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이름 아름다워라 16. 야훼 닛시—나의 기(旗) 여호와 (나로 힘을 내게 하시는 이)
 애굽을 떠나 훙해를 건넌 후 이스라엘 백성은 곧 르비딤에 도착했다(출 17:1). 거기서 그들은 마실 물을 찾을 수 없었다. 그래서 백성들은 목마르다고 소란을 피우고, 어떤 무리들은 분노하여 모세를 해치려고 덤벼들었다. (226.1)
 그들의 그런 태도를 하나님은 당신을 “시험”하는 행위로 보셨다! 어쩌면 하나님의 백성이란 자들이 애굽의 노예 생활에서 자기 민족을 해방시켜 주신 그 놀라운 하나님의 기적을 그렇게 쉬 잊을 수 있었을까? 그들은 홍해를 가르고 그들을 건너게 하신 그 놀라운 하나님의 능력과 기적적 장관(壯觀)을 아예 기억도 하지 않기로 결심한 것일까? 불과 얼마 전 마라의 쓴 물을 달게 만들어 갈증을 면하고 날마다 내리는 만나로 굶주림을 면하게 해 주신 하늘의 섭리를 그들은 외면했던 것이다. 그들은 불평을 늘어놓으며, 구름 기둥과 불 기둥 속에서 그들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임재를 무시하고 격한 성미로 “주께서 우리 가운데 계신가 안 계신가?”라고 외치며 대들었다(출 17:7). (226.2)
 이 때 모세는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들고 그것으로 바위를 치라는 명령을 이행한다. 당장 그칠 줄 모르는 물줄기가 터져 나와 그 때부터는 광야를 헤매는 백성이 어디에 장막을 치던지 40년 동안 물 공급이 그치지 않았다(고전 10:1-5). (227.1)
 이런 모든 경험을 통해 주께서 당신의 은혜와 권능을 놀랍게 나타내 보이신 후, 전이 아니라 후에, 주님은 그들을 노리고 기다리던 아말렉의 공격을 허락하셨다. 이 가나안 족은 이스라엘을 공격한 최초의 부족이었다(민 24:20). 성경의 기록은 이스라엘 백성의 태도와 아말렉의 공격과의 관계를 나타내기 위해 “그래서 온 것이 아말렉인데 ...”라는 구문을 쓰고 있다. 아무튼 그래서 접전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 시련을 허락하려 하실 때는 먼저 백성이 그것을 견딜 수 있도록 만드는 준비가 선행된다는 사실이다. (227.2)
 아말렉 족속은 누구?
 아말렉은 엘리바스와 그의 첩 딤나의 아들이었다(창 36:12, 16; 대상 1:36). 엘리바스의 아비는 에돔이란 별명을 가진 에서로서 아브라함의 손자였다. 에서와 야곱의 갈등은 후일 에돔인들과 이스라엘인들의 대결로 이어졌다. 에돔인들은 이스마엘 족과 상혼(相婚)하여 그 사이에서 아말렉 족속이 생겨났다(창 14:7). 이 억척같고 험악한 베두인 족은 그들 주변의 모든 인척 부속인 에돔 족, 이스마엘 족, 그리고 사라가 죽은 후 아브라함의 후처가 되었던 그두라의 후손들이 품고 있던 이스라엘 족에 대한 원한과 증오를 전수하여 고스란히 쌓아두고 있었다. 그러므로 아말렉 족속은 이스라엘을 괴롭힐 기회를 놓칠세라 공격을 감행해 왔다. (227.3)
 이스라엘이 르비딤에 도착했을 때 아말렉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지치고 목마르고 싸우는 군대답게 편성도 되지 않은 이스라엘은 그들 앞에 손쉬운 밥으로 보였다. 아말렉의 전사(戰士)들은 이스라엘의 낙오자들을 쳐죽이고 이스라엘 진 변두리에 출몰하며 인명을 해쳤다. 하나님의 백성에 대한 이 무모한 공격 때문에 모세와 발람은 아말렉이 결국에는 멸절되어 없어질 것을 예언했다(출 17:14-16; 신 25:19; 민 24:20). 그 예언은 그 후 천 년의 시간이 흐른 후에 성취되었다. (227.4)
 아말렉의 공격이 있은 지 거의 40년 세월이 흐른 어느 날 모세는 이스라엘 민족 앞에 행한 그의 송별 연설에서 이렇게 말한다: “너희가 애굽에서 나왔을 때 아말렉이 길에서 너희에게 행했던 것을 기억하라. 네가 피곤해서 지쳤을 때, 어떻게 그가 길에서 너를 만나 네 뒤에 쳐진 연약한 자들을 어떻게 쳤는지를 기억하라. 그는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았느니라”(신 25:17, 18). 성경에서 “기억하라”고 분부할 때는 언제든지 어떤 구체적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모세는 하나님의 변개할 수 없는 결심을 말했다: “이것을 책에 기록하여 기념하게 하고 여호수아의 귀에 거듭 들려주라. 이는 내가 하늘 아래서 아말렉의 기억을 완전히 없앨 것임이라. 이는 주께서 대대로 아말렉과 싸울 것을 맹세하셨기 때문이라” 하였다(출 17:14-16). 이 원칙은 아말렉뿐 아니라 회개하기를 거부하는 모든 사람에게 적용된다. “주의 얼굴은 악을 행하는 자를 대항하사 땅에서 그들에 대한 기억을 끊으려 하시는도다”(시 34:16). (228.1)
 이 점진적 제거 작업은 수 백년에 걸쳐 계속되다가, 드디어 700년 후 히스기야가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그들을 진멸했을 때 크게 성취되었다. 역대기는 “피해 있던 아말렉인들의 남은 자들”까지 죽임을 당했음을 기록하고 있다(대상 4:43). 그래도 죽지 않고 살아남은 자들이 있었다. 그로부터 300년 후, 한때 아말렉의 왕이었던 아각의 후손 하만은 페르시아 제국 영토에 사는 모든 유대인을 죽일 음모를 꾸미게 된다(에 3:1; 참고 삼상 15:32, 33). 그는 에스더가 페르시아 황후로 있던 시절 크게 출세하여 조정의 최고 요직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는 자기의 영향력을 최대한 발휘하여 아하수에로 왕을 움직여 그의 힘으로 히브리인들을 전멸시킴으로써 수세기 전 자기 민족이 이스라엘에게 학살당한 것을 보복하려고 했다. 그러나 하나님의 개입으로 그의 음모는 좌절되고, 성경에 기록된 최후의 아말렉인은 온 가족과 함께 교수형에 처해진다. 이리하여 천년 묵은 하나님의 예언은 드디어 성취되고 화해와 회개를 모르는 민족은 역사에서 영원히 사라지고 말았다. 오늘날 유대인들이 해마다 경축하는 부림절은 유대 민족이 에스더 때 모면한 전멸 위기와 승리를 기념하는 날이다. (228.2)
 아말렉 족속은 현대인의 전형적 유형
 아말렉 족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후손임에도 불구하고 아브라함이 존중했던 모든 원칙을 증오한 족속이었다. 오늘의 아말렉은 하나님의 백성과 인연이 있으나 하나님의 요구를 저버리고 자기 나름의 철학을 만들고 그것을 지배 원칙으로 삼고 그것에 의해 살아가는 자들이다. (229.1)
 그들은 어디서 발견되든지 그들의 조상 에서처럼 “망령된 자(속된 자, 비속한 자)”들이라고 바울은 말한다(히 12:16). 속되고 비속한 것을 영어로는 profane이라 하는데, 이 말은 프로파눔(profanum)이란 라틴어에서 왔다. 프로(pro)는 “앞(前)”이란 뜻이고, 파눔(fanum)은 “성전”을 뜻한다. 그들은 하늘이 요구하는 모든 것을 잘 알고, 아브라함의 언약의 표인 할례까지 받았으나 하나님의 참 성전 안뜰에 들어가기를 거부하고 성전 문 앞에서 서성거리며 성전의 거룩한 의미를 전적으로 모멸하는 입장을 취한다. 그들은 자신들의 생득권(生得權)을 저버리고 하늘이 내린 섬김의 복을 경멸하고, 하나님과 그의 충실한 백성을 모두 원수시하고 상종을 거부하는 자들이다. 알고 보면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과 인척 지간이 되는 자들이다. (229.2)
 전형적으로 현대 아말렉 족은 하나님의 교회 신자들의 혈족 또는 인척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분명한 명령을 저버리고 번연히 알면서도 하늘의 뜻을 거역하는 생활을 하는 자들이다. 그 때문에 그들은 양심에 가책을 느끼고, 믿는 인척들을 귀찮게 여기고 경멸과 적대감으로 대한다. 그런 까닭에 주님은 선언하시기를 “대대로 아말렉과 싸우리라”고 하였다(출 17:16). 그러나 한편 하나님은 계속 그들을 회유하려고 노력하셨다. (229.3)
 그러면 영원한 재판장께서 왜 아말렉 족을 그토록 통책하셨는지 그 요인을 찾아보기로 하자. 수세기 동안 이들은 자기들의 조상 아브라함의 원칙을 대적하여 계속 적대 감정을 마음에 품고 키워 왔다. 그들은 특히 이삭의 후손을 혐오했다. 그들은 이삭이 장자권과 함께 제사장의 복까지 받은 것을 크게 시기했다.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이스라엘이 언약의 땅에서 어떻게 될 것을 잘 알고 있던 그들은 이스라엘이 광야를 지날 때 아무런 도발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최초의 기회가 왔을 때 공격을 감행했다. (230.1)
 아말렉을 피하여 광야를 통과할 길은 얼마든지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의 조상 에서에 대해 말씀하신 것처럼 “그의 손은 모든 사람을 대적할 것이라”(창 16:12) 하신 그대로였다. 그들의 택한 방법은 그들의 야비한 심사를 잘 드러냈다. 그들은 이스라엘이 오랜 행군 끝에 지칠 대로 지치고 물이 떨어져 목이 말라 허덕일 때 뒤에 쳐진 무방비한 노약자들을 공격했다. 그 후 수세기를 거치는 동안 아말렉은 기회만 있으면 칼을 휘두르며 나타나 이스라엘을 괴롭히곤 했다. (230.2)
 여호와께서 그들의 조상 에서를 따돌리신 것에 원한을 품고, 그들은 히브리 민족의 장래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을 무시하고 훼방하기로 결심했다. 그들은 하나님의 언약의 약속들이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것을 통분히 여겼다. 그것을 알았으면 오히려 침략 행위를 삼갔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태도는 막무가내였다. (230.3)
 아말렉은 이스라엘과 한 피를 나눈 동족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형제 민족에 대한 고질적 증오를 버릴 줄을 몰랐다.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자들을 적대시했으므로 그들은 실제로 야훼 를 상대로 전쟁을 벌인 셈이었다. 모세의 글에는 이 관점이 분명히 드러난다: “아말렉의 손이 여호와의 보좌를 대적하므로, 여호와가 맹세하시기를 내가 아말렉으로 더불어 대대로 싸우리라 하셨다”(출 17:16 난외주). 이 글이 분명히 말해 주는 것처럼 아말렉의 행위는 하나님의 통치를 무시하고 도전하는 무엄한 행위였다. (230.4)
 아말렉은 그리스도의 비유 중에서 “우리는 이 사람이 우리를 통치하는 것을 원치 아니한다”(눅 19:14)고 말한 사람들과 같다. 지상에 있는 하나님의 대리자들을 박해하고, 심지어 그들을 죽여 없애려 함으로써 그들은 하나님 앞에 반역의 정신을 드러냈다. 그들은 대대로 그의 언약의 백성을 대적해 싸움으로써, 실제로 그들 속에 계신 기름 부음을 받은 자를 대적했다(이 행위를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평가하셨는가 보라. 행 9:1-7). 그 결과는 어찌 될 것이라 하였는가? “주의 얼굴은 악을 행하는 자를 대항하사 땅에서 그들에 대한 기억을 끊으려 하시는도다”(시 34:16). (230.5)
 왜 아말렉은 박멸의 심판을 받아야 했나?
 아말렉의 배신이 있고 약 7세기가 지난 후 사울 왕은 하나님의 명령으로 그들을 박멸했다(삼상 15:1 상단). “여러 해 전(약 4세기 전)에 하나님은 아말렉의 진멸을 결정하셨다. 그들은 하나님과 그의 보좌를 대적해 봉기하여 이스라엘의 전멸을 꾀할 것을 그들의 신들 앞에 맹세했으며,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패퇴시킴으로써 그가 이스라엘을 자기들의 손에서 구출할 수 없도록 만들려 하였다. 아말렉은 하나님의 백성에 대한 두려움을 비웃고 애굽인들 앞에서 모세의 손을 빌어 행해진 하나님의 놀라운 구원의 역사를 우스개 거리로 만들어 조소했다. 그런 이적은 자기네 술객과 박사들도 모두 할 수 있는 것이라 자랑했다. 그래서 만일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에서 종살이를 하지 않고 자기네 손에 잡힌 포로였다면,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그들을 구출하지 못했을 것이라 장담했다. 그들은 이스라엘을 경멸하고 괴롭혀 단 한 사람도 남기지 않을 것을 맹세했다”(SG 4:72, 73). (23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