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재림의 주제는 구약과 신약에 모두 나타난다. (1012.1)
 A. 구약의 용어
 구약의 기자들은 하나님께서 그분의 백성을 애굽에서 구출하셨듯이 “야훼의 날”(사 13:6, 9; 겔 13:5)에 그들을 이 세상의 속박에서 자유하게 하실 것을 믿었다. (1012.2)
 1. 야훼의날
 구약 종말론(“끝”[eschaton]에 관한 교리)의 중심 주제는 야훼의 강림이다(Andreasen 31-45). 선지자들은 자주 “그날”(슥 14:9) 혹은 “그날들”(욜 2:29)에 대해 말했고, 다니엘과 같이 구원이 이루어지는 “그때”에 관해 말하기도 했다(단 12:1). “야훼의 날”은 사회적 및 정치적 변화와 함께 우주적 차원의 변화가 일어날 결정적인 역사적 사건으로 기대되었다. 야훼의 강림을 통해 새로운 창조가 시작될 것이었다. 왜냐하면 그분은 창조주시고, 역사의 주관자시며, 또한 그 역사를 끝내실 바로 그분이시기 때문이다(암 4:13; 참조 계 14:6, 7). (1012.3)
 꼬리에 꼬리를 무는 재난들과 이스라엘과 다른 나라들의 개탄스러운 도덕적 상태는 하나님의 개입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끝은 정치적, 사회적 또는 도덕적 악의 결과로 이르러 오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오심으로 일어날 것이다. 비극은 이러한 하나님의 오심을 주의하지 않고 계속해서 자신들의 길을 가는 나라들의 무관심에 있다. 그들은 결코 준비 없이는 야훼의 거룩하신 임재 앞에 설 수 없을 것이기 때문에 선지자들은 이스라엘과 다른 나라들에게 “야훼를 찾으라”(슥 2:1-3)고 촉구한다. 아모스는 선지자들의 호소를 요약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만나기를 준비하라”(암 4:12). (1013.1)
 a. 역사적 사건
 야훼의 강림은 역사와 분리될 수 없다. 그 사건은 역사 밖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역사 속에 하나님이 개입하시는 사건이다. 현재의 역사적 사건들은 그 의미를 전달하며, 하나님의 위대한 현현을 알려준다. 이것은 자기 원수들을 소멸한 주권자가 보좌에 좌정하는 것에 비유될 수 있다. (1013.2)
 이 강림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그분을 경배할 때 그분께서 가까이 임하셨던 사건(출 20:24)을 통해서 이미 인식되었다. 그분은 당신의 거룩한 성전에 들어가시고, 경배자들은 그분의 임재를 경축하였다(시 24:7-10). (1013.3)
 하나님은 또한 당신의 백성을 구원하거나 벌하시기 위해 역사의 사건 속으로 들어오신다. 이러한 강림은 행복한 일이기도 하고(사 35:1), 두려운 일이기도하다(암 5:18-20). (1013.4)
 하나님은 또한 당신의 기름 부으신 실로(Shiloh, 창 49:10)를 통해, “평강의 왕”(사 9:6)을 통해, 충만한 야훼의 영(사 11:2)을 통해 그리고 야훼의 공의와 권능으로 다스릴 분(미 5:1-3)을 통해 임하실 수 있다. (1013.5)
 하나님은 오셔서 마침내 종말의 약속을 성취하신다. 다른 모든 강림은 궁극적인 강림을 보증해 준다. 그분은 “말일”(the end of the days, 브아하리트 하이야밈)에 권능으로써 당신의 왕 되심을 보여 주시고 그분을 사모하는 자들의 행복을 위해 만물을 새롭게 하기 위해 오신다(사 2:1-4; 호 3:5; 미 4:1-4). (1013.6)
 b. 절정의 사건
 야훼의 궁극적인 강림은 더 이상의 호소가 없는 절정적인 사건으로 선포되었다. 선지자들은 그날을 “어둡고 캄캄한 날”(욜 2:2; 암 5:18; 습 1:15), “진노와 분노의 날”(습 1:18; 2:2), “환난과 고통의 날”(습 1:15), “보수의 날”(사 34:8; 렘 46:10), “보응의 날”(호 9:7) 그리고 “징벌의 날”(사 10:3)로 묘사했다. (1013.7)
 이스라엘과 다른 나라들이 경험한 재난은 예레미야의 삼중 예언 즉 칼과 기근과 염병으로 요약될 수있으며(렘 14:12), 모든 것이 극렬한 풀무불에 살라질(말 4:1-3) 야훼의 끝 날로 예상되는 최후의 심판에 대한 임시적 상징으로 묘사될 수 있다. 이 끝 날은 사람이 피할 수 있는 지역적인 사건이 아닐 것인데, 이는 야훼의 강림이 온 세상에 영향을 미칠 것이기 문이다(사 2:12-19; 습 3:8; 말 4:1).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심판을 직면해야 한다(암 5:18-20). (1013.8)
 c. 심판의 날
 선지자들은 야훼의 날의 윤리적 측면을 강조한다. 전능하신 야훼께서 당신의 백성과 나라들을 심판하기 위해 오신다. 그분은 당신의 율법을 멸시한 불충성한 자들을 정죄하고, 공의를 다시 세우기 위해 오신다. 간음, 강간, 압제, 거짓, 폭력은 형벌을 받는다(암 2:7; 말 3:5). 종교적 행위라 할지라도 멸시와 교만이 나타날 수 있다(말 1:6-14; 3:7-9). 하나님은 그들의 행위대로 갚아주실 것이며(사 59:18), 모든 행악자들은 다가오는 심판의 날에 초개와 같이 풀무불에 살라질 것이다(말 4:1). (1013.9)
 그러나 야훼가 죄를 벌하시는 거룩하신 하나님이라면, 그분은 또한 용서하고 구원하시는 자비로운 분이시다(출 20:5, 6; 사 6:6, 7). 회개하고 그분의 언약속으로 들어간 자들(렘 31:31-34)은 구원을 받을 것이다(사 59:20; 렘 26:13; 겔 18:31, 32). 남은 자들은 구원을 얻을 것이다. (1013.10)
 2. 남은 자의 선택
 남은 자의 개념은 모든 것을 파괴하고 오직 찌꺼기만 남기는 무시무시한 사건을 암시한다. 아모스는 남은 자를 “사자의 입”에서 두 다리나 귀 조각만 건져낸 것으로(암 3:12), 또는 “불붙는 가운데서 빼낸 나무 조각”(암 4:11)에 비유했다. 이사야는 감람나무를 흔든 후에 남은 두세 개의 실과로 묘사했다(사 17:5-6). 게르하르트 하젤(Gerhard Hasel)은 이 남은 자 주제가 대홍수 사건과 연결된다는 것을 보여 준다(1980:374, 375). 남은 자는 예수님의 종말론적 설교마 24:37-41) 가운데 홍수와 세상의 끝이 연결되면서 다시 나타난다. (101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