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간을 단위로 하여 하나의 주기를 구성한 이 주일 제도는 모든 역법들 중 가장 오래 되고, 또 단 한 번도 갱신된 일이 없는 완전 무결한 것으로 유일한 것이다. 그 기원은 오로지 구약 창세기에 수록된 창조 설화의 역사적 기간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제도이다. (241.1)
 이를 제정하신 분의 의도가 제7일을 안식일로 성별함으로써 창조 사업의 업적을 영원히 기념하고(창 2:1-3), 동시에 이 주기적 제도를 영구히 보존하므로 조물주 하나님과 인격적인 피조물인 인간들과의 사이에 불가분리의 관계를 대대로 영원히 지속하고, 또 이를 상기시키기 위함일진대(출 20:8-11; 31:16-17; 겔 20:12, 20) 그것은 창시자이신 하나님의 본질처럼 그 불변함이 영원한 것이리라(말 3:6; 삼상 15:29; 약 1:17; 히 13:8; 시 119:151, 152, 160). 따라서 제7일이 성별되어 조물주 하나님께 경배하는 예배일로 정해지고, 동시에 이 안식일이 7요일 제도의 기산일이 되어 반복하여 사도 시대에까지 전승해 내려온 것이므로 중도에 변경된다는 것은 결코 이를 제정하신 분의 의도가 아니고, 이는 분명히 적그리스도의 세력에서 모의된 것이라 간주해도 과오를 범하는 것이 결코 아니리라(단 7:25; 살후 2:3-7; 마 13:24-30). (241.2)
 성경에 분명히 명시되고, 모든 사도들이 존중한 이 거룩한 “제7일 안식일”을 개종한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이 여러 가지 이유와 구실들을 내세워 감히 일요일로 옮기려 시도한다는 것은 너무나도 어리석은 인간의 능력과 권위의 한계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는지라. 실로 이 작업은 수 세기를 거쳐 서서히 이룩한 일이기에 변경되어 가는 사실을 그때의 세대나 오늘의 세대가 변절의 본질을 의식하지도 못하고 오늘에 이르렀던 것이다. (241.3)
 누가의 보고에 의하면, 안식일을 존중히 여긴 사도들 사이에 이방인 개종자들도 그리스도인으로 간주하여 교회에 성도로 받아들일 것인가 하는 문제로 한때 논란이 있었다.1) 그러나 세월이 흘러 여러 해가 바뀌면서 일요일을 존중하는 습성을 지닌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이 증가하게 되자, 반대로 이들이 교회의 유력한 지도층에 이르니 안식일을 존중히 여겨 준수하는 성도들과 유대인계 그리스도인들을 그리스도인으로 간주할 것인가 하는 논란을 일으키는 양상으로 뒤바뀌어졌다.2) 그야말로 적반하장 격이 아닐 수 없다. (241.4)
 우리는 제3장에서 헬레니즘 시대의 점성술에 관해 살펴보았다. 즉 황도 12궁과 태양을 중심으로 한 일곱 혹성신들이 펼쳐내는 천상의 현상이 어떻게 지상의 현상에 대응하며, 또 그것이 인간사를 어떻게 좌우할는지를 알아내려는 점성술이 로마에 도입되었을 때 로마 사람들은 어떤 반응을 나타내었으며, 그것이 나중에 그리스도교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가 하는 것을 여기서 살펴보고자 한다. (241.5)
 하늘의 별을 보고 국가와 개인의 운수를 점치는데 있어서 기본이 되는 것은 토, 일, 월, 화, 수, 목, 금의 일곱 혹성신의 날들이었다. 이 별 신들의 날들 중의 최고의 날은 당연히 태양신의 날 곧 일요일이었다. 로마에서는 태양신 부활절과 함께 태양의 날인 일요일을 신성시했으며 존경했다. 그래서 소위 로마 사람들이 말하는 “유대인의 안식일”3)“일요일”은 로마 제국 시대에 와서 우열을 가리는 일전을 피할 길이 도무지 없었다. 여기서 그리스도교가 로마 제국의 박해에서 벗어날 길은 오직 한 가지뿐이었다. 유대인의 안식일 대신에 태양신의 날 일요일을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그 당시의 교부들은 생각했었다. “의(義)의 태양이신 그리스도의 부활하신 날”이라는 대의명분으로 .... (241.6)
 그러나 일요일이 그리스도교의 예배일로 성별 되고, 나중에는 안식일을 대신하게 되기까지는 수세기의 시간을 통해 이루어졌는데, 이 역사적 변천 과정에 대하여 한 마디로 간단 명료하게 표현한 영국 신학자 파라(F. W. Farrar, A.D. 1831-1903)의 말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241.7)
“그리스도교가 한 날에서 다른 날로 일자를 정식으로 변경한 것이 아니고, 다만 거의 의식하지 못하리 만큼 점차적으로 변경되어 갔던 것이다.”4)
(241.8)
 돔빌(William Domville) 경도 같은 영국교회 성직자인데 다음과 같이 진술한 바 있다: (241.9)
“그리스도교가 일요일을 안식일로 지키게 되기까지는 수 백년이 지나야 했다. A.D. 321년에 반포된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일요일 칙령 이전에 일요일을 안식일로 지켰다는 역사적 증거는 없다.”5)
(241.10)
 그래서 우리는 기독교대사전에서 아래와 같은 기록을 발견하게 된다: (241.11)
“... 주일을 특히 하나님께 예배하는 날로 정하게 된 것은 제4세기 때부터인데, 교회와 국가에서 법률로 정했다. 이것이 엘비라 회의(Council of Evira, A.D. 306)에 의하여 명령되고 콘스탄티누스 대제에 의하여 A.D. 321년에 다시 법률로 공포되었다.... 그후 A.D. 380년 라오디게아 회의는 주의 날에 일하는 것을 되도록 삼가라 하였으며, 6세기서부터 13세기에까지는 교회에서 더욱 엄하게 하여 주일에는 반드시 미사에 참례할 것을 명하였으며 ....”6)
(241.12)
 우리는 또 다음과 같은 논설들을 읽게 된다: (241.13)
“어떤 이들은 사도들의 명령에 기초하여 일요일 준수를 세우고자 애쓰나 사도들은 그런 명령을 한 것이 없다.”7)
(241.14)
“언제, 어떻게, 누구에 의해서 안식일이 일곱째 날에서 첫째 날로 변경되었는가?”
(241.15)
답: “안식일이 일곱째 날로부터 첫째 날로 바뀐 것은 어떤 결정적인 권위에 의한 것이기보다 점진적인 과정에 의해서 되었다.”8)
(241.16)
 이렇게 점진적으로, 또는 점차적으로 그리스도교의 신조와 신앙이 퇴보되고, 안식일 준수의 열의가 식어갈 무렵인 A.D. 3세기에 활약한 아르켈라우스(Archelaus, ca. A.D. 278) 교부의 말대로 안식일이 명확히 폐한 바 된 일이 없었으나, 단지 흐려가고 있을 뿐이다. 그는 이렇게 주장했다: (241.17)
“또한 안식일이 폐하여졌다고 주장하지만, 우리는 주께서 안식일을 확실히 폐하셨다는 것을 부인한다. 그 까닭은 주께서는 당신 자신이 안식일의 주인이 되시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안식일과 관련된 율법이라는 것은 마치 신랑의 방을 맡아서 온 정성을 다하여 그것을 준비하는 종과 같은 것이다. 그리고 어떤 낯선 사람들로 인해 방해되거나 건드려서 곤란을 당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요, 신랑이 도착하는 시간까지 지켜서 보호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9)
(241.18)
 왜 그랬을까! 여기에는 몇 가지 뚜렷한 이유가 있었다. (241.19)
 1. 태양신을 최고의 주신으로 하는 다신교국 로마 제국의 그리스도교에 대한 박해. (24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