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망 없는 인류를 위한 재림의 소망 제 16 장 재림의 소망을 실천함
 재능을 나눔. 그리스도인의 끝없는 사랑을 보여 주는 두번째 길은 우리의 재능을 나누는 것이다. “각양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각양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벧전 4:10). 속히 오시는 구세주에 대한 우리의 소망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주신 우리의 재능을 감추지 않고 오히려 다른 사람들에게 더 큰 축복을 가져다 주기 위해 그것들을 충분히 계발하도록 동기를 부여한다. 달란트의 비유 가운데서 주인이 돌아올 때 정죄를 받았던 종은 단지 자신의 달란트를 사용하지 않고 감추어 두기를 선택한 자이다(마 25:24~30). (334.1)
 복음 사명을 성취하기 위해 교회는 모든 신자가 소유하고 있는 은사들을 필요로 한다. 그것은 말, 음악, 지식과 상담, 실제적인 봉사, 재정 또는 물려받은 소유물의 은사일 수도 있다. 우리 각자가 무슨 은사들을 소유하고 있든지, 그것들은 그리스도의 왕국의 설립을 촉진시키는 데 사용되어지는 재능들로 간주해야만 한다. (334.2)
 재능을 계발함. 우리의 재능들을 효과적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그 재능들을 충분히 계발해야 한다.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만약 그리스도께서 속히 오신다면 의사, 간호사, 요리사, 설교자, 기술자, 건축가, 음악가가 되기 위해 오랜 기간 동안 열심히 공부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현대식 학교, 병원, 교회 등을 짓는 데 재정과 인적 자원들을 투자하는 것이 현명하지 못하다고 생각하나, 이것은 근시안적이며 비성서적인 견해이다. (334.3)
 그러한 이론은 그리스도의 임박한 강림을 위해 준비하면서 산다는 것이 우리의 전문적인 도구들을 예리하게 하므로 우리 자신을 향상시키거나, 또는 우리의 사회적인 기관들을 발전시키기 위한 어떤 계획도 포기하므로 소극적인 기대감 속에 우리 스스로를 도피시키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무시하는 것이다. (334.4)
 그리스도께서는 우리가 단지 삶을 위한 미래가 아닌, 다른 미래를 위해 계획하고 일하기를 기대하신다. 우리는 마치 그리스도께서 오늘 다시 오실 것처럼 살아야 하지만, 또한 그분의 강림은 여전히 미래에 있을 것처럼 계획하고 일해야만 한다. 재림신자들로서 우리는 우리 생애 속에서 이 긴장을 균형 있게 유지해야 한다. (334.5)
 용기를 간직함. 균형진 재림신자들의 생활 양식 중 다섯번째 특징은 “반대 속에서도 용기를 가짐”이라고 부를 수 있다. 베드로는 이 특성을 다음의 글에서 암시하고 있다.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시련하려고 오는 모든 불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처럼 이상히 여기지 말고 오직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를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벧전 4:12, 13). “불시험”은 아마도 대부분 예상했던 대로의 박해를 언급하는 것으로 그 기간 동안에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비인도적이고 잔인한 순교의 고통을 당했다. (334.6)
 베드로는 신자들로 하여금 실망하지 말고 갑작스런 불시험을 당할 때 기뻐하기를 권하고 있다. 왜냐하면 첫째로 그리스도의 추종자들로서 우리는 박해가 “이상하게”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바꾸어 말하자면 예수 그리스도의 표준을 세상 앞에 제시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그것은 누구에게나 그들의 생애에서 불가피한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나를 핍박하 였은즉 너희도 핍박할 터이요”(요 15:20)라고 경고하셨다. 두번째로 박해를 통해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고난뿐만 아니라 그분의 영광도 함께 나눈다. 바울은 이 진리를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롬 8:17; 딤후 3:11)고 말하면서 강 조하고 있다. 십자가는 면류관으로 가는 길이다. (334.7)
 그것이 바울로 하여금 “달려갈 길”을 마치고 자신의 믿음을 지키기 위해 “선한 싸움”을 싸울 수 있도록 했고 또 “그분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 ∙∙∙ 의의 면류관”을 주실 것이라는 재보증이 되었다(딤후 4:7, 8). 그것은 또한 오늘날 우리가 고난, 슬픔, 긴장, 문제들, 불 확실함과 그리고 이 현재의 생애의 패배 가운데서, 살아가며 일하라고 부름을 받을 때 용기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똑같은 보증이다. “내가 속히 임하리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나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계 3:11). 만약 우리가 그리스도께서 이 현재의 생애의 고통과 문제들을 종식시키기 위해 속히 강림하실 것이라는 이 보증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면 우리는 유혹을 받아 용기를 잃었을 것이며 또한 생애 그 자체에 환멸을 느꼈을 것이다. (335.1)
 더 좋은 어떤 것이 순례 여행의 끝에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는 소망을 가지고 있기만 한다면 우리는 거의 모든 것을 견딜 수 있다. 이 보증은 우리의 심령 속에서 재림의 소망에 의해 조성된다. 재림신자로서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롬 8:18)다는 것을 안다.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실 때 세워질 영광스런 미래의 계시가 우리로 하여금 이 현재의 세상의 고난과 박해 그리고 혼란을 용감하게 직면하도록 고무시킬 수 있다.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그분의 강림 때에 구속받은 자들에게 불멸의 선물을 어떻게 주실 것인지를 설명한 후에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고전 15:58)며 고린도인들을 권면하고 있다. (335.2)
 제 2 부 재림의 소망을 함양함
 재림의 소망이 그리스도인 생애에서 중요한 역할을 감당한다는 것을 보면서 이 장의 남은 부분에서는 우리의 심령 속에 재림의 소망을 고취시키는 다섯 가지의 특별한 방법을 고려하게 될 것이다. (335.3)
 1. 예배
 하늘의 예배를 미리 맛봄. 우리의 심령 속에 재림의 소망을 함양하고 강하게 하는 중요한 방법은 개인적인 예배와 집단적인 예배를 통해서이다. 우리가 예배를 드릴 때 시공간의 장벽을 헐어 버리고 하나님의 임재와 모든 시대에 구원받은 자들의 우정 속에서 미래에 있을 하늘 예배의 축복을 미리 맛보게 된다. (335.4)
 히브리서의 저자는 예배의 이 중요한 기능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러나 너희가 이른 곳은 시온산과 살아 계신 하나님의 도성인 하늘의 예루살렘과 천만천사와 하늘에 기록한 장자들의 총회와 교회와 만민의 심판자이신 하나님과 및 온전케 된 의인의 영들과 새 언약의 중보이신 예수와 및 아벨의 피보다 더 낫게 말하는 뿌린 피니라”(히 12:22~24). (335.5)
 이 구절은 특별히 우리가 새 예루살렘의 예배 경험, 즉 천사들과 구속받은 자들 그리고 그리스도 자신과 더불어 기쁨의 상봉을 통해서 있게 될 미래의 영광을 열거하고 있다. 동료 신자들과의 공중 예배가 어떻게 이 현재의 생애의 불쾌한 현실을 잊어버리고 초월하도록 하며, 또, 앞으로 올 세상의 축복을 바라보게 하는지를 설명하는 것은 어렵다. (336.1)
 동료 신자들과의 찬미, 기도, 말씀의 선포, 그리고 증거와 우정들은 우리로 하여금 미래에 있을 하늘 예루살렘과 하나님의 백성들의 하늘에서의 모임을 미리 맛보도록 할 것이다. 그러한 경험은 재림의 영광스런 계시와 미리 맛봄을 통해서 우리의 심령 속에 재림의 소망을 배양시키고 또 강하게 한다. “묵시가 없으면 백성이 방자히 행”(잠 29:18)한다. 특별히 예배 경험을 통해서 얻어진 재림의 영광스런 계시가 재림의 소망의 불꽃을 지탱시키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336.2)
 서로 용기를 줌. 집단 예배도 역시 서로에게 용기를 주는 기회를 마련하므로 재림의 소망을 함양시킨다. 지금의 생애의 고통, 슬픔, 욕구 불만, 환멸 그리고 긴장들이 미래의 하나님의 해결에 대한 소망을 포기하도록 끊임없이 우리를 유혹한다. 그러나 교우들을 돌보므로 우리가 얻는 용기는 특별히 현재 생애의 짐이 너무 무거워 나를 수가 없다고 느낄 때 우리의 소망을 새롭게 할 수 있으며 터널의 끝에 있는 빛을 보도록 우리를 도와줄 것이다. (336.3)
 히브리서의 저자는 재림신자들이 함께 예배를 드림으로써 얻는 피차의 용기에 대해서 소상히 말하고 있다. “또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니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고 굳게 잡아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히 10:23~25).6 (336.4)
 그리스도의 강림의 날이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예배와 상호 용기를 주기 위해 함께 모이는 일이 필요하다는 것을 이 구절이 제시하고 있는 것은 주목할 만하다. 그 이유는 그리스도의 강림의 날이 가까워지면 질수록 우리의 생애와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사업을 무너뜨리기 위한 사단의 노력이 더욱 강렬해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늘과 그 가운데 거하는 자들은 즐거워하라 그러나 땅과 바다는 화 있을진저 이는 마귀가 자기의 때가 얼마 못된 줄을 알므로 크게 분내어 너희에게 내려갔음이라”(계 12:12). 동료 신자들과 함께 예배를 드리므로 얻는 영감과 용기는 우리로 하여금 속히 오시는 구세주에 대한 믿음과 소망을 견고히 붙잡도록 우리를 도와줄 수 있다. (336.5)
 2. 주의 만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