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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 구약의 예고와 신약의 성취
 구약의 여러 선지자는 마지막 때의 하나님의 백성이 가지는 사명과 종교적 특성을 묘사한다. 특히 요엘, 에스겔, 다니엘, 스바냐, 말라기가 그렇다. 마지막 때에 관한 그들의 예언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묵시적 관점이 요한계시록에 어떻게 수렴되고 절정에 이르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986.1)
 복음의 해석 원리는 언약적 약속들과 그것들의 민족적 이미지를 기독론적 본질 속에서 이해할 것을 요구한다. 신약은 구약의 모든 종말론적 예언의 기본적 의미를 해석할 수 있는 중심 열쇠로서 그리스도를 소개한다. 그러므로 신앙에 대한 결정적인 테스트는 나사렛 예수를 예언된 메시아, 즉 다니엘의 묵시적 예고에 등장하는 신성(神性)을 가진 “인자”(단 7:13, 14; 요 5:22-27; 9:35-39)로 받아들이는가 하는 것이다. (986.2)
 제4 복음서에서 인자를 통한 하나님의 심판은 현재와 미래 양쪽에 모두 있다(요 3:19, 36; 12:48). 그 강조점은 묵시론적인 인자가 “세상에 생명을 주는” 떡으로서 이미 강림해 있다는 충격적이고 새로운 현실과, 묵시론적인 “마지막 날”에 대한 확증에 있다(요 6:27, 33, 37, 40, 53). 그리스도의 복음은 구원-역사적 성취에 비추어서 구약의 종말론을 재정립하고 재구성하며, 따라서 현재의 복음 성취와 미래의 묵시론적인 완성이라는 이중적인 종말론의 적용을 만들어 낸다. (986.3)
 요한계시록은 끝까지 충성한 자들, 그리고 어린양의 피와 그들의 증거의 말씀으로 악한 자를 이겨낸 자들의 미래의 기쁨과 다가올 유업(遺業)에 집중한다는 점에서 요한복음을 보완하는 역할을 한다(계 12:11). 사복음서는그리스도와그분의 메시아 백성을 통한 예언의 초기 성취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요한계시록은 그 희망의 메시지를 그리스도교회 안에서 현재 진행 중인 최종적인 성취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986.4)
 요엘 2:28-32“야훼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만민에게 하나님의 영을 부어주시는 일이 다가 올 시대의 특징이 될 것이라고 예고한다(31, 32절). “시온 산과 예루살렘에서 피할 자가 있을 것임이”기(32절) 때문에 참된 남은 무리는 야훼의 이름을 부르는 자들이라고 묘사한다 베드로와 바울은 둘 다 요엘 2:32을 인용하며, 보편적 그리스도 교회가 그 예언의 첫 번째 성취라고 선언한다(행 2:21; 롬 10:13). 요엘 2장의 이러한 복음적 성취가 있었다고 해서 교회 시대가 끝나는 마지막 때에 특별한 성취가 또 있지 말라는 법은 없다 요한계시록은 요엘이 말한 남은 자 약속의 궁극적 완성에 중점을 두고 있다. 요한계시록의 중심부인 12-14장은 예수 그리스도 교회의 복음 사명을 전 세계적으로 완수하는 내용을 다룬다. (986.5)
 요한은 고전적 예언(사 54장; 겔 16장; 호 2장)에 나타나는 전통적인 야훼의 신부 이미지를 채용하여 그리스도 교회의 미래를 “광야로” 피신한 박해받는 여자로 그려내고 있는데, 여기서 하나님은 그녀를 “천이백육십 일”(계 12:6), 즉 세 “때”와 반 “때”(14절) 동안 양육한다. 이러한 예언 기간들은 다니엘 7:25에 나오는 신실한 성도들의 박해에 대한 다니엘의 예언을 교황의 국교 통치 기간 동안 불법화되고 처형당한 그리스도교 성도들에게 특별히 종말론적으로 적용할 것을 제안한다. 이어서 요한은 중세 1, 260년 이후 남은 교회가 겪는 마지막 투쟁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용이 여자에게 분노하여 돌아가서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과 더불어 싸우려고 바다 모래 위에 서 있더라”(계 12:17). (987.1)
 요한은 또한 시온 산에 서 있는신실한 남은 무리의 궁극적 승리를 묘사한다. “또 내가 보니 보라, 어린 양이 시온 산에 섰고 그와 함께 십사만 사천이 서 있는데 그들의 이마에는 어린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을 쓴 것이 있더라”(계 14:1). 요한계시록 12:1714:1과 함께 교회 시대의 마지막 때에 대한 요엘의 남은 자 약속(욜 2:28-32)이 성취되는 것을 묘사한다. 시온 산에서 “야훼의 이름을 부르는” 요엘의 남은 자(32절) 예언이 마지막 때에 성취된다.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그들은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에 대한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계 14:12; 참조 12:17). 요한계시록 14장의 3중 기별은 144, 000명의 영적 이스라엘 백성(1절)을 낳을 것이며, 그들은 시온 산에 모이기 위해 바벨론에서 불러냄을 받았고, 거기서 어린양은 영원한 안전을 제공한다. 이와 같이 교회 시대 초기에 “이른비”로 성취된 요엘의 예언이 그 시대의 끝에 전세계적으로 한 번 더 성취되는 것을 요한계시록은 강력히 시사한다. (987.2)
 사도교회는 수천 명의 새로운 신자들이 그 수에더해지는 것을 보았다(행 2:47; 4:4). 님은 교회도 많은 민족들로부터 “믿음의 남은 무리”가 예언대로 유입되는 것을 목격할 것이다. 그들은 “시온 산”에 올라 가르침을 받고 구원받기를 원하는 사람들이다(사 2:1-3; 미 4:1, 2). 그 최종적인 증거 후에 그리스도를 따르는 모든 사람들은 신실한 “이스라엘 백성”의 일부가 될 것이다. 그들 중 누구도 더 이상 바벨론에 속하지 않을 것이다(계 14:4; 17:5). 이 어린양의 동반자들은 그분의 “부르심을 받고 택하심을 받은 진실한” 추종자들이라고 묘사된다(계 17:14). (987.3)
 요약하면, 요한계시록은 최후의 대결에서 하나님 앞에 두 반대 세력, 곧 바벨론 그리고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이스라엘이 있는 것을 내다본다. 그 둘 모두 경배 공동체로 대표되며, 따라서 하나님을 어떻게 경배하느냐에 따라 정체가 확인된다(계 14:9-11). 진정한 남은 무리는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이다(계 12:17). 요한계시록에서 “하나님의 말씀”“예수의 증거”의 반복되는 결합(1:2, 9; 6:9; 12:17; 20:4)은 그 책에서 중심적인 신학적 주제를 이루며, 심지어 바벨론과 메시아의 이스라엘 사이의 분계선이기도 하다. 케네쓰 A. 스트랜드(Kenneth A.Strand 133)는 다음과 같이 결론짓는다. “요한계시록에서 ‘하나님의 말씀’‘예수 그리스도의 증거’에 대한 충성은 신실한 자와 신실하지 않은 자를 구분하며, 요한자신의 유배와 다른신자들의 순교를 포함하는 박해를 초래한다(참조 계 1:9; 6:9; 12:17; 20:4 등).” (987.4)
 요한의 남은 자 신학은 예루살렘에 있는 이스라엘의 우상숭배자들 가운데서 회개한 남은 무리를 구원하는 에스겔의 이상에 뿌리를 두고 있다(겔 8, 9장). 에스겔은 하나님의 진노의 집행자로 임명된 여섯 천사가 배도한 예루살렘 도성에 다가가는 것을 보았다. 하나님의 성소에서 시작하여 그들은 이에 특정한 표시가 없는 모든 남자와 여자 그리고 아이들을 불쌍히 여기거나 긍휼을 베풀지 말고 죽이라는 명령을 받았다. 그 집행자들보다 앞서서 허리에 먹그릇을 찬한 특별한 천사가 그 표시를 하였다. 에스겔은 하나님의 보응하시는 심판으로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이 멸망당하는 것을 두려워하여, “아하, 주 야훼여 예루살렘을 향하여 분노를 쏟으시오니 이스라엘의 남은 자를 모두 멸하려 하시나이까”(겔 9:8; 참조 11:13) 하고 부르짖었다. (988.1)
 하지만 하나님의 자비가 나타나서, “가는 베옷을 입은” 제사장 같은 인물이 식별하는 판단에 의하여(겔 9:2; 참조 계 1:13), 진정으로 회개한 사람들은 하나님의 진노에서 면제된다. “너는 예루살렘 성읍 중에 순행하여 그 가운데에서 행하는 모든 가중한 일로 말미암아 탄식하며 우는 자의 이마에 표를 그리라”(겔 9:4). (988.2)
 요한계시록 7장은 에스겔의 인치는 이상을 마지막 때의 성취에 적용한다. 요한은 이상 중에 144, 000명의 이스라엘 자손이(12지파에서 각 12, 000명) 하나님의 인정과 마지막 파괴적인 바람에 대한 보호의 표시로서 천사로 말미암아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인”을 이마에 맞는다는 소리를 듣는다(1-8절). 이 계시는 여섯째 인 아래서 하나님과 어린양의 진노로 인한 공포를 경험하는 사람들의 “그들의 진노의 큰 날이 이르렀으니 누가 능히 서리요”(계 6:17)라는 두려운 외침에 대한 즉각적인 대답이었다. (988.3)
 파괴적인 네 “바람”의 마지막 환난이 있기 전에 “이스라엘 자손” 또는 “우리 하나님의 종들”(계 7:3)을 “인치는” 요한의 이상은 하나님이 마지막 환난 중에 전 세계에 걸쳐 그분의 신실한 자들을 보호하실 것이라는 위안의 확증이다. 신실한 남은 백성은 마지막 일곱 재앙의 파괴적인 힘에서 안전하게 보호를 받을 것이다(계 16:1, 2). 참 성도의 의로운 성품은 어린양을 따르기로 선택하며, 적그리스도의 권세와 타협하기를 거부하고 “짐승”에 대한 충성의 표를 거절함으로써 명백하게 나타날 것이다(계 13:15-17; 14:1, 4; 22:11). 상징적으로 144, 000명의 이스라엘 자손은 “여자와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한 영적 “동정남(童貞男)”[파르쎄노이]들이다(계 14:4). 이 “여자[들]”은 음녀 바벨론과 그의 딸들로 정의되며(8절; 17:4, 5), 배도한 종교를 대표한다. 144, 000의 참 이스라엘 자손은 모두 어린양을 따르므로 “그 입에 거짓말이 없고 흠이 없는 자들”이다(계 14:5). 이 점에서 144, 000은 또한 스바냐의 신실한 남은 자 약속에 대한 마지막 때의 성취로서 기능한다. “내가 곤고하고 가난한 백성을 네 가운데에 남겨두리니 그들이 야훼의 이름을 의탁하여 보호를 받을지라 이스라엘의 남은 자는 악을 행하지 아니하며 거짓을 말하지 아니하며 입에 거짓된 혀가 없으며 먹고 누울지라도 그들을 두렵게 할 자가 없으리라”(습 3:12, 13). (988.4)
 짐승의 표를 받아들인 자들과는 완전히 대조적으로, 참 이스라엘은 이마에 하나님의 인정의 표시를 받을 것이다(계 14:1). 그들에게는 그리스도를 생각과 행동의 주님으로 고백할 용기가 있다. 적그리스도에 대한 그들의 승리는 오직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연합함에서 비롯된다. 적그리스도를 이기는 자들은 하나님 보좌 주위에서 영원한 존귀함으로 상을 받을 것이며, 그들은 모세와 어린양의 노래를 부를 것이다(3절; 15:2, 3). (988.5)
 B. 다니엘의 마지막 때
 다니엘에 나오는 “마지막 때”라고 하는 묵시적 구절에는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 이 표현은 “먼 후일”에 관한 다니엘의 환상에서만 나타난다(다니엘 8-12장에서 다섯 번). 구약 선지자들이 14회 사용한 “마지막 날” 또는 “후일”이라는 친숙한 어구와 완전히 일치하지는 않는다. 고전적 선지자들은 자신의 당대에 내리는 하나님의 심판을 최후의 심판과 직접 결합시키지만, 다니엘은 독자들을 자신의 당대로부터 구속 역사의 여러 시대를 거치며 데리고 내려간다. 그의 시간 틀은 메시아의 처참한 죽음(단 9:26)을 지나 반(反)메시아 곧 적그리스도의 출현(단 7:8, 24, 25)까지 연장된다. 그는 또한 그 악한 세력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예언한다. 다니엘의 거룩한 예언은 구약에서부터 마지막 때까지의 하나님 백성의 역사를 다룬다. (988.6)
 다니엘 예언의 한 가지 독특한 성격은 적그리스도의 통치에 할당된 기간을 명확히 정해놓은 것이다(7:25, 8:14, 17; 12:7). 다니엘은 “마지막 때”라는 표현을 사용하여, 시간의 끝보다는 최후의 심판과 죽은 자들의 부활에 선행하는 특정한 기간을 가리킨다(단 11:40; 12:1, 2). 이 묵시론적 “마지막 때”는 예정대로 정해진 때에 시작될 것이다(단 11:35; 참조 8:19). 이 시기는 교황권의 교회—국가 연합 체제 1,260년이 다 차는 1798년(단 7:25) 그리고 짓밟혔던 그리스도 대제사장 성소 봉사의 진리가 회복되는 때(1844년)와 일치하는 것으로 보인다(단 8:14, 17; 참조 성소 III. C. 2. a, b). (988.7)
 다니엘의 상징적 환상들을 선지자 자신은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다(단 8:27; 12:8). 해석하는 천사가 “다니엘아 마지막 때까지 이 말을 간수하고 이 글을 봉함하라. 많은 사람이 빨리 왕래하며 지식이 더하리라.”(단 12:4)라고 선고하였으므로, 실제로 “마지막 때”가 이르기 전에는 그것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다니엘의 예언적 환상이 그리스도의 재림 직전의 시기를 가리킨다면, 다니엘의 예언을 하나님이 개봉하시는 일의 실질적인 결과가 마지막 때에 있어야 한다.다니엘서에 대한 지식의 증가는 묵시 연구의 초교파적인 부흥을 가져오고, 그리스도의 재림의 가까움에 대한 새로운 희망을 가져왔다. 이로 말미암아 리로이 E. 프룸(Leroy E. Froom)은 다음과 같은 결론에 이르렀다(PFOF 4:1209). “그것[단 12:4]은 분명히 19세기에 구-신세계에서 동시에 깨어난 예언 해석의 대부흥에 대한 예고이다.” 제임스 화잇이 다니엘 12:4, 10에서 약속한 “지식의 증가”“과학적 발견의 진보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종말이라는 주제를 언급하는 것”(ST 1880. 7. 22)이라고 말한 것은 합당하다. 그는 “진정으로 지혜로운 자, 즉 하나님의 자녀는 마지막 때에 무슨 주제에 대한 지식이 증가하는지 깨닫지만, 악인들은 아무리 과학적이라도 깨닫지 못한다. 여기서 나타난 사실은 지식의 증가와 관련된 예언의 진술이 과학자들의 발견을 언급한다는 입장에 반대되는 것이 분명하다.”(위의 책). (988.8)
 다니엘 12:4의 약속은 성경의 묵시적 예언에 관한 전 세계적인 각성이 섭리로 일어났음을 지적한다. 19세기 중반이 되어서야 다니엘과 요한계시록의 중요성에 대한 자각이 그리스도교 내에 완전하게 나타났다. 그 무렵부터 다니엘 8장의 의미와 요한계시록 14장의 개혁기별에 탐구의 초점을 맞추게 되었다. (98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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