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스탄티누스는 신중했을 뿐이지 가만히 앉아 있지는 않았다. 서방 제국에서의 우위를 점하려는 그의 첫 시도는 아프리카의 알렉산더로 하여금 막세티우스에게 반란을 일으키도록 부추긴 사건일 것이다.
4 콘스탄티누스는 이렇게 함으로써 로마에 대한 옥수수 선적을 위태롭게 하려했던 것이다. 311년에 이르러 콘스탄티누스는 막센티우스와 맞서 결판을 보던지 아니면 앉아서 자신의 파멸을 기다리든지의 양자택일을 결단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리고 서방 제국 내의 이같은 세력 각축은 동방 제국 내의 세력각축과 연계되었다. 곧 로마제국의 내전은 콘스탄티누스와 리키니우스가 한 편이 되어 막센티우스와 막시미누스 다야의 진영에 대결하는 양상으로 발전하였다. 콘스탄티누스는 휘하 병력의 대부분을 라인 변경지의 수비를 위해 남겨둔 채 4, 000명 미만의 병력만을 이끌고 알프스 산을 넘었다.
5 그는 투린, 밀라노, 베로나를 차례로 함락하고 312년 10월 26일에는 로마 성 밖 밀비아 교(橋) 맞은 편에 진지를 구축하였다.
6 10월 28일 막센티우스 군대가 로마 성내의 농성을 풀고 티베르 강을 건너 콘스탄티누스의 군대와 대치하고 보니 콘스탄티누스의 군대는 십자 군기와 십자가 상징의 방패를 갖추고 기다리는 중이었다. 락탄티우스가 전하는 바에 의하면 콘스탄티누스는 막센티우스와 접전하기 전날 밤 꿈에 휘하 병사들의 방패에
“하늘의 표지”를 부착케 하라는 지시를 받았다는 것이다.
7 그리고 결국 밀비아 교(Milvian Bridge) 전투는 이
“하늘의 표지”로 말미암아 콘스탄티누스 군의 승리와 막센티우스의 멸망으로 끝났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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