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은혜의 시기
 “신약은 지금이야말로 사람들이 회개하고 믿어야 할 기회라는 사실(막 1:15; 참조 행 3:19, 20)과 재림이 지체되는 것은 오로지 이 목적을 위해서이며, 무기한 지체되는 것은 아님을 분명히 하셨다. 그리고 이것은 사람을 위한 마지막 기회이다.”(A. L. Moore 209). 사도 베드로는 우리가 사는 이 시기를 하나님의 오래 참으시는 시간이라불렀다(벧전 3:9, 15). (1032.1)
 세상의 끝은 내일의 문제가 아니라 오늘을 위한 호소이다(히 4:7). 예수께서 오실 때 “한 사람은 데려감을 당하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할 것이다”(마 24:40, 41). 세상을 경고하지 않는 것은 위험에 처한이들을 도와주지 않는 죄를 범하는 것과 같다. 은혜의 시기는 곧 끝날 것이며, 끝이 가까울수록 하나님 편에 서는 일이 더욱 절박해질 것이다. 히브리서 41에 기록된 대로, “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워할지니 그의 안식에 들어갈 약속이 남아 있을지라도 너희 중에 혹 미치지 못할 자가 있을까 함이라” (1032.2)
 3. 긴박한 시대
 예수님의 다시 오심을 기다리며 사는 일에는 긴박감-이 수반된다(YI, 1908년 4월 28일). 예수께서는 자기 때가 심히 짧다는 것을 아시고 팔레스타인의 큰 길과 골목길을 부지런히 걸어 다니셨다(요 9:4). 사도 바울은 이 신념으로부터 영감을 받아(고전 7:29), 신자들에게 시간 활용에 최선을 다하라고 독려하였다(엡 6:15; 골 4:5). 그들은 전도하는 일에 모든 기회를 성실히 활용해야 했는데, 그 이유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들의 말에 동조하고 귀 기울이는 이들을 찾기가 점점 더 어려워질 것이기 때문이었다(딤후 4:2-4). (1032.3)
 “자기 때가 얼마 남지 않은 줄”을 아는 마귀(계 12:12가 특별히 열심을 낸다면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운” 줄을 아는 신자들은 얼마나 더 각성해야겠는가?(롬 13:11; 참조 ST 1887년 9월 15일: RH 1887년 8월 16일). (1032.4)
 4. 영적 은사의 시대
 기다리는 시간은 곧 세상에 전도하기 위한 기회임을 사도행전은 보여 준다. 성령께서는 사람들을 이 사업에 부르신다(행 13:1, 2). 그분은 당신의 은사를 주심으로 교회에 덕을 세우고 교회가 자라게 하신다(엡 4:11-13). 그 은사들 가운데 특별히 예언의 은사는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고 불신자들을 회심시키는 데 가장 유리한 은사이다(고전 14:1, 3, 24, 25). (1032.5)
 영적 은사들은 제자들로 하여금 세상의 소금이 되어 맛을 내고, 세상의 빛이 되어 환히 밝히도록 주어졌다(마 5:13-15). 그리스도인들은 그날이 다가옴에 따라 증언하는 임무를 수행하는 데 게을러서는 안된다(참조 영적 은사II). (1032.6)
 C. 그분의 재림을 위한 영적 준비
 예수 재림에 대한 믿음은 우리의 가치관에 영향을 미치며, 전도하도록 동기를 유발시켜 준다. 그것은또한 필연적으로 영적인 준비를 갖추게 한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인자의 강림을 위해 준비할 것을 권면하시면서(마 24:44), 열 처녀의 비유를 베푸셨다(마 25:1-13). 그 처녀들 중 다섯은 미련한 자들로 묘사되었는데, 그 이유는 그들이 신랑이 속히 오리라고 굳게 믿었으나 미래를 위해 아무런 대비책을 갖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머지 다섯은 공급할 기름을 손에 들고 있었기 때문에 슬기로운 처녀로 불렸는데, 아마도 그들은 신랑이 지체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두 그룹의 처녀들은 신랑이 도착한다는 소리에 놀랐으나, 오직 슬기로운 처녀들만이 신랑을 맞으러 나오라는 소리와 신랑의 실제 도착 사이에 있는 기다림의 시간을 성공적으로 견딜 수 있었다. 오직 예수님과 더불어 개인적인 관계를 가진 자들만이 모든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1032.7)
 마태복음 25:1-13에 나오는 비유는 앞서 언급된 두 종(마 24:45-51)과 같이 예수님의 재림과 관련하여 영적인 삶과 신실한 봉사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그리스도인들은 성화의 과정에서 날마다 주어지는 회개와 성장의 기회를 감사해야 한다(히 12:14). 그들은 성령의 침례와 은사(요 3:5)를 통하여 곧 시작될 영광스런 회복의 절정을 경험할 것을 안다. (1033.1)
 하나님의 권위 아래서 영원히 살기 위해 우리는 먼저 지금 그분의 율법에 순종해야 한다. 이러한 까닭에 사도 바울은 잃어버린바 될 사람들의 전형적인 죄들을 지적한다(고전 6:9, 10). 요한도 이 점을 강조한다(계 21:8; 22:15). 선지자 아모스는 이렇게 기록했다. “화 있을진저 야훼의 날을 사모하는 자여!” 너희는 “공법을 물 같이, 정의를 하수 같이 흘리지” 아니하였도다(암 5:18, 24). 이와 반대로,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고 예수 믿음을 지킨 자들은 칭찬을 받는다계 12:17; 14:12). 재림을 기다리는 자들이 자연스럽게 갖추게 되는 특성은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이다(벧후 3:11; 참조 교회증언 제4권, 309; 대쟁투 VI. E). (1033.2)
 D. 외견상의 지체
 그리스도께서는 아직 오시지 않았다. 2,000여 년을 기다린 지금도 그리스도인들은 여전히 재림을 열망하고 있다. 예수의 재림이 미뤄지거나 지체되거나 혹은 심지어 취소될 수도 있는가? 많은 신자들은 이 가능성에 대해 궁금해 한다. (1033.3)
 신약에는 재림의 임박과 격원(隔遠) 사이에 긴장감이 있다. 바울과 야고보와 베드로는 그날이 “가까웠다”고 하였다(롬 13:12; 약 5:8; 벧전 4:7). 예수님 자신도 “내가 속히 오리라”(계 22:20)고 확증하셨다. 그러나 다른 구절에서는 재림이 미래에 있을 것으로 나타나 있다. 하나님의 나라가 즉시 임할 것이라는 생각을 떨쳐내기 위해 예수께서는 먼 나라로 간 귀인의 비유를 말씀하셨다(눅 19:11-27). 마태는 주인이 “오랜 후에” 돌아올 것이라고 하였다(마 25:10). 다른 비유에서 예수께서는 분명한 지체를 임시하셨다(마 24:48; 25:5). (1033.4)
 구약에서도 이와 같은 긴장이 발견된다. 야훼의 날은 가깝기도 하고 멀기도 하다(합 2:3; 사 2:2, 20; 13:6; 습 1:14; 3:8). (1033.5)
 “지금”“아직” 사이의 긴장은 예수님이 오실 연도를 설정할 어떤 가능성도 배제한다(10MR 270). 제자들은 언제든지 준비되어 있어야 했다(마 24:36-51). 베드로에 의하면 지체는 아무도 멸망하기를 원치 않으시는 주님의 오래 참으심에 대한 하나의 표현이다(벧후 3:9). (1033.6)
 하나님은 약속을 더디 지키시는분이 아니다. G. C. 베르카우어(G.C Berkouwer)가 말했듯이, “만일 그리스도의 재림이 취소된다면 그것은 단지 실망이나 환멸 정도가 아니라 하나님의 진실성과 신빙성에 대한 신뢰의 위기가 될 것이다”(66, 67). 성경은 결코 그 약속의 불이행 가능성을 암시하지 않는다(벧후 3:9; 히 10:39). 오히려 재림의 확실성을 충분히 확증해 주고 있다. (1033.7)
 하나님께서 친히 재림의 약속을 확증하셨다. 그분의 말씀은 확실하다. 그분의 입에서 나온 말을 변경하는 것은 그분의 언약에 위배되며(시 89:35), 그분은 거짓말 하는 분이 아니시다(민 23:19; 삼상 15:29; 히 6:13, 18). 우리는 신실하지 못할지라도 하나님은 언제나 신실하시다(딤후 2:13). 그러므로 우리는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고 굳게 잡아야 한다(히 10:23). (103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