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감사
 감사도 또한 초기교회 의식에 있어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는데, 특히 성찬식에서 그러하였다. 사도 바울은 교회들에 보내는 그의 서신의 도입부에 감사를 포함시켰다. 감사를 표현하는 이들은 그 감사를 통해 믿음의 요소들을 나타내는 것이다. 사도가 교회들에 호소했을 때 그는 감사를 드리는 것에 관해 언급하였고 독자들은 이에 대해 “아멘” 할 수 있었다. (1018.1)
 대부분의 감사는 재림이라는 후렴구로 끝난다(고전 1:7; 엡 1:10; 빌 1:6; 살전 1:10; 살후 1:7-10; 참조 벧전 1:5). 감사와 함께 재림이 후렴구처럼 따라오는 이러한 형태를 통해 재림의 소망이 사도교회의 믿음과 예배에 있어서 얼마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는지를 볼 수 있다. 교회는 성령을 통한 예수님의 현재적 “임재”를 통해 그분의 재림에 대한 확실한 약속을 보증 받았다(엡 1:13, 14). 성령의 오심은 최종적인 약속이 아니고, 인자가 하늘 구름을 타고 오실 것에 대한 증표였다. (1018.2)
 4. 인자(人子)
 예수께서는 종종 “인자(人子)”라는 칭호를 자신에게 적용하셨다. 이 용어는 다니엘 7:13에서 따온 것인데, 거기서 인자는 종말론적인 존재로 나타나며, 그에게는 신적 속성이 주어졌고 왕 같은 메시아의 능력을 행사하는 것으로 나타나 있다(Ferch 174). 이 사실은 그가 구름 위를 여행하며 그에게 심판의 권세가 주어졌다는 사실을 통해 확인된다(단 7:13, 14). (1018.3)
 예수께서 자신에게 적용하신 “인자”라는 칭호는 파루시아를 설명하는 데 도움을 준다. 예수께서는 이 칭호를 차용하심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선언하셨다. 즉 이 칭호는 그분의 지상에서의 존재를 구체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그분은 왜 그리고 어떻게 다시 오실 것인지를 분명하게 가리켜 주셨다. 첫째로, 오셔야 할 분은 곧 이미 오신 그 분이시다. 부활하신 그리스도는 당신의 인간적 특성을 지니신 분으로 인식되었다(눅 24:30, 31, 41-43; 요 20:20, 27). 둘째로, 그분은 구름 위로 올리어 영광 중에 들어가셨고(행 1:9), 또한 그분은 영광의 구름을 타고 오실 것이다(계 1:7). 다니엘 7장에 언급된 역할을 수행하시기 위해 그분은 세상을 심판하기 위해 오신다(마 25:31-33). 끝으로, 잘 알려진 대로 다니엘 2장과 7장의 연결로 볼 때, 그분의 오심은 이 세상 역사의 끝에 일어나야 한다. 예수께서는 이 세상의 왕국들을 부숴뜨릴 상징적 이미지인 돌과 자신을 동일시 하셨다(단 2:34; 눅 20:18). 인자가 영광 중에 오심으로써 하나님의 왕국은 마침내 영원히 세워질 것이다(마 25:31). (1018.4)
 D. 하나님의 왕국
 하나님의 왕국을 선포하는 것이 특별한 위치를 차지하는 까닭은, 그 왕국에 대한 소망이 구약의 종말론의 핵심을 점하고 있기 때문이다. 만일 야훼가 세상과 나라들을 통치하시는 그분이시라면(시 29; 47; 74; 89; 93; 96-99), 우리는 그분의 영원한 왕국을 또한 기대할 수 있으며(단 2:34, 44), 그 일은 야훼의 큰 날에 이루어질 것이다(슥 14:9; 옵 15, 21; 사 2:12-21; 24:21-23). 다윗 왕조보다 훨씬 이전에 하나님의 왕국은 노래로써 경축되었다(출 15:1-18; 민 23:21, 22; 신 33:5). 신약에 나오는 예수님의 가르침에서 하나님의 왕국은 보다 더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된다. (1018.5)
 1. 초월적인 왕국
 복음서 기자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에서 그 왕국에 대해 100번 이상 언급한다(참조 예를 들어 막 1:15; 눅 9:60; 22:18). 마태복음에서 예수님은 특별히 천국(32회; 참조 마 3:2, 7:21; 8:11)에 대해 말씀하셨다. 마태복음의 이 특별한 용어는 하나님의 이름을 자주 사용하는 것에 대해 거부감을 느낄지도 모르는 유대인 독자들의 민감성 때문에 배려한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마태가 이 용어를 사용한 것은 심리적인 배려보다는 신학적인 고려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1018.6)
 예수님 당시에 유대인들은 메시아와 지상 왕국을 고대하고 있었다. 심지어 예수께서 부활하신 후에도 사도들은 여전히 지상 이스라엘 국가의 재건을 기대하고 있었다(행 1:6). 이에 대비를 이루어 마태의 천국에 대한 강조는 지상이 아닌 하늘에 근원을 둔 초월적인 특징을 강조한 것이다. 요한은 예수께서 빌라도 앞에서 하신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요 18:36)는 말씀을 인용함으로써 마태나 마가보다 한걸음 더 나아간 것을 볼 수 있다. (1019.1)
 예수께서는 그 왕국이 인간의 노력의 결과로 세워지지 않을 것이며, 비록 성령에 의해 성결케 된 자들이라 할지라도 그들의 노력에 의해 점진적으로 수립되지 않을 것임을 밝히셨다. 그분의 왕국은 본질적으로 세상 왕국과는 다르며, 그것은 미래에 있을 왕국으로서 인자의 파루시아 때에 세워질 것이다(딤후 4:1). 이것이 바로 예수께서 씨 뿌리는 자의 비유에서 가르치고자 하신 내용이다. 그분의 말씀대로, 하늘 왕국은 좋은씨를 뿌린 사람에 비유 할 수 있다. 이 씨를 뿌리는 자는 인자이며, 이 왕국은 하나님의 왕국이다(마 13:24-30). 인자는 반드시 하늘로부터 그 분의 왕권을 가지고 오실 것이다(16:28). 이러한 까닭에 예수께서는 당신의 제자들에게 “나라가 임하시오며”(마 6:10)라고 기도하도록 초청하셨다. (1019.2)
 2. 신비한 왕국
 예수께서는 그 왕국이 이미 제자들 가운데 현재적으로 도래했다고 지적하셨다(눅 17:20, 21). 예수께서 계신 곳에 그분의 왕국도 있다(마 12:28). 새롭게 태어난 자들은 그것을 볼 수 있다(요 3:3). 그것은 믿는 자들에게만 나타난 신비요 비밀이다(막 4:11). 그것은 영광의 왕국이 아니라 은혜의 왕국이며, 오직 믿음으로만 볼 수 있다 겨자씨의 비유에서 하늘 왕국은 겨자씨보다도 작은 것으로 묘사되어 있다(마 13:31, 32). (1019.3)
 교부들을 비롯해서 어떤 이들은 교회를 하나님의 왕국으로 이해하면서 이 비유를 교회의 성장을 묘사하기 위해 사용하였다. 그러나 여기서 예수님은 성장에 관해 말씀하지 않으셨다. 그것은그왕국의 서로 다른 두 국면, 즉 씨앗과 나무를 대조하고 있다. 그리스도의 왕국은 지금 비록 작고 약하고 깨어지기 쉬운 것처럼 보이지만 언젠가 그것은 능력과 영광으로 충만한 것이 될 것이다. 그 의의 광채는 그때에 아버지의 나라에서 나타날 것이다(43절). (1019.4)
 성경의 다른 어떤 기자들보다도 사도 바울은 영광의 왕국의 도래에 대해 강조했다. 그곳에 들어갈 자들은 지상에서 고난을 겪을 것이다(롬 8:17; 살후 1:5; 참조 딤후 4:17, 18). 아이러니하게도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이 그들의 카리스마적 경험을 통해 이미 영광의 왕국에 들어갔다고 상상하는 것을 책망하면서, 자신도 여전히 이 세상에서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고 말하였다(고전 4:8, 9). (1019.5)
 바울에게는 왕국이 하나의 역설로 보였다. 그것은 영광스러운 왕국이지만(엡 1:20-22), 환난을 통하여 들어가는 곳이다(행 14:22; 살후 1:4, 5). 택함을 받은 자들은 이미 그 왕국으로 옮겨져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하늘에 앉아 있다(골 1:13, 엡 2:6). 그러나 그들의 생애는 그 왕국의 영광처럼 숨겨져 있다.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영광으로 나타나실 때까지 드러나지 않을 것이다(살후 1:7; 골 3:3, 4). (1019.6)
 이곳 지상에서 그 왕국의 시민들은 그들의 감추인 영광이나, 화려한 은사나, 먹고 마시는 방식에 의해 인식되지 않을 것이며, 성령에 의해 그들 속에 생겨난 의와 평강과 희락으로 인식될 것이다(롬 14:17). 이러한 의미에서 영적인 왕국은 각 신자들이 성령에 의해 이끌릴 때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1019.7)
 3. 영적인 왕국
 바울에게 있어서 그 왕국의 유업은 불의한 자에게 주어지지 않고(고전 6:9, 10), 사랑을 최고로 표현하면서 하나님의 율법에 복종한 자들에게 주어지는 것이었다(갈 5:16-23). (102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