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께서는 초림을 통해 재림의 확실성을 보증해 주셨다. 칭의를 제공해준 십자가는 신자들의 구원을 완성하고자 하시는 그분의 의지에 대한 증거이다(롬 5:8-10).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 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롬 832))라는 말씀이 이 확실성을 상기시켜준다. 그리스도의 부활과 승천은 그분의 다시 오심을 분명하게 가리키고 있다(요 14:1-3). (1033.9)
 성령께서 또한 예수 재림의 확실성을 보장해주신다. 신자들의 마음에 임하시는 그분의 임재와 그분께서 부여하신 은사들이 그 약속을 확증해준다(고후 1:18-22: 히 2:4). (1034.1)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명령하신 복음의 전파를 통해 내세의 소망에 대한 의미와 힘을 발견한다. 하나님께서 이 기별에 대해 신실하지 않으셨다면 그 기을 전할 전도자들을 일으키지도 않으셨을 것이다(딛 1:2, 3; 히 2:1-3). (1034.2)
 재림의 지체에 대한 인간의 반응이 마태복음 24장에 나오는 신실한 종과 그렇지 못한 종에 관한 비유에 잘 예시되어 있다. 신실치 못한 종은 자신에게 맡겨진 임무에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주인이 더디 오리라고 생각했다(48절). 반면에 신실한 종은 주인이 그를 믿고 맡겼던 일에 온전히 몰두했다(45, 46절). 그는 주님의 오심을 고대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살면서 섬길 수 있도록 허락된 은혜의 시간에 대해 감사한다(벧후 3:9). 그는 그리스도의 오심을 알리는 일과 온 세상에 복음이 자라가는 것을 보며 기뻐한다(빌 1:8; 골 1:6). 세상을 위해 그리고 자신의 영혼을 위해 여전히 수행해야 할 막중한 임무에 비해 시간이 짧은 것처럼 느껴진다(고후 7:1; 마 9:36-38). (1034.3)
 예수 재림의 “지체”는 신자들에게 문제 될 것이 없다. 그것은 각 신자들이 경험하는 고난의 의미를 더 해주며, 날마다 새로운 영혼들이 하나님의 백성의 수에 더해지는 것을 보는 기쁨을 가져다줄 뿐이다(계 6:11). (1034.4)
 E. 결론
 그리스도의 재림은 국가와 개인들의 역사에 깊은 의미를 준다. 역사가 단지 목적 없는 사실들의 축적으로 이루어진 것이라면 별다른 의미도 없고 이치에도 맞지 않을 것이다. 끝이나 목표가 없는 역사는 무의미할 뿐이다. (1034.5)
 성경은 역사에 초자연적 특성을 부여한다. 그것은 시작이 있고 끝이 있는데, 그 끝은 인간의 이기심과 교만이 만들어낸 재난에 의한 끝도 아니고, 인본주의자들이 말하는 유토피아의 약속으로 귀결되는 끝도 아닐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 자신에 의해 이루어질 완전한 멈춤이 될 것이다(시 46:9-11). (1034.6)
 같은 방식으로, 성령 안에 감추인 생애는 영원한 운명과 직결되어 있다. 그와 같은 생애는 비록 눈물로 씨를 뿌리지만 기쁨으로 추수할 것이다(시 126:4-6). 그리스도인들의 도덕적 선택은 의미를 가진다. 그들은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는 가운데 사랑을 퍼트린다. 예수님은 오신다. 유대 땅에 오셔서 자비와 용서를 가르치신 그분이 사랑의 왕국을 건설하기 위해 오신다. “잠시 잠깐 후면 오실 이가 오시리니 지체하지 아니하시리라”(히 10:37). (1034.7)
 하나님과 사탄 사이의 대쟁투는 곧 끝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공의가 지구 뿐 아니라 그 싸움이 시작된 하늘에까지 온 세계에 걸쳐 세워질 것이다. 온 우주는 하나님과 더불어 화목하게 될 것이다(골 1:20; 고전 15:28). (1034.8)
 예수님은 곧 다시 오신다 얼마나 위로가 되고 확신을 주며 평안을 주는 기별인가! 성경의 마지막 책은 예수 재림의 확신을 강조하면서 끝을 맺는다. “보라내가속히 오리니 내가줄상이 내게 있어 각사람에게 그의 일한 대로 갚아 주리라”(계 22:12). 이에 대한 반응은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계 22:17). 성령과 신부가 하시는 이 초청에 대해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20절)라고 반응하지 않을 신자가 있겠는가? (103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