에서 멸망당한 일, 홍해를 건넌 후 이스라엘 백성이 불렀던 구원의 노래 등은 하나님의 백성이 이 땅에서 최후로 구원받을 것에 대한 표상이었다(계 15:2~3). 의인은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기 위하여 들어 올림을 받을 것이며, 악인은 땅에서 죽어 바로의 군대처럼 매장되지도 못한 채 버려진바 될 것이다(살전 4:16~17; 렘 25:30~33). (104.1)
 타국인은 유월절 잔치에 참여할 수 없었다. 그러나 타국인도 레위기의 법에 따라 어떤 형식과 의식을 거쳐 이스라엘 백성이 된 후에는 유월절에 참여할 수 있었다(출 12:48). 죄는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약속된 축복들을 받지 못하게 만든다. 그러나 죄에 대한 처방이 있다. “너희 죄가 주홍같이 붉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양털같이 되리라”(사 1:18). “만일 누가 죄를 범하면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요일 2:1). (104.2)
 이스라엘 자손은 사방으로 이방 민족들과 접경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만일 하나님의 특별한 보호가 없었다면 그들이 모두 연례 절기에 참여하기 위하여 예루살렘에 올라가 있는 동안 주변의 이방 민족들이 그들의 양떼와 땅을 빼앗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의 모든 남자들은 유월절뿐만 아니라 1년에 세 차례 절기에 참여하기 위하여 예루살렘에 올라가야 하였기 때문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예루살렘에 올라갔다. “내가 열방을 네 앞에서 쫓아내고 네 지경을 넓히리니, 네가 매년 세 번씩 여호와 너희 하나님께 보이러 올 때에 아무 사람도 네 땅을 탐내어 엿보지 못하리라”(출 34:24).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오늘날도 동일하시다. 그분께서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남녀들을 위하여 “그들의 지경을 넓히고,” 그들의 현세의 재산을 보호하실 것이다(마 6:24~33). (104.3)
 이제 하나님의 백성은 유월절 음식을 먹으려고 더 이상 예루살렘에 모이지 않는다. 그러나 세상의 각 나라에 있는 주의 신실한 백성은 주의 상하신 몸과 흘리신 피를 기념하는 성만찬 예식에 참예한다. 이 예식에 참예하는 모든 사람에게 다음의 말씀이 주어진다.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고전 11:26). (10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