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챤의 결혼 언약 제 3 장 결혼과 성(性) 3. 장차 오는 세상에서의 결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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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차 오는 세상에서도 결혼 관계가 있을 것인가? 많은 신실한 그리스도인은 “아니오”라고 대답한다. 그들은 부활 때 구원함을 받은 자들이, 현재 남, 여 다른 성의 몸을 가진 육체가 어떤 “양 성” 종류의 영적인 몸으로 변화될 것을 믿기도 한다. 그들의 잘못 된 신조는 마태복음 22:30에 있는 예수님의 말씀을 오해한 데서 비롯되었다. “부활 때에는 장가도 아니 가고 시집도 아니 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으니라.” 이 본문이 부활 때 모든 성적 구별은 없어지고 우리의 몸은 더 이상 육체를 가지지 않는다고 말하는가? 이 해석이 맞다면 인류를 남, 여 두 성의 육체적 존재로 만든 인류의 본래의 창조는 진정으로 “심히 좋았더라”(창 1:31)고 말할 수 없는데 성경이 말하는 것과 대조되기 때문이다. 원래의 창조의 “결함”을 제거하시기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장차 오는 새 세상에서 새 형태의 인간을 창조하시기 위하여, 가령 “육체가 없는, 양성의” 몸을 만드시는 것이 필요할 것인가? (110.1)
 변화는 불완전을 의미함
 적어도 우리가 말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전지하심과 불변성을 믿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이런 이유는 뜻밖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인간에게 생기는 부족함을 보충하기 위하여 새 모델과 구조를 도입하는 것은 정상적이다. 그러나 이것은 처음부터 끝을 아시고 계시는 하나님께는 앞뒤가 맞지 않는 비정상적인 것이다. 만약 부활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현재의 남, 여의 몸들을 “육체가 없는, 양성”체로 바꾸신다면 훼케마(Anthony A. Hoekema)의 관찰은 옳다. “그때 하나님께서 신체를 가진 인간을 육체가 없는(천사들과 같은) 다른 종류의 피조물로 만드신다면 사단은 대 승리를 거둘 것이다. 그때 물질은 사라져 없어져야 하는 본질적인 악처럼 보일 것이다. 그와 같은 의미에서 헬라 철학자들은 옳다고 증거될 것이다. 그러나 물질은 악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선한 창조의 한 부분이다.”15 (110.2)
 천사들과 같음
 예수님의 설명 그 자체의 문맥을 살펴볼 때 그것은 부활 때 구속함을 받은 자들이 몸이 없는, 양성의, 천사와 같은 몸을 갖는다는 견해를 지지할 수 없는 것이다. 문맥은 만형이 죽으므로 형수를 취하되 일곱째까지 그렇게 하다가 그 여자가 죽었다는 사두개인에 의하여 조작된 가설적 상황이다. 그와 같은 연계적, 매체적 결혼의 목적은 관계가 아닌 출산을 위한 것인데 즉 “후사를 세우기”(마 22:24) 위함이다. 시험된 질문은 사두개인에 의하여 일어났는데 곧 “부활 때에 일곱 중에 뒤 아내가 되리리까”(마 22:28)이다. (111.1)
 이 가설적 상황에 대하여 예수께서는 확실하게 답변을 하신다. “부활 때에는 장가도 아니 가고 시집도 아니 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으니라”(마 22:30). 일곱 형제가 같은 여인에게 장가들어 그녀에게 후사를 잇게 하는 가설적 상황의 문맥에서 그리스도는 장가와 시집은 가지 않지만 천사와 같은 존재가 되되, 출산의 수단으로서 결혼은 장차 오는 세상에서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것을 말씀하셨다. 새 아이가 태어나지 않는다면 아들을 장가보내고 딸을 시집보내는 가능성도 없게 되는 것은 분명한 이치이다. 결혼의 출산 기능의 중지는 구속받은 자들이 자신의 형상에 따라 자식을 낳지 않는 “천사들과 같”도록 만들 것이다. (111.2)
 예수님께서는 그의 답변에서 일곱 번 결혼한 여인의 결혼 신분에 대한 즉석 질문을 취급하지 않으셨으나, 일곱 형제가 한 여인에게 장가는 이유 때문에 결국 결혼의 출산 기능이 확대된 질문을 다루셨다. 질문에 답변하는 간접적인 방법이 예수님의 교훈에 이상한 영향을 주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면, 바리새인들이 질문하였을 때이다. “사람이 아내를 내어버리는 것이 옳으니이까”(막 10:2). 예수께서는 그 즉석 질문을 무시하시고, 대신에 결혼에 대한 근본적 창조의 계획은 이혼이 없는 평생의 언약이 되어야 할 것을 강조하셨다(막 10:5-9). (112.1)
 하늘에도 독신이?
 결혼의 출산 기능의 중단은 또한 결혼 관계의 기능도 중지되는 것을 뜻하는가? 그렇지 않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태초에 남자와 여자로 만드시고 친밀한 교제로 하나됨을 경험할 수 있는 능력과 함께 창조하였다면, 하나님께서 종국에는 그들을 남녀 사이에 존재하는 교제의 하나됨을 경험하기 위한 능력이 없는 독신으로 살 통성적 존재로 다시 만드시리라는 추측을 할 이유가 없다. (112.2)
 원인론(原因論)으로 알려진 근원에 대한 교리는 종말론으로 알려진 세상 종말에 대한 교리를 조명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태초에 인간을 남녀로 만드신 그의 창조에서 “심히 좋았”(창 1:31)던 것을 찾으셨다면, 종말에는 좋지 않더라는 것을 찾으실 필요가 있겠는가? 태초에 하나님께 “심히 좋았더라”고 했던 것이, 역시 종국에도 “심히 좋더라”고 하실 것은 당연히 믿어야 할 이유이다. (112.3)
 인간의 생명이 하나님의 선택에 의하여 완전하게 창조된 것이 아니라 자연 발생을 통하여 우연에 의하여 불완전하게 시작되었다고 믿는 그리스도인이 있다면 아마도 인간의 근본적 구조가 남, 여 다른 성에서 육체가 없는 양성으로 되어 감을 이성적으로 믿을 수 있다고 할 것이다. 그들은 이것을 하나님에 의하여 사용된 진화의 과정의 한 부분인 변이로 설명한다. 그러나 본래의 완전한 창조와 안식일을 통한 하나님의 원래의 창조의 완전함을 축하하는 것을 믿는 저자와 같은 그리스도인들에게는 결국에 하나님께서 인간의 몸의 구조와 본질을 근본적으로 다르게 바꿀 것이라는 것을 상상하기란 불가능하다. (112.4)
 출산의 중단
 마태복음 22:30에서 예수님의 설명에 포함된 것과 같이, 장차 오는 세상에서 인간의 출산 능력의 중단은 인간의 성 기능에 대한 하나님의 원래의 계획이 변화된 것으로 여길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이 반드시 옳은 것은 아니다. 하나님께서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창 1:28)고 말씀하셨을 때 이미 당신의 본래의 계획에 그런 변화를 예측하셨음을 성경은 제안한다. (113.1)
 “땅에 충만하라”는 명령은 하나님께서는 일단 이상적인 수의 사람이 땅에 충만하게 될 때 출산주기를 종료하려고 의도하셨다고 가정할 수 있다. 완전한 세상에, 죽음이 없고, 토지와 사람과의 생태계의 균형이 비교적 단기간 내에 이루어질 수 있었을 것이다. 그때에 하나님께서는 이 지구의 생태계를 보호하시기 위하여 인간과 다른 피조물의 출산주기를 멈추실 수 있을 것이다. (113.2)
 성도들의 부활과 변화는 지구를 “충만”케 하기 위한 하나님의 본래의 계획을 이루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합리적이다. 그와 같은 의미에서 구속함을 받은 자들은 새롭게 된 지구를 적절히 유지할 수 있는 거민의 이상수(理想數)를 나타낸다고 생각할 수 있다. 이들의 이름이 “생명책에 창세 이후로 녹명되”(계 13:8, 참고 17:8, 21:27, 단 13:1; 빌 4:3)는 것이 있다. 이름의 언급은 이 지구에 이상수의 의인을 거하게 하기 위한 본래의 하나님의 계획이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죄가 발생하지 않았다면 하나님의 섭리 아래에 그분은 이상수가 도달하였을 때 출산주기를 간섭 하셨을 것이다. 그러나 결혼의 출산기능의 중단은 범죄 전이든 혹은 후이든지 결혼에 있어서 관계의 기능을 멈추게 하지는 않았다. (113.3)
 관계의 계속
 우리의 존재가 부활 때 “천사들과 같으리라”(마 22:30)는 예수의 보증을 결혼의 관계적 기능의 끝으로 해석할 필요는 없다. 성경의 어느 곳도 천사들이 “통성적” 존재로 인간이 나누는 결혼의 친밀한 교제와 유사한 정이 두터운 교제를 할 수 없다고 암시하지는 않는다. 성경에 천사들이 종종 쌍들로 언급되는 사실(창 19:1; 출 25:18; 왕상 6:23)은 그들이 쌍으로서 친밀한 교제를 즐기는 것을 암시한다. (114.1)
 이미 언급한 바대로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친히 계시하시되 영원히 멀리 떨어진 어떤 외진 곳에 사시는 고독한 존재가 아니라 우리가 삼위 하나님을 한 하나님으로 예배하듯 세 분이 그렇게 두터운 친분으로 연합된 교제를 나누시는 분으로 나타내신다. 만약 하나님께서 친히 삼위의 다른 분들과 가장 친밀한 교제를 나누면서 사신다면, 그가 친히 창조시에 제정하신 결혼의 연합기능을 종국에는 폐지하실 것이라는 것을 믿을 아무런 이유가 없다. (114.2)
 이 결론을 뒷받침하는 사실은, 이미 언급한 바대로, 남자와 여자의 성적 구별은 성경에서 “하나님의 형상”(창 1:27)을 반영함으로서 나타난다. 인간 속에 “하나님의 형상”을 반영하는 것은, 삼위 안에 하나됨과 유사하게, 결혼을 통하여 교제의 하나됨을 경험하기 위한 능력을 하나님께서 남녀에게 주셨다는 사실이다. 만약 남, 여가 창조시 하나님의 형상을 반영하였다면 그들은 모든 만물이 최종 회복될 때에도 하나님의 형상을 반영하기를 계속할 것이라는 사실은 우리가 믿을 수 있는 충분한 이유가 된다. 구원의 목적은 하나님의 형상을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본래의 완전함을 회복하는 것이다. 이것이 어떤 양성적인 새로운 존재로 창조하는 것이 아닌 육체의 부활을 말하는 성경적 이유이다.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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