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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의 근본적인 출발점은 성경이 그 직접적이고 더 넓은 문맥으로 스스로를 해석한다는 신앙 원칙이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히브리 성경의 진정한 해석자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신약이 구약에 대한 하나님의 권위 있는 해석이요. 적용이라고 고백하는 교회의 입장을 취한다. 우리의 결론은 신약은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죽음, 그리고 그의 부활과 승귀(exaltation)에서 메시아적 예언의 성취를 가르친다는 것이다. 신약과 구약의 관계에서 놀라운 한 가지 요소는 신약이 심지어 고대 이스라엘의 역사를 그리스도 사명의 표상으로 간주한다는 사실이다(제5장 참조). 그 리스도 자신이 그와 함께 원형의 때가 이르렀다는 새로운 개념을 시작하셨다(제4장 참조). (225.1)
 그리스도 자신이 그의 교회를 창설하였기 때문에 기독론적 성취의 피할 수 없는 결론은 이스라엘의 사명은 그리스도교 교회의 사명 안에서 성취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교회론적 성취는 특별히 세 가지 히브리 개념 즉 이스라엘의 신실한 남은 자들의 생존, 예레미야 31장의 새 언약의 약속, 그리고 에스겔 36-37장의 생기를 주는 성령의 약속에 집중되어 있다. 상호 연관되어 있는 이 세 가지 약속들로 인해 메시아 시대의 개막을 알리는 사건들이 이루어지고 신약에서 교회론적으로 적용된다(제7장 참조).1 신약에서 이스라엘을 교회론적으로 해석하는 것이 의미하는 바는 이스라엘 민족에게 제한되었던 하나님의 약속이 그리스도와 그의 교회 안에서 성취된다는 것이다. 사도 교회는 그 자신을 메시아적 시대의 새롭고 참된 이스라엘로 간주하였다. 심지어 로마서 9-11장에서도 바울은 팔레스타인에서의 이스라엘 민족의 신정 회복을 찾지 않았다(제8장 참조). 구약의 회복과 모임의 약속은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재림 때에 묵시적 절정에 이를 것이라는 계속된 기대와 함께 신약에서 지속적으로 기독론적으로, 더 확대하여 교회론적으로 적용되었다. 이러한 미래의 종말론적 성취는 온전히 그리스도 중심의 초점으로 다시 제시된다. (225.2)
 이스라엘의 언약의 약속에 대한 기독론적 성취의 또 다른 결과는 신약이 이스라엘의 지리적 약속들을 너무나 분명히 보편화한다는 사실이다. (제9장 참조). 비록 복음서와 서신에서 가끔 신약이 이전의 민족적 지리적 이미지를 채택하지만, 교회론적 묵시론적 적용에 있어 중동 지역에 초점을 맞추거나 팔레스타인지역에 제한하는 것은 지속적으로 배제된다. 신약은 그리스도께서 실제로 함께 하시든 두 세 사람이 그의 이름으로 모이는 곳에 영적으로 임재하시는 그가 있는 곳만이 거룩한 곳이라고 인정한다. (226.1)
 사도행전 15장의 사도들의 총회에서 사도 교회가 이스라엘과 나란히(beside) 시작된 것이 아니라 회복된 이스라엘로서(as) 시작되었다는 결론에 도달하였다(제10장). 유대 민족으로부터 신정을 거두고 새 언약의 책임과 축복을 메시아 공동체에 부여하기로 한 그리스도의 최후의 결정은 다니엘서의 70이레 예언에 가장 인상적으로 묘사되어 있다(제11장 참조). 간격 가설은 문자적 주석의 토대에서 보면 필요하지도 않고 타당하지도 않다. 그리스도는 그의 감람산 강화에서 다니엘서에 예언된 멸망의 가증한 것을 그 자신의 세대에 있을 성전의 오염과 예루살렘의 파괴에 적용하였다. 그러나 그는 이 적용으로 끝나지 않았다. 마가복음 13장마태복음 24장에서 그는 예루살렘에 대한 심판을 기독교 시대를 관통하여 마지막 때에 이르기까지의 그가 친히 택하신 교회의 환란이나 고난과 함께 섞으셨다(제12장 참조). 교회는 우주적인 고난에도 불구하고 열방 앞에서 그리스도를 메시아로 증거하는 사명을 받았다. 그 결과 세계는 결국 AD 70년 예루살렘이 직면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거룩한 공의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될 것이다. (226.2)
 다니엘의 예언 개요에 대한 그리스도의 적용은 데살로니가후서 2장에서 사도 바울에 의해 더욱 발전된다. 그리고 이 전망은 좀 더 상세한 연구가 요구된다.2 그러나 대부분의 요한의 계시는 그리스도 중심의 해석학에 기초한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 일단 예언적 성취를 파악하는 원칙이 분명해지면 우리는 성경의 아직 성취되지 않은 예언들을 주석할 신성한 과업을 수행할 확신을 새롭게 할 수 있다. 동일한 그리스도 중심 해석학이 성취된 예언과 성취되지 않은 예언 모두에게 적용되어야 한다. 특별히 마지막 때에 성취될 예언들을 포함하여 모든 종말론적 예언들은 새 생애로 이끄는 그리스도의 변화시키는 십자가와 부활을 통과해야 한다. 이것은 새 언약이 그 현재의 성취와 미래의 완성을 오직 그리스도의 자기희생의 피와 승리의 부활을 통해서만 이루는 것이 확실함같이 분명 한 사실이다. (226.3)
 이스라엘 언약을 기독론적 교회론적으로 해석하는 이 복음적 해석학의 가장 중요한 결과는 마치 예수께서 아직 오시지 않으셨고 신약이 기록되지 않은 것처럼 옛 언약의 축복들을 무조건적으로 중동에 있는 현대 이스라엘에 적용하는 것은 성서적으로 정당하지 못하다는 결론이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지나치고서는 어떤 “자연스러운” 주석도 유효할 수가 없다(고후 1:20 참조). 예언의 성서적 초점은 결코 한 백성이나 나라로서의 이스라엘에 놓여 있는 것이 아니라 메시아 공동체로서 믿고 예배하는 언약의 백성으로서의 이스라엘에 놓여 있다. 그리고 궁극적 초점은 하나님과 그분의 메시아에게 있다. 모든 눈이 마침내 이스라엘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왕과 교회의 주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이끌리게 될 것이다(계 1:7; 슥 12:10; 사 40:5 참조). 성서적 예언과 묵시는 전적으로 하나님 중심적이며 그리스도 중심적이다. 이 진리는 인류의 창조주와 구주에게 집중되어 있고 그분을 영화롭게 한다. 신약에는 이스라엘과 교회의 구별이나 나눔이 없다. 묵시적인 거룩한 도성은 이스라엘의 부조들과 그리스도의 사도들의 스물넷의 이름들을 결합시키고 있다(계 21:12-14). 중심은 “하나님과 어린 양의 보좌이다”(계 22:1, 3). 큰 환란을 승리하며, 통과한 성도들은 “하나님의 종 모세의 노래, 어린 양의 노래”를 부를 것이다(계 15:3; 7:9, 14 비교). (227.1)
 자신들을 “온건한 세대주의자들”이라고 부르는 몇몇 사람들이 구약과 신약의 상호관계성에 대한 주의 깊은 연구를 통해 다음과 같이 인정하는 것을 보게 됨은 고무적인 일이다. (227.2)
이스라엘과 교회에 대한 이전의 날카로운 구별은 어느 정도 흐려지기 시작하였다∙∙∙. 엄격하게 말해서,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지상 백성으로 교회를 하나님의 천상 백성으로 부르는 것도 정확하지 않다. 왜냐하면 영원한 상태에서 우리 모두는 함께 살아가며 새 예루살렘과 새 땅의 축복을 나눌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너무 많은 것들을 구별해 왔다.3
(227.3)
 구약과 신약, 그리고 그 언약의 근본적인 통일성과 연속성을 형성하는 고리가 공통 주제인 남은 자 개념이다. 그리스도의 사도들과 제자들은 이스라엘의 신실한 “남은 자들”로 불렸고(롬 11:5), 사도 교회는 “하나님의 이스라엘”로 칭하여졌다(갈 6:15, 16; 3:29). 그러므로 교회가 이스라엘로 대체되었다고 말하는 것은 옳지 않다. 오히려 교회는 구약의 하나님의 이스라엘의 연속이다.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이 이스라엘의 신실한 남은 자들과 다르거나 구별된 실체를 형성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메시아적 이스라엘로 접붙임되었다. 신약에는 모든 세대나 모든 시대의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한 오직 하나의 상징적 감람나무(롬 11장)와 하나의 영적 성전(엡 2장)과 하나의 묵시적인 하나님의 여자(계 12장)와 그리고 하나의 새 예루살렘(계 21장)이 있을 뿐이다. 이 목적을 위하여 그리스도 께서 세상에 오셨다. “또 이 우리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들이 내게 있어 내가 인도하여야 할 터이니 저희도 내 음성을 듣고 한 무리가 되어 한 목자에게 있으리라”(요 10:16). 그리스도의 마지막 기도는 이 우주적 연합을 목표로 한 것이었다. (227.4)
내가 비옵는 것은 이 사람들만 위함이 아니요 또 저희 말을 인하여 나를 믿는 사람들도 위함이니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저희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요 17:20, 21).
(227.5)
 참고 문헌
 1 에스겔에 대해서는 다음을 참조하라. C. H. Bullock, “Ezekiel, Bridge Between the Testaments,” JETS 25:1(March 1982): 23-31(특별히 30쪽).

 2 다음 본인의 논문을 참조하라. “Paul’s Prophetic Outline in 2 Thessalonians 2,” AUSS 21:2(1983).

 3 K L Barker, “False Dichotomies Between the Testaments,” JETS 25:1(March 1982): 3-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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