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식일의 역사와 신학 제 5 장. 안식일:구속의 기쁜 소식 I. 구약에 나타난 안식일의 구속적 주제들
 아담과 이브의 서(書)로 알려진 한 묵시 문헌을 보면 천사장 미가엘이 셋(Seth)에게 권고하여 말하기를 “하나님의 사람아 그대의 죽음을 6일이 넘도록까지 애곡하지 말라 제칠일은 창차 올 시대의 부활과 안식의 표징이기 때문이라고”15 하고 있다. 어떻게 하여 안식일이 도래할 시대의 부활과 안식의 상징으로 간주되게 되었는가? 분명히 광야에서 방황하던 거친 경험과 다음에 바벨론 포로의 경험 때문에 에덴의 안식일을 미래에 도래할 새로운 시대의 범례로 생각하는 경향이 높아진 것이다. 사실상 일반적으로 메시야의 시대16와 같은 것으로 이야기되고 있는 이 새로운 시대는 물질적인 풍요함(암 9:13, 14; 욜 4:19; 사 30:23~25; 렘 31:12), 사회 정의(正義)(사 61:1~9), 사람과 동물의 조화(호 2:20; 사 65:25; 11:6), 이례적인 장수(長壽)(사 65:20; 슥 8:4) 찬란한 빛(사 30:26; 슥 14:6, 7). 죽음과 슬픔의 없음(사 25:8)으로 특징지어지는 시대이다. (120.2)
 메시야의 시대의 이같은 특징들은 A. D. 1세기 후반에 나온 또 하나의 유대 묵시문헌인 제 2 바룩(Baruch)서(書)에 함께 뭉쳐져 나온다. 바룩 서의 기자는 “나의 메시야의 시대”를 묘사하여 말하기를 “그 시대가 도래할 것이며 그 때에 메시야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들을 무너뜨리고, 세세토록 그의 왕국의 보좌에 평안히 앉을 것이며 그 때 기쁨이 들어나고 안식이 나타날 것”이라 하였다.17 메시야의 시대에 대한 묘사는 이외에도 또 있으며 그 속에는 우리에게 낯익은 주제들인 사망과 슬픔이 없는 상태, 사회 정의, 자연의 조화 같은 것들이 포함되어 있다. (120.3)
 이상과 같은 간략한 조사를 통해서도 우리는 인류의 타락 이후에 안식일 안식이 구약과 유대의 문헌 속에서 하나님의 피조물들을 위한 하나님의 목적의 완성으로 이해되었음을 알 수 있다. 주말마다 경험하는 안식일 안식의 경험은 가나안 땅과 예루살렘 성소에 있는 안식의 처소에 대한 민족적인 열망들을 요약하고 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차례로 메시야에 의하여 미구에 이룩 될 평화와 안식의 질서를 가리키고 있다. “구원의 때”“완전한 안식일과 안식”으로 여겨지게 되었다.18 (121.1)
 안식일 안식에 대한 메시야적, 종말론적인 이해를 토대로 하여 히브리서의 기자는 그리스도의 구속과 안식일 안식을 동일시할 수가 있었다. 그리스도의 도래와 더불어 안식일 안식의 기쁜 소식이 “복음 전함을 받은”(히 4:2, 3, 7) 모든 자들에 의하여 인식되고 경험되고 있는 것이다. 안식일 안식에 대한 구속론적인 이해는 유독 히브리서 기자에게만 찾아 볼 수 있는 현상은 아니다. 이 장(章)의 뒷부분에서 보게 되겠지만 그리스도 자신도 당신의 구속적인 사명을 안식일에 의하여 약속된 그 안식의 실현으로 보았다(마 11:28; 12:7; 눅 4:18-21; 요 5:17; 9:4). 여기에서는 구약에 있어서 안식일 안식의 경험이 개인과 민족적인 차원에서 미래에 도래할 메시야의 구속의 소망을 키우는 데 기여했다19는 것을 인지하는 것으로 족하다. (121.2)
 3. 안식일 해방
 안식일과 구속(救贖). 안식일 해방의 주제는 구약과 후기 유대 문헌 속에서 여러가지 형태로 등장하는 중요한 구속적 주지(住旨)의 하나이다. 안식일은 하나의 휴일이기 때문에 육체적, 영적 해방의 상징과 동인(動因)으로서의 기능을 발휘할 수 있는 요건을 가장 잘 갖추고 있다 하겠다. 안식일로 말미암아 경험하는 노동의 압력으로부터의 해방은 과거와 미래 속의 하나님의 구원을 요약하고도 남았다. (121.3)
 안식일이 구속의 주제와 빈번히 연결되는 까닭이 여기에 있는지 모르겠다. 출애굽과 신명기에서는 십계명을 주시는 하나님이 “나는 너를 애굽 땅, 종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낸 너의 하나님”(출 20:2; 신 5:6) 이라하여 자비로우신 구주로 소개되어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새로이 주신 이 자유를 히브리 사회의 각 성원(成員)에게 보장해 주시기 위하여 네째 계명을 통하여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육축이나 네 문안에 유하는 객이라도”(출 20:10; cf. 신 5:14) 노동으로부터의 자유를 누리어야 한다고 명령하셨다. (121.4)
 출애굽의 해방과 안식일 사이의 고리는 네째 계명을 소개하는 출애굽기 20장의 서두에서 암시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데 여기에서는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해방자로 묘사되고 있다(출 20:2). 그런데 신명기의 십계명 난에 이르면 안식일과 출애굽 해방 사이의 고리가 다음과 같은 “기억해야할 구절”에 의하여 명백하게 형성되고 있다. 즉 성경에 기록되기를 “너는 기억하라 네가 애굽 땅에서 종이 되었더니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강한 손과 편 팔로 너를 거기서 인도하여 내었나니 그러므로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를 명하여 안식일을 지키라 하느니라”(신 5:15)고 했다.20 (121.5)
 

안식일로 인한 구속의 축복은 이웃을 희생하거나 또는 그들에 대한 태만에 의하여 누려지는 것이 아니라 이웃들의 인권과 필요에 대한 진정한 관심을 표시함으로써 누리게 되는 것이다. 이같은 본질적인 원칙은 안식일에 행한 우리 주님의 가르침과 봉사를 통하여 명백해졌다.
(122.1)
 한스 왈터 월프(Hans Walter Wolf)는 말하기를 “여기에서는 안식의 날을 지켜야할 이유로서 야웨가 이스라엘을 애굽으로부터 해방시키셨다는 사실의 확인이 제시되어 있다. 이 확인이야말로 이스라엘에게는 지극히 기본적인 것이다. 매 안식일 마다 이스라엘은 그들의 하나님이 해방자임을 기억하지 않으면 안되었다”고 하였다.21 이 같은 구속적 주지(主旨)는 출애굽기 20장 11절에, 소개된 창조의 주지에 대한 추가 사항으로 나타난다. 안식일의 신학적인 영역이 신명기에 와서 확장되어 출애굽의 기억까지 포함하게 되었다는 사실은 안식일의 제도가 정적(精的)인 것이 아니라 역동적인 것임을 나타내 주고 있다. 안식일의 의미와 기능은 구속사(敬親史)의 전개와 더불어 갈수록 확대될 것이다. (123.1)
 구원의 기억. 무슨 까닭으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안식일에 그리고 안식일을 통하여 과거에 그들이 애굽으로부터 해방을 얻은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고 명하신 것일가? 첫째 이유는 사람은 이미 받은 하나님의 은혜를 생생히 회상 함으로써 하나님의 은혜와 하나님에 대한 헌신을 더욱 의미 있게 경험하고 표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자신의 창조주로 기억한다는 것은 자신의 존재의 토대를 인정한다는 뜻이다. 그런데도 창조의 사건은 머나먼 과거의 일이고 따라서 인간의 직접적인 관심이나 필요로 느껴지기란 쉽지 않다. (123.2)
 그러나 다른 일면에 있어서 구속은 역사에 대한 하나님의 부단한 개입이며 따라서 인간의 직접적인 필요에 좀더 직접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어떤 의미에 있어서 애굽의 속박으로부터의 해방은 특정한 시대에나 특정한 나라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나라, 모든 시대, 모든 영혼에게 반복해서 나타나는 사건이다. (123.3)
 출애굽의 해방을 기억하도록 분부한 두번째 이유는 이스라엘 자손으로 하여금 남에게 예속되어 있는 노동자들에 대하여 동정심을 갖게 하기 위함이다. 니일즈-에릭크 앤드리슨(Niels-Erik Andreasen)은 강조하기를 신명기 5장 15절의 이 ‘기억절’의 진정한 목적은 노예의 상태에서 구원받은 자신들의 역사를 기억하는 모든 이스라엘 자손들로 하여금 안식일에 안식일을 지킬 자유가 없는 사람들에게까지 그같은 구원을 확대시키도록 강력한 동기를 부여하자는 데 있다”22고 하였다. 다시 말해서 “매 안식일마다 이스라엘의 모든 가정의 가장(家長)은 출애굽 당시에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것과 동일한 형태의 자유를 비록 규모는 작으나마 진정한 방식으로 자유없는 노동자들에게 마련해 주라는 명령을 받고 있는 것이다.”23 따라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있어서 안식일을 통하여 출애굽의 해방 경험을 기억하라는 분부는 자신들 보다 불우한 사람들에게 관심을 나타내는 일을 포함한 구체적인 경험에의 요구인 것이다. (123.4)
 이것은 하나의 근본적인 원칙을 내포하고 있다. 그 원칙이란 곧 안식일에 의하여 발생하는 구속의 축복들은 다른 사람들을 희생시키거나 등한시 하면서 누리는 축복들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인권과 필요에 대해 진정한 관심을 표시함으로써 누리게 되는 축복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거의 무시되다시피 되었던 이 근본적인 원칙은 구세주의 안식일 교훈과 봉사에 의하여 그뜻이 명확해졌고 강조되었다. (123.5)
 안식년들. 매 주말마다 경험되는, 인생의 고초와 사회적 불평등으로부터의, 해방은 안식년(레 25:8)과 희년(喜年)(레 25:8)에 이르러 더욱 항구적이면서 수준 높은 본질을 들어내게 된다. 두 개의 이 연례 절기는 주일(週日)의 안식일과 밀접히 연결되어 있었다. 이 점은 이 두 절기가 모두 7의 주기(週期)에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에 의해서만이 아니라 이 두 절기가 모두 “여호와 앞에 안식 ∙∙∙ 땅으로 엄숙히 쉬는, 여호와께 대한 안식”(레 25:2, 4)으로 지키도록 되어 있었다는 사실에 의해서도 지적되고 있다.24 (124.1)
 이 두개의 연례 절기에 이르면 안식일이 히브리 사회 내에 있는 압제받는 자들의 진정한 해방자로 나타난다. 경작지는 휴경지로 묵히게 되며 북히는 땅에서 나오는 소산물은 모두 가난한 자와 동물들의 먹이가 된다. 노예들은 만약 그들이 원하기만 한다면 해방이 되었고 동료 시민들에게 진 부채들은 말소되었다. 희년(喜年)에는 부동산 소유권도 원 소유주에게로 되돌아 갔다. 만약에 친척이(고엘)이 경제적인 부담 때문에 자신의 동족을 속량(贖良)하지 못하여 어떤 사람이 노예로 팔리게 된 경우에는 하나님이 친히 그 사람의 구속자(고엘)가 되어 안식년의 법에 따라 그 사람을 속박에서 자유케 하신다(레 25:54~55). (124.2)
 비록 좀체로 지켜진 일이 없기는 했으나 이같은 연례적인 안식일 절기는 백성과 토지에 대한 전국(全國)적인 회복을 약속함으로서 장차 메시야에 의하여 성취될 회복의 상징이 되었다.25 안식일의 휴식이 장차 메시야의 시대와 함께 나타날 안식과 조화와 평화를 요약하는데 기여한 것처럼 이 연례적인 안식일 절기들에 약속된 회복도 장차 메시야로 말미암아 실현될 회복과 해방을 예시해 주는 것이다. 안식년의 주제들에 대한 메시야적인 용도의 특별한 실례들을 언급하기에 앞서 어찌하여 안식년의 주제들이 메시야적 목적에 그렇듯 잘 부합하게 되었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유익하지 않을까 한다. (124.3)
 안식년들의 구속론적인 특징들. 안식년들의 여러가지 특징들 속에는 종말론적인 의미가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첫째로 부채와 노예의 면제 그리고 부동산의 환수라는 주제는 대망의 메시야적 해방을 설명해 주는 좋은 실례였다. 안식년들이 전문적인 표현으로는 “면제, 여호와의 면제 년(年), 면제 년(年)”(신 15:1, 29; 31:10; 레 25:10)이라고 언급되고 있는 사실을 주목할 만 한 것이다. “면제” 즉 아페시스라고 하는 용어는 70인 역에서 안식년과 희년을 위한 히브리어 명칭들인 사마트, 세밋타, 요벨, 데로르 등을 반역하기 위하여 일반적으로 사용한 말이다.26 (124.4)
 “아페시스”라는 꼭같은 말이 신약 성경에 와서는 거의 언제나 “용서”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27 이 사실은 사회적 불의로부터의 안식년 해방이 장차 죄의 사슬로부터 우리를 자유롭게 해 주실 메시야의 사명을 예시해 주고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안식일 해방의 그같은 메시야 예표론적 용도는 신약에 와서 안식일에 부과된 구속론적 의미에 의하여 명료 해지고 확증되었다. (124.5)
 두번째의 종말론적인 특징은 희년을 선포하는 수양의 불(요벨 — 이 말에서부터 희년이라는 말이 생겼다) 나팔 소리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이사야는 메시야 시대의 시작을 묘사하기 위하여 나팔 소리의 표현을 사용하였다(사 27:13).28 그리스도의 재림을 알리는 나팔 소리에 대하여 신약 성경이 언급할 때도 희년 절기의 나팔에서 그 표현을 빌어온 것이 분명하다(고전 15:52; 살전 4:16; 마 24:31). (12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