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본체를 붙잡다 제3부 공식적인 교회 출판물에 나타난 인용문(1895~1952) 제9장 공식 간행물들로부터의 발췌문 (1916~1952)
 믿음의 실체들 — 크리스챤 에드워드손 저

 1942년에 에드워드손은 성육신 및 그리스도의 인성에 대한 주제를 다른 각도에서 보는 일에 착수했다. 그는 요한이서 7절에서 속이는 자들과 적그리스도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임하심을 부인하는 자라”고 말한다. 가톨릭 교회가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부인하지 않음으로 교황권이 적그리스도가 될 수 없다는 변론에 대한 이의로써 에드워드손은 다음과 같이 기록한다. (180.2)
 “그렇지만 이 변론은 본문 속의 한 단어를 간과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오해에 근거된다. 적그리스도는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부인할 뿐 만 아니라 그분이 구원하기 위해 오신 인류와 ‘동일한’ 종류의 육신으로 오신 것을 부인하는 데 있었다. ∙∙∙ 복음의 진정한 진리는 이런 치명적인 차이에 따라 결정이 된다. 그리스도께서 타락한 인류와 접촉하기 위해 모든 면에 온전히 자신을 낮추셨는가, 아니면 단지 부분적으로 낮추셨는가? 그 결과 타락한 인간으로부터 그들이 도저히 미칠 수 없는 너무 멀리 떨어져 계신 그리스도와 죄인 사이에 개별적이고 직접적인 접촉을 위한 필요 때문에 이를 위해 성자들이나 법왕이나 사제들(신부들:역자 주)과 같은 중보자가 있어야 하는가? 바로 이곳에 개신교와 로마 가톨릭교를 갈라놓는 대분계선이 놓여 있는 것이다.” (180.3)
 “에드워드손은 인간의 구원의 비결에 관하여 면밀하게 말한다. 죄를 통하여 사람은 그 자신을 하나님으로부터 분리시켰으며 사람의 타락한 본성은 신의 뜻과 대립되어 있다.”

 (180.4)
 “∙∙∙ 오직 우리의 중보자이신 그리스도를 통해서 만 사람은 죄에서 구원을 얻게 되고 또다시 순결과 능력의 근원과 연결 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연결하는 고리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신성과 사람의 인성 양편에 참여하셔야만 했다. 그 결과로 그분은 당신의 신성의 팔로는 하나님을 붙잡고 있고 당신의 인성의 팔로는 인간을 껴안으셨다. 이처럼 그분의 인격 속에 두 속성이 모두 연결되었다. 이런 하나님과 인간의 연합 속에 복음의 비밀, 곧 인간을 그 타락으로부터 승화 시킬 능력의 근원이 있는 것이다.”

 에드워드손은 그리스도의 성육신이 왜 필요했는지를 설명하고자 애쓴다. “죄에서 구출되어야 했던 것은 타락한 인간이었다. 그리고 그 인간과 접촉 하기 위해서는 그리스도께서 스스로 낮추어 그분 자신을 위해 우리들의 본성[어떤 고차원적인 육신이 아닌]을 취하시기 위해 자신을 낮추셔야만 했다. ‘자녀들은 혈육에 함께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한 모양으로 혈육에 함께 속하심은(Forasmuch then as the children are partakers of flesh and blood, he also himself likewise took part of the same)’ ∙∙∙ ‘그러므로 저가 범사에 형제들과 같이 되심이 마땅하도다(Wherefore in all things it behooved him to be made like unto his brethren)’(히 2:14, 17). 이 성구는 오해될 수 없는 말로 표현되고 있다. ‘그리스도는 우리와 같은 혈육을 취하셨다(took part of the same flesh and blood as ours)’. 그는 그 육체로 오셨다. 이것을 부인하는 것이 적그리스도의 표이다.”44

 (181.1)
 로마 바벨론의 포도주—메리 E. 월쉬 저
 그 제목이 의미하는 대로 이 책은 가톨릭의 가르침과 성경의 가르침을 대조하는 것이다. 저자인 메리 E, 월쉬는 20년 동안 열렬한 가톨릭 교인이었다.45

 (181.2)
 무원죄 잉태(the immaculate conception)설을 다룬 장(章)에서 메리 E. 월쉬는 이렇게 말한다. “마리아가 그리스도에게 준 모든 것은 그녀의 인간의 육체였다. 한 사람이 자기가 소유하지 않은 것을 줄 수 없다는 것은 하나의 자연법칙이다. 마리아는 각양의 언어가 표현하는 인간이었기 때문에 그녀의 아들에게 신적인 본성을 나누어 줄 수 없었다.”46

 (182.1)
 그 다음에 신적이며 인간적인 두 가지 양상의 예수님의 본성을 보인 후에 메리 E. 월쉬는 로마서 8장 3절히브리서 2장 14, 17, 18절을 결론 삼아 인용한다. “마태복음에 주어진 그리스도의 족보 가운데서 우리는 예수께서 다윗의 아들이면서 또한 아브라함의 아들이라고 부른 것을 찾아보게 된다. 어느 사람이든 아브라함과 다윗이 바로 인간이었고 또한 죄에 대한 경향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배우기 위해 그들의 품성을 연구해야 한다. 이와 같이 함으로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선조들로부터 어떤 종류의 인성을 유전으로 받았는지를 알게 된다.”47

 (182.2)
 1950년대 초기 여러 다른 저서들이 왜 성육신 되심이 필요했는지, 그리고 죄 있는 육체 가운데 죄 없는 생애를 사심으로써 그리스도께서 어떤 일을 성취하셨는지를 설명하고자 출판되었다. A. B. 릭키(A. B. Lickey)의 <영원하신 그리스도(Christ Forever)>, W. B. 옥스(W. B. Ochs)의 <이것을 내가 믿는다(This I Believe)>라는 두 책이 1951년도에 리뷰 앤드 헤랄드사에 의해 출판되었으며,48 이 두 책은 과거 100년간의 재림교회의 전통적 가르침을 간직하고 있다.

 (182.3)
 우리의 연구를 마무리 짓기 위해 우리는 다른 두 사람의 저자들을 살펴 보자. 이들의 증언은 철저한 근본적인 변화가 이행되어야 했던 적절한 때에 나왔기 때문에 특별히 가치가 있는 것이다. 이들은 리뷰 앤드 헤랄드의 1945년부터 1966년까지 편집장이었으며 다수의 책들을 저술한 저자였던 F. D. 니콜(F. D. Nichol)과 1950년부터 1955년까지 대총회장을 지낸 W. H. 브랜슨(W. H. Branson)이다. (182.4)
 반대에 대한 답변-F, D. 니콜 저49

 1952년 니콜은 당시 재림교회를 대향해 무너뜨리려고 자주 등장했던 비평에 대한 답변을 하고 싶은 강렬한 느낌을 받았다. “재림교회는 온 인류와 같이 그리스도께서 죄 있는 본성(Sinful Nature)으로 태어나셨음을 가르친다. 이것은 분명히 그분의 마음 또한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렘 17:9)것이었음을 제시한다. 이것과 일치해서 그들은 또한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구주로서 지상사명을 완수하고 있을 동안 실패할 수 있었으며 ‘실패와 영원한 손실’을 무릎 쓰고 세상에 오셨음을 가르친다. 그러나 성경은 그리스도께서 거룩하셨고 ‘죄를 알지도 못하셨으며’, 그가 실패하지도 낙심하지도 않으셨음을 가르친다.”50

 (183.1)
 니콜의 답변은 무엇보다도 먼저 <리뷰 앤드 헤랄드>의 두 기사에서 발견되며 이것은 <반대에 대한 답변(Answers Objections)>이란 책에 다시 수록되었는데 이 책은 같은 해에 출판되었다. 서문은 당시 대총회장이었던 브랜슨이 썼다. 이 서두의 끝에서 그는 “이 책은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 교회가 고수하는 교리들에 대한 비평에 의해 자주 야기되는 반대들에 대한 질문에 분명하고도 단호하게 확신시키는 답변을 제공한다”고 썼으며 ∙∙∙ “그러므로 우리는 이 책을 모든 복음 사역자들에게 진심으로 추천하는 바이다. 이 책은 신학적 비평에 대한 공박이나 당황해 하는 탐구자의 진지한 의문들에 대해 준비된 조력자로서 입증될 것이다”52라고 되어 있다.

 (183.2)
 그의 답변 가운데서 니콜은 비평가들이 이 주제에 대한 재림교회의 신조에 오해가 있다고 말하지 않았다. 그는 단순히 이런 비평가들이 “재림교회가 두려운 이설의 죄를 짓고 있다”53고 결론짓는 것에 잘못이 있다고 지적했다.

 (183.3)
 진실로 니콜은 “재림교회가 그들의 신조에 대한 설명에서 이 문제에 관한 어떤 공식적인 발언을 해 본 적이 없었다. 이에 대해 진실로 권위가 있는 것으로 간주되는 우리의 저술들 가운데 유일한 선언은 화잇 부인이 기록한 것뿐이다.”54 더욱이 반대자들은 자기들의 판단에 잘못이 없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시대의 소망으로부터 발췌해서 인용하고 있다. 그런데 니콜은 “그리스도께서는 범사에 형제들과 같이 되시지 않으면 안 되었다”는 것을 확증시키기 위해 동일한 구절을 사용한다.

 (183.4)
 “이것이 재림교회의 신조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이 계시와 이성적으로 일치된다고 생각하므로 이 신조를 고수한다.” 다음의 성경구절(롬 8:3; 히 2:16, 14, 17 ; 히 4:15)에 의거해 니콜은 “반대자는 그리스도께서 시험을 받으셨던 것에서 아주 먼 단순히 ‘시도해 보거나’ ‘시험해 본’ 의미로만 선언함으로 이 성구들의 능력을 약화시키고자 애쓴다고 단언한다. 그렇지만 이 성구들은 그리스도의 시험의 본질이 정확히 인간에게 주어지는 시험과 똑같은 것이었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184.1)
 “이 성구들이 알려 주는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그리스도께서 시험을 받으셨을 때 그는 결코 죄를 짓지 않으셨다는 점이다. 이것은 인간에게는 선포될 수 없는 말이다. 크고 작은 차이는 있지만 우리는 모든 시험 앞에 실패해 왔다. 성경은 그리스도께서 죄를 지을 수 없었다고 말씀하지 않고 죄를 짓지 않으셨다고 말씀한다. 당신의 인성으로 죄를 짓는 것이 불가능했다면 왜 바울은 이 성구들을 우리 앞에 그렇게 소개하지 않았겠는가? 그것은 하나의 폭로거리가 되었을 것이다.”55

 (184.2)
 니콜은 재림신도들만이 이런 견해를 고수하는 단체가 아님을 계속해서 강조한다. 그는 결론을 내리기에 앞서 또 다른 개신교단들의 기라성 같은 신학자들을 인용하고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린다. “그리스도에 관련된 재림교회의 신조는 그분이 참하나님이시오, 참인간이셨다는 것이요 그분의 인성은 우리들이 당면하는 죄에 대한 똑같은 유혹의 대상이셨으며 그분이 그분의 아버지께로부터 그분에게 주어진 능력을 통하여 시험에 승리하셨고 그분은 실제적으로 ‘거룩하고 악이 없고 더러움이 없’는 분으로(히 7:26) 묘사되기에 합당할 것이다.”56

 (18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