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 복음에서는 예수께서 생명의 참된 시여자(施與者)임이 분명하게 나타난다(
5:21, 26; 6:33; 11:25, 26; 14:6 등). 그 생명은 그분의 말씀에 의해 분여(分與)되며(
4:50; 5:8, 24; 6:63; 11:43), 따라서 제2 세대는 전혀 불리한 것이 없다. 그들은 이 복음서를 통하여 예수의 말씀에 접근할 수 있다(
17:20). 요한복음에서
생명은 일차적으로 육신적 실존으로 이해되는 것이 아니라, 의미와 중요성을 추구하는 인류의 탐색에 대한 대답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예수께서는 가장 충만한 생명을 얻는 것을 가능하게 하셨다(
8:32, 36; 10:10). 무엇보다 영생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가지는 하나님과의 현재적이고 살아있는 관계에 의해 드러나게 된다(
17:3). 나사로의 육신적인 부활은 두 가지의 의미를 지닌다: 예수께서는 지금 (생명을 지향한다는 의미에서) 영생을 줄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계신다는 것과, 마지막 날에 죽은 자들을 영원한 육신의 존재로 일으켜 주실 능력을 가지셨다는 것이다(
5:28,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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