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은 하나님의 구원의 이야기이다. 창세기는 다양한 이야기들을 통해서 인류의 구원에 관해 알기 쉽게 설명해 준다. 종교개혁의 원리인 오직 믿음, 오직 은혜가 부조들의 삶을 통해 나타나 있고, 언약의 백성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축복으로서의 구원을 엿보게 한다. 구원을 체험한 남은 자에 대한 이야기와 하나님의 계시에 관한 최초의 기록들을 볼 수 있다. 구원은 다름 아닌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과 일치하며 이것은 새로운 창조에 참여하는 것임을 창세기의 기사들이 증거한다. (229.1)
 창세기는 내세에서의 구원, 사후의 세계에 대해서 말하지 않는다. 부활 신앙에 대한 희미한 그림자를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쳤던 기사 속에서 엿볼 수 있을 뿐이다(창 21:12; 22:5; 히 11:17-19). 창세기의 매우 현세적인 구원의 기사들은 하나님의 영광의 나라에서 누리게 될 궁극적 구원에 대한 영적 교훈을 주기에 충분하다. 창세기는 타락 후에 연속적인 구원의 이야기들로 엮어져 있다. 창세기의 이야기들은 영원한 구원에 관해 무엇이라고 증거하는지 살펴보자. (229.2)
 1. 은혜로 말미암는 구원
 1) 아담
 아담의 범죄는 하나님과의 분리요 인류의 죽음을 의미하나, 하나님은 인간을 찾아오셨다(창 3:8-9). 죽음이 있는 곳에 생명의 길, 원복음(창 3:15)을 갖고 찾아오신 하나님은 인류에게 은혜요 생명이다. 하나님께서 찾아오지 않으셨다면 인류에게는 전혀 희망이 없으며, 구원은 오직 죄인에 대한 하나님의 뜨거운 사랑의 마음속에 그 근거를 두고 있다. 원복음은 여자의 후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류를 위해 구원을 성취하시겠다는 선언이다. 인류는 여자의 후손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사단을 이기고 영생을 얻고 잃었던 낙원을 되찾게 된다. (229.3)
 아담 부부에게 지어 입히신 가죽옷은 무화과나무 잎처럼 쉽게 마르고 썩어 없어질 인간의 의가 아닌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의 영원한 의를 아낌없이 인류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넘쳐나는 사랑을 예시한다. (230.1)
 2) 에녹
 아담의 계보(창 5장)는 하나님의 축복된 창조로 시작해서 10대인 노아에 이르기까지 오직 한 사람 에녹을 제외하고는 모두 일천 년 가까운 세월을 살기는 했으되 한결같이 ‘그는 ○○○세를 살고 죽었더라’는 말로 끝을 맺는다(창 5:5, 8, 11, 14, 17, 20, 27, 31). 아담의 칠세 손인 에녹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에녹은 육십오 세에 므두셀라를 낳았고 므두셀라를 낳은 후 삼백 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그는 삼백육십오 세를 살았더라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 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 하였더라’(창 5:21-24). 에녹의 승천은 이 땅이 인류의 영원한 무덤이 아니라는 희망의 문을 열어 주었다. 그는 죄로 인한 하나님과의 분리된 삶이 인간의 숙명이 아니라는 것을 하나님과 일상생활에서 동행함으로 보여주었다. 영원한 구원은 하나님께 주도권이 있다는 것을 ‘하나님이 데려가셨다’는 구절이 알려주고 있다. (230.2)
 에녹의 히브리어 이름인 ‘하녹’(חֲנוֹךְ, Hánôk)은 서부 셈어의 어근인 ‘하나크’(חנך, HnK )‘시작하다’, ‘도입하다’에서 기원하여 ‘창시자, 도입자’를 뜻한다. 이 이름을 가진 가인의 아들은 이 땅에 최초의 도시를 건축한 것을 기념하지만,1 셋의 후손인 에녹은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영원한 하늘 도성에 최초로 입성하여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 헤매는 인류에게 희망의 문을 활짝 열어주었다. (231.1)
 창세기 4-5장의 족보에서 에녹과 라멕은 각각 셋 족보와 가인 족보에서 아담의 칠대손이라는데 일치한다. 에녹의 승천은 가인족보에서 아담의 칠대 손인 라멕에 이르러 강포가 극에 달했다는 점과 큰 대조를 이룬다(창 4:23-24). 에녹의 모본은 세상이 아무리 악할지라도 하나님께서 그분의 백성을 죄 가운데에서 지켜주실 수 있다는 확신을 준다. 살아서 승천할 마지막 시대의 하나님의 백성에게 큰 위로와 용기를 주는 교훈이 아닐 수 없다. 하나님이 살아계시며, 그분을 찾는 이들에게 상주시는 분임을 에녹의 이야기는 확인해 준다(히 11:5-6). (231.2)
 3) 노아
 노아에 대해서는 ‘그러나 노아는 야훼께 은혜를 입었더라’(창 6:8)고 했다. 성경에서 최초로 ‘헨’(חֵן, Hën) ‘은혜’가 등장한다. 히브리어는 ‘은혜, 호의’를 뜻하며 기본형 동사인 ‘하난’(חָנַן, µ¹nan, ‘은혜롭다, 호의를 베풀다’) 은 개인적 관계 속에서 행사하는 ‘적극적인 받아 줌과 적극적인 호의’를 뜻한다. 이것은 가난한 이에게는 도움을, 굶주린 이에게는 식량을, 절망한 이에게는 소망을, 삶의 위기에 빠진 이에게는 그 상황 속에서 구출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것을 가리킨다.2 (231.3)
 창세기 6:8의 문맥은 대홍수 시대의 사악한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다. 동시대인들의 운명과 노아의 운명이 비교되고 있다. 심판의 배경에서 호의는 구원과 구출이다. ‘어떤 사람이 은혜를 보이면서 동시에 진노하는 것은 생각할 수 없는 일이다. 은혜는 심판과 공존할 수 없다.’3 (232.1)
 호의는 얼굴에 나타난다. 구약성경은 ‘호의’‘얼굴’(פָּנִים, p¹nîm)을 동일시한다(시 119:58; 단 9:13; 슥 7:2; 말 1:9). 노아는 에녹처럼 하나님과 동행하였다(창 5:24; 6:9). 하나님과의 친밀한 개인적 관계를 통해서 노아는 구원을 받았다. 하나님은 자기를 찾는 이들에게 은혜를 베푸신다. 하나님은 심판을 피하고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을 노아에게 계시하셨고,(창 6:13-22) 대격변적 홍수 속에서 그를 기억하셨다(창 8:1). 대홍수 기사의 문학적 구조인 교차대구법에서 강조하는 것은 ‘하나님이 ∙∙∙ 기억하셨다’이다.4 하나님의 일방적인 보호와 돌보심이 있었기 때문에 노아와 그와 함께 한 가족과 생물들이 구원을 받았다. (232.2)
 4) 아브라함
 아브라함 기사는 연속적인 위기들과 하나님의 개입을 통한 구원들로 이루어져 있다. 불확실한 미래를 향한 위기적 부르심에 응답한 이래 아브라함은 생명의 위협을 느껴 아내 사라를 누이라고 속임으로 애굽왕 바로와 그랄왕 아비멜렉의 수중에 아내를 내어주는 위기를 겪었고(창 12:10-20; 20:1-18) 죄악의 땅 소돔을 정착지로 선택한 지혜롭지 못한 조카 롯 때문에 당대 최강의 군주들과 국제전쟁을 치루었다(창 14:1-24). 하나님은 위기 속에서 그분의 선지자를 구하기 위하여 바로와 아비멜렉의 집에 재앙을 내리셨고, 아비멜렉에게 현몽하여 경고하셨다(창 12:17; 20:3. 비고, 창 20:7). 살렘왕 멜기세덱은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승리를 주셨다고 말했다(창 14:20). (232.3)
 아브라함 기사 속에 ‘헨’(חֵן, Hën) ‘은혜’창세기 18:319:19에 등장한다. 일련의 기사는 아브라함을 방문한 천상의 존재들과 관계되어 있다. 아브라함이 ‘야훼’ 일행을 대접했을 때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이삭 출생에 대해 고지하시고, 소돔에 대한 심판의 계획을 알려주셨다. 하나님의 약속에 대해 사라가 웃을 정도로 인간적 소망이 끊어졌을 때 아들을 약속하신 것은 전적인 은혜이다. 하나님은 소돔인들에 대한 아브라함의 연속적인 간청을 은혜로 용납하셨다. (233.1)
 창세기 19:19에서 롯은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은혜에 의지하여 심판의 천사들에게 호의를 요청하여 소알로 도피하는 허락을 받았다. 본절은 은혜와 동의적 의미로 성경에서 최초로 ‘헤세드’(חֶסֶד, Hesed) ‘인자’를 사용한다. 그의 요청은 가납되었지만, 온전한 순종을 결여한 그의 행실은 결국 불행으로 끝을 맺는다. (233.2)
 아브라함 기사 속에서 은혜로 얻는 구원에 관한 가장 큰 계시는 모리아에서 아들 이삭을 번제로 드린 것이다(창 22). 이것은 인간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죄인을 위해 십자가에 내어 주시기까지 하는 사랑을 미리 보여주신 것이다(롬 5:8). (233.3)
 5) 야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