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확대경 - 요한복음 제III부 예수께서 믿는 자들에게 생명을 주심 (5-12) 제 10 장 메시야가 죽은 자들에게 생명을 줌 (10:22-11:57)
 32절에서 우리는 요한복음에서 가장 해학적(諧謔的)인 예수의 말씀을 찾아볼 수 있다. 종교 지도자들은 열기를 내뿜으면서 손에 돌을 들고 그분 앞에 서 있었다(31절). 예수께서는 말하자면 “잠깐만! 당신들이 나를 돌로 치기 전에 나의 선행들 중의 어떤 것 때문에 나를 돌로 치려는지 설명해 주겠소?”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들은 그분의 선행들에 대해서는 반대하지 않지만, 그분이 신성모독을 범했기 때문에, 즉 그분이 자신이 하나님이라고 주장한 것 때문에 그분을 돌로 치려 한다고 대답했다(33절; 참고 5:18). (232.2)
 예수께서는 먼저 하나님[]이라는 단어가 인간에게 적용하기에 항상 부적절한 용어는 아니라고 대답하셨다(34, 35절). 시편 82편은 고대 이스라엘의 인간 재판관도 그들이 하나님의 임명에 따라 하나님의 심판 사역을 수행했기 때문에 “신들”(“gods”)의 기능을 했음을 알려주고 있다. 그와 같은 칭호가 하나님에 의해 임명된 평범한 인간에게 적합했다면, 하나님의 친아들, 하나님과 영원 전부터 함께 존재하셨고, 그분 자신의 인격(person) 속에 신성의 충만을 지니셨던 분이 하나님에 의하여 세상에 오셔서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드러내도록 임명되었다면, 그 용어가 그에게 얼마나 더 적절하겠는가!(35, 36절; 참고 1:1). 비록 이 논증이 오늘 다소 우리의 이해를 넘어서는 것이라 해도 기본적인 요점은 분명하다. 예수의 주장은 성경이 허용하는 것을 넘어서지 않고 있다(Talbert, Reading John, 170). (232.3)
 “봉헌된 분”(“Dedicated One”)으로서 예수께서는 인간을 죄로부터 구원하는 성전의 일들과 짝을 이루는 일들을 하도록 아버지에 의해 보내심을 받으셨다(37, 38절). 나사로를 살리는 이적에서처럼, 예수께서 행하려고 하신 것은 그분이 진실로 자신이 주장하는 바로 그분이심을 즐겨 들으려 하는 자들에게 증거가 된다(20:30, 31). 그러나 종교 지도자들은 다시 그들이 진정으로 들으려 하지 않았다는 것을 드러내었다(10:39). (233.1)
 예수 자신의 땅이 그분을 거절했기 때문에(1:11), 그분은 유대를 떠나 믿음을 찾기 위해 요단으로 건너가셨다(40-42절). 거기에는 침례자의 사역이 여전히 존중되고 있었고, 그 결과로 예수께서는 예루살렘과 유대에서 얻은 것보다 더 긍정적인 평가를 얻으셨다. 41절은 요한복음에서 침례자에 대한 네 번의 언급들 중의 마지막 것인데, 각 언급은 그 앞의 것보다 더 짧다(참고 1:19-36; 3:23-36; 5:33-36). 이 복음서의 저자는, 예수와 침례자가 요한복음의 독자로부터 받은 관심에 있어서, 예수는 흥하였고 침례자는 쇠하였음을 거의 의도적으로 예증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3:30). (233.2)
 문단의 주요 주제
 예수의 봉헌
 이 복음서의 이 부분에서 관건이 되는 주제는 예수의 인격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옛적에 여러 성전의 봉헌식에서 하셨던 것처럼 다시 한번 성전에 오셨다는 것이다(출 40; 왕상 8). 그리고 그가 성전력(聖殿曆)의 공식적인 봉헌의 시기[수전절]에 오셨다!(36절). 다시 한번 예수께서는 유대 절기의 실질적인 대체물로 나타나셨다. 그분은 자기를 믿는 자에게 예루살렘 성전에서 예배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셨던 바로 그 생명을 제공하셨다(1:14; 2:21). 예수를 믿는 자들은 예루살렘에서 희생 제도를 지원하던 사람들에게 적용된 것 이상으로 하나님께 더 온전하게 나아갈 수 있게 된다(27-29절; 참고 1:12-18; 롬 5:1, 2; 히 9:6-10; 10:19-22). (233.3)
 그리스도의 신성
 예수께서 요한복음 10:30에서 의미하신 것은 31절과 33절의 유대인의 반응을 통해 가장 잘 이해될 수 있을 것 같다. 그들은 그분이 분명히 하나님과 동등됨을 주장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했다. 예수께서는 “물론 나는 하나님과 동등하지 않다. 당신들은 그와 같은 어리석은 생각을 도대체 어디서 가져왔는가?”라고 말함으로써 그와 같은 주장을 논박하지 않으시고, 34-36절에서 오히려 문제성이 있는 대답을 하셨는데, 이것은 사실상 “내가 말한 것이나 당신들이 이해한 것에는 성경적으로 잘못된 것이 하나도 없소. 더욱이 당신들이 진실로 내가 한 일들에 관심을 기울인다면, 당신들은 내가 자신에 대하여 주장한 것을 의심하지 않을 것이오”라고 말하는 것과 같았다(37, 38절). (234.1)
 예수와 유대인들 사이의 논쟁은 안식일에 하신 치유에 관한 것에서 시작되었으나, 곧 하나님과 동등하다는 그분의 주장으로 더욱 증폭되었다(5:16, 18). 종교 지도자들은 메시야가 신성한 인물일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고 있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하나님과 함께하는 연합을 주장하시고, 외관상으로 안식일과 관련된 규례들을 무시하셨을 때, 그들은 그를 약속된 메시야로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 온전히 합당한 일이라고 느꼈다. (234.2)
 ■ 말씀에 들어감
 요한복음 11:1-44를 적어도 두 번 읽은 후에 다음의 질문들에 대답하라: (235.1)
 1. 이 문단 속에 나타나는 예수의 행동에 앞의 문단(10:22-42)이 끼친 영향을 간략하게 서술하라. (235.2)
 2. 예수께서 나사로를 죽음에서 일으키신 신학적 목적을 이해하게 해 주는 열쇠는 어떤 구절인가? 한두 단락으로 그 신학적 목적을 서술하라. (235.3)
 3. 그대는 예수께서 베다니에 가시기 전에 이틀 동안 지체하신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그 지체로 인하여 어떤 면으로든지 영향을 받은 개인, 집단, 그리고 사건에 대해 간단히 써 보라. (235.4)
 4. 이 장에 기록된 만남들에 기초하여 마리아와 마르다의 성격에 관해 간단히 묘사해 보라. 그들 각자의 개성들은 어떠한가? 이 장에서 예수께서 방문하셨을 때, 예수를 향한 그들 각자의 태도는 어떠한가? 그분이 그들의 요구에 응하는 일을 지체한 것에 대해 그들은 어떻게 생각했는가? 나사로가 일어나기 전에 그들 각자의 믿음의 상태는 어떠했는지를 설명해 보라. 성경의 관주나 성구 사전의 도움을 받아 요한이 마리아와 마르다에 부여한 성격과 다른 복음서에서 발견되는 그들의 성격을 비교하고 대조해 보라. (235.5)
 5. 예수께서 자신이 나사로를 죽음에서 일으키러 오신 것을 아셨음에도(11절), 33-38절에서 그분이 고민하시며 통분히 여기신 이유는 무엇인가? 그대 자신의 대답을 설명해 보라. (235.6)
 ■ 말씀을 탐구함
 문단의 구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