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교회의 선행은 가히 경이적이었으며 용맹이 뛰어난 중세 교인들도 많았다. 그러나, 심히 어긋난 일도 적지 않았다. 유럽 전체가 명목상으로나마 기독교화한 중세기에 교회가 영적으로 대단히 쇠퇴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광범위하게 의견이 일치한다. 이미 앞에서 유쾌하지 못한 이야기를 소개한 바 있고 따라서 여기서는 반복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배도하는 일”이 있겠다고 한 사도 바울의 예언은 너무도 비극적일 만큼 모두 성취되었다(살후 2:3). (122.5)
“배도” 의 기초는 중세 교회가 사람으로 하나님을 대신하려 함에 있었다. 성경, 십자가, 그리스도의 제사장직은 결코 부정되지 않았다. 부정되기는커녕 오히려 존경심을 가지고 자주 강조되었다. 그러나, 일상 생활에서 하나님의 진리가 교회의 전통에 의해 퇴색되었다. 개인의 선행이나 교회의 특별한 성자(聖者)들의 선행이 최소한 예수님에 대한 신앙 만큼이나 기본적인 것으로 평가되었다. (122.6)
이와같이 관심의 방향이 하나님에게서 인간에게로 이동된 현상은 교회와 교회 지도자들의 도덕에 가장 불행한 영향을 끼쳤다. 종교 개혁이 일어나기 직전인 1500년경 가톨릭의 유명한 지성인 에라스무스(Erasmus)는 말하기를, 그의 시대에 평신도를 모욕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그를 가리켜 신부나 수도승으로 부르는 것이라 하였다. (122.7)
케임브리지 대학의 역사 학자 오웬 차드(Owen Chadwick)은 동일한 시대를 회고하면서 말하기를 “서방 교회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은 누구나 다 개혁을 아우성치고 있었다”12 했다. (123.1)
예수님께서는 예언적으로 “이세벨”에 대해 말씀하시기를 “또 내가 그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었으되 그 음행을 회개하고자 아니하는도다”라고 하셨다(계 2:21). 개혁의 움짐임은 반복해 나타났다. 10세기와 그 이후에는 클루니(Cluny) 수도원을 중심으로 하여, 13세 기에는 아씨스의 프란체스코가, 14, 15세기에는 교회 공회의(公會議)를 중심으로, 그리고 16세기에는 마르틴 루터를 위시한 여러 개혁자들이 개혁 운동을 추진하였다. 하나님이 마르틴 루터를 통해 세상을 얼마나 크게 축복하셨나 하는 것은 너무도 잘 아는 이야기이다. 그는 가톨릭 대학에서 가톨릭 교수로 봉직하고 있을 때나 여러 수도원에서 보직을 맡고 있을 때에도 세상을 위해 공헌을 많이 했다. 그는 가톨릭 번역 성경을 연구하던 중 로마서 3장 28절의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 하는 말씀을 읽고 크게 감동을 받았다. (123.2)
물론 그는 라틴 어로 이 구절을 읽었다. 두에이 성경(Douay Bible)은 후에 이 구절을 “율법의 행위 없이∙∙∙믿음으로”라고 번역했다. (123.3)
루터는 에베소서 2장 8, 9절에서도 동일한 기별을 발견하였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123.4)
종교 개혁의 위대한 발견은 구원이란 노력으로 획득하는 것이 아니라 주는 것을 받는 것, 그나마 값없이 받는다는 사실이었다. (123.5)
의사들을 위한 약초, 서양 중세 기간에는 가톨릭교도들에 의해 운영되는 병원들이 거의 전부였다. 예수님은 그들을 칭찬하셨다. 그는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행위를 아노라” 하셨다.
(123.6)
노예가 경매되는 노예 시장에서 고집이 세고 건장하게 생긴 흑인 노예를 사기 위해 미국의 늙은 퀘이커 교도 한 사람이 모든 경쟁자들이 좇아오지 못할 높은 가격을 제시한 이야기는 수도 없이 들었을 것이다. 이 퀘이커 교도는 경매가 진행되는 동안에 그 흑인 노예가 계속해서 분노어린 목소리로 “나는 일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외쳐 대는 소리를 듣고 있었다. (124.1)
드디어 경매는 끝나 퀘이커 교도가 그 노예를 사서 집으로 데리고 갔다. 그 노인은 노예에게 자기가 노예를 산 까닭을 순전히 노예를 자유롭게 해주려는 것이었다고 여러 차례에 걸쳐 설명하였다. 드디어 모든 진실이 명백해지자 그 흑인은 퀘이커 교도의 발밑에 무릎을 꿇고 눈물로 맹세했다. “주인 어른, 저는 목숨을 다해 어른을 위해 일하겠습니다. 저는 평생토록 주인 어른을 섬기겠습니다.”(124.2)
여기에서 복음이 간단하게 드러났으며 복음의 효과가 소개되었다. 예수님께서 값을, 최고의 값을 지불하셨다. 우리를 자유케하기 위하심이었다. 우리가 자신이 진정한 죄인임을 깨달을 때, 그리고 그리스도가 우리를 자유롭게 하기 위하여 십자가에 매달리신 구세주이심을 알게 될 때 우리는 감사의 마음으로 말미암아 그 발 아래 무릎을 꿇고자 하며 영원히 그를 위해 자신을 헌신하고자 하게 된다. (124.3)
루터의 발견은 역사의 진행을 바꾸어 놓았다. 종교 개혁은 아직도 분수령으로 남아 있다. (124.4)
여기에 두아디라 교회 시대의 최대의 기회가 있었다. “내가 그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었다”고 하였다. 그러나, 그 다음 말은 슬프게도 “그가 회개하고자 아니하는도다”이다. (124.5)
루터에 대한 공식적인 반응은 잘 알려져 있다. 교황은 1520년에 루터를 일컬어 “사나운 수퇘지”라고 하였고 1521년에는 그를 파문(破門)하였다. 후에 그 유명한 트렌트 공회의(Council of Trent, 1545~1563)13는 세례(영세) 후에 의롭게 되는 것은 더 이상 믿음으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성직자의 용서, 고행, 그리고 연옥에서의 일정 기간에 의해서만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124.6)
트렌트 공회의(公會議)는 가톨릭의 반(反)종교 개혁 운동의 중요한 현상의 하나로 일컬어지고 있다. 가톨릭은 루터의 도전을 받고 여러 가지로 개혁했다. 그러나, 대부분은 행정적인 성질의 것들이었다. 예컨데 사제(司祭)들의 교육과 도덕적 수준이 향상되어야 하고 자신의 교구(敎區)에 주재하지 않는 주교(主敎)가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결정들이 그런 것들이다. 트렌트 공회의는 또 처음으로 가톨릭의 신학을 공식적인 체제로 법전화 했다. 유감스럽게도 이러한 과정에서 트렌트 공회의는 중세 시대와 일치하기로 결정했다. 회의에서는 대단히 열띤 토론이 이루어졌으며 여러 가지 중요한 관심사에 있어서는 개신교 종교 개혁과 일치하는 변화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상당수의 가톨릭 지도자들이 주장했다. 그러나, 결국 토론에서 전통적인 주장이 채택되었다. 트렌트 공회의가 끝난 직후 교황 비오 5세(Pius V)는 성 토마스 아퀴나스(St. Thomas Aquinas)를 교회의 박사(제일의 스승) 로 선언했다. 아퀴나스는 중세 후기의 가장 위대한 신학자였다. (124.7)
트렌트 공회의가 끝나는 1563년을 두아디라 교회 시대의 끝으로 보는 것이 좋을 듯하다. 그러나, 역사에 있어서는 일반적으로 추세와 운동이 시작과 끝이 특정한 시각에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교는 한 번도 동질적인 상태에 있어 본 경험이 없다. 에베소 교회가 상징적으로 대표하는 시대의 실제적인 일곱 교회를 보라. 피차 얼마나 이질적인가? 그래서 만약 우리가 두아디라 교회를 특정한 기간에 그리스도교의 경향을 특정한 방향으로 이끌고 간 돌고래로 생각한다면 우리는 또 우리가 다른 후기의 시대로 접어들면서 그 돌고래가 역사의 수면(水面) 밑 깊지 않은 곳에서 헤엄치고 있다는 사실도 함께 생각해야 한다. (124.8)
근 일세기 동안이나 대학과 신학교에서 교재로 사용되고 있는 “세계 기독교회사”(A History of the Christian Church)의 저자인 윌리스턴 워커(Williston Walker)는 말하기를 이 시대(1560년 대)에 그때까지 가톨릭의 지역으로 남아 있던 유럽의 여러 곳에서 새로운 정신이 고무되었다고 했다. 그는 이 새로운 정신을 “(1) 개신교에 대한 강력한 반대, (2) 신학에 있어서 중세적 입장, (3) 가톨릭 신앙을 위해 죽음과 고통을 두려워하지 않은 태도”라고 했다.14(125.1)
자신의 신앙을 위해 싸운다는 것은 자신의 신앙을 위해 고통을 당한다는 것과 본질적으로 다르다. 새로운 가톨릭 교도들은 어느 편인가 하면 싸우려는 열의가 지나친 쪽이었다. 사데 교회를 다룰 때 보겠지만 이 점에 있어서는 개신교도 마찬가지였다. (125.2)
예수님께서는 만약에 “이세벨” 이 그의 행위를 회개치 않으면 그 행위의 자연적인 결말을 당하도록 방치할 수밖에 없다고 하셨다. 말씀하시기를 “볼지어다 내가 그를 침상에 던 질터이요 또 그로 더불어 간음하는 자들도 만일 그의 행위를 회개치 아니하면 큰 환난 가운데 던지고 또 내가 사망으로 그의 자녀를 죽이리니”(계 2: 22, 23) 하셨다. (12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