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작 뉴튼 경10을 위시한 여러 훌륭한 다니엘와 요한계시록 주석가들은 요한계시록의 일곱 교회가 교회의 미래 역사에 나타나는 일곱 시대를 예표한다고 주장했다. 일곱 편지를 미래의 예언으로 이해하는 것은 이 편지를 받은 초대 교회와 모든 시대의 여러 교회와 교인들에 대한 영적인 기별로서의 유용성에 추가적인 의의를 갖는 것이다. (120.1)
 우리는 이미 앞에서 이 편지의 미래 예언적 가능성을 살펴본 바 있다. 관련 문제와 해답 란에서 좀더 보충적인 논의가 추가될 것이다. 일곱 교회에 보내는 편지가 그리스도의 승천과 재림 사이의 그리스도교 역사의 일곱 시대를 취급하고 있다는 유력한 논증이 제시되고 있다. 따라서 일곱 교회에 보내는 편지를 이러한 관점에서 다시 살펴보는 것도 무익한 일이 아닐 것이다. (120.2)
 1. 에베소 교회 시대(31~100년)*
* 근사치이다. 인간의 사상과 경험의 시작과 끝을 정확히 구획한다는 것이 어려운 일이다.
 에베소 교회는 처음 사랑을 버렸다고 책망을 들었다. 동시에 이 교회는 그 인내와 선행으로 칭찬을 들었으며 특히 거짓 교사들을 시험하여 물리친 일로 칭찬을 들었다. (120.3)
 이 교회의 열심은 퇴색되었으나 신념만은 훌륭했다. 이 교회에 대한 묘사가 기원후 100 년 경까지의 신약 성경 시대의 교회에 너무나 잘 부합된다는 것은 누구나 인정할 것이다. 신약 시대 교회의 순수성은 신약 이후 수많은 개혁 운동의 이상이었다. (121.1)
 2. 서머나 교회(100~313년)
 일곱 편지에는 서머나 교회의 교리에 관한 언급은 전혀 없다. 대신에 핍박하의 충성이 우리의 관심을 끌고 있다. 이러한 묘사는 2세기에서 3세기 간에 즉 기원 후 100년부터 디오클레티아누스의 박해가 끝나는 313년까지 교회가 겪은 박해의 경험에 잘 부합한다. 물론 이 기간에도 몇 가지 중요한 교리적 탈선이 있었지만 그리스도께서는 이 교회가 시련 속에서 견지한 항구성을 더 중요하게 보셨다. (121.2)
 서머나 교회에 보내는 편지에서 “자칭 유대인이라 하나 실상은 유대인이 아닌”자들에 대한 언급(계 2:9)은 아마도 폴리카르포스를 불태워 죽이도록 선동한 유대인들에 대한 문자적인 지적일 것이다. 그러나, 서머나 교회를 교회 역사의 한 시대로 이해하는 상징적인 인식에서는 거짓 “유대인들”을 거짓 그리스도인들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거짓 유대인들에 대한 묘사는 당시의 영지주의적인 그리스도인들에게 잘 부합한다. 영지주의자들은 성경을 교묘하게 재해석함으로써 그 시대의 성서적인 그리스도인들에게 지대한 우려를 부과하였다. (121.3)
 3. 버가모 교회(313~538), 4. 두아디라 교회(538~1565)
 버가모 교회와 두아디라 교회는 앞의 두 교회와는 고통스러운 대조를 이루고 있다. 그들은 교리적 과오로 말미암아 심한 책망을 듣고 있다. 버가모 교회는 니골라 당과 발람의 무리를 용인한 탓으로 교회 전체가 회개할 필요가 있다고 하였으며 두아디라 교회는 한 술 더 떠서 이세벨을 용납했다고 했다. (121.4)
 역사적 사실에 대한 상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아무도 이른바 로마 제국의 그리스도교화 과정과 중세 시대의 진전과 함께 그리스도교가 크게 타락한 사실을 부인하지 못한다. (121.5)
 일곱 교회를 상징적으로 이해한다면 니골라 당과 발람의 무리의 죄도 상징적으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구약의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그 시대의 이방 나라들과 종교와 정치적인 동맹을 맺는 악행을 저질렀을 때 “간음”이란 표현을 사용했다(겔 16, 23장). (121.6)
 고대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진리와 순결을 주변 민족의 철학과 부도덕과 위압적인 수법을 빌어 욕되게 했다. 이러한 과정에서 그들은 하나님에 대한 그들의 신앙을 포기했으며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잠재력을 보지 못하게 되었고 비참할 만큼 자신을 비하하게 되었다. “니골라 당” 이니 “발람” 이니 또는 “이세벨” 이니 하는 낱말들은 모두 심각하게 진행되고 있는 기독교의 배도를 나타내는 상징적인 표현들이다. 구약 시대에 있어서 이세벨은 주변 민족의 해로운 문화를 가지고 하나님의 백성을 타락시킨 가장 표본적인 여인이다. (121.7)
 다니엘 연구에서 보았듯이 다니엘 7, 8장의 작은 뿔에 대한 예언은 주로 로마 교회의 부정적인 면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런데 일곱 교회에 보내는 편지에서는 그리스도께서 나쁜 것들과 섞여 있는 좋은 점들에 초점을 두고 있음을 본다. (121.8)
 버가모 교회에는 니골라 당의 무리와 발람의 무리가 존재하고 있지만 “내 이름을 굳게 잡아서∙∙∙나를 믿는 믿음을 버리지 아니하였다”고 예수님은 말씀하신다. 이 시대의 교회가 보여준 여러 가지 좋은 면의 하나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이해에 깊은 관심을 나타냈다는 것이다. (121.9)
 기원 후 325년의 니케아(Nicaea) 공회에서는 많은 연구와 토의 끝에 예수님은 진정한 하나님이시다라는 결론을 내렸다. 기원 후 381년의 콘스탄티노플 공회에서는 예수님이 또한 진정한 사람이라고 결론지었다. 431년의 에베소 공회의에서는 예수님이 하나의 통일된 인격 속에 신성과 인성을 결합해 갖고 계시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451년의 칼케돈(Chalcedon) 공회의에서는 예수님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개의 본성을 손상없이 각각으로 지니고 있다고 결론지었다. 이 모든 결정은 반대 주장을 가지고 있었던 인사들의 도전에 대한 응답으로 이루어졌다. 이 위대한 결정들은 버가모 교회 시대에 이루어졌다. 이 결정들은 성서의 가르침과 조화되는 것으로서 오늘날까지 전세계의 수백만 가톨릭교도와 개신교도들이 공히 신봉하고 있다. (122.1)
 두아디라 교회 시대에 대해서는 그리스도께서 이세벨과 그의 무리들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이 교회의 “사업과 사랑과 믿음과 섬김과 인내”에 대해서도 말씀하셨다. 또 “네 나중 행위가 처음 것보다 많도다”(계 2:19)고 하여 이 교회의 선행이 시간이 지나면서 더욱 자라나고 있음을 칭찬하셨다. 뿐만 아니라, “두아디라 교회에” 이세벨의 교훈을 받지 아니한 사람들이 “남아 있”음을 말씀하시고 또 이들이 “사단의 깊은 것을 알지” 않은 사실을 칭찬하셨다(계 2:24). (122.2)
 우리는 여기서 두아다라 교회 시대(대략 538~1565)에 로마 교회가 병원, 고아원, 학교, 선교에 크게 칭찬받을 일을 많이 한 사실을 상기하게 된다. 심지어 말년에 가톨릭에 대해 별로 칭찬하는 이야기를 하지 않았던 마르틴 루터도 당시 이탈리아에 “훌륭히” 건축된 병원들과 “대단히 근면한” 병원 종사자들과 “매우 깨끗한” 침대들과 “유능한” 의사들에 대해 호의적인 논평을 남기고 있다.11 (122.3)
 예수님은 “두아디라 교회에” 이세벨의 “교훈을 받지 아니하고 소위 사단의 깊은 것을 알지 못하는” 자들이 있다고 하셨다. 프라그의 얀 밀리츠(Jan Milic), 영국의 존 위클립과 그의 무리들인 로라드 파(Lollards), 프라그의 얀 후쓰(Jan Huss)와 그의 추종 세력인 후쓰 파 신도들(Hussites) 같은 진실한 그리스도인들을 생각하고 계셨던 것같이 들린다. 페터 발도(또는 왈도, Peter Waldo)와 발도 파(또는 왈덴스 파) 신도들, 그리고 아씨시의 성 프란체스코(St. Francis of Assisi)와 초기 프란체스코 파 수도승들도 이같은 참된 그리스 도인들에 포함될 것이다. (12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