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현재와 미래의 불확실성으로 인해 번민하며 살아간다. 죽음 후에도 살아남을 것이라는 말로 종말론을 감소시키는 신학을 통해 이 불편함을 달랠 수는 없다. 각 개인의 종말 너머에 있을 그리스도의 영광스런 재림이 있음을 선언함으로써 성경은 역사의 미래에 관한 해답을 주고 있다. 그리스도인의 미래는 모든 그리스도인의 소망이신 구주의 재림에 관한 영광스런 기대로 인해 고양된다. (1021.8)
 4. 대격변이 일어남
 이 세상의 끝에 관한 말씀은 이미 구약에도 기록되어 있다. 신약은 이 끝이 그리스도의 재림과 함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마 13:40, 41). 다니엘에 따르면, 산에서 떼어낸 돌이 세상 왕국들을 쳐서 완전히 멸할 것이라고 하였다(단 2:44). 대홍수가 홍수 전 세상을 파괴했듯이, 그리스도의 재림 시에 하늘들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땅은 불에 타버릴 것이다(벧후 3:10). 하나님께서는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기 원하시기 때문에(계 21:1), 이 세상의 종말은, 우리가 아는 바와 같이, 전 세계적이고 우주적인 차원의 것이 될 것이다. (1022.1)
 5. 갑작스럽게 오심
 재림의 초자연적인 특성은 그 사건의 돌연성을 다시 강조한다. 많은 남녀들이 놀라움 중에 데려감을당할 것이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것을 경고하시기 위해 밤중에 오는 도둑(마 24:42-44; 눅 12:40; 참조 살전 5:2, 4; 벧후 3:10), 신랑과 열 처녀(마 25:1-13), 홍수와 홍수 전 세상(마 24:38, 39)과 같은 여러가지 은유와 비유를 사용하셨다. 사도 바울은 여기에 더해 잉태된 여자에게 해산 고통이 임하는 것을 비유로들었다(살전 5:3). (1022.2)
 비밀리에 또는 비가시적으로 재림하신다는 주장과는 거리가 멀게, 이러한 이미지는 갑작스럽고 예기치 못한 방식으로 실제적인 광경이 벌어지는 것을 묘사해 주고 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제자들은 깨어있도록 권고를 받았다(마 25:13; 24:42). “이러므로 너희도 예비하고 있으라. 생각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마 24:44)고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1022.3)
 예수님과 바울이 사용한 상징들은 재림이 있을‘때’에 관해 전혀 언급하지 않는다. 집 주인은 언제 도둑이 올지 알지 못하고, 처녀들은 언제 신랑이 올지 알지 못하며, 여인은 언제 산통(産痛)이 시작될지 알지 못한다. 그 시점에 관해서는 아무도 모르고, 천사들도 모르며, 심지어 아들도 모르고(마 24:36), 오직 아버지만 아신다(막 13:32). 제자들은 정확한 시기에 관해서는 아는 바가 없다(행 1:6, 7; RH 1887. 8.16; 교회증언 제1권, 72). (1022.4)
 그러나 예수께서는 자신의 오심을 알리는 징조들을 제공하셨는데, 그것은 재림의 날짜를 산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제자들로 하여금 깨어 있는 자세를 유지하게 하기 위함이었다(살전 5:4-6). 주님이 저녁에 오실는지, 밤중에 오실는지, 닭이 울 때 오실는지, 아침에 오실는지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그분이 갑자기 임했을 때 아무도 자고 있어서는 안 되는데(막 13:35, 36), 그 이유는 이미 중요한 사건들이 그분의 재림을 알려 주었기 때문이다(막 13:28, 29). 이 징조들에 대해 주의를 기울이는 것은 중요하다. (1022.5)
 F. 재림의 징조들
 사무엘레 박키옥키(Samuele Bacchiocchi)는 재림의 소망에 관한 그의 연구에서 많은 분량을 그리스도의 재림의 징조에 할애했다(113-262).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친히 감람산에서 징조들(마 24; 막 13; 눅 21)에 관해 강조하신 바와 조화를 이룬다. 재림을 기다리는 신자들은 징조들에서 소망을 발견한다. 주어진 예언들이 제자들의 믿음을 굳게 하였듯이(요 13:19; 14:29), 그 징조들은 바울이 말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웠음”을 알고 또한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을 아는(롬 13:11-12) 신자들에게 힘을 더해 줄 것이다. (1022.6)
 징조들은 천연계에서, 나라들 사이에서, 인간의 마음속에서 일어나고 있다. 그러나 그 징조들을 언급하기 전에 재림의 때를 정하는 자들에 의해 사용되어온 좀 당황스런 몇 구절들을 먼저 검토해 보자. (1022.7)
 1. 난해한 본문들
 마태복음에는 예수께서 친히 매우 일찍 재림하실 것을 기대하셨을 것이라고 암시하는 세 개의 구절이있다. 그런데 재림이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성경의 신빙성이 부인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있다. 우리는 이 구절들을 검증함으로써 여기에 나오는 징조들의 참된 의미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 (1023.1)
 a. 마 10:23
 “이 동네에서 너희를 핍박하거든 저 동네로 피하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의 모든동네를 다 다니지 못하여서 인자가 오리라” (1023.2)
 이 본문은 마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시기까지 단지 짧은 시간만이 남아 있었음을 가리키는 것처럼 보인다. 이 말씀과 관련하여 거의 2,000년의 지연에 대해 설명하기 위해서 어떤 이들은 인자의 오심은 부활과 성령의 부으심이라는 사건 안에서 이루어졌다고 제안하기도 한다. 또 어떤 이들은 이 구절이 당시 그리스도인 공동체를 향한 마태의 바람을 표현한 것일 뿐이라고 설명하기도 한다. (1023.3)
 마태복음 24장에서 그리스도께서는 예루살렘의 멸망에 관한 예언과 세상의 끝에 관한 예언을 섞어서 말씀하셨다. 이러한 특별한 결합은 다른 여러 종말적 예언에서도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특징이다. 구약에서 세상의 심판에 관한 예언이 에돔(사 34:5-15; 렘 49:7-22)과 앗수르(나 3:18, 19) 등에 대하여 내려진 심판의 배경과 더불어 주어졌으며, 이 장에서도 이 세상의 심판이 명백하게 예루살렘의 심판과 결부되어 있다. (1023.4)
 이 구절에서 이스라엘이라는 용어는 지리적 혹은 정치적 의미로 사용되지 않았고 백성을 언급하기 위해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이 구절은 이중적 예언으로 해석될 수 있는데, 복음이 마지막 때까지 전파될것과 그와 더불어 환난과 핍박이 수반될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따라서 만일 이스라엘이라는 용어를 넓은 의미로 해석한다면 여기서 제자들은 모든 신자들로 해석할 수 있으며, 전파의 과정은 비록 그날짜는 알 수 없지만 재림의 때까지 미칠 것을 암시한 것이다. (1023.5)
 b. 마 16:28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섰는 사람 중에 죽기 전에 인자가 그 왕권을 가지고 오는 것을 볼 자들도 있느니라.” (102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