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이름 아름다워라 16. 야훼 닛시—나의 기(旗) 여호와 (나로 힘을 내게 하시는 이)
 예수께서는 모든 시대 모든 인생에게 적용되는 당신의 나라의 필수적 원칙을 선언하셨다: “너희가 이들 중에 가장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라”(마 25:45). 그 반대도 역시 진리이다. 그를 따르는 자들이 남에게 나타낸 친절은 그분께 베풀어진 친절로 간주된다. 그러므로 주님은 사람이 남에게 준 피해를 당신께 준 피해로 간주하신다. 하나님의 백성이 동료에게 괴로움을 당하면 하나님께서 괴로워하시며, 그 가해자가 마치 당신 자신을 해친 것처럼 책임을 물으신다. 아말렉의 소행은 처음부터 자기의 멸망을 자초하는 행위였다. (231.2)
 아말렉 족속이 르비딤에서 이스라엘을 상대로 싸움을 걸어왔을 때, 모세는 자기 백성이 광야에 익숙하고 많은 전쟁을 치른 유목민을 상대로 싸울 만한 준비가 전혀 안 되어 있음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여호수아를 명하여 12 지파의 장정들을 선발하여 주의 이름으로 나아가 적을 맞아 싸우게 하였다. 그리고 그는 자기 형 아론과 또 한 사람의 충성된 친구 훌을 대동하고 이스라엘의 모든 용사가 볼 수 있는 산 위로 급히 올라가서 자리를 잡았다(출 17:9-13). 거기서 위대한 지도자 모세는 이스라엘의 처지를 하나님 앞에 펼쳐 놓았다. “두 팔을 하늘을 향해 들고, 오른 손에 하나님의 지팡이를 치켜든 모세는 이스라엘 군대의 무훈을 위해 기도했다. 싸움은 길어짐에 따라 그의 팔이 하늘을 향해 들려 있으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내려지면 원수가 승리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모세가 피로해지자 아론과 훌은 그날 해가 져서 적이 도주할 때까지 그의 팔을 떠받들고 서 있었다”(PP 299). 모세가 치켜든 지팡이는 용사들에게 기(旗)의 역할을 했다. 그들은 그것을 그들의 지도자가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는 표로 보는 동시에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실 승리의 보증으로 바라보았다. (232.1)
 현대 아말렉을 어떻게 상대하나?
 이스라엘이 홍해 바닷가에서 애굽 군대의 추격을 받았을 때 하늘이 내린 명령은 “가만히 서서, 여호와의 구원을 보라!”는 것이었다(출 14:13). 그러나 그와 반대로 며칠 후 르비딤에서 모세가 받은 명령은 적을 맞아 싸우라는 것이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도 할 역할이 있음을 알게 하기 위해 12 지파 장정들을 선발하여 적과 싸우게 하셨다(PP 298).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을 애굽에서 구해 내고 바로의 권세로부터 탈출시키실 때는 친히 당신께서 백성을 위해 모든 것을 행하셨다. 이것은 사단, 즉 용(겔 29:3)의 권세 아래 있는 세상으로부터 하나님의 백성이 구원받기 위해서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역사에 의존해야 할 것을 말해 주는 표상이었다. 이제 백성이 약속의 땅으로 가는 도중 길에서 원수를 만날 때는 백성이 나가 싸우도록 하나님은 명하셨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이 홀로 싸우도록 버려두지 않으셨다. 그는 가까이 계시면서 그들을 철저히 도우셨다. 싸우는 용사들은 들려진 기를 보기 위해 특별한 노력을 해야 했고, 기를 보고는 고무되어 힘있게 싸웠다. 그들은 시종일관 모세의 중보 기도에 힘입어 싸웠던 것이다. 이것이 사람이 하나님과 협력하는 방법이다. (232.2)
 “아무도 죄를 이기기 위한 위대한 투쟁에서 사람은 별로 하는 역할이 없다든지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주장을 펴는 일이 없도록 하라. 하나님은 사람의 협력 없이는 아무 일도 하지 않으신다. 그리고 사람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한 후에야 예수께서 도우신다는 말도 하지 말라.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느니라’고 그리스도는 말씀하셨다. 처음부터 끝까지 사람은 하나님과 함께 힘써야 한다. 성령께서 사람의 마음에 역사하지 않으시면, 우리는 발걸음마다 비틀거리고 쓰러진다. 사람의 단독으로 하는 노력은 아무런 가치가 없다. 그러나 그리스도와의 협력은 승리를 의미한다. 우리는 스스로 죄를 회개할 힘이 없다. 하늘의 도움을 받지 않는 한 우리는 구세주께로 가는 첫 발도 내디딜 수 없다. 어떤 사람을 구원하시든지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시작과 끝이라’고 그는 말씀하신다(계 21:6). 비록 만사가 그리스도 때문에 가능해지는 것이긴 하나, 우리는 모든 사람에게 지칠 줄 모르는 근면성을 고취해야 한다. 우리는 혹시라도 교활한 원수에게 지지 않기 위해 분투하고 씨름하고 고민하고 경계하고 기도해야 한다. 이것을 할 수 있게 하는 우리의 힘과 은혜는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이므로, 우리는 항상 당신께 나오는 자를 끝까지 구원하시는 이를 의지해야 한다.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은 별로 없다든지, 전혀 없다는 인상을 주는 일이 결코 없도록 하고, 오히려 죄를 이기기 위해 하나님과 협조하도록 사람들을 가르치라. 아무도 하나님 앞에서의 우리의 성적과 위치는 우리의 노력 여하와 아무 상관이 없다고 말하는 일이 없도록 하라. 심판 때 발표되는 판결은 우리가 무엇을 했고 무엇을 하지 않았는지 그 공로 여하에 따라 결정된다(마 25:34-40).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자에게는 노력과 수고가 요구된다. 나무의 성질은 그 열매에 나타난다”(SM 1:381-382). (233.1)
 이 말씀은 모든 그리스도의 병정들이 “하나님의 전신갑주”(엡 6:13- 18)를 입고 굳게 서서 마귀의 불화살을 대결하는 전쟁에서 있는 힘을 다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을 강조한다. 성공의 두 요인은 사람의 노력과 하나님의 능력이다. 여호수아보다 크신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훌륭한 군사”로 부름 받은 자들에게, 힘을 다해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울 것을 요구하신다(딤후 2:3; 딤전 6:12). 승리를 얻기 위해 병정은 “악은 어떤 형태든지” 피하고(살전 5:22; 벧전 2:11), 모든 일에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에 의존하지 않으면 안 된다. (234.1)
 영원하신 아버지여, 이 믿음과 순종을 우리에게 허락하옵소서. (234.2)
 예슈아(여호수아)란 히브리어 이름은 헬라화되었다가 영어에 와서는 Jesus가 되었거니와 그 뜻은 “구원하는 자”“구주”를 의미한다(마 1:21, 본서 14장을 보라). 옛날 하나님의 군대를 지휘했던 여호수아는 태곳적 전설적인 원수인 마귀의 세력을 대항하는 싸움을 지휘하시는 지도자인 여호와의 군대 장관 그리스도의 한 유형이라 할 수 있다. 오늘도 그리스도인들은 자신들 속에 있는 아말렉을 상대로, “정사들과 권세들과 이 세상 어두움의 주관자들과 높은 곳들에 있는 영적 악에 대항하는” 싸움을 싸워야 한다(엡 6:13-18). 그들을 보호하시기 위해 예수께서는 “전신갑주”(엡 6:13-18)를 주셨으며, 육적인 전쟁이 아닌 영적 전쟁을 위해 유효한 무기를 그들에게 제공하셨다(고후 10:4). 그는 그들과 함께 전쟁에 임하시어 결코 패전 기록이 없는 당신의 깃발을 그들 앞에 높이 드신다. (234.3)
 이스라엘의 대 아말렉 전쟁을 승리로 이끈 가장 중요한 요인은 모세의 중보의 기도와 높이 치켜든 하나님의 기였다. “하나님의 지팡이”를 든 모세가 하늘을 향해 두 손을 높이 쳐들고 있는 한 이스라엘은 승리했다. 그러나 그가 팔을 내리면 원수가 이겼다. “가장 위대한 승리는 전쟁 마당에서 쟁취되는 것이 아니다”(PP 203). 그것은 은밀한 기도실에서 쟁취된다. “가장 위대한 승리는 하나님의 접견실에서, 진지하고 애타는 믿음으로 전능하신 능력의 손을 붙잡을 때 쟁취된다”(상동). 언제든지 이것이 승리의 원칙이다. (234.4)
 중보의 기도를 통한 승리
 고대 하나님의 백성들 중 생각이 깊은 자들은, 하늘의 도움 없이는 이스라엘이 원수를 대적할 힘이 없음을 알 수 있었을 것이다. 산 아래 계곡에서 무자비한 원수를 맞아 죽음의 백병전을 벌이고 있던 용사들은 산 위에서 그들을 위해 간구하는 지도자의 모습을 쳐다볼 때, 그가 높이 치켜든 기와 그것이 가리키는 하나님을 생각하고 용기를 크게 얻었다. (235.1)
 하나님은 홍해에서 애굽의 바로와 그의 군대를 섬멸시키신 것처럼, 이스라엘의 협력 없이도 아말렉을 쉽사리 처치해 버리실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이스라엘과 모든 시대의 투쟁하는 교회를 위해 한가지 교훈을 가르치시려 하였다. 때때로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을 위해 홀로 행동하실 때가 있는 반면, 또 때로는 당신의 백성의 협조적 노력을 요구하실 때가 있다. 여호와께서는 훈련되지 않고 경험 없는 소수의 이스라엘 정예군이 당신의 도우심을 힘입어 하나님을 모르는 숙달된 원수의 대군을 패주시킬 수 있음을 주변 종족들에게 보여주려 하셨다. (235.2)
 하나님의 지팡이
 그러나 이스라엘의 승리는 모세가 “하나님의 지팡이”를 높이 치켜들 때만 보장되었다. 이것은 그들의 승패가 모세의 손에 달려 있었다는 말이 아니다. 그러나 모세의 손이 힘을 잃고 들었던 깃대를 내리면 원수가 이겼다. 그래서 그를 동행했던 아론과 훌은 이 모세의 중보의 역할을 보조하기로 결심했다. 이 연출된 비유를 통해 주님은 의인들의 연합된 중보의 기도가 승리의 비결임을 고대 이스라엘과 우리에게 가르치려 하셨다. 하나님의 교회에는 야전에 나가 적과 싸우는 힘 좋은 군사들이 있다. 그러므로 후방에는 그들의 승리를 위해 “쉬지 않고” 기도하는 성도들이 있어야 한다. 연합시키며 격려하는 주님의 깃발, 즉 못박히신 그리스도를 계속 높이 치켜드는 동시에 실전에 나선 하나님의 일꾼들을 위해 중보의 기도가 진행될 때 용사들은 말할 수 없는 도움을 받는다. 사업과 기도에 이런 협동이 있을 때는 항상 성공이 따른다. “임마누엘의 피묻은 깃발 아래 섬기는 자는 때때로 영웅적 노력과 참된 인내를 나타낸다. 십자가의 군사는 최전선에 나서도 위축되지 않는다. 원수가 공격해 오면 그는 보루를 향해 도움을 요구한다. 기록된 말씀에 들어 있는 약속들을 주님께 제시하는 자들은 필요한 도움을 받는다. 그는 필요한 능력이 위로부터 왔음을 알고, 승리한 후 자기를 높이지 않으며 더욱 더 크게 ‘힘있는 자’를 의지한다”(GW 16). 형제 자매들이 자기를 위해 기도하고 있음을 알 때, 얼마나 더 격려를 받을 것인가! (235.3)
 살아남은 아말렉 족속은 참패당해 도주했고, 이스라엘은 소리 높여 찬송을 불렀다: “주께서 내 편이시니 내가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라. 사람이 내게 무엇을 할 수 있으리오?”(시 118:6). 성도의 승리를 위해 성경은 매우 힘있는 약속들을 우리에게 강조한다. 예를 들면: (236.1)
 “너희 마음이 쇠잔하지 말며, 두려워 말고 떨지 말며, 너희는 그들을 인하여 놀라지 말라. 이는 주 너희 하나님은 너희와 함께 계시고, 너희를 위하여 너희 원수들을 대적하여 싸우시며, 너희를 구원하시는 분이심이라”(신 20:3, 4). “내게 능력 주시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 4:13). “그러나 우리는 이 모든 일에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그분을 힘입어서, 이기고도 남습니다”(롬 8:37, 「표준새번역」). (236.2)
 오늘날 하나님의 백성은 그리스도의 깃발 아래 굳게 뭉쳐 힘을 내야 한다. “그대들은 하나님과 겸손히 동행하며 대장부답게 하나님 앞에 불순한 것 없이, 이 세대를 부패시키는 관능으로 오염되지 않은 순수한 자로 서야 합니다. 그대들은 모든 거짓과 악을 경멸하는 사람, 왕자 임마누엘의 피묻은 깃발을 높이 치켜들 과감하고 참된 용사들이 되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대들의 재능은 주를 위해 사용될 때 증가되고, 무한한 값으로 그것들을 사신 분께 귀한 것으로 인정받게 됩니다. 단순히 어떤 위대한 일을 할 수 없다고 가만히 앉아서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자들이 되지 말고, 무슨 일이든지 손에 닿는 대로 힘을 다해 철저히 하는 사람들이 됩시다” (MYP 24). (236.3)
 영원하신 하나님, 우리 눈에 기름을 바르사 우리의 필요와 당신의 뜻을 보게 하여주옵소서. (237.1)
 부활한 생명의 증거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지팡이”의 역할을 알게 되었을 때, 아말렉을 이긴 자기들의 승리가 갖는 놀라운 의미를 깨닫게 되었다. 후일 그 지팡이가 하나님의 장막 안 법궤 앞에 놓여졌을 때는 누가 대제사장인지를 가려내는 수단이었다. 사람들이 잠자는 어두운 밤에 영원한 셰키나(Shekinah) 영광이 그 위에 비출 때 지팡이는 싹이 나고 꽃이 피고 아먼드(almond, 扁桃) 열매를 맺었다(민 17:8). 이 부활한 막대기는 하나님의 중보자가 누구인지를 영원히 해결해 주었다. (23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