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 중심의 성소론 제 4 부 예수님과 함께 지성소에서 (죄의 존재로부터의 자유) 15. 영광의 그룹들 (내가 겪는 모든 도전은 그리스도의 것임)
 오늘날 “사단은 [하나님의 백성에 대한] 비난을 하나님 앞에 강력하게 제시하고, 그들이 죄 때문에 하나님의 보호를 잃어버렸다고 역설하고, 그들을 범법자로 죽일 수 있는 권리를 주장한다. 그는 이 하나님의 백성들이 자기가 하나님의 은총에서 제외된 것과 마찬가지로 그렇게 되기에 합당하다고 선언한다. 그는 이 사람들이 하늘에서 내 자리를 대신하여 차지할 사람들입니까?라고 말한다”(교회증언 5권, 473, 강조는 필자가 한 것임). 사단은 구속받은 자들 가운데 몇몇 사람이, 자신이 상실한 위치를 맡게 될 것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깨닫고 있다. (202.5)
 여호와께서는 자신의 구속의 경륜을 통하여 루스벨이 부추기어 자신에 대하여 반란을 일으키라고 한 그 사람들, 그가 거의 멸망시켜 버린 사람들을 취하셔서, 그들을 하늘 아버지의 아들과 딸, 그리스도의 성품에 참여하는 자, 그리고 그리스도의 성품을 반사하는 자로 다시 삼아 주신다. 하나님은 그 사람들을 자신의 증인으로 삼고(사 43:10) 우주에게 말씀하신다. 사단의 함정에서 나온 이 인간들을 보라! (202.6)
 그들은 영으로 거듭났고, 변화를 입어 나의 아들 예수와 닮게 되었다. 나의 은혜로 인하여 그들은 나의 율법을 지켰고, 내가 그들이 인생에 대하여 가지고 있는 목적을 실행하였다. 그들은 내 약속에 고무되어 “정욕을 인하여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었다(벧후 1:4). 그들은 루스벨의 고소가 거짓말이라는 것을 밝히는 산 증거로서, 내가 제시한 요구 조건들이 합리적이고 달성할 수 있는 것임을 입증하여 준다. (203.1)
 요약하자면, 그룹들은 루스벨이 첫번 째로 드러내 보였고, 그의 타락 후에 가브리엘 천사가 그 자리를 차지하였고, 결국에는 구원의 경륜이 그 절정에 다 달았을 때에는 구속받은 자들 몇몇이 드러내 보인 품성과 기능의 상징이다. (203.2)
 그룹들은 하나님께서 속죄함을 받은 자들이 앞으로 언젠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행하도록 의도하신 봉사를 가리키고 있다. 그룹들이 항상 있어야 할 위치는 속죄소 위이고, 보좌 가까이에 서 있다. 아버지 하나님의 목적은 구속받은 자들이 언젠가 그리스도와 함께 그리스도의 보좌에 함께 앉아(계 3:21), 그리스도의 거룩한 율법을 주시하여 지키며, 그분의 영광을 반사하는 것이다. 그룹들은 하나님의 피조물의 대표로서, 그 날개들과 몸들로서 지성소 내에서 하나님의 창궁(蒼穹)을 이루고 있다. (203.3)
 자비의 보좌 위에 서 있는 금으로 만들어진 두 그룹들은 자신들이 그리스도의 믿음과 사랑의 정수의 충만함을 가졌다는 것을 상징하고 있다. 성전 내의 지성소의 바닥 위에 서 있는 “감람목”으로 만들어진 두 그룹들은 연약한 인류에 은혜와 능력을 불어넣으신 충만하신 성령께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다. (203.4)
 심판에 도움을 주는 그룹들
 요한은 이 “네 생물들” 이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충만하고, 하나님을 시중들고, 하나님께서 심판하시는 동안 하나님의 보좌에 가장 가까이에서 서 있다는 것을 보았다(계 4; 5장). 그룹들은 자신들의 임무가 마치면 구속받은 자들의 할렐루야 합창단에 참여한다. 다른 천사들과는 달리 이 그룹들은 어린양이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서 우리들을(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렸다는 것을 직접 증거할 수 있다(계 5:9). 이 말은 한때 비록 그들이 죄 가운데서 잃어버렸지만 은혜로 구원함을 받았다는 기쁨에 찬 지식을 확언하는 것이다. 그들은 또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향을 드릴 특권을 가진 엘리트인 “왕같은 제사장”으로 만드셨다는 것을 무척이나 기뻐한다(계 5:8, 10). 또 율법은 제사장들이 “사람 가운에서 취한 자”이어야 함을 요구하였기에(히 5:1) 궁극적인 그룹들은 구속받은 인간들이어야만 한다. (203.5)
 희랍어 원문에 관한 한 연구
 요한계시록 5장 9절에 나오는 한 단어에 관한 연구를 이쯤해서 하면 적합하다고 생각된다. 신약성경의 여러 다른 번역들을 한번 읽어 보면 그리스도께서 그룹들이 노래한 이유가 자신들을 구속하여 주어서인지 아니면 사람들을 구속하여 주어서인지 번역자들마다 틀리다. 만일 번역자가 그룹들이 천사들이라고 믿는다면, “사람들”로 번역하기를 선호하였을 것이다. 이런 편견으로 인하여 번역자들은 “우리들” 대신에 “사람들”이란 단어를 번역시 집어 넣었다(우리말 ‘개역성경’도 마찬가지이다). (203.6)
 “명확히 하여야 할 첫번째 사항은 매우 중요한 이 절의 정확한 본문을 결정하는 것이다. 몇몇 희랍어 사본 9절‘우리들’ 대신에 ‘그들’이 나온다는 사실, 또 10절‘우리들을’ 대신 ‘그들을’이 대신 나오고, ‘우리’ 대신 ‘그들’이 나온다는 점을 한두 명의 저자들이 크게 강조하였다. 어떤 것이 사실인가? 시내 사본은 이 세상에 현존하고 있는 사본 중 가장 오래되고 가장 완전한 것이다. (1862년 이 사본을 시내산에서 발견한) 타돌프(Tischendorf)교수는 이 사본이 4세기 중반경에 기록된 것이라고 여기었는데, 즉 신약성경 대부분이 쓰여진지 약 300년 후이고, 요한이 계시록을 기록한 지 250년 후이다.” (204.1)
 “가장 뛰어난 학자들은 이 책이 주후 95~97에 기록된 것으로 여긴다. 시내 사본은 다음과 같이 이 절을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그들은 새 노래를 불렀습니다. 말하기를, 당신은 책을 가지고 그 인을 열기에 합당하신 분이십니다. 왜냐하면 당신은 죽임을 당하시고 당신의 피로 하나님께 우리를 구속하셨습니다.’ 알렉산드리아 사본은 5세기 중반 경에 쓰여진 것 같은데, 9절에서 대명사 ‘우리를’을 생략하였다. 고대 사본 중에서 알렉산드리아 사본과 같은 경우는 이디오피아 사본뿐이다. 요한계시록의 희랍어에 관한 근자에 출판되고 매우 쓸모있는 트레젤레스(Tregelles)박사의 책(1872)은 이 절에서 의도적으로 ‘우리를’이란 단어를 그대로 놔두었다. 또 트레젤레스 박사는 시내 사본 이외에 이 대명사가 나오는 여섯 개의 가치 있는 사본을 열거하였다. 그는 또 1859년에 출판된 자신의 계시록 영역서(英譯書)에서 시내 사본을 기본적으로 따르고 있다. 딘 알포드(Dean Alford)는 비록 그가 ‘우리를’이란 단어의 삽입을 반대하지만 이 단어에 상당한 근거가 있음을 인정한다. 그가 실제로 이 단어를 생략하고자 하는 오직 한 가지 이유는 자신의 해석의 방향과 맞지 않기 때문이다. 엘리오트(E. B. Elliot)목사는 자신의 명저 묵시록의 때(Horae Apocalypticae)에서 흠정 영역(欽定 英譯)의 번역을 따른다. 요한계시록을 40년간 연구한 한 저명한 희랍어 학자의 견해에 큰 무게가 실려 있음은 확실하다”(James Gosset—Tanner, The Church in the Cherubim, 241). (204.2)
 “제롬(주후 383~405)이 만든 성경의 라틴어 흠정 번역서인 불가타(Vulgate) 성경에는 ‘우리를’이란 단어가 나온다. 헥세플라(Hexepla)인 위클리프 역, 틴데일 역, 크랜머 역, 제네바 역(1557), 라임 역(1582), 그리고 흠정역(1611)에는 모두 다 ‘우리를’이란 대명사가 나온다. 오늘날에도 독일에서 표준적인 권위를 가지고 있는, 루터가 번역한 성경에도 이 단어가 나온다”(Philalethes, The Cherabim of Glory, 29). 본 저자는 그룹들이 구속받은 몇몇 인간들의 품성의 상징들이라고 생각한다. (204.3)
 “한때 덮는 그룹이었던 이 ∙∙∙ . 빛나는 스랍 ∙∙∙ ‘아침의 아들’은 하나님의 목적을 우주에 전하도록 하기 위하여 하나님이 맨 처음에 고용하신 주 집행자이었다. 이 책임은 후에 에덴동산 문에 서 있던 그룹들이 들고 있었던 빛나는 검이라는 상징에 의하여 실행되었다. 이 역할을 성소와 성전에서는 그룹들이 덮고 있던 쉐키나가 행하였다. “대제사장이 일년에 한 번씩 지성소 안으로 들어가서, 하나님의 두려운 임재 가운데 법궤앞에서 봉사했을 때, 대제사장은(하나님의 뜻을)여쭈었고, 하나님은 종종 그가 들을 수 있는 목소리로 대답하셨다.” (204.4)
 “여호와께서 음성으로 대답하시지 않을 때에는 빛과 영광의 거룩한 광선이 법궤의 오른쪽에 있는 그룹 위에 머물게 하심으로써 시인이나 지지를 표시하셨다. 만일 그들의 요청이 거절되었을 경우에는 구름이 왼쪽에 있는 그룹 위에 머물렀다”(1SP, 399; 참조 부조와 선지자, 349). 그룹들은 언제나 하늘의 전달자이었다. (205.1)
 궁극적인 그룹이 될 수 없었던 가브리엘
 가브리엘은 천사이었기에, 이 구속적 진리들을 종합적으로 전달하는 것은 차치하고서라도 경험적으로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는 천사 무리와 함께 이 구속의 진리들을 “살펴보”고자 간절히 바란다(벧전 1:12). 이런 제한 때문에 마지막 회복의 시기에 구속하는 은혜에 관하여 우주에 증거하는 일은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과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하는 은혜와 성령의 가르치는 사역을 직접 경험하였던 변화된 인간들의 임무일 것이다. 이 종합적인 메시지를 그룹들—스랍들이 상징하고 있다. (205.2)
 또 더 나아가 “예수께서는 사단의 권세를 저지하시기 위하여 이 세상에 오셨다. 그분은 하나님의 손상된 형상을 인간 안에 회복하시러, 회개하는 영혼을 부패와 타락으로부터 일으키고, 올리시어, 고상하게 하여, 하늘의 천사들과 교제를 나눔에 적합하도록 만들고, 사단과 그의 천사들이 반역으로 인하여 잃어버린 하나님의 법정들에서 자리를 잡도록 하기 위하여 그들에게 하나님의 권능을 나누어 주셨다”(RH, 1894. 5. 8. 사체는 필자의 것임). 네 그룹들이 이 자리를 차지하였다. (205.3)
 구주께서는 자신의 행위화된 변화산 비유에서 제자들에게 하나님의 나라의 축도와 자신의 최후 승리의 전리품을 보여주셨다(마 16:28~17:5; 막 9:2~7; 눅 9:28~35). 예수는 초자연적인 광채 가운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부활한 자들의 대표자인 모세와, 살아서 변화된 남은 자, 즉 “우리 살아남은 자”(살전 4:17)들의 예표인 엘리야에 둘러 싸여 있는 자신을 보여주셨다. 이 대표적인 사람들은 인류의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경륜의 대표적인 전리품들이다. 성막의 속죄소 위에 서 있는 두 정금 그룹들이 결코 죽지 않을 하나님의 백성을 묘사하고, 성전 바닥에 서 있는 나무로 만든 그룹들이 사망과 부활을 거치어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는 사람들을 가리키고 있지 않는가? (205.4)
 구속의 경륜이 절정에 다달았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구속받은 인간 중 네 명을 그룹들—스랍들로서 임명하시어 루스벨이 타락하여 잃어버린 위치, 품성, 기능들을 취하게 하실 것이다. 이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의 생명이 불어넣어 졌기에 거의 극복할 수 없을 정도의 장애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은혜의 보좌 주위에 하나님의 약속의 능력과 하나님의 원칙의 승리의 실체적인 증거로서 서 있을 수 있다. 그들은 하나님이 주신 사명의 승리를 영원히 증거할 것이다. (205.5)