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확대경 - 요한복음 제III부 예수께서 믿는 자들에게 생명을 주심 (5-12) 제 10 장 메시야가 죽은 자들에게 생명을 줌 (10:22-11:57)
 가나의 혼인 잔치에 관한 장에서 우리는 처음으로 영광의 주제를 살펴보았다. 그것은 이 장에서도 역시 주요 사항으로 나타난다. 예수에게 있어 궁극적인 영광의 순간(이 복음서에서)은 십자가에 높이 들리시는 것이었다. 하나님의 품성이 인간의 육체 속에 가장 명백하게 드러나는 곳이 바로 그곳이다. 나사로를 일으키신 것은 하나님께 찬양을 돌리게 하였고(12:12-18), 믿음을 북돋우는 수단이 된(11:40) 반면에, 그 이적의 결과는 예수의 체포와 고난과 죽음이었다는 사실로부터 가장 큰 영광이 나타났다. 이것이 바로 나사로를 일으키신 사건이 이 복음서에서 예수의 지상 봉사에 관한 이야기들로부터 그의 고난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로 옮겨가는 전이점(轉移點)에 위치하게 된 이유이다. 이것은 이 복음서에서 마지막 유월절(12:1; 13:1)과 그 후에 있게 될 고난에 초점을 맞추는 전환점(轉換點)이 되고 있다. (240.3)
 마리아, 마르다, 그리고 제2 세대
 다행스럽게도 베다니의 마리아에게 영적 어두움의 순간은 짧은 것이었다. 그녀의 오빠가 부활할 때 마리아는 궁극적인 격려와 아울러 궁극적인 꾸중도 들었다. 그녀는 이 경험의 무대에서 영적으로 희망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연약한 믿음이 궁극적인 확증을 갖게 되었을 때, 그녀는 이 복음서에서 가장 찬란한 제자도의 모본으로 떠올랐다(12:1-8). 이것은 제2 세대로 하여금, 예수께서 함께 계시지 않고 그분의 능력이 미치지 못한다고 느껴지는 때에라도 믿음을 갖게 하는 크나큰 격려가 되었다! 이것이 오늘날 하나님이 계신 것 같지 않고 무능한 것처럼 보이는 세속 세계에 사는 우리에게 얼마나 큰 격려가 되는지! 마리아는 믿음이 약하고 희망이 사라진 사람들을 구속하는 하나님의 다함없는 능력의 본보기이다. (241.1)
 그러나 우리가 포함된 제2 세대에게 더 위대한 본보기는 마르다일 것이다. 마리아는 믿기 위해서는 보아야 했던 도마(20:24-28)와 같았다. 그러나 마르다는 이 경우에 있어서 제2 세대를 대표한다. 비록 그녀는 부활을 아직 보지 못하였지만 그녀가 예수에 대하여 이미 알고 있는 것에 근거하여 믿었다. 이 복음서에는 구원하는 믿음의 두 가지 유형, 즉 보는 사람들의 믿음과 보지 않고 믿는 사람들의 믿음이 있다(29절). 제2 세대와 오늘날에 해당되는 믿음은 오직 후자뿐이다. 왜냐하면 이 때는 예수께서 육신으로 함께하시지 않지만 그분의 제자들의 말씀을 통하여 충분히 인정되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241.2)
 “생명”의 의미
 생명이란 단어는 요한복음에서 여러 방법으로 사용되고 있다. 가능하다면 매번 의도된 정확한 뉘앙스를 식별하는 것이 중요하다. 마태복음, 마가복음, 그리고 누가복음에서 영생은 물론 예수께서 권능과 영광으로 돌아오셔서 그를 믿는 자들을 결코 끝이 없는 육신의 생명으로 일으키실 미래에 한정되어 있다(마 19:29; 24:30, 31; 25:46; 막 10:30; 13:26, 27; 눅 18:29, 30). 그러나 요한복음에서 생명은 특별히 예수께서 그를 믿는 자들을 위하여 행하시는 것의 현재적 실재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3:15, 16, 36). (242.1)
 제4 복음에서는 예수께서 생명의 참된 시여자(施與者)임이 분명하게 나타난다(5:21, 26; 6:33; 11:25, 26; 14:6 등). 그 생명은 그분의 말씀에 의해 분여(分與)되며(4:50; 5:8, 24; 6:63; 11:43), 따라서 제2 세대는 전혀 불리한 것이 없다. 그들은 이 복음서를 통하여 예수의 말씀에 접근할 수 있다(17:20). 요한복음에서 생명은 일차적으로 육신적 실존으로 이해되는 것이 아니라, 의미와 중요성을 추구하는 인류의 탐색에 대한 대답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예수께서는 가장 충만한 생명을 얻는 것을 가능하게 하셨다(8:32, 36; 10:10). 무엇보다 영생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가지는 하나님과의 현재적이고 살아있는 관계에 의해 드러나게 된다(17:3). 나사로의 육신적인 부활은 두 가지의 의미를 지닌다: 예수께서는 지금 (생명을 지향한다는 의미에서) 영생을 줄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계신다는 것과, 마지막 날에 죽은 자들을 영원한 육신의 존재로 일으켜 주실 능력을 가지셨다는 것이다(5:28, 29). (242.2)
 최고의 생명을 얻는 두 가지 비결이 있다. 첫째는 그 생명의 근원은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만 발견됨을 아는 것이다(14:6; 6:33-58; 요일 5:11, 12). 어디든지 예수께서 계신 곳에는 생명이 있다(요 11:25, 26). 생명을 얻는 둘째 비결은 믿는 것이다(1:4, 12). 개인들이 예수 안에 항상 있는 생명을 소유하게 되는 것은 예수와의 지속적인 관계를 통해서이다(3:16, 36). (242.3)
 ■ 말씀에 들어감
 요한복음 11:45-57을 적어도 두 번 읽은 후에 다음의 질문들에 대답하라: (243.1)
 1. 요한복음에서 종교 지도자들로부터 반응을 일으키게 한 다른 사건들을 조사해 보라(예를 들면, 2:13-22; 5:1-18; 7:37, 44; 8:12, 58, 59; 9:1-16; 10:30-33을 보라). 나사로를 살리신 사건은 어떤 반응을 불러일으켰는가? 이전의 만남에서 가지게 된 예수에 대한 느낌이 요한복음 11장의 이적에 대한 지도자들의 반응에 어떻게 영향을 끼쳤다고 그대는 생각하는가? (243.2)
 2. 종교 지도자들로 하여금 예수를 당연히 제거해야겠다고 여기게 만든 그들의 주된 관심사들을 열거해 보라. 예수께서 설사 사기꾼이었다 할지라도 이와 같은 일들이 합법적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설명해 보라. (243.3)
 ■ 말씀을 탐구함
 문단의 구조
 이와 같은 산헤드린(Sanhedrin) 회의를 열게 된 요인은 나사로를 죽은 자 가운데서 일으킨 것이었다. 이 문맥에서 우리는 이 복음서 전체를 통해 분명하게 드러나는 한 가지 현상을 보게 된다. 예수께서 행하신 모든 이적이 두 가지 동등하고 상반된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이다. 한편으로, 그 표적(表迹)의 참된 의미를 보는 자들에게는 믿음을 더해 준다(예를 들면 2:1111:45). 그러나 똑같은 이적이, 사실상 처음부터 예수를 거부했던 종교 당국자들 편에는 예수께 대한 반대와 적의(敵意)만 키워 주었다(5:16-18; 9:14-34; 11:45-53). (243.4)
 마음의 자극을 가중시키는 이와 같은 관계는 다음의 도표에서 분명히 볼 수 있는데, 이 사건들은 마치 층계를 올라가는 것처럼 보인다: (244.1)
 ┌─성전을 정결케 함 (2:13-22)

 ┌┼─안식일에 질병을 치유함 (5:1-18)

 │└─예배를 방해함 (7:37-39; 8:12)

 │┌─“신성 모독” (8:58, 59)

 └┼─안식일에 질병을 치유함 (9:1-16)

 └─“신성 모독” (10:30-33)

 (244.2)
 나사로를 죽은 자 가운데서 일으키신 것은 요한복음에서 종교 지도자들이 기다리고 있던 “마지막 불 지피기”(“last straw”)였다(11:1-44—예루살렘에서 그들을 자극하는 행위가 모두 일곱 번 있었다). 제4 복음에서 예수의 궁극적인 “영광화”“높이 들림,” 즉 십자가의 “때”로 이어지는 최후의 단계들을 재촉한 것은 바로 나사로의 부활이었다(11:45-53). (244.3)
 문단의 세부 사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