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 포격을 받고 있는 안식일 제 4 장 구주와 안식일 제 1 부 구약에서의 안식일과 구세주
 창조의 이야기는 어떤 면에 있어서 구속의 이야기로서, 무질서에서 질서로, 혼돈에서 세계로의 이야기이다. 창조 사건 안에서, 안식일은 하나님의 첫 번째의 구속의 행위의 목적을 나타낸다. 그것은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이 세계를 단지 무형의 물질(창 1:2)로부터 무엇인가를 아름답게 창조하여 즐기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분 자신께서 자신의 피조물들과 특별한 기쁨을 나누기 위해서라는 것을 우리에게 말해준다. (82.1)
 이 진리는 특별히 안식일의 축복과 거룩하게 하심 안에서 반영된다. 하나님의 거룩하신 임재의 현현이 거룩한 날과 장소에 있은 이후, 안식일의 거룩함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피조물들에게 자신의 거룩한 임재를 통해 풍부한 생명을 축복으로 위임하신 것에서 나타난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거룩한 임재를 당신의 피조물들 가운데 나타내시기 위해서 일곱째 날을 구별하심으로 그 날을 “거룩하게 하셨다.” 그 날을 구별하기 위해서, 일곱째 날을 복 주시고 거룩하게 하시므로, 하나님께서는 인류에게 아름다운 사물들뿐만 아니라 그분과의 교제의 달콤한 경험을 제공하시려는 자신의 의도를 나타내셨다. (83.1)
 임마누엘의 약속
 하나님의 임재 안에서 누렸던 풍요로운 기쁨의 생애가 죄로 말미암아 무산되었을 때, 안식일은 그 깨어진 관계를 회복시키시는 하나님의 위탁의 상징이 되었다. 하나님의 첫 우주적인(cosmological) 성취의 상징으로서(즉 혼돈으로부터의 완전한 우주를 존재하게 하심), 안식일은 미래에 있을 하나님의 구속론적(soteriological)인 활동(즉 당신의 백성을 속박으로부터 당신의 해방으로 구속하신 것)의 상징이 되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임재가 인간을 축복하시고 거룩하게 하신 인간의 시간 안으로 들어오신 것을 상징하게되므로, 안식일은 우리와 함께 계시는 “임마누엘”이 되시기 위해 미래에 인간의 육체 안으로 들어오시는 것의 상징이 되었다. 그리스도의 재림과 마찬가지로 초림도 안식일의 축복과 성화를 통해 이 세상을 위해 처음으로 표현되었던 하나님의 목적의 성취를 나타낸다. (83.2)
 헐벌트 리챠드슨(Herbert W. Richardson)은 미국신학을 향해(Toward an American Theology)라는 자신의 책에서 창조 안식일의 성화와 그리스도의 성육신 사이의 관계를 올바로 강조하고 있다. 그는 기록하기를,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셨으므로 안식일의 손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그 가운데 거하셔야 한다. 즉 세상이 ‘우리와 함께 계시는 임마누엘’을 위해 창조되었다. 따라서 성육신은 죄가 이 세상에 들어 온 직후에 결정된 하나의 구출작업이 아니다. 그리스도의 강림은 오히려 세상을 창조하는 가운데서 하나님의 목적을 성취한다.”1) (83.3)
 안식일의 이러한 구속의 기능이 구약과 신약에서 어떻게 성취되었는지를 추적하는 것은 세 가지의 중요한 이유로 인해서 쉬운 작업이 아니다. 첫째는 안식일이 지속적인 새로운 사상을 위한 기초를 마련했다. 안식일의 “쉼,” “평화,” 그리고 “기쁨”; 작은 우주; 안식년의 해방의 경험; 그리고 시간의 안식일 구조 등과 같은 다양한 안식일 개념들은 모두 미래(종말론적)에 있을 하나님의 구원에 대한 기대감을 표현하기 위해 사용되었다. 두 번째는 안식일의 해방의 기별은, 우리가 볼 것이지만, 정치적인 회복을 위한 즉각적인 국가의 관심과 미래에 있을 메시야의 구원에 대한 기대감은 모두에게 적용되었다. 동일한 주제에 이러한 이중적인 적용은 경고를 받지 못한 독자의 마음에 쉽게 혼란을 만든다. (83.4)
 세 번째는 성서적인 자료들과 성서 외의 자료들이 안식일에 부가된 다양한 계층의 의미를 조직적으로 설명하기보다는 조각 정보들을 우리에게 마련해 주고 있다. 역시 구약에 있는 안식일 관련 주제들에 대한 어떤 의미들은 그것들에 대한 신약의 해석의 빛에서, 특히 히브리서 3장4장에서 더욱 선명하게 된다. (83.5)
 아담의 첫째 날
 구약 당시에, 안식일은 어려운 일과 사회적인 부당함으로부터 개인적인 쉼과 해방을 마련해줄 뿐만 아니라, 미래에 올 메시야의 평화와 번영, 그리고 구속을 위한 소망을 고양시키는데 이바지했다.2) 후자의 기능은 분명히 하나님의 첫 창조에서의 안식일의 역할에 의해 영감을 받았다. (83.6)
 창세기는 아담과 하와가 에덴 동산에서 추방되기 전에 그들이 안식일을 실제로 준수하였었는지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그것이 묘사하는 완전과 성화의 광경(일곱 번씩이나 “좋았더라”라는 것에 유의하라--창세기1:4, 10, 17, 18, 21, 24, 31)은, 특히 일곱째 날의 하나님의 축복과 성화를 통해(창 2:3), 메시야에 대한 비전의 기초를 용이하게 제공할 수 있었다. (84.1)
 아담이 창조된 후 그의 첫째 날인 창세기의 안식일과, 메시야의 시대의 마지막 날과의 사이의 평형성과 동의성은 분명히 성경과 성경 외의 자료들에 제시되어 있다. 창조 안식일이 어떻게 메시야의 구속과 회복의 상징이 되었는지를 보여주기 위해, 우리는 간략히 몇 개의 중요한 주제들을 검토한다. (84.2)
 안식일의 평화와 조화
 창조 안식일에 아담과 동물 사이에 있었던 평화와 조화는 메시야 시대에 다시 회복될 것이며, 그때 “이리가 어린양과 함께 거하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아이에게 끌리게 될 것이다.”(사 11:6). 그 때,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이다”(사 11:9).3)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땅에 충만할 것이라는 이런 이상은 첫째 날에 대한 견해에 의해 능히 영감을 받았을 것이며, 그것들에 대한 것이 안식일에 요약되어 있다. (84.3)
 첫째 날 안식일과 마지막 때, 또는 앞으로 올 세상 사이의 연결은 앞으로 올 세상을 미리 맛보는 것을 제시하기 때문에, 안식일에 생물을 죽이거나 무기를 휴대하는 것들을 금한 랍비들의 안식일 규칙들에 의해서 제안되어 있다. 예를 들어, 랍비 시므온 엘리아자르(Rabbi Simeon E. Eleazar)는 “해충을 안식일에 죽여서는 안된다: 이것은 베트 샴마이[Beth Shammai, 주요 랍비의 학파]의 견해이다. . . 만일 사람이 안식일에 해충을 죽이면, 그것은 낙타를 죽은 것처럼 간주된다”4)고 가르쳤다. (84.4)
 이와 유사하게 고대의 유대 법들을 모은 미쉬나(Mishnah)는 안식일에, “남자는 칼이나 활, 방패나 곤봉, 또는 창을 휴대하지 말아야 한다. . . 왜냐하면 기록된 바에 따르면, ‘그들이 그들의 칼로 보습을 칠 것이며, 그리고 그들의 창으로 전지용 낫을 칠 것이기 때문이다: 민족은 민족을 대적하여 칼을 들지 말 것이며, 그들은 결코 전쟁을 배우지 말아야 할 것이다.’라고 진술한다.5) 이러한 랍비들의 훈령들은 앞으로 올 세상의 전형(paradigm)으로 간주된 본래의 안식일 동안에는 죽음이 없었다는 개념으로부터 이끌어 온 것들이다. 안식일에 어떤 형태의 살생으로부터도 자제하는 것은 바로 그 세상을 미로 맛보는 것을 나타낸다. (84.5)
 번영의 안식일
 창조의 안식일을 특징짓는 물질적인 번영과 풍요로움은 메시야의 시대 동안에 있을 특별한 물질적인 풍요로움에 대한 선지자의 이상에 영감을 불어넣었다. 아모스는 선언하기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날이 이를지라 그때에 밭가는 자가 곡식 베는 자의 뒤를 이으며 산들은 단 포도주를 흘리며 작은 산들은 녹으리라”(9:13)고 하였다. 이와 비슷한 묘사가 이사야(4:2; 7:22; 30:23-25), 요엘(4:19), 스바냐(3:13), 예레미야(30:19; 31:24), 그리고 에스겔(34:13, 14; 47:12) 등에서 발견된다. (84.6)
 후기 유대인과 그리스도인 작품들은 앞으로 올 세상의 물질적인 풍요로움에 대한 풍부한 묘사들로 가득 차 있으며, 종종 우주적인 안식일과 동등한 것으로 간주되었다.6) 예를 들어, “사도시대의 부조들”의 저술 가운데 포함된, 바나바의 서신(The Epistle of Barnabas: A.D. 135)은 천년기를 창조의 6일을 표상하는 6,000년 뒤에 오게될 우주적인 안식일로 해석하며, 그 때는 평화와 번영, 그리고 지상에 있게 될 그리스도의 영광스런 통치가 그 특징이 될 것으로 해석한다(“그분께서는 해와 달과 별을 변화시키시며, 그 후 일곱째 날에 쉼이 있게 될 것이다”--15:5).7) (84.7)
 미래에 있을 쉼과 번영의 시기의 상징으로서, 안식일의 표상적인 의미가 아마도 샴마이의 랍비 학파가 안식일에 회당에서 왜 가난한 사람에게 구제하는 것을 금하였으며, 또 결혼을 위해서 고아에게 지참금을 주는 것도 금하였는지를 설명하고 있다.8) 랍비의 사상에는, 안식일에 행하는 자선행위가 메시야 시대의 물질적인 번영에 대한 예견에 부정적일 수 있었다. (85.1)
 안식일의 기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